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56화 (357/400)

     

   그러나 그건 게임 속에서의 이야기. 내가 메가콥의 고위층이면 어떻게든 플라즈마 라이플의 반출을 막으려 들 거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이놈들이 태양계의 배를 털었다고?)]

   「설마. 전함 수천 척을 가졌으면 모를까 놈들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해.」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즈즈(그렇다고 지구 출신 같지도 않은데)]

   「어쩌면 플레이어와 관계있는 해적들일 수도 있어.」

     

   그녀의 추론대로 사실 현 상황에서 이 해적들이 플레이어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다만 애매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귀한 무기를 들고 있는 놈들 치고 너무 약해.’

     

   여태껏 싸운 랭커들 중 부하들에게 플라즈마 라이플을 지급한 자는 없었다. 그걸 보면 게임 속보다 라이플을 사용하기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뜻일 터.

     

   랭커들도 쉽게 확보할 수 없는 무기를 이런 허접한 수준의 해적들이 들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수상했다.

     

   ‘게다가 여기는 딱히 중요한 성계가 아닌데.’

     

   이곳은 딱히 희귀자원도 없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초광속 항해로 이동하다가 멈춘 것도 간식거리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른 배들을 만나지 못한 걸 보면 해적들이 장악한 성계라 보기도 힘들었다.

     

   ‘애들에게도 물어봐야겠어.’

     

   내가 해적선을 공격하는 동안, 소수의 해적들이 채굴선으로 넘어갔다. 그들 중 플라즈마 라이플을 들고 있는 놈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채굴선의 외벽을 세 개의 입으로 깨물었다. 단단한 외벽을 뜯어내고 안에 머리를 쑤셔 넣었다.

     

   복도까지 머리를 처박은 상태로 막 괴물의 촉수로 파장을 흩뿌리려던 순간.

     

   붉은빛 비상등이 내리 깔린 복도 저편에서 긴 몸을 가진 형체가 나타났다. 뱀처럼 긴 몸통과 수십 개의 팔을 가진 존재, 이사벨이었다.

     

   녀석은 해적을 입에 물고 막 삼키려던 찰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러 개의 손 중 하나가 플라즈마 라이플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여기도 플라즈마 라이플이 있었군)]

     

   내 말을 들은 녀석이 물고 있던 사이보그 해적을 뱉어냈다. 정신을 잃은 놈은 강화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먹다 뱉은 먹이를 도로 주운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혹시나 해서 챙겼어. 저쪽 해적선도 있었나 보네.”

   [즈즈 즈즈즈(몸은 괜찮아?)]

   “한두 번 맞긴 했는데 괜찮아.”

     

   허공에 떠 있던 녀석이 우아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몸을 감싸는 크롬색 비늘에 그을린 자국이 남긴 했지만,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다.

     

   ‘고뇌의 고리를 재료로 사용해서 그런가? 꽤 튼튼하네.’

     

   플라즈마 라이플에 맞았는데 저 정도 손상으로 그쳤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즈즈 즈즈 즈즈즈(이것 말고 더 없어?)]

     

   내 질문에 녀석은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러면서 손에 쥔 해적을 들었다.

     

   “이놈이 라이플을 들고 있었어. 놈이 두목인 것 같아.”

   [즈즈(그래?)]

     

   그건 희소식이다.

     

   머리를 밖으로 뺀 나는 채굴선에 뚫어둔 구멍에 전투용 팔을 집어넣었다. 팔에 있는 구멍에서 강화된 기생충이 튀어나와 새 집을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이사를 완료한 기생충이 내게 파장을 보냈다.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미안한데 대신 심문 좀 부탁해)]

     

   나는 덩치가 꽤 크다 보니 우주공간에서 해적을 심문하기가 쉽지 않다. 하늘의 어머니에게 맡긴 나는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는 해적선의 잔해를 다시 살폈다.

     

   ‘뭔가 특이한 점이 없으려나.’

