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플레임!’
내 예상이 맞다고 대답하듯 아드하이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통통했던 녀석의 몸이 한순간 홀쭉해지고, 입에 있는 촉수로부터 에너지 구체가 발사되었다.
자줏빛 구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갔다. 구체가 향하는 방향에는 우주 공간을 떠도는 암석 무리가 있었다.
아드하이가 쏘아 올린 작은 구체가 암석 무리와 충돌한 순간, 강렬한 섬광이 번뜩였다. 빛나는 태양처럼 거대한 폭발이 암석 무리를 휩쓸었다. 작게는 수십m, 크게는 수km에 달하는 암석들이 자주빛 에너지 폭발에 삼켜졌다.
빛이 꺼진 뒤 남은 것은 아주 적은 양의 암석 파편들 뿐이었다.
녀석의 머리보다 작은 구체가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지금은 시험 삼아 암석 무리에 쐈지만, 지름만 수백km에 달하는 왜행성에 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다.
‘위력 자체는 내가 아는 스타플레임과 똑같아.’
레드 갤러곤의 ‘스타플레임’은 기가크래커의 이온캐논과 비교했을 때 0.8배 정도의 위력을 지닌다. 슈퍼무기보다 약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놈들은 연사가 되니까.’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코스믹 볼트, 충전은 빠르지만 한 번 발사한 뒤 긴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온캐논과 달리 스타플레임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유일한 단점은 먼 거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열선의 광채가 선명하다는 점이라고 할까.
‘문제는 아드하이의 스타플레임은 구체 형태라는 거지.’
게다가 그 크기가 운동할 때 쓰는 소형 짐볼만큼 작다. 저래서야 최첨단 탐지 기능을 갖춘 함선조차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리라.
‘볼텍스원을 먹어서 저런 건지, 아니면 돌연변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전자는 일종의 각성 계기로 작용했을 뿐, 후자가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쓰는 사이킥 브레스도 보라색 열선 형태가 아니라 작은 에너지탄 형태니까.
「큰어른」「힘」「비슷하지?」
[즈 즈즈 즈즈즈(더 센 것 같은데)]
「진짜?」「진짜?」
[즈 즈즈즈(응. 잘했어)]
내 칭찬을 들은 녀석이 기가크래커의 외벽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통통하던 배는 어느새 홀쭉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대신 에너지 소모가 문제인가.’
한 번 쏜다고 살이 빠질 정도면 게임 속 레드 갤러곤처럼 아무 때나 막 쓸 수는 없을 거다. 정확히 말하면 연사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 위력은 현저히 떨어진 상태로 나갈 터.
‘비장의 한수로 봐야겠어.’
사실상 작은 기가크래커를 데리고 다니는 셈이니 매우 큰 이익이다.
‘다들 볼텍스원 사냥으로 얻은 것이 많아.’
이제 PS-111가 이사벨을 무사히 새 몸에 옮기는 것만 성공한다면 내가 계획했던 목표들은 전부 달성된다.
[즈즈 즈즈즈즈(그럼 돌아갈까)]
「나」「큰어른」「함께」「비행놀이」
[즈즈즈즈(비행놀이?)]
아드하이가 내 옆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나와 함께 비행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나 보다.
‘PS-111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니.’
소화도 시킬 겸 녀석과 함께 기가크래커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왜 둘이서만 놀아?」
그때 26호가 격납고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지느러미와 촉수를 살랑거리며 무중력의 공간을 헤엄쳐왔다.
「작은어른」「먹이」「저장고」「보관」「안 해?」
「작은애기도 먹을 거니까 같이 해.」
「나」「바빠」
「놀이보다 보관이 더 중요해.」
「아닌데」「놀이」「더」「중요한데」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둘 다 같이 있다가 들어가자)]
「좋아.」
「이게」「아닌데」
아드하이는 26호가 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26호가 원하는 대로 날 수 있게 만들려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아드하이야 워낙 빠른 녀석이니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여기서는 26호를 배려하는 것이 맞다.
[즈즈즈즈(도와줄게)]
「좋아!」
「잠깐」「나」「더」「잘 가르쳐」
「큰애기한테 배울 거야.」
「나」「비행」「실력」「탁월」「나」「공부」「잘 가르쳐」
[즈즈 즈즈즈(맞는 말이야)]
「이쪽」「날아와」
「응.」
「고통!」「왜」「때려?」
「실수야.」
그렇게 우리는 연습을 빙자한 비행을 한참 즐기다가 격납고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격납고에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드디어 성공…응?’
