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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47화 (348/400)

     

   ‘그리고 페넬로페의 특전도 뭔지는 짐작이 가.’

     

   나와 싸울 때 제이슨은 황금빛 형상을 소환해서 싸웠다. 그 능력은 놈이 콜드블러드 랭커를 잡아 강탈한 특전. 내가 가진 ‘심연의 색채’의 원본이 되는 능력이다.

     

   놈에게 살해당하고 특전을 빼앗긴 랭커가 바로 페넬로페다.

     

   ‘심연의 색채와 비슷한 특전을 가졌다면 쉽게 질 것 같지 않은데.’

     

   내 경우 심연의 색채는 유기물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그녀가 가진 특전에는 그런 제약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저 하늘 위에 가득한 컬트 군함들도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특전을 강탈하려면 직접 목숨을 빼앗아야 할 텐데.’

     

   상공에 떠 있는 제국모함들이 코스믹 볼트를 쓴다면 제이슨이 쉽게 승리하겠지만, 그러면 특전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직접 잡기에는 쌍둥이 콜드블러드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겼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아직 있다는 것.

     

   그사이, 제이슨과 근접전을 벌이던 페넬로페가 자신의 특전을 사용했다.

     

   뱀의 눈을 닮은 그녀의 눈이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고, 몸에서 황금을 녹인 것 같은 금빛 액체가 분비되었다. 황금 액체가 입고 있던 옷을 녹여 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순식간에 알몸이 됐다.

     

   그걸 본 신시아가 공중부양 기술로 빠르게 이동해 제이슨 앞에 섰다.

     

   페넬로페 몸에서 흘러나온 액체들은 자아를 가진 것처럼 허공에 모여 커다란 거품이 되었다. 한계까지 부푼 거품이 적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보호막을 전개한 덕분에 제이슨은 무사할 수 있었다.

     

   “칫.”

     

   기습에 실패한 페넬로페가 작게 혀를 찼다. 그에 대한 대답이라는 듯, 보호막 안쪽에 있던 제이슨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본 페넬로페가 빠르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비산한 금빛 거품들이 몰려들더니 그녀의 알몸을 감쌌다. 특전 효과로 강화된 컬러 밤은 주인을 지키는 황금 액체에 의해 막혔다.

     

   페넬로페 뒤에 있는 이사벨이 볼텍스원의 힘을 담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총구가 향하는 곳은 제이슨과 신시아가 서 있는 바닥. 아까는 진흙으로 변했던 바닥이 이번에는 모래수렁으로 변했다.

     

   신시아가 제이슨을 붙잡고 공중부양 기술을 사용해 위로 날아올랐다. 페넬로페의 금빛 거품이 그들 뒤에 따라붙었지만 모두 반구형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그 상태에서 제이슨은 페넬로페 머리 위에 손을 뻗었다. 그래비티 컨트롤을 사용했는지, 페넬로페 주변 바닥이 쩍 갈라졌다.

     

   금빛 액체로 보호받는 페넬로페는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사벨은 아니었다. 그녀가 재빨리 페넬로페와 거리를 벌렸다.

     

   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 상황을 원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사벨!”

     

   제이슨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본 페넬로페가 다급히 외쳤다. 그 순간, 하늘에서 작은 크기의 투사체가 날아왔다.

     

   내 감각으로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온 그 물체가 이사벨의 복부를 꿰뚫으려 했다. 페넬로페가 급히 이사벨을 밀치지 않았다면 필시 그랬을 거다.

     

   “커헉?!”

   “언니!”

   

   투사체에 의해 복부가 꿰뚫린 페넬로페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이사벨은 서둘러 허리춤에 차고 있던 원통형 물건을 빼서 모래 위로 던졌다. 피식 하는 소리가 나며 물건으로부터 붉은 안개가 확 피어올랐다.

     

   “Fuck! 레드미스트의 환각 페로몬이잖아!”

   “클로에! 지금 쏘세요!”

   “젠장! 내 것이니까 쏘지 마!”

     

   신시아가 외친 직후, 멀리서 날아온 작은 투사체가 안개 속에 있는 이사벨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저건?’

     

   하늘색 비늘을 찢고 바닥에 떨어진 투사체는 탄환이었다. 탄두는 흑요석과 비슷한 금속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부분은 금빛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스타펄과 노바메탈로 만든 탄환이야.’

