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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58화 (359/400)

     

   이 행성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볼프 랭커를 잡는 것, 놈이 지키는 귀환파의 장비보관소를 터는 것, 그리고 하늘의 어머니에게 만들어 줄 장비의 재료를 구하는 것 등등. 신경써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일단 볼프 랭커를 잡는 것과 필요한 특성을 얻는 것이 최우선 목표야.’

   

   마그마사우르보다는 볼프 랭커와 다른 에이펙스 생물을 찾는 게 아무래도 더 빠를 터. 그렇게 어떤 목표부터 노릴 지 다시 정리 중인데, PS-111이 내게 다가왔다.

     

   “뒷다리의 구조가 ‘라바랩터’와 유사한 형태로 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내부 구조 확인을 위한 해부 실험을 요청합니다.”

   [즈즈(안 돼)]

     

   녀석은 아까부터 붉은색 카메라 렌즈로 내 다리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부상당했으면 모를까, 멀쩡한 다리를 쨀 생각은 없기에 거절했다.

     

   “유감입니다.”

   “멀쩡한 다리를 자르자고 하면 당연히 반대하지.”

     

   아쉽다는 말과 별개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다리를 보는 PS-111. 그 모습을 본 이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즈즈 즈즈(맛은 어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살면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어.”

     

   녀석은 자기가 생각해도 신기하다는 듯 머리 근처에 달린 팔을 뻗어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갤러곤의 발톱이 달린 꼬리로 바닥에 있는 라바랩터를 쿡 찔렀다. 그 상태로 고기를 용암 위에 가까이 대서 구웠다.

     

   「예쁜 어린아이」「나」「하나」「줘」

   “달라고? 구워야 하니까 잠깐만 기다려.”

   「예쁜 어린아이」「착해」「못생긴 친구」「나빠」

   「…저저 고약한 심보의 날도마뱀 좀 봐라. 어휴.」

   ‘잘 먹는 것 같아 다행이네.’

     

   나도 다른 라바랩터를 먹기 위해 전투용 팔을 뻗었다. 막 먹으려는 순간, 내 보조기관이 공기 중에 섞인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뭐지?’

     

   먹으려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화산재 때문에 어두컴컴한 하늘에 작은 빛이 보인다.

     

   저건 별이 아니다.

     

   “에이모프?”

   「갑자기 왜…응? 저거 설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비행선이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의문의 비행선이 이쪽을 향해 접근 중이다.

     

   ‘비행선이라.’

     

   주변에 다른 함재기나 초계함은 보이지 않았다. 저거 하나 정리하는데 몇 분이면 충분하다.

     

   ‘아니. 그것보다는….’

     

   테라포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 행성은 인간이 거주하기 용이하지 않다. 그러니 저 비행선은 이 행성에 있는 몇 안 되는 인공 거주지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거주지에 내가 찾는 볼프 랭커와 장비 보관소가 있겠지.’

     

   저 비행선을 따라간다면 내가 날아다니면서 거주지를 찾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정한 나는 날개 팔로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지반이 쩍 갈라지고 내가 내리친 곳에 큼지막한 구덩이가 생겼다.

     

   [즈즈 즈즈(모두 숨어)]

     

   그 안에 애들을 집어넣고 날개의 피막으로 흙과 암석 파편을 쓸어서 간단히 덮었다. 그 뒤 나는 근처의 용암 속에 뛰어들었다.

     

   고여 있는 용암의 깊이가 그리 크지 않아 커다란 내 몸 전체를 다 가릴 수는 없지만, 내게는 특성이 있다.

     

   전자기기의 탐지를 피할 수 있는 ‘암흑 장막’, 그리고 한 자리에 몇 분 이상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활성화되는 ‘보호색’. 두 가지 은폐 특성을 함께 이용한다면 저 비행선에게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그 상태로 몸을 숨기고 있으니 비행선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쳤다. 놈들이 향하는 곳은 내가 행성에 진입할 때 이용했던 화산이었다.

     

   ‘화산에 볼일이 있나?’

     

   그대로 지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우회하더니 우리가 있는 장소 근처에 착륙했다. 그리고 비행선에서 우주복을 닮은 두꺼운 강화복을 입은 자 2명이 내렸다.

     

   “왜 라바랩터가 떼죽음을 당했지?”

   “화산 폭발에 휘말린 거 아냐?”

   “여기는 놈들의 영역이 아니야. 여기까지 와서 죽을 이유는 없어.”

   “일단 샘플부터 채취해.”

     

   대화 내용을 보니 저들의 정체는 연구원 같았다. 한 명은 복부에 달린 키트에서 도구를 꺼내 시체를 채취했고, 다른 한 명은 랜턴을 들고 주변에 찍힌 발자국 같은 흔적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랜턴으로 발자국을 쫓던 연구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봐! 여기 발자국 좀 봐!”

