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그 탑이 재료라면 둥지 싸움에 힘을 실어 주는 특성이 나오려는 건가?’
최근에는 둥지를 이용할 일이 없었지만, 이후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컬트 제국의 요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으니 앞으로는 다수의 적과 싸울 일이 많아질 거다. 추가로 물량전의 아웃스페이서들과의 전투도 신경 써야 하고.
‘그런데 도대체 어떤 특성이 나올지 짐작이 안 가네.’
둥지에 독성 안개를 까는 특성과 복제물을 만드는 능력의 융합체라.
어쩌면 둥지에서만 제한적으로 복제물이나 비슷한 무언가를 만드는 특성일지도 모른다. 둥지의 검은 점액질은 전부 내 몸에서 생성된 유기물. 이를 활용해 새로운 생물체를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단, 추측이 사실이라면 범용성은 많이 떨어질 거다.
둥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면 강적의 증표를 쓸 수 없으니 말이다. 함대와 맞서 싸울 때나 우주 공간에서 싸울 때처럼 둥지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용지물이 된다.
‘얻기 어려운 재료를 소모해서 되도록 원본과 비슷한 특성을 얻을까?’
아니면 재료를 구하기 쉽지만 결과물이 복불복인 특성을 고를까?
여태껏 얻은 강적의 증표 중 아예 쓸모가 없는 경우는 없었다. 각자 장단점이 있는 만큼 어떤 결과물이 나와도 큰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격납고 바닥에 편히 엎드린 채 계속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뭘 재료로 쓸지 검토하고 나서야 결정할 수 있었다.
‘세 개의 머리를 쓰자.’
재료가 귀하다고 해도 특전만큼 귀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플레이어들을 보면 전부 다른 효과를 가진 특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다른 랭커들과 싸워 승리한다고 해도 복제물을 만드는 특전을 획득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러므로 재료가 아깝다는 이유로 원하는 특전을 얻을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게다가 범용성 문제도 있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향후에는 둥지에 의존하지 못할 상황이 더 자주 벌어질 수 있다. 나부터가 이미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고, 적들 또한 나를 다양한 환경에서 공격해 올 테니까.
스모그 탑과 합쳤다가 정말로 둥지에서만 쓸 수 있는 특성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범용성이 떨어진다.
‘물론 세 개의 머리라고 내 기대에 부합하는 특성이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더 나은 쪽을 택하는 것이 낫다.
「정말 ‘세 개의 머리’를 재료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 후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확인.’
「특성 강화 시스템 사용 대상입니다. 시스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마침 내가 가진 특성 중 현재 불필요한 것들도 제법 있다.
‘치악력, 키틴질 외피, 날개, 맹수의 발톱, 개량 침샘, 소화액 분비 강화. 이렇게 6개로 하자.’
특성 강화용 재료까지 설정을 완료하자 강적의 증표 시스템이 가동됐다.
「‘알샤스(올리비아 그린)’의 특전과 ‘세 개의 머리’ 특성이 융합. ‘양자적 중⫓◯⫦∬⫓특성 강화 시스템 개입!」
「특성 개량 중」
「‘히드라 분열’ 특성으로 진화!」
특성 효과가 적용되면서 몸에 변화가 생겼다.
인간으로 치면 어깨와 쇄골 언저리부터 솟아난 긴 목과 그 끝에 달린 2개의 머리들. 해당 부위의 표면에 보라색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보라색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딱히 고통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묘한 기분인걸.’
「그르르?」
「그륵?」
나와 똑같은 기분인지 좌우의 머리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신규 강적의 증표 ‘히드라 분열’의 텍스트박스를 확인했다.
「히드라 분열: 머리를 분열시켜서 60분간 독립적으로 활동 가능한 복제물을 만듭니다. 복제물은 최대 2체까지 생성 가능하며, 본체의 신체적 특징 일부를 제한적으로 공유합니다.
*공유되는 요소: 육체, 특수방어, 내부기관, 환경적응 관련 특성
*주의: 복제물이 사망할 시 30일간 재생성이 불가능합니다.」
‘설명을 보면 내 예상대로인 것 같네.’
머리들을 이용해서 복제물을 만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다만 알샤스와 달리 복제물이 본체가 지닌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게다가 복제물을 만드는 개수도 2체로 제한됐고.’
어찌 보면 열화 버전이라 봐도 좋을 터.
