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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한 광물 중 10%를 주겠습니다.”
「얘들아, 선장님께서 싸우고 싶으시단다. 공격 준비.」
“2, 아니 30%!”
「모두 정지. 이봐, 진첸이라고 했나? 배 주인이면서 그리 담이 작아서야 되겠나?」
“…그럼 얼마를 원합니까?”
「70%. 70%면 이대로 보내주지.」
자그마치 반 이상을 달라는 해적 말에 진첸은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저 니미럴 해적 새끼가 진짜!’
하지만 속으로만 잔뜩 욕할 뿐 겉으로는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저쪽에서 광물을 전부 내놓으라고 해도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70%를 넘기고 빠져나가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할 상황이다.
“조, 좋습니다. 광물을 넘길 테니….”
“선장님, 새로운 신호가 발견됐습니다.”
“뭐?”
「뭐야 이거?」
그들만이 아니라 저쪽에서도 뭔가를 발견했나보다. 해적 두목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사이 진첸도 성계 지도에 새로 나타난 표식을 확인했다.
네모 모양의 표식이 해적선보다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여긴 시노로쿠 카르텔의 관할인데 저 새끼는 또 뭐야?」
다른 해적인 줄 알았는데 당황해하는 해적 두목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니들 혹시 우리를 낚으려고 한 거냐?」
“아, 아닙니다! 저 배는 저희도 모르는 배입니다!”
「이런 개새끼들! 모두 전투….」
분노한 해적 두목이 막 공격을 개시하려는 순간, 통신이 그대로 종료됐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갑자기 상황실의 불이 깜빡이고 홀로그램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예상하지 못한 전파 장애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왜?”
“그건 저희도 잘….”
선원들의 무능한 대응에 절로 한숨이 나오려던 것을 억지로 참았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른 진첸은 흔들리는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 있던 네모 표식이 지도에서 사라진 것이다.
“네모 표식은 어디 갔지?”
말하자마자 상황실의 불이 뚝 꺼졌다. 이윽고 비상 전원이 활성화되면서 상황실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모르면 찾아야지!”
“예, 옙!”
진첸이 소리를 지르며 다그치니 그제야 승무원들이 움직였다.
“항해팀장, 대신 잠깐 지휘 부탁합니다.”
“예?”
주변에서 쏟아지는 어이없다는 시선을 무시한 그는 상황실 밖으로 나왔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함장실에 있는 중급 강화복을 입고 있어야 진정이 될 듯싶었다.
서둘러 함장실로 돌아간 그는 강화복을 착용했다. 강화 외골격이 움직일 때마다 흘러나오는 금속음, 그리고 활성화된 기계 패드가 내는 전자음이 그에게 안정감을 줬다.
레이저 소총까지 마저 챙치고 함장실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배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채굴선을 탄 이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충격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배가 흔들릴 때 폭음도 함께 들렸다. 채굴선이 무언가와 부딪친 것이 틀림없었다.
“상황실! 거기는 이상 없나? 상황실!”
상황실에 연락하려 했지만 통신기가 완전히 먹통이었다.
‘해적들의 짓인가?’
기어코 놈들이 채굴선을 습격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강화복에 내장된 강화제를 몸에 투입했다. 강화액을 주입할 시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진첸은 상황실로 향했다.
적색 비상등이 깔린 복도는 몹시 음산했다. 좀 전까지 익숙하게 뛰어왔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왜 이리 조용하지?’
해적들이 선내로 진입했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복도는 조용하기만 했다. 헐크 뮤턴트라 해도 이렇게 단기간에 승무원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해적들과의 통신이 끊긴 이후, 모든 상황이 그의 이해에서 벗어났다. 걸음을 옮길 수록 그의 목덜미에 흐르는 땀방울도 늘어만 갔다.