     

   노바메탈은 뇌신이나 제국모함 같은 전략 병기를 만들 때 들어가는 희귀 금속이다. 스타펄은 그보다 훨씬 희귀한 금속이고.

     

   그런 금속들을 탄환으로 만들어 사용할 자는 랭커밖에 없다.

     

   ‘3대 2였어.’

     

   전장 밖에서 정체불명의 적이 쌍둥이를 노리고 있다.

     

   “언니! 정신 차려!”

   “…쿨럭.”

     

   붉은색 안개가 깔린 사이, 이사벨은 쓰러진 페넬로페를 부축했다.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끝으로 주변 풍경이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어느새 나는 어두운 건물 안에 있었다. 무너진 벽과 구멍이 뚫린 천장을 봤을 때 싸우던 장소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 같았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이사벨은 페넬로페의 상처를 확인 중이었다. 녀석의 손과 옷자락은 금빛 액체와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전부 페넬로페의 복부에서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나, 나 때문에 언니가….”

     

   공황 상태에 빠진 녀석은 언니의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페넬로페의 상태는 나빠지기만 했다.

     

   “신이시여, 제발 언니만은 안 돼요! 제발 언니만은….”

   “이사벨.”

   “계, 계약! 계약을 해서라도….”

   “이사벨!”

   “!”

     

   죽어 가는 페넬로페가 목소리를 높이자 이사벨이 멈칫했다. 그녀는 피범벅된 손으로 푸른 비늘을 가진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 우리가 지켜야 할 자들이 남았어. 우리 둘 다 없어진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할 거야.”

   “언니! 내게는 언니가 더 중요해! 언니를 잃을 바에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나는 알아.”

     

   복부에서 계속 피를 흘리는 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지극히 멀쩡해 보였지만,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유일한 가족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들을 지켜줘.”

   “…….”

   “가. 어서. 놈들이 곧 이곳에 올 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색 눈이 다시 황금색으로 변하고, 전신의 비늘이 금빛 액체로 뒤덮였다.

     

   “언니…!”

   “가!”

     

   포효하듯 외치는 언니의 절규에 이사벨은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건물 밖으로 도망치는 녀석 뒤로 시끄러운 폭음이 들린다. 제이슨과 페넬로페의 고함 소리가 서로 얽히는 것을 끝으로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폐허가 된 골목길에서 상처투성이의 이사벨이 무릎을 꿇고 있다. 사슴뿔의 컬트가 오만한 태도로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의미한 저항으로 우리를 귀찮게 만드셨군요.”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죽여.”

     

   귀찮다는 표정의 그녀는 볼텍스원의 힘을 받은 권총을 품에 챙겼다.

     

   “죽이라고요? 당신의 언니를 버리고 죽을 셈인가요?”

   “…무슨 뜻이지?”

     

   이사벨이 묻자 신시아는 선심을 쓰듯 입을 열었다.

   “당신의 언니, 18위 랭커 페넬로페는 제압만 했지, 죽지 않았어요.”

   “!”

   “물론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요.”

     

   신시아는 허리를 숙여 이사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유혹하는 뱀처럼 작게 속삭였다.

     

   “제게, 아니 저희 귀환파에 합류하세요. 그렇다면 당신의 언니는 살아날 것입니다.”

   “…….”

     

   멍한 표정으로 신시아를 바라보던 이사벨은 이윽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사벨의 기억은 그걸로 끝이었다.

     

   눈을 뜨니 익숙한 느낌의 토굴이 나를 반겼다.

     

   전반적으로 베르잔02에 이사벨이 콜드블러드 노예들을 숨기기 위해 만들었던 토굴과 흡사했다.

   

   다만 흙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녀석의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사기를 돌리는 것처럼 벽 표면에 그녀가 겪었던 불행한 일들이 반복해서 재생되는 중이었다.

     

   기억의 영화관 한가운데, 이사벨이 홀로 앉아 있었다.

   토굴에 앉아 공허한 눈으로 영상을 지켜보는 이사벨.

     

   녀석의 모습은 내 기억과 약간 달랐다.

     

   분명 작은 키를 가진 콜드블러드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 위에 어떤 여성의 이미지를 출력해 덧씌운 것 같았다.

     

   “에이모프.”

     

   콜드블러드와 인간 여성의 모습이 혼재된 상태의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사벨의 기이한 모습, 그리고 나를 인지하는 것까지. 이 장소는 지금까지 봤던 기억의 세계와 다른 공간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가두기 위해 만든 세계일지도.’

