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43화 (344/400)

     

   붙잡은 자가 도망치려 한다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동에 적합하지 않으니 가지 말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저 자, 아까부터 그녀를 계속 실험체라 부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상태로는 실험체가 스스로 몸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금속 간의 마찰음이 들리며 시야가 움직였다. 그녀가 누워 있던 침대가 의자처럼 세워졌다.

     

   그 덕에 그녀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악취가 어디서 나는지도.

     

   그녀를 둘러싼 공간에서 감히 깔끔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장뿐이었다. 벽은 내부공사가 덜 된 건물처럼 철골과 전선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케이블이 연결된 크고 작은 기계와 설비들이 널려 있었다.

     

   그 기계들 위에는 컬트의 시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고깃덩어리가 가득했다. 그 아래에는 붉은 피와 검은 액체가 잔뜩 고여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동생님’의 육신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유기물이 필요한데, 기가크래커에는 배양 시설이 없습니다. 저건 에이모프가 공급해 온 유기물들입니다.”

     

   그녀의 의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상대가 말했다.

     

   “하지만 동생님의 뇌를 이식해야 할 시점에서는 신선한 유기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냉동된 실험체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어서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피비린내 나는 도살장 위에 인간 여성의 머리에 여러 개의 금속 다리를 가진 거미가 서 있었다. 놈은 뼈대가 훤히 노출된 다리로 뭔가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그래서 제 몸을 구성하는 유기물을 재사용해서 최소한의 생명 활동이 가능한 임시 육체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PS-111이라 소개한 괴물이 안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괴물’이었다.

     

   인간, 콜드블러드, 기계부품이 뒤섞인 얼굴, 그 아래에 컬트의 신체 부위를 이어 붙여 만든 길쭉한 몸통까지. 그녀와 대화하는 존재가 인간 머리를 단 거미라면 저 괴물은 지성체를 아무렇게나 접붙인 지네에 가까웠다.

     

   ‘지성체를 엮어 만든 괴물? 설마?’

     

   그녀는 그제야 자신과 대화하던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생물과 기계가 뒤섞인 키메라는 스페이스 서바이벌에 하나밖에 없다. 스타유니언의 저주받은 생체병기, 스크리머 말이다.

     

   “생각에 오류가 있어 정정합니다. 동생님은 괴물이 아닙니다. 필요한 재료를 전부 구했으니 무엇보다도 우수하고 효율적인 육신으로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한 PS-111은 피에 절은 옷가지로부터 손거울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거울로 알샤스의 모습을 비췄다.

     

   ‘어?’

   “실험체의 팔과 다리, 그리고 여러 장기는 동생님의 육체 제조 및 실험에 사용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 그녀는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의자형 침대 위에 머리와 몸통만 남은 컬트 하나가 있다.

     

   팔과 다리, 매혹적인 은발, 전부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에는 케이블과 전선들이 박혀 있고, 목에는 두꺼운 산소 튜브가 꽂혀 있었다.

   

   처참한 몰골을 한 그 컬트는 바로 알샤스 자신이었다.

     

   “에이모프가 말씀하시길, 죽지 않는다면 머리만 남아도 좋으니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현재 팔은 이 부분, 다리는 여기 이 부분을 보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호환성이 훌륭하니 다음은 장기 부분을 적출하겠습니다.”

     

   PS-111은 뾰족한 갈고리 손톱으로 끔찍한 괴물의 몸뚱이의 이 부위, 저 부위를 가리키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 모습에 그녀는 놈이 뭘 하려는 지 단번에 이해했다. 저 괴물은 그녀를 저 스크리머의 재료로 사용할 셈이었다.

     

   ‘시, 싫어! 스크리머만큼은 되고 싶지 않아!’

   “몸만 제가 사용할 거고, 뇌와 머리는 에이모프가 섭취할 예정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를 죽여! 나는 영원히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고!’

     

   알샤스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애원했다.

     

   PS-111은 자신이 만든 인공 생명체의 상반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거대한 몸을 숙여 창백한 금속 피부로 덮인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댔다.

     

   “에이모프가 말씀하셨습니다. 동생님의 육체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해 붕괴하는 이유는 실험체, 아니 당신 때문이라고.”

   ‘나, 나 때문이라고?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괴물이 동생이라 말하는 자가 누군지 알샤스는 몰랐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니 억울하기만 했다.

     

   하지만 PS-111은 이를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거울을 내려놓은 괴물이 갈고리 손톱을 세웠다.