   “왜 또…헉?! 뭐야 이게?”

   “…여기 드래드송의 영역 아니지?”

   “당연하지. 거기는 아무도 못 들어가.”

   “아씨, 그럼 이건 뭐지? 우리가 모르는 생물도 있나?”

   “혹시 이거 마그마사우르의 흔적 아냐?”

     

   그때 둘의 대화에서 익숙한 생물의 이름이 들렸다.

     

   ‘드래드송하고 마그마사우르라고?’

   “말도 안 돼. 라바랩터가 미쳤다고 놈한테 덤비겠냐. 그냥 도망가겠지.”

   “그럼 이 발자국은 뭔데?”

   “내가 그걸 알면 여기 있겠…응?”

   “왜? 뭔지 알아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발자국, 왜 여기서 끝났지?”

   “응?”

     

   내가 만든 발자국을 따라오던 연구원들이 내가 숨은 용암 앞에 멈춰 섰다. 놈들의 시선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마침 잘 됐네.’

     

   몰래 비행선을 따라가려고만 생각했는데, 더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저거 움직이는데?”

   “지진….”

     

   내가 몸을 일으키자 둘의 대화가 딱 멈췄다.

     

   나는 주둥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용암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마그마사우르와 드래드송. 얼마나 알고 있지?”

     

   이들이라면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 같다.

   밖에 나온 연구원들과 비행선의 조종사는 내가 묻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이 행성에 있는 볼프 랭커, 살만의 부하들이었다. 랭커의 명령을 받아 갑자기 활발해진 화산 활동을 조사하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아마 화산 심부에서만 머무르는 마그마사우르를 찾으려 하는 거겠지.

     

   ‘마그마사우르는 화산 활동에 영향을 미치니까.’

     

   부하들을 시켜 마그마사우르를 찾으려 하는 이유도 얼추 짐작이 간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살만의 특전이 뭐라고 했지?)]

   “‘야수신의 올가미’. 야생 동물을 조종하는 능력이야.”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온 이사벨이 내 질문에 답했다.

     

   이사벨은 직접 두 눈으로 본 자의 정보를 읽는 힘을 가졌다. 지금까지 만난 랭커들이 어떤 특전, 어떤 기술과 장비를 지녔는지 녀석은 잘 알고 있다. 그 중 귀환파의 볼프 랭커 살만은 테이밍과 관련된 특전을 받았다.

     

   ‘게임에서도 볼프한테 조련 관련 기술이나 특혜를 달라는 말이 많았지.’

     

   등에 제트팩을 단 늑대 수인이 전신에 강화 외골격을 두른 코뿔소 괴물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로망 같을 걸 원하는 자가 꽤 있었다.

     

   게임에서도 어떻게든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지만, 딱히 효율적이지는 않았던 걸로 안다. NPC와 현실의 애완동물처럼 정서적 교류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꿈같은 능력이네.」

   

   현실에서도 볼프 플레이어였던 하늘의 어머니는 무심코 자기 감정을 드러냈다.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플레이 불가 동물, 그 중 싸워서 패배시킨 동물만 지배. 맞지?)]

   “응.”

     

   에이모프나 아웃스페이서 같이 플레이가 가능한 괴물은 지배할 수 없다. 그리고 살만이 싸워서 승리를 거둔 동물만 지배가 가능하다.

     

   “그리고 전에 봤을 때는 승리한 다음 손을 직접 대서 능력을 사용해야 지배할 수 있는 것 같았어.”

     

   추가로 승리를 거둔 뒤, 몸이 닿아 있어야 특전이 발동하는 구조다.

     

   아쉽게도 이사벨이 아는 사실은 거기까지였다. 녀석이 살만과 마주했던 시간이 길지 않아서 상세한 부분까지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수확이지.’

     

   지배가 가능한 생물이 어디까지인지는 불명이나 볼텍스원 같은 최상위 에이펙스는 지배가 불가능한 듯싶다. 다른 멤버, 특히 4위의 도움을 받는다면 볼텍스원을 잡는 것도 가능할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마그마사우르를 찾는 건 이상하네.’

     

   특수능력을 제외하고 단순 전투력만 비교하면 ‘완전한 상태의 고뇌의 고리’보다 한 단계 밑에 있다. 볼텍스원보다 약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운 상대는 절대 아니다.

     

   게임에서도 마그마사우르는 씨 데몬과 마찬가지로 준레이드 보스로 취급된다. 랭커조차도 혼자 사냥에 나서는 걸 꽤 부담스러워 할 정도다.

     

   ‘1대 1이라면 볼프 화신체 기술인 강신(降神)을 써도 어려울 텐데.’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살만은 그 정도로 강하지 않다.

