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납고에 도착한 후 나는 알샤스에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놈은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베르잔02에서 나를 조롱하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어지간히 죽기 싫었는지 신시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 대한 것도 전부 털어놓았다. 덕분에 제법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4위와 7위가 힘을 합쳤다라.’
알샤스가 아웃스페이서의 지원을 받았을 때 짐작했지만, 아웃스페이서 랭커와 7위 컬트 랭커 범호가 서로 협력 관계였다. 아웃스페이서와 컬트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인데 뭘 대가로 협력을 받았는지는 불명이었다.
놈의 말로는 범호가 4위를 설득해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것보다 4위가 이 세계에 온 지 30년이 넘었다니. 큰일인데.’
게임에서 4위는 군체를 착실하게 성장 시켜 상대를 압도하는 타입이었다. 아웃스페이서는 개체 단위로는 약하지만 다수가 모이면 빠르게 강해지는 종족. 4위는 자신의 종족과 가장 어울리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꾸준히 성장했으니 군체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클 거다. 또한 랭킹 37위의 아웃스페이서 플레이어도 4위의 군체에 합류한 상태라고 한다.
랭커 둘이 힘을 합친 상태이니 어쩌면 컬트 제국을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규격 외의 존재가 됐지만 조심해야 해.’
30년간 쌓아온 유전자 정수에 특전까지 있을 테니, 싸울 거면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무튼 이걸로 귀환파 멤버들이 누군지는 확인했어.’
알샤스가 말하길, 본인, 아웃스페이서 랭커 둘, 범호를 제외하고 두 명의 랭커가 더 있다고 한다. 두 명 중 볼프 랭커가 파벌의 장비를 관리한다고 했다.
“볼프 랭커면 혹시 9위를 말하는 건가?”
“9위는 죽었어요. 저희 장비를 관리하는 자는 다른 자입니다.”
9위는 볼프 랭커 중에서는 가장 랭킹이 높은 실력자다. 변신 상태에서 싸우는 것에 능한 하늘의 어머니와 다르게 놈은 수인 형태에서 함대를 운용해 전투를 벌이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다.
놈이 죽었다고 단언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귀환파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놈은 어디에 숨어 있지?”
“도라네 성계의 아스카44에 있어요. 알려지지 않은 화산형 행성이죠.”
“화산형 행성이라.”
하늘의 어머니에게 볼프 전용 장비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제일 중요한 재료인 볼텍스원의 육신은 이미 구했으니, 나머지 광물 재료는 그곳에서 구하면 된다.
‘이사벨의 권총을 구하는 김에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좋아. 볼프 랭커의 위치는 알았고. 나머지 한 명은 어디 갔지?”
“그, 저, 저는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몰라요. 그저 범호의 지시를 받아 다른 일을 하러 간 것만 알아요. ”
전투용 발톱으로 격납고 바닥을 긁으니 놈이 서둘러 덧붙였다.
‘보아하니 범호가 두뇌 역할을 맡나 보네.’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다.
놈은 여러 변수들을 활용해 적의 허를 찌르는데 능하다. 기상천외한 전술을 즐겨 쓴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타입이라 할 수 있겠다.
“범호의 본거지는 어디 있지?”
“매번 떠돌아다니는 친구라 저도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놈의 특전은 뭐지?”
내 질문에 알샤스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제, 제가 깊게 얘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그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범호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 같은 파벌이라 해도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대를 따르다니. 생각보다 사람을 잘 믿는군.”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
“범호는 저희를 현실 세계로 귀환시킬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도 귀환파의 대의에 따르는 거고요.”
“귀환시킬 방법이라면 엔딩을 말하는 건가?”
내 질문에 알샤스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 속 방법대로 엔딩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요.”
“불가능하다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귀환파가 만들어지기 전, 범호는 다른 랭커들과 함께 최종 미션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어요. 9위도 그때 죽은 거였고요.”
그러고 보면 하늘의 어머니한테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과거에 1위를 비롯한 여러 랭커들이 최종 미션에 도전했다고 말이다.
당시 그들은 모종의 방법을 써서 미션에 도전하기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켰다. 돌이켜보면 각 랭커들이 받은 특전을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고, 그 후 랭커들 간의 분란이 시작됐다고 들었다.