     

   해적선의 무장이 형편없다는 것은 습격하기 전에 이미 확인했었다. 역시 특이한 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잠깐, 아무 것도 없다고?’

     

   그 순간, 스페이스독의 특징이 떠올랐다. 해적들은 보통 자기 배에 카르텔 고유의 마크를 그려 넣는다. 그게 있어야 같은 해적들끼리 싸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에는 카르텔 마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부수는 바람에 지워졌나?’

     

   작은 잔해까지 확인했지만 외벽에 칠해진 페인트의 흔적은 없었다.

     

   ‘플라즈마 라이플을 갖고 있고, 해적 마크도 없는 놈들이라.’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으나 빨리 여길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때 마침 해적 두목 머리에 자리 잡은 기생충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내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심문을 끝낸 하늘의 어머니와 이사벨, PS-111이 빠져나왔다.

     

   [즈즈즈 즈즈(어떻게 됐어?)]

   「…아무래도 플레이어들과 관련 있는 것 같아.」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혹시 우리가 가려는 곳과 관련된 것은 아니겠지?)]

   「귀환파에 스페이스독 랭커는 없다고 하니 그건 아닐 거야. 아, 그리고 이거 봐봐.」

     

   그녀가 고갯짓을 하자 이사벨이 내 머리 앞까지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천 조각을 내밀었다. 휘장처럼 생긴 천 조각에는 내가 찾던 해적 카르텔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마크의 생김새가 뭔가 이상하다. 놈들의 마크는 그림이 아니라 글자였다.

     

   [즈즈 즈즈 즈즈(이거 일본어 아냐?)]

   「맞아. 앞에는 일본어, 뒤에는 한자야. 두목이 말하길 자기가 시노로쿠(しの六) 카르텔의 두목이라고 하더라.」

     

   일본어라고 하니 생각나는 플레이어가 있다. 오만하고 포악한 성정을 가진 메가콥 랭커, 아키라 유진 말이다.

     

   ‘3위랑 관련이 있는 건가.’

   「놈들의 카르텔은 구성이 좀 특이해. 일반 해적들과 달리 연합체를 만들었어. 물어보니 총 여섯 개의 카르텔이 연합한 상태야.」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즈(그래서 이름에 육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건가)]

   「응. 두목은 1번 카르텔한테 이 무기를 받았다고 했어.」

     

   전에 제이슨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3위는 유진 가문의 가주를 역임 중이다. 놈이 가주의 권력을 활용해 해적들을 조직, 무기를 제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카르텔을 조직한 자도 랭커겠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해적을 통제하려면 역시 랭커가 있어야 할 터. 아키라와 협력하는 스페이스독 랭커가 놈들을 지휘하고 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놈들의 목적이 뭐지?)]

   「물어 봤는데, 특별한 목적은 없어. 무기를 이용해서 지정된 구역에서 꾸준히 약탈하는 것. 그게 다야.」

   [즈즈 즈즈즈즈(다른 카르텔은?)]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여서 평소에 뭘 하고 지내는지는 모른다더라.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것 말고는 교류가 거의 없어.」

     

   실력에 비해 무기만 좋은 해적 두목은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었다. 그 탓에 놈들의 진짜 목적이 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당하기 전에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야.’

     

   지배파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안 것만 해도 나름 수확이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우리가 놈들과 만났다는 걸 걸리면 안 돼)]

   「배를 이미 파괴했는데 어떻게 하려고?」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새 배도 있는데 저기로 옮긴 걸로 하면 돼)]

     

   제일 중요한 인물인 두목은 아직 생존해 있고, 플라즈마 라이플 2자루도 손상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채굴선 내부에는 아직 선원들이 남아 있다. PS-111과 이사벨이 인원들을 정리하던 중에 내가 그들을 불렀기 때문이다.

     

   채굴선의 선원들에게 기생충을 심어서 해적인 걸로 위장시키면 놈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겠지.