     

   “당신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설명은 여기서 종료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다, 다음 단계? 히익?!’

   “제가 주입한 신경독 덕분에 통증은 없을 겁니다.”

   

   산채로 몸이 해체되는 와중에도 알샤스의 눈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녀의 소리 없는 절규를 지켜보는 것은 오로지 붉은색 카메라렌즈, PS-111의 눈뿐이었다.

     

     

   -

     

     

   「둥실둥실 맛있다!」

   「맛」「독특해」「처음」「먹었어」

   「볼텍스원한테서 이런 맛이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격납고 위에서 세 괴물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고 있다.

     

   그들 앞에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볼텍스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큰애기도 먹으면 좋을 텐데.」

   「동의」「큰어른」「먹이」「좋아해」

   「지쳤으니까 지금은 쉬게 내버려 두는 게 좋아.」

     

   황금색 털을 지닌 그리폰은 다른 두 괴물들을 달래며 고개를 돌렸다.

     

   호박색 눈동자가 향하는 곳에는 그들 앞에 있는 시체만큼이나 거대한 짐승이 엎드려 있었다.

     

   우주의 악마 중 하나인 ‘고뇌의 고리’를 상대로 승리한 우주괴물.

     

   씨 데몬과 레드 갤러곤의 사랑을 받는 에이모프는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긴 힘들만 했지.’

     

   녀석은 강적과의 연전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됐음에도 바로 쉴 수 없었다.

     

   녀석이 도와줘야 할 급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잔02에서 녀석은 22위 랭커 이사벨을 살리기 위해 PS-111을 먼저 기가크래커로 보냈다. 그 다음에는 기가크래커를 조커로 활용하기 위해 그녀를 보냈고.

     

   에이모프 덕분에 기가크래커로 복귀한 그녀는 PS-111과 이사벨의 상황부터 체크했다.

     

   그리고 에이모프의 예상이 많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기물이 다 떨어졌을 줄이야.’

     

   기가크래커는 연구선이 아니므로 선내에 세포 배양 시설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에이모프가 딱히 걱정하지 않았던 건 26호, 아드하이, 그녀가 사냥한 승무원들의 시체가 꽤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PS-111 말로는 인간 시체만으로는 이사벨에게 적합한 육체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여러 유전자를 혼합해서 서로 보완하도록 만들어야 뮤턴트 스크리머가 문제없이 기동할 수 있다나.

     

   그러고 보면 전에 에이모프에게 들은 적이 있다. 뮤턴트 스크리머를 만든 랭커들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것 같다고.

     

   그 탓에 그녀가 기가크래커에 도착했을 때, PS-111은 이미 자신의 몸을 떼다가 이사벨의 육체를 만드는데 썼다. 녀석의 희생 덕분에 이사벨은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고비를 넘겼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

     

   이사벨의 전(前) 육신은 볼텍스원을 소환한 여파로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PS-111이 구한 것은 쌍둥이 동생의 뇌와 눈, 그 외 극소수의 장기뿐이었다. 물론 녀석이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해당 부위들이라도 지켜낼 수 있었던 거지만.

     

   일단 녀석의 말로는 뇌의 손상은 어떻게든 막았기 때문에 새 육신에서 부활해도 지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한다.

     

   사실 그 부분이 문제였다.

     

   저 상태로 새 육신에서 부활한다고 해도 그걸 이사벨이라 봐야 할 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녀가 새 육신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괴물로 부활시킨 PS-111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아야 누군가를 증오할 수도, 그 증오를 풀 수도 있는 법이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깝다. 언니를 위해 고생해 온 그녀는 가족과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아무튼 다량의 시체를 서둘러 구해야 했기에 그녀는 고뇌의 고리가 죽자마자 에이모프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녀석도 사태가 급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즉시 움직였다.

     

   ‘그래도 설마 볼텍스원의 시체를 써 보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녀석은 볼텍스원의 시체 일부를 떼다가 격납고로 옮겼다. 볼텍스원의 시체가 있으면 이사벨의 새 육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한테도 필요할 거라 했고.’

     

   에이모프 말대로 볼프 전용 장비 중 볼텍스원의 육신을 재료로 요구하는 물건이 있다. 그 장비를 얻는다면 신격화 단계를 반 단계 올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은근히 신경 써 준다니까.’

     

   입으로는 보험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녀석이나 그녀나 잘 알고 있다.

     

   ‘…뭐 그 다음 컬트 시체들을 왕창 가져온 것은 좀 깼지만.’