“흥미로운 얘기군. 어떤 방법으로 엔딩을 보려는 거지?”
“그건 저도 몰라요.”
“모른다고?”
“방법을 완벽히 알고 있는 자는 범호밖에 없어요. 계획이 유출되면 곤란하기 때문이죠.”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닌데.”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범호는 필요할 때마다 계획의 일부를 알려줘서 저는 아는게 거의 없어요!”
내게는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수단이 몇 가지 있다. 기생충을 쓰거나 인면충으로 만들면 되니까.
랭커인 알샤스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 거짓말하거나 속이려 들지는 않을 거다.
다만 거짓말하지 않은 것과 별개로 의문점이 하나 있다.
‘신시아나 알샤스나 둘 다 타인을 쉽게 믿을 것 같지 않은데.’
신시아는 이중스파이였고, 알샤스는 생존을 위해 동료들을 팔아먹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신뢰를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아니면 뭔가 다른 요인이 있는 건가?’
알샤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뭔가가 범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특전이라든가, 내가 모르는 세뇌 관련 기술이라든가 말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야겠어.’
일단 중요한 것들은 대체로 다 확인했다.
나는 놈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동안 환상을 본 적이 있나?”
“예?”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현실 세계의 기억이 환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던데. 너는 환상에서 누구의 모습이 됐지?”
내 말을 들은 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인간 시절의 모습이 됐어요. 이 세계, 저의 저택에서 컬트의 육신으로 구현된 적을 죽였죠.”
놈은 제이슨과 반대였다. 제이슨은 컬트의 몸으로 ‘인간이었던 자신’을 죽이는 환상을 봤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그런 거지?”
“그건 왜 묻는 거죠?”
“네가 질문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퀘스트 10단계를 클리어했을 때 봤어요.”
제이슨도 10단계에서 환상을 봤다고 했다. 둘 다 선택만 다를 뿐 환상을 본 시점은 동일했다.
“그 이후로는?”
“범호와 4위 여제의 말에 따르면, 그 다음부터는 현실에서의 삶으로 복귀하는 환상을 본다고 해요.”
“현실의 삶?”
“우리가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질문한 건데, 예상 외로 흥미로운 답변이 나왔다.
귀환파의 멤버들 중 셋이 현실과 관련된 환상을 봤다. 파벌과 환상이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게다가 환상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했어.’
어쩌면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정한 정체성에 따라 보는 환상이 달라지는 형식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형상을 택했으면 현실 세계에서의 삶을, 이 세계에서의 모습을 택했으면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의 삶을 환상으로 보는 식으로 말이다.
‘이 부분은 이사벨이 깨어나면 얘기해 봐야겠어.’
“좋아. 더 이상 물어볼 것은 없네.”
“그, 그렇습니까?”
이걸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 누워 있던 알샤스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야, 약속하셨죠? 질문에 대답하면 살려 준다고요.”
“그래.”
“그,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팔다리와 하반신의 일부까지 모두 상실한 놈은 격납고에 남아 있는 비행선을 향해 기어갔다.
나는 굼벵이처럼 애써 기어가는 놈을 전투용 팔로 가로막았다. 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빠지려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나는 4개의 긴 손가락으로 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중앙의 머리로 입을 크게 벌렸다. 크게 벌어진 내 입을 본 놈의 안색이 급격히 핼쑥해졌다.
“사, 살려주신다고 약속했잖습니까!”
“그래. 약속했지.”
“다, 다시는 덤비지 않겠습니다! 에이모프님의 심기를 거스를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놈의 남은 육신을 입가로 가져갔다. 내 손가락에 대롱대롱 매달린 놈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 그러니까 제발 보내주세요! 주, 죽고 싶지 않아요!”
“너는 죽지 않는다.”
“예?”
“형태와 성격이 좀 달라지겠지만.”
“서, 설마?”
놈을 살려 주겠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다만 이대로 두면 언제 배신할지 모르니 ‘약간의 조치’를 취하려는 것일 뿐.
“꺄, 꺄아아악! 이, 인면충은 싫어! 싫다고! 제발 이러지 마!”