     

   적과 싸우다가 본인 때문에 다친 페넬로페. 그런 언니를 두고 도망친 자신. 그리고 신시아에게 속아 협력하는 것까지. 토굴의 벽에서 상영되는 기억의 단편들은 하나 같이 불행한 기억들밖에 없었다.

     

   즉, 이곳은 죄의식을 주입하고 속죄를 강요하는 악몽의 세계다.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내 뒤를 향한다.

     

   “…그리고 언니.”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 기이한 존재가 있었다. 크기만 줄어든 나와 다르게 PS-111은 꽤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뮤턴트 스크리머의 외형 위에 페넬로페, 인간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모습이었다.

     

   인간도, 콜드블러드도, 그렇다고 뮤턴트 스크리머도 아닌 존재가 입을 열었다.

     

   “‘동생님’.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알샤스는 패배했고, 동생님에게 해를 끼칠 요소들은 전부 배제됐습니다.”

   “…….”

   “그러니 나오셔도 됩니다.”

     

   PS-111의 말에 이사벨은 고개를 흔들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언니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라. 언니가 나 때문에 죽었는데 책임을 회피하려고.”

   “확인된 기억 정보에 따르면 그건 불가항력입니다.”

   “그런 주제에 혼자라도 살고 싶어서 나 자신을 속였어.”

   “아닙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PS-111이 계속 설득을 시도했지만, 녀석에게는 닿지 않았다.

     

   ‘나열된 기억만 봤을 때 이사벨은 죄책감에 빠져 있어.’

     

   수많은 과거 중 자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극단적인 부분만 반복되고 있다. 공간의 주인부터가 스스로를 학대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PS-111의 말이 들리지 않을 만도 하다.

     

   대화 자체가 안 이루어지는 이상, 우리가 뭘 말해도 듣지 않으리라.

     

   ‘죄의식을 해소시켜야 해.’

     

   우리가 이사벨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으니 그 반대도 가능할 거다. PS-111의 원본, 페넬로페의 기억을 활용한다면 녀석의 죄의식을 없애는데 큰 도움이 될 터.

     

   ‘문제는 PS-111의 기억이 거의 소실됐다는 건데.’

     

   과거에 녀석은 아이스 호러와 싸우다가 크게 파손됐다. 26호 덕분에 간신히 뇌를 복구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 대부분이 소실되고 새로운 인격이 자리 잡게 되었다. 페넬로페의 기억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사벨을 설득시키는데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열심히 이사벨을 설득하는 PS-111을 쳐다 봤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이사벨의 기억을 보고 느낀 바를 전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것만이 자기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라.’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나의 어머니는 매우 냉정하신 분이었다.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한 적이 없으셨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이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라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표현하는 게 서툰 것일 뿐 속으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아버지 말대로 어머니가 나를 아끼신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비싼 병원비를 계속 부담해주셨으니까. 다만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생각해 보면 아드하이와 함 오르트의 관계도 그랬지.’

     

   함 오르트는 사악한 흑룡으로부터 아드하이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버리는 것을 택했다. 그것 때문에 아드하이는 오랜 시간 동안 동족들을 원망하면서 살아왔다.

   

   나중에 진실을 듣긴 했지만,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갤러곤이 거짓말을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감안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긴 시간 동안 풀어가야 할 문제를 26호는 기억과 마음을 공유시키는 것으로 해결했다.

     

   ‘녀석에게 필요한 것도 말보다는 언니의 감정일지도 몰라.’

     

   PS-111의 감정이 직접 연결된다면 이사벨을 회복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터.

     

   나는 PS-111을 불렀다.

     

   “이사벨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 그러니 방법을 바꿔보자.”

   “동생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동생님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동생님을 깨어나게 하려면 대화를 계속해야 합니다.”

     

   늘 기계답게 냉정한 PS-111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지금 초조해하고 있다.

     

   나는 차분하게 녀석을 타일렀다.

     

   “포기한다고 한 적 없어. 방법을 바꿔보자고 했지.”

   “어떤 방법 말입니까?”

   “26호가 한 것처럼 직접 녀석에게 너의 감정을 전해야 해.”

   “저는 뮤턴트 스크리머입니다. 제 감정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와 화학 반응이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합니다. 동생님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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