다행인 것은 상황실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앞에 상황실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려고 다가간 진첸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가 크게 충격을 받았는데 상황실에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가 있을까? 게다가 이 정적.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문에 조심스럽게 귀를 가져다 댔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
귀를 문에 댄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합금 벽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 아니다. 상황실 안에서 들리면 안 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주 작게 들려오는 그 소리, 분명 비명 소리였다.
“씨, 씨발!”
정체 모를 무언가가 상황실에 들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즉시 등을 돌려 상황실 반대편으로 달렸다.
무거운 강화복을 입은 채 달리니 복도가 쿵쿵 울렸다. 그의 귓가로 문이 열리며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실에 있던 뭔가가 그의 발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것이리라.
등 뒤에서 뾰족한 물건 여러 개가 합금 벽을 할퀴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끈적끈적하고 습한 쇠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오, 오지 마!’
그는 손에 쥔 레이저 소총을 쓰는 대신 도주를 택했다. 강화제까지 투여한 덕에 그는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 사이에 섞인 섬뜩한 금속음은 점점 잦아들었다.
‘탈출선을 타고 도망쳐야 해!’
탈출선을 타고 빠져나간다면 해적들에게 붙잡힐 확률이 높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불가해의 존재와 맞서기 보다는 차라리 이해 가능한 해적한테 붙잡히는 것이 훨씬 낫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
진첸은 기계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탈출선이 있는 곳을 향해 계속 뛰었다.
탈출선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 안 남은 그때, 그의 앞에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젠장.”
그들 중 선두에 선 자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아까 전까지 영상 통신으로 대화하던 해적 두목이었다. 진첸이 강화복을 입고 사이, 채굴선 내부로 침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해적들은 채굴선의 승무원들을 붙잡은 채 뭔가 말하고 있었다.
저들과 마주치면 싸워야 할 것이 기정사실이었기에 그는 급히 갈림길의 벽 뒤에 몸을 숨겼다.
‘응?’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멀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승무원들은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잡고 있는 해적들이 더 다급해보였다.
그때 진첸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잡혔다. 무리 뒤편에 있던 해적 뒤로 못 보던 팔 한 쌍이 있었다. 비상등의 불빛에 붉게 물든 그 가녀린 팔은 연인이 껴안듯 해적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어둠 속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워낙 신속하고 조용했기에 다른 해적들은 동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승무원들이 가끔씩 떠드는 괴담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얇고 매끈한 여인의 팔이 또다시 튀어나와 해적 한 명을 더 낚아챘을 때. 진첸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괴담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부하가 수상한 손에 이끌려 사라진 것을 목격한 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해적들도 자기 동료가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세 번째 희생자가 나왔을 때, 해적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이 불을 뿜었다. 번쩍이는 녹색 불빛 덕분에 진첸은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팔을 가진 ‘뱀’이 허공에 뜬 채로 천장에 붙어 있었다.
놈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맞으며 해적들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 팔이 해적들을 끌고 가면서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뱀’의 머리가 잠깐 드러났다.
그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다. 팔에 붙잡혀 발버둥 치던 해적들이 얼굴을 보자마자 저항을 멈출 정도였다.
그러나 미인이 입을 벌리는 순간, 해적들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뱀처럼 크게 늘어난 입이 해적을 통째로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으, 으아아아악!”
“씨, 씨발?! 여기까지 따라왔어!”
“모두 도망쳐어어!”
산전수전 다 겪었을 해적이라도 저런 광경은 본 적이 없을 거다. 여자의 얼굴과 팔을 가진 뱀이 동료를 산 채로 삼키는 모습을 말이다.
진첸은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극심한 공포에 몸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 이상으로 ‘동생님’이 잘 적응해서 다행입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진첸의 채굴선에는 여자가 탑승하지 않았다.
그러니 저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먹이를 고른다는 부분은 아쉬운 점입니다만.”
상황실에서 맡았던 냄새가 그의 뒷목에 훅 맴돈다.
진첸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생각보다 별로 없네?’