놈이 물가에 나온 고기처럼 펄떡펄떡 뛴다. 하지만 팔다리가 있어도 못 도망치던 놈이 지금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컬트답게 매우 아름답던 얼굴은 눈물과 침 등 각종 분비물로 얼룩졌다. 베르잔02에서 나를 보며 조소하던 랭커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놈을 활짝 벌어진 입 안으로 휙 던져 넣었다.
“시, 싫어어어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아아아….”
그 상태로 입을 다물자 비명이 뚝 그쳤다. 혓바닥과 입천장, 이빨 구석구석까지 달콤한 향이 확 퍼진다. 시원한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이었다.
계속 입에 머금으면 좋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알샤스였던 것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포식 효과 발동! ‘알샤스(올리비아 그린)’의 특전 탈취 성공!」
「보유한 ‘세 개의 머리’, ‘스모그 탑’과 융합 가능. 특성을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선택 결과는 재료로 사용된 특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추신: 당신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신중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특성 선택까지 남은 시간: 24:00;00」
「특성 강화 시스템 사용 대상입니다. 시스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과거 용의 둥지에서 봤던 텍스트박스.
새 ‘강적의 증표’가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오랜만이네.’
얼음 행성에서 제이슨을 잡아먹었을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나는 2개의 특성 중 하나와 플레이어 특전을 융합해서 새 강적의 증표 특성을 만들었다. 그러한 방법으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심연의 색채’다.
‘그때도 서로 성격이 다른 특성들을 재료로 요구했지.’
감염 관련 특성인 ‘우주 박테리아’와 초능력 관련 특성인 ‘환각의 불길’ 중 후자를 택해서 심연의 색채를 만들었다. 아마 전자를 택했다면 전혀 다른 형태의 강적의 증표가 만들어졌으리라.
‘이번에는 육체 관련 특성과 둥지 관련 특성 중 하나를 골라야 해.’
전자는 성체로 진화하면서 받은 보상 특성인 ‘세 개의 머리’고, 후자는 일반 특성 ‘스모그 탑’이다.
전에 그랬듯이 둘 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특성이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신중히 골라야 한다.
‘되도록 알샤스의 특전과 비슷한 형태의 특성이 나오면 좋겠는데.’
놈은 본체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복제물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능력을 손에 넣는다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터.
‘뭘 골라야 원본과 비슷해지려나.’
재료 중 세 개의 머리는 육체 관련 특성에 속한다. 에이모프 성체가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전부 이 특성 덕분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머리들은 중앙의 머리의 통제를 받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이 반영되어 ‘새로운 에이모프’를 만드는 특성으로 재탄생할지 모른다. 알샤스의 특전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거다.
‘그렇게 되면 진짜 좋은데 문제가 있어.’
바로 세 개의 머리가 쉽게 얻을 수 없는 특성이라는 점이다.
세 개의 머리를 다시 얻으려면 에이모프 성체나 특정 종류의 볼텍스원을 노려야 한다.
일단 에이모프 성체를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전자를 제외한다고 쳐도 후자, 즉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볼텍스원을 노리는 것도 쉽지 않다. 놈은 고뇌의 고리보다 더 위험한 생물이라서 지금 싸워도 이기기 어렵다.
‘여기서 재료로 쓰면 다시 얻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준성체로 성장하면서 받은 ‘정수수확자의 턱’이 ‘수확자의 아가리’로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세 개의 머리도 다른 특성과 융합해서 더 강력한 특성이 된다.
세 개의 머리로 만드는 융합 특성은 상당히 강력하기에 여기에서 소모하기에는 약간 아쉽다.
‘반면 스모그 탑은 그런 리스크가 없지.’
둥지에 독성 안개를 까는 이 특성은 현시점에서 내게 크게 중요한 특성이 아니니까. 또한 특성 자체가 다시 획득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원하는 결과물과는 거리가 있을 확률이 높다. 심연의 색채처럼 말이다.
원래 제이슨이 갖고 있던 능력은 몸에서 특수한 물질을 밖으로 분출해 황금 형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우주 박테리아를 재료로 썼더라면 비슷한 특성이 나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