「그르르….」
「그륵? 그르르?」
‘너희보고 뭐라 하는 거 아니야.’
왼쪽 머리가 내 생각을 읽고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오른쪽 머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왼쪽 머리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그러고 보니 좀 똑똑해진 것 같은데?’
원래도 두 머리는 전투 중에 나를 보조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통제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야.’
신체 부위에 자아가 생겼다기보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뇌의 성능이 향상된 것에 가까운 듯했다.
‘한 번 실험해볼까.’
나는 보라색 광택이 흐르는 왼쪽 머리를 보며 히드라 분열을 사용했다.
특성이 활성화되자 왼쪽 머리와 목을 감싸던 보랏빛 윤기가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라색 젤리 같은 질감으로 변하더니 내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 또한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목이 없어져서 신체의 균형이 깨진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에너지 소비량이 엄청나.’
검은 탐식자 대포를 썼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양의 에너지가 소모됐다. 잠들어 있던 중 26호와 아드하이가 고뇌의 고리 고기를 내 입에 쑤셔 넣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다.
내가 자세를 가다듬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보라색 젤리는 점점 크기를 불리고 있었다.
약 15m 크기에서 시작한 ‘그것’은 무럭무럭 자라나 어느새 50m 크기의 거대 괴수로 성장했다. 그 형태는 에이모프 성체와 상당히 유사했다. 머리가 하나라는 것, 크기가 나에 비해 10m 가량 작고 전체적으로 왜소한 느낌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유일 특성이 적용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근육과 비늘, 갑각 덕분에 육중한 느낌이 드는 나에 비해 녀석의 몸매는 훨씬 호리호리했다.
그리고 왼쪽 꼬리에 생체 대포 대신 일반 꼬리가 달려 있다거나, 침식 촉수가 없어서 배갑(背甲) 부분이 홀쭉하다거나 하는 걸 보면 확실했다.
저 모습은 게임 속에서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
형태가 다 갖춰지고 난 뒤, 녀석의 몸 색깔이 나처럼 검은색으로 변했다. 검은색 갑각과 비늘은 보라색 광택으로 번들거렸다.
「그르르르」
새 육신을 얻은 ‘왼쪽 머리’가 으르렁거린다. 초능력 관련 특성을 공유할 수 없어서 괴물의 촉수 역시 이식되지 않았다. 아마 나처럼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러면 통제는 어떻게 하는 거지?’
내가 쳐다보고 있자 ‘왼쪽 머리’가 내게 다가와 혀를 내밀어 나를 핥아댔다. 주인한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애완견처럼 말이다.
‘에이모프의 애교라니.’
귀엽긴 한데 지금 상황에서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녀석을 밀어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찌릿하고 울렸다. 이어서 생전 처음 겪는 묘한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앞에 머리가 둘이 달린 에이모프가 느껴진다.
동시에 보라색 광택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왼쪽 머리’가 보인다.
곤충이 겹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두 가지의 이미지가 내 뇌리를 관통하고 있다.
‘두 육체가 감각을 공유하….’
「…에이모프가 둘이라니.」
그때 복도와 이어진 문가에서 사념파가 날아왔다.
거기에 그리폰 수인의 형태를 취한 하늘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매혹적인 호박색 눈동자가 당혹감을 담은 채 나와 ‘왼쪽 머리’를 향하고 있다.
‘기묘한 기분인걸.’
본체의 머리로 그녀를 보는 것과 함께 또 다른 몸으로 그녀의 존재를 느끼는 중이다. ‘왼쪽 머리’는 눈이 없다 보니 턱 아래의 보조기관으로 상대를 감지한다. 사냥의 표상 상태에 돌입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봐야 할 터.
즉, 두 개로 분열된 나는 두 가지 각도, 두 가지 감각 기관이 그리폰 수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에이모프가 됐을 때 이후 지금까지 이처럼 생소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새삼 신선함을 느끼게 해준 장본인이 그리폰 볼프한테 다가간다.
「어? 자, 잠깐? 저기요?」
「그르르르」
그리고 입을 벌린 채 긴 혓바닥을 내밀어 그녀를 핥았다. 그녀의 몸을 덮은 황금색 털이 깜짝 놀란 고양이마냥 바짝 섰다.
「…….」
[즈즈(그만)]
「그르르?」
굳이 보조기관으로 느끼지 않아도 그녀가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자 녀석의 혀가 하늘의 어머니의 머리를 핥던 그대로 멈췄다.