     

   볼텍스원의 시체 다음으로 녀석이 챙겨 온 것은 감시청에 있던 컬트의 시체였다.

     

   에이모프와 고뇌의 고리가 싸운 여파로 감시청 내부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녀석은 멀쩡한 팔과 촉수에 시체들을 가득 담아 와서 격납고에 쏟아 부었다. 대부분은 컬트였지만, 노예들도 제법 섞여 있어서 PS-111도 만족했다.

     

   시체를 잔뜩 구해 온 직후 녀석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강화 효과가 끝난 터라 전처럼 곧바로 쓰러질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견뎌냈다.

     

   아직 알샤스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에이모프 특유의 초감각을 활용해 감시청 주변을 떠돌고 있던 비행선을 찾아서 가져왔다. 안에 있던 알샤스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만약 작정하고 싸웠으면 꽤 귀찮아졌을 텐데.’

     

   공황에 빠진 놈은 시체를 가지러 온 PS-111한테 당하고 말았다. 에이모프는 PS-111에게 알샤스의 처우를 맡기고, 곧바로 잠에 빠졌다.

   

   녀석이 잠에 빠졌기에 남은 뒤처리는 그녀가 맡았다.

     

   이사벨이 구한 40명의 콜드블러드 노예와 MPS-05. 그들이 탄 비행선이 베르잔02의 궤도를 떠돌고 있어서 데리고 와야 했다.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금방 끝났고, 콜드블러드들은 현재 기가크래커의 승무원들이 쓰던 선실에서 쉬는 중이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이후, 그들은 아우르 성계를 떠났다. 초광속 항해로 이동한 기가크래커는 현재 주인 없는 성계에서 배회 중이다.

    

   ‘그러고 보면 노예들의 처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네.’

     

   전투는 끝났지만 해야 할 일이 아직 산더미다. 그녀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에이모프를 흘낏 쳐다 봤다.

     

   ‘나중에 생각해도 되겠지.’

     

   나머지는 녀석이 깨어나면 그때 같이 논의하면 될 터.

     

   ‘에이모프와 논의라. 게임이었다면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못생긴 친구」「큰어른」「왜」「쳐다봐?」

   「응?」

   「아까부터」「계속」「봤어」

   「어? 어, 그게….」

     

   예상치 못한 질문 때문에 그녀의 사념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묻어 나왔다.

     

   「못생긴 친구」「큰어른」「신경 쓰여?」

   「신경?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모프박…큼, 쟤를 왜 신경 써?」

   「중간애기도 큰애기가 걱정돼? 신경 쓰여?」

   「아니. 전혀.」

   「진짜? 진짜로?」

   「감정」「수상해」「수상해」

     

   평소에는 시시콜콜한 거로도 다투던 녀석들이 웬일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어, 그게 아니라 사실 크, 큰애기가 배고픈 것 같아서.」

   「큰어른」「확실히」「힘」「많이」「사용」「배」「고플 듯?」

   「맞아! 전에도 이랬어!」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사념으로 쐈는데 의외로 먹혔다.

     

   「맛있는 둥실둥실 잘라서 주자!」

   「동의」「먹으면」「힘」「강해져」

     

   두 괴물은 그녀에게 추궁하는 것을 멈추고 에이모프에게 볼텍스원 고기를 먹일 준비를 했다.

     

   ‘휴.’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볼텍스원의 살점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호박색 눈동자의 그리폰이 느낀 고기의 맛은 진한 초콜릿 맛이었다.

  잠에서 깬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단맛이었다.

     

   턱이 아릴 정도로 진한 초콜릿의 맛이 입을 가득 채웠다.

     

   「아직 남았으니까 많이 먹어.」

   「그르르」

   「큰어른」「어린 동족」「비슷해」

   「그르르르?」

   「칭찬」

     

   혀를 녹이는 달달함 다음 내가 인지한 것은 내 양옆 머리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큰어른」「깼어」

   「큰애기도 이거 먹어」

     

   눈을 뜨자마자 입으로 검은색 살덩어리가 밀려 들어왔다. 잠들기 전에 챙겨 온 볼텍스원의 살점이었다.

     

   26호와 아드하이가 자고 있던 내 입에 부지런히 먹이를 밀어 넣고 있었다.

     

   격납고에 한가득 쌓여 있던 볼텍스원의 시체가 거의 안 남은 것을 보니 내가 잠들어 있을 때도 계속 넣어줬던 것 같다.

     

   ‘예전 생각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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