PS-111을 쳐다 본 나는 애들의 변화를 본 이후, 처음으로 당황했다.
녀석의 인상이 내가 잠들기 전에 봤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금속 껍데기 안에 근육과 살점이 가득 차서 다리와 몸통에 볼륨감이 있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뮤턴트 스크리머처럼 녀석의 몸은 금속 골격이 그대로 노출될 정도로 앙상한 몸매였다. 몸 안에 있는 살점을 거의 다 빼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당황했던 이유는 단순히 녀석의 상태 때문만이 아니다.
“실험하는데 계획보다 많이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녀석은 갈고리 손톱으로 익숙한 얼굴을 가진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차라리 절 죽여주세요. 제발 그 부위만은 자르지 마….”
덩어리의 정체는 머리와 상반신의 일부만 남은 알샤스였다.
남은 몸 곳곳에 생명 유지 장치가 연결된 놈은 정신이 나간 채 계속 사과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머리는 남겨두라 했을 텐데?”
“머리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저 상태야?”
“신체가 절단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정제를 적당량 투입했으니 곧 괜찮아질 겁니다.”
우리 중 유전자 조작 및 생물 공학 면에서는 누구보다 똑똑한 녀석이다. 거기다가 뇌의 반이 컴퓨터로 된 녀석이 알샤스가 이렇게 반응할지 모르고 했을 리 없다.
‘실험 반, 복수 반인가.’
PS-111은 이사벨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지만, 꽤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녀석의 진정한 원본, 18위 랭커 페넬로페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알샤스를 저 꼴로 만든 것도 납득이 간다. 놈은 녀석의 여동생이라 할 수 있는 이사벨을 노예로 부리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수니까.
‘생각과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살려놨으니까.’
약속을 어긴 것도, 그렇다고 지킨 것도 아닌 묘한 상황이지만, 이것 때문에 녀석을 혼내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녀석에게 이사벨을 넘긴 것은 나니까 나한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지.
하물며 알샤스가 어떤 생각하는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래나 저래나 과정만 다를 뿐 놈은 내 뱃속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신이 돌아오면 심문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잡아먹고 인면충으로 만들어야지.’
속으로 놈의 처우를 결정한 나는 PS-111을 돌아봤다.
“알샤스를 돌려준 것을 보니까 이사벨이 완성됐나보네?”
“그렇습니다만.”
“응?”
붉은색 카메라렌즈가 허공을 방황하다가 옆으로 쏠렸다.
“왜 그래? 설마 실패한 거야?”
“육신은 완성됐고, 뇌 이식 수술도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
“혹시 뭔가 잘못됐어?”
내가 계속 캐물어도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눈을 대체한 카메라렌즈는 연신 깜빡였다.
‘저런 태도는 처음 보는데?’
본래 녀석의 얼굴은 금속 피부로 덮여 있다 보니 감정을 읽기가 힘들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녀석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문제가 생겨도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녀석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동생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거부?”
“예. 적응도 테스트, 면역 반응 체크, 생체신호 수신 여부, 전부 정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파악한 결과, 88%의 확률로 동생님은 스스로 잠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새 육신에서 잠든 채 깨어나지 않는 이사벨.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PS-111의 얘기를 들은 직후, 이사벨이 있는 개조공장으로 향했다.
개조공장은 의료실 같이 필요 없는 시설들과 화물칸을 통합해 만든 시설이다. 베르잔02에 가기 전, 나와 PS-111이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 원래 목적은 PS-111과 MPS 시리즈의 유지 및 보수였지만,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넓게 뚫어놓은 복도를 지나 개조공장에 도착하니 미니 스크리머들이 빨빨거리며 바삐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전선과 기계 부품들, 생물의 피와 살점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가운데, 처음 보는 존재가 있었다.
수많은 전선과 케이블이 연결된 상태로 잠들어 있는 ‘그것’은 일반 스크리머와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창조주인 PS-111과 비교해 봐도 전혀 닮지 않았다.
일단 체형부터 그렇다.
PS-111이나 뮤턴트 스크리머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머리에 거미를 닮은 몸통, 전갈의 꼬리를 달고 있는 형태라면, 저것은 뱀이나 지네에 가까웠다.