     

   요약하자면, 적 랭커는 다른 플레이어의 협력 없이 홀로 준레이드 보스급 생물 공략을 준비 중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자기가 지배한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서 도전할 생각이야.’

     

   내가 애들의 도움을 받아서 갤러곤이나 볼텍스원과 싸운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놈이 부리는 동물이 얼마나 강할지가 관건이네.’

     

   아니면 놈이 부리는 동물 수가 상당히 많거나.

     

   뭐가 됐든 적어도 마그마사우르와 싸워볼 수준은 된다고 봐야겠지.

     

   ‘이 이상은 정보를 더 모아야 알 수 있어.’

     

   볼프 랭커에 대한 부분은 여기서 정리해야겠다.

     

   나는 강화복을 입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인간들을 내려다 봤다.

     

   이 녀석들은 마그마사우르를 찾아다니는 자들이니 쓸모가 있다. 놈들을 이용하면 살만보다 먼저 에이펙스의 위치를 알 수 있을 터.

     

   적들에게 기생충을 주입하려던 나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멈췄다.

     

   “아까 드래드송의 영역이라는 말을 했었지?”

   “예? 예예. 마, 맞습니다.”

   “그곳이 어디지?”

   “어, 그게….”

     

   내 질문에 연구원이 당황해한다. 좌표를 얘기한다고 해서 내가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다.

     

   나는 전투용 팔에서 기생충을 밖으로 빼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뒤에 있던 PS-111이 내게 다가왔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비행선 안에 들어가서 드래드송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줘)]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즈즈즈 즈즈즈즈(그리고 이것들도)]

     

   나는 PS-111에게 기생충 세 마리도 함께 건넸다.

     

   꿈틀거리는 기생충을 본 세 명의 인간들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저 벌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서 그런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드래드송을 잡으려고?」

   [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그래. 우리한테 필요하니까)]

   

   내게는 드래드송의 유전자 정수가, 하늘의 어머니에게는 놈의 육신이 필요하다.

     

   볼프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중 볼텍스원의 육신과 드래드송의 육신으로 만들 수 있는 장비가 있다. 이번 기회에 장비 재료를 전부 구할 생각이다.

     

   10분 뒤, 좌표를 확인한 PS-111이 비행선 밖으로 나왔다.

     

   “해당 좌표로 안내하겠습니다.”

   [즈즈 즈즈즈즈(그럼 출발할까)]

     

   몸을 숙여서 애들을 위로 태운 나는 강화된 두 다리로 땅을 세게 박찼다. 그 상태로 날개를 활짝 펼치자 내 몸이 위로 확 솟구쳤다.

     

   화산재로 가득한 하늘은 좋은 은신처다. 나 같은 거대한 생물도 감시에 걸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가슴쪽 작은 팔에 안겨 있는 PS-111이 갈고리 손톱으로 특정 방향을 가리켰다.

     

   ‘적당한 곳까지 가다가 내려가야지.’

     

   나는 목과 꼬리를 곧게 뻗은 상태로 날개의 피막을 빳빳하게 펼쳤다. 기류 덕분에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활공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거」「소리」「없어」「좋아」「기습」「유용」

   [즈(맞아)]

   「나도」「가능」

     

   26호와 같이 중앙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던 아드하이는 접었던 날개를 펴고 비행을 시작했다.

     

   녀석의 비행은 SF 영화에 자주 나오는 미래형 전투기처럼 조용하면서도 민첩했다. 한때 나와 하늘의 어머니에게 전투법과 비행술을 배우던 녀석이 이제는 나보다 훨씬 능숙하다. 함께 싸운 적이 여러 번 있음에도 저 작은 갤러곤의 성장을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든다.

     

   [즈즈 즈즈즈(번개 조심해)]

   「나」「괜찮아」「큰어른」「더」「위험」

     

   그렇게 나는 녀석과 함께 검은 구름이 낀 곳까지 날아서 이동했다. 화산형 행성답게 곳곳에 활동 중인 화산들이 꽤 많았다. 덕분에 예상 이상으로 비행시간이 꽤 길어졌다.

     

   대략 6시간 정도 지났을까. 화산재로 이루어진 구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는 날개를 살짝 조정해 고도를 낮췄다.

     

   용암이 굳어 검게 변한 황무지가 끝없이 펼처져 있다. 6시간 전 우리가 있던 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이곳은 불과 마그마 대신, 재와 황산비가 내리는 지옥이었다.

     

   도무지 생명이 살 것 같지 않은 그곳에 착륙했다. 바닥에 발이 닿자 용암의 굳은 겉면이 움푹 꺼지고 안에서 붉은 액체와 불길이 새어 나왔다.

     

   나는 진흙 위를 걷듯 살짝 굳은 용암 위를 푹푹 밟으며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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