     

   생각이 정해졌으면 그 다음은 행동 뿐.

     

   나와 애들은 힘을 합쳐 채굴선 내부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내 기생충에 감염시켰다. 생존자 중 감염시키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내버려 뒀다. 숫자가 얼마 안 되고, 탈출선도 모조리 망가트렸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든 처리를 마친 나는 기생충에게 그들이 정해진 항로를 맴돌며 이전에 하던 대로 움직일 것을 지시했다. 내가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기생충들은 내 명령을 끝까지 따른다.

     

   「인간들 멀리 간다.」

     

   천진난만하게 촉수를 흔드는 26호를 뒤로 하고 해적선은 점점 작아졌다.

     

   ‘좋아.’

     

   앞으로 해적들과 조우하면 카르텔 연합체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해적 연합이 흔한 것은 아니니까 아는 자가 분명 있겠지.

     

   해적들을 멀리 떠나보낸 나는 애들을 실은 상태로 초광속 항해에 돌입했다.

     

   푸른빛 에너지를 두른 내 몸이 빛을 초월하다 못해 공간을 뛰어넘는다. 시야에 비치는 별과 어둠들이 서로 다른 물감처럼 엉망으로 뒤섞인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넋 놓고 구경하면 큰일난다. 매초마다 내 육신이 별을 가로지르고 있다. 도약 루트를 계속 신경쓰고 있어야 목표 장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찬란한 별들의 소용돌이가 잦아들고 붉은색 광채가 그 자리를 채웠다. 노후한 항성이 우주의 암흑 속에서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었다.

     

   태양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적색거성의 이름은 ‘올가’.

     

   저 늙은 태양의 빛 아래에 있는 행성 중 하나에 귀환파의 무기 관리 랭커가 숨어 있다. 

   ‘일단 도라네 성계에 도착했어.’

     

   여기 오기 전, PS-111이 내게 말했다. 적색거성 ‘올가’와 4번째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행성이 아스카44라고 말이다.

     

   「도착했으면 나 좀 내보내 줄래?」

     

   막 찾아 나서려는데 괴물의 촉수가 사념파를 감지했다. 중앙 머리의 입 안에 있는 하늘의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현재 애들은 세 개로 나눠진 나의 여러 입들 안에 들어가 있다. 모두와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초광속 항해가 가능한 아드하이와 하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내 길쭉한 주둥이 안에 있다.

     

   [즈즈즈 즈즈즈즈(행성에 도착하면)]

   「…하아, 알았어.」

     

   그녀는 전에 분신으로 쪼개진 왼쪽 머리에 의해 침으로 범벅된 적이 있다. 그때 진저리치며 싫어하던 그녀가 따로 오지 않은 이유는 체력 때문이다.

     

   마노(瑪瑙)색 날개를 얻은 이후에는 그리폰 상태에서도 초광속 항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적잖은 체력이 소모된다. 수십, 수백 개의 성계를 건너려면 중간마다 멈춰서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해야만 한다.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만큼 오래 입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출발하기 전에는 다른 환수로 변신한다고 했었지.’

     

   그녀는 고유 특전인 ‘사냥신의 둔갑 껍데기’를 사용해서 그리폰을 제외한 총 4종류의 환수로 변신할 수 있다.

     

   현재 그녀가 해금한 변신 가능 환수 종류는 총 셋.

     

   최고의 전투력을 지닌 환수 ‘키메라’는 나와 만나기 전, 사별한 남편 ‘대지의 아버지’의 도움 덕분에 획득했다.

     

   그것 말고 웬디고와 마지막 환수는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얻었다. 가장 최근에 해금한 환수는 비행과 이동에 특화된 환수라서 적은 에너지로도 장기간 초광속 항해가 가능하다.

     

   ‘다만 전투력은 별로야.’