뱀처럼 길게 뻗은 몸통은 합금으로 덮여 크롬색으로 빛났다. 길이는 약 8m. PS-111이 꼬리를 제외하고 7m 정도 되니까, 쌍둥이답게 몸길이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마디로 이어진 몸통은 꼬리로 갈수록 점점 얇아졌다. 꼬리 끝부분에는 백색의 칼날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갤러곤의 발톱검을 이식한 것 같았다.
각각의 마디에는 합금 비늘로 덮인 얇은 팔들이 한 쌍씩 달려 있었다. 컬트의 신체 부위로 만든 것인지 제각각 길이랑 굵기가 전부 달랐다. 딱 하나 동일한 점이라면 갈고리 모양의 손가락이 총 4개씩 달렸다는 것뿐.
길쭉한 몸의 맨 앞으로 시선을 돌리니 낯익은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눈을 감고 있다는 점만 빼면 내 옆에 있는 PS-111의 얼굴과 거의 똑같았다.
뱀, 아니면 지네의 몸에 여성의 머리를 그 모습은 신화속의 반인반사(半人半蛇), 메두사나 라미라를 연상시켰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주의 악마로부터 저주를 받아 육신을 잃고 새 몸에서 다시 태어난 존재니까.
콜드블러드 랭커이자 PS-111의 쌍둥이 동생, 이사벨.
녀석은 지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잠들어 있다.
“이식이 완료된 시점부터 안 깨어났다고?”
“예. 임의로 전기 신호를 줘서 자극해봤지만 계속 저 상태입니다.”
「무슨 일이야?」
뒤에서 익숙한 파장이 날아왔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하늘의 어머니가 개조공장으로 찾아왔다. 그리폰 수인 형태를 취한 그녀는 잠든 이사벨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거, 설마?」
“맞아. 이사벨의 새 몸이야.”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기 좀 그렇지만, 그리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걸.」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 가능하도록 제작했습니다. 모의 시뮬레이션 결과 높은 전략적 효율성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솔직히 이사벨의 새 몸은 나쁘지 않았다. PS-111의 말대로 튼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아이스 호러 기반에 여러 에이펙스 생물들의 특징을 섞은 것 같은데.’
보이는 것만 따졌을 때, 체형은 ‘아이스 호러’, 수많은 팔은 ‘고뇌의 고리’를 모방했다. 심지어 꼬리에는 갤러곤의 발톱검을 달았고. 녀석이 마주한 적들 중 가장 강했던 존재의 특징을 따온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외형도 내가 보기에는 마음에 들고.’
가지런히 정리된 금속 비늘은 표면에 잡티 하나 없었고, 몸매 역시 매끄럽게 잘 빠졌다. 팔들 간의 길이가 제각각이라는 점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 부분은 이후 조정하면 된다.
‘뭐, 이건 내 생각이니 일반화할 수 없지만.’
하늘의 어머니가 보여 준 반응대로 여자 중 뱀이나 지네를 좋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기 몸이 지네 형태의 괴물로 변하는 것을 달가워할 경우는 더더욱 드물고.
이사벨도 새 육신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생존이 문제 같지 않은데. 저 애는 뭐래?」
“이사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직 몰라. 수면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어.”
「혹시 몸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그건 아닐 거야. 애초에 새 몸으로 옮겨진 이후 깨어난 적이 없으니까.”
「…아예 깨어나지를 않았다고?」
뇌와 신체 일부를 이식한 이후에도 줄곧 이 상태이므로 녀석이 새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직 불명이다.
‘원인은 불명이지만, 어떻게든 깨워야 해.’
이사벨을 새 몸에 옮기기까지 해서 살린 것은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닐 동료로 만들기 위해서다. 녀석이 자신이 아는 랭커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파일로 남겨두긴 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상대의 정보를 읽는 능력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그리고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좋지 않아.’
지네를 닮은 저 스크리머 육신은 PS-111도 처음 만든 물건이다. 녀석이 발견하지 못한 오류나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녀석이 잠든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문제가 커진다.
‘여기까지 와서 녀석을 잃을 수 없어.’
“새 육신을 만들어서 옮겨보는 건?”
“단기간에 계속해서 뇌 이식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실패 확률도 72%로 추정, 이식 성공 후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 67%입니다.”
“좋아. 그러면 약물은?”
“기가크래커에 배치된 약물은 모두 시도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