‘뒤로 물러나.’
에이모프 해츨링으로 깨어났을 때처럼 신중하게 ‘왼쪽 머리’를 뒤로 옮겼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다시는 이러지 마.」
[즈즈즈즈(주의하지)]
「뭐 하는지 보러 왔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에이모프의 침에 푹 젖은 하늘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털을 쭉 짰다.
아무래도 새 특성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게 알샤스를 잡아서 얻은 능력이구나.」
[즈(그래)]
「그르르」
하늘의 어머니는 새 몸을 차지한 ‘왼쪽 머리’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자 내 본체의 입과 ‘왼쪽 머리’의 입에서 동시에 소리가 나왔다.
「몸이 동기화된 것인가 보네? 인공 보조 신체 같은 느낌인가?」
[즈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그 비싼 물건, 나는 안 써봐서 몰라)]
「보아하니 너한테 통제를 받지 않을 때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나 보네.」
그녀는 침에 젖은 것 때문에 기분 나쁜 것과 별개로 두 개의 육신을 동시에 움직이는 내 모습이 꽤나 흥미로운 듯했다.
‘움직이는 것은 얼추 감이 잡혔어.’
둥지에 링크했을 때와 기생충을 지휘할 때 느껴지는 감각이 하나로 합쳐진 느낌이랄까?
굳이 인간의 감각에 대입해 설명하자면, 꿈에서 깨기 직전 몸을 움직일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아직 몸은 잠들어 있지만 꿈에서는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나 화장실에도 가고 밥도 먹고 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나는 ‘왼쪽 머리’의 날개 팔을 드는 것과 본체의 꼬리를 움직이는 것을 동시에 시도해봤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인간 시절에 이런 상황에 처했으면 정신이 나갔을 것 같은데.’
복제물이 2개가 되면 여기서 더 복잡해질 듯하지만, 그건 나중에 실험해야겠다. 몸에 비축한 에너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제물로 특성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복제물은 육체, 특수방어, 내부기관, 환경적응, 이렇게 총 4가지 계열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 재생력 같은 특성은 자동으로 활성화될 테니 신경 쓸 것 없지만, 의태 기관 같이 복잡한 특성들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겠다.
‘마침 잘됐어.’
에이모프는 페로몬에 의한 교란 효과를 받지 않으므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저 의태기관의 부수 효과인 목소리 흉내 내기로 어떤 대상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을 뿐.
그러나 하늘의 어머니는 의태기관이 내뿜는 페로몬에 영향을 받는다.
[즈즈즈(잠시만)]
그녀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나는 ‘왼쪽 머리’가 의태 기관을 쓸 수 있도록 집중했다. 복제물의 전신에 존재하는 미세한 구멍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본체의 보조기관이 익숙한 페로몬의 잔향을 감지했다. 그 상태로 나는 복제물의 입을 열었다.
“어때?”
“어때?”
「…….」
본체와 ‘왼쪽 머리’ 입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먹었던 존재, 알샤스의 목소리다.
“내 모습 어떻게 보여?”
“내 모습 어떻게 보여?”
「…소름끼치니까 한 명만 말해 줄래?」
끈적거리는 침 때문에 엉킨 털이 다시 곤두서는 것을 보니 진짜 싫은가 보다.
나는 목소리를 내는 대신 본체에 달린 괴물의 촉수로 파장을 보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 즈즈즈 즈즈(아직 조절이 잘 안 돼. 지금 나 어떻게 보여?)]
「둘 다 알샤스로 보여.」
[즈(그래?)]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내 머리보다 한참 아래를 향하고 있다. 의태 기관 때문에 감각이 교란되어 나를 인간의 모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런 거다.
“반은 성공이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모습이 되는 거지.”
“유전자 정수를 이용해서 말이야.”
「…실험하고 싶으면 나 말고 다른 애들하고 해주면 좋겠어.」
몇 가지 더 확인해 볼 것이 남아 있었지만, 저쪽이 저렇게 싫어하니 나중에 해야겠다. 나는 의태한 ‘왼쪽 머리’는 그대로 두고 본체의 의태 기관을 해제했다.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확인할 게 남았으니 이후에 부탁해)]
「휴….」
내가 흘린 파장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분리된 부분은 아프지 않은가 봐? 목 부분이 비어 있는데.」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괜찮아. 분열한 뒤에 느껴지는 어색함도 금방 사라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