나는 봉지에 남아 있는 과자를 털어먹듯 반토막난 해적선을 잡고 흔들었다. 안에 남아 있던 해적들이 무중력의 공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관계없이 모두 세 개로 나뉜 나의 입으로 들어갔다.
‘쩝.’
덩치가 커져서 그런지 수십 명의 해적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좌우의 머리들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혀로 입가를 핥았다.
「큰어른」「먹보」「먹보」
해적 하나를 잡아먹고 기분이 좋아진 아드하이는 내 근처를 뱅뱅 돌며 나를 놀렸다.
「큰애기 놀리면 안 돼.」
「먹보」「사실」
가슴쪽 작은 팔에 안겨 있던 26호는 아드하이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촉수를 몸에서 생성했다. 그리고 저 작은 갤러곤의 머리를 때렸다.
아니, 때리려 했다. 아드하이는 날렵하게 움직이며 촉수를 피했기에 녀석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작은어른」「공격」「예측」「쉬워」「이제」「안 맞아」
「진짜?」
「?」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잠깐」「그거」「좀」「많은데」
「작은애기는 잘 피하니까 괜찮아.」
「그거」「치사해」
어느새 전투 모드가 된 26호가 내 팔에서 빠져나와 아드하이 뒤를 쫒기 시작했다.
둘이 같이 놀게 내버려 둔 나는 남은 해적이 없나 싶어 배를 털었다.
그때 다른 잔해에서 하늘의 어머니가 빠져나왔다. 그리폰 상태에서 마노(瑪瑙)색 날개를 펼친 그녀가 내게 날아왔다.
「정리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어.」
[즈즈즈즈(이상한 것?)]
그녀가 부리로 물고 있던 것을 내게 보여줬다.
60cm에서 70cm 사이의 길이, 직사각형 형태로 얇고 길게 뻗은 디자인, 전면부에 달린 녹색 레일과 상단에 장착된 소형 단말기 패드, 마지막으로 작은 방아쇠와 견착대까지.
전부 게임할 때 지겹도록 보던 물건의 특징과 일치했다.
‘플라즈마 라이플?’
설정상 플라즈마 무기의 역사는 곧 경량화와 안정화의 역사다.
함선들 간의 우주전을 목표로 개발된 플라즈마 무기는 막강한 화력을 가졌지만, 단점도 적지 않았다. 크기가 크고, 에너지 소비가 심해서 군함용 우주선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후 지속적인 연구 끝에 플라즈마 무기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크기 개량에 성공한 결과물이 바로 플라즈마 런처, 플라즈마 볼터, 그리고 피스톨이었다.
다만 이들이 완벽한 성공이라 보면 살짝 미묘한 측면이 있다.
우선 볼터는 그 무게와 반동 때문에 강화복을 입지 않고는 사용하기 어렵다. 플라즈마 피스톨은 안전성이 떨어지고 생산단가가 무지막지하게 높다. 런처의 경우는 애초에 분대 지원 화기로 개발된 거라 논외로 치고.
하지만 플라즈마 무기 중 이러한 단점을 완벽히 개량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하늘의 어머니가 보여 준 저 무기, 플라즈마 라이플이다.
저것은 무게, 화력, 안전성에서 전부 합격점을 받은 완벽한 무기다.
화력은 볼터 이상이고, 반동이 거의 없다. 무게도 훈련 받은 군인이라면 장기간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안전성 또한 희귀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오래 사용해도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대신 높은 생산비용, 제작에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어 게임에서도 최상위 메가콥 플레이어만 만들 수 있다. 시스템상 최고 테크로 분류되는 무기다 보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게임에서 플라즈마 라이플은 지구와 화성에서만 사용하는 무기로 설정되어 있었다. 제조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일곱 가문이 지정된 행성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왜 여기 있지?’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해적들이 플라즈마 라이플을 갖고 있다고?)]
「응. 다는 아니고 한 명이 들고 있더라.」
물론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 간에 거래가 가능한 덕분에 플라즈마 라이플로 무장한 용병들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