     

   게다가 사냥신의 둔갑 껍데기를 한 번 사용하면 30일 동안 그리폰을 제외한 다른 환수로 변신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는 랭커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중요하지 않은 때에 특전을 낭비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기에 얌전히 내 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애기는 여기가 싫어?」

   「못생긴 친구」「축축한 거」「싫어해」

   「물 닦아줄까?」

   「아니. 괜찮으니까 촉수는 좀.」

     

   잇몸과 혀 위에서 녀석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오른쪽과 왼쪽 머리에 있는 PS-111과 이사벨이 미동조차 할 수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저 둘은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입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다.

     

   ‘그러면 좀 서두를까.’

     

   나는 초능력 관련 융합 특성 ‘암흑 장막’을 활성화했다. 등과 팔, 다리 곳곳에 달린 생체 파이프에서 짙은 검은색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 안개는 각종 감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특수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안개의 보호를 받아 움직인다면 적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 도착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혹시 모른다.

     

   나는 우주공간보다 어두운 장막 속에서 머리만 살짝 내민 채 목적지를 찾아 움직였다.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오랜 천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불사르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삼라만상을 비추는 화롯불은 저 늙은 태양을 가리키는 표현일 거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타오르던 생명의 별도 이제 소진을 앞두고 있고, 그 빛을 누리던 수많은 별들도 종말이 가까워졌다. 어떤 별은 죽어 가는 항성의 양분이 되었고, 어떤 별은 최후의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갈 터.

     

   태어나서 살고 죽는 것은 생물이나 별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스케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지만.

     

   ‘이런 멋진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을 줄이야.’

     

   인간의 몸이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날갯짓을 하며 우주를 가로지르다 보니 올가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이 보였다.

     

   ‘저긴가?’

     

   항성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크기이기에 얼핏 보면 먼지처럼 보이는 행성들. 그 중에 검붉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별이 보인다.

     

   나는 주변에 다른 함선이나 위성이 없는지 확인하며 목표에 접근했다.

     

   ‘초광속 통신 위성만 있고, 감시 위성은 없어.’

     

   나는 조금씩 속도를 높여 아스카44로 추정되는 행성에 다가갔다. 행성에 다가가니 그제야 다수의 컬트 전함들이 보였다. 행성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걸 보니 방위용 함대인 듯했다.

     

   암흑 장막으로 보호받는 나는 함대를 우회해 행성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대기에 다다르자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찌릿찌릿 울렸다.

     

   내게 위기를 경고해주려고 그런 게 아니다. 대기를 구성하는 이산화황의 독성, 끊임없는 화산활동으로 발생한 화산재 등이 보조기관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강렬한 열기와 압력이 내 몸을 덮쳤다. 아무래도 내가 내려가는 지점에서 화산이 터진 것 같다.

     

   ‘차라리 잘 됐나.’

     

   화산의 분출물 속에 숨어서 지표로 내려간다면 저쪽도 나를 감지할 수 없을 거다.

     

   나는 암흑 장막을 해제하고 대기를 뒤덮는 화산재 내부로 날아들었다. 수십m 이상의 크기를 가진 화산탄이 나와 부딪쳐 부서졌다. 그 탓에 갑각 표면이 일부 손상되긴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고통 경감이 뜨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었으니까.

     

   「밖에 쿵쿵쾅쾅 뭐야?」

   「비늘」「뜨거워」

   「잠깐. 이 냄새, 너 설마 폭발하는 화산 안에 들어온 거야?」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이렇게 하면 적들도 모를 테니까)]

   「…어휴.」

   

   주둥이 속에 타고 있는 녀석들도 외부의 변화를 느끼고 중얼거렸다.

     

   새까만 화산재와 연이어 날아오는 화산탄의 세례를 뚫고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지표면이 가까워졌다.

     

   여느 화산형 행성이 다 그렇지만, 아스카44 또한 지옥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었다. 그 어디를 봐도 끓어오르는 용암이 가득했고, 대지는 화산재와 굳은 용암 때문에 온통 새까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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