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62화 (363/400)

   

   열린 서랍 안에는 마름모 모양의 비석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새 은신처에서 24시간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머물렀다.

     

   ‘원래는 잠깐 머물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구덩이 구조가 복잡해서 거점으로 삼아도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쉬면서 둥지를 만들었다.

     

   용암이 지나가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 터널은 검은색 점액으로 뒤덮였다. 벽과 천장에는 점액이 굳어 핏줄처럼 잔뜩 얽혀 있고, 바닥은 액체로 가득 찼다. 터널에는 수증기가 자욱하게 낀 덕분에 마치 오래된 늪지대를 연상시켰다.

     

   수증기가 자욱한 것치고 온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둥지 내부의 온도와 환경을 조율할 수 있는 ‘환경의 지배자’ 특성 덕분이다. 둥지 전체의 공기가 선선하다 보니 다들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휴식을 취한 뒤, 나는 이후 어떻게 움직일지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상급 에이펙스 사냥, 귀환파의 장비 관리인 ‘살만’ 제거, 그리고 나의 전용 장비 제작. 네가 말한 목표는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네.」

     

   하늘의 어머니는 내가 말한 것들을 간단히 세 가지로 요약했다.

     

   「요점은 무엇부터 먼저 하느냐를 얘기하고 싶은 거지?」

   [즈(그래)]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나와 PS-111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즈즈(따로?)]

   「내 장비를 만들려면 도구가 필요해.」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그 부분은 PS-111이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원하시는 장비가 있다면 제가 제작해드리겠습니다.”

     

   PS-111이 갈고리 손톱을 튕기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하늘의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재료 가공 자체는 네 말대로 PS-111이 할 수 있지만 조립, 제작을 하려면 정밀하게 작동하는 설비가 필요해.」

   [즈즈(그래?)]

   「살만은 귀환파의 장비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니 보수용 설비도 갖추고 있을 거야. 그러니 나랑 PS-111이 몰래 잠입해서 이용하면 돼.」

     

   듣고 보니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놈들은 우리가 이곳에 몰래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적들이 경계하지 않는 현시점이 오히려 잠입에 유리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녀는 환수(幻獸)와 수인을 자유롭게 오가는 볼프의 랭커. 적진에 침입해 공작을 벌이는 일은 수차례 해봤을 거다.

     

   그녀라면 PS-111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겠지.

   

   [즈즈즈즈(괜찮겠어?)]

   「헤비워커를 데리고 초계함에 잠입한 적도 있으니까 걱정 마.」

     

   그렇게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잠입조로 정해졌다.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나머지는 나와 사냥할 거야)]

   「큰애기랑 사냥 좋아.」

   「새 먹이」「맛」「몰라」「궁금해」

     

   늪 위에 둥둥 떠 있는 26호가 전등처럼 몸을 빛내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드하이는 호기심 많은 성격답게 사냥 그 자체보다는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보는 생물들을 먹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옆에서 똬리를 튼 채 말을 듣고 있던 이사벨이 내게 질문했다.

     

   “바로 마그마사우르를 노리려고?”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아니. 다른 생물을 잡을 거야)]

   “다른 생물이라. ‘엘리멘탈호저’랑 ‘파이로맨서’를 노릴 생각이구나?”

   [즈(맞아)]

     

   그녀 말대로 마그마사우르를 잡기 전 저 두 생물을 노릴 생각이었다. 둘 다 위험한 에이펙스 생물이고, 유용한 특성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모프 플레이어가 아닌데도 녀석이 잘 알고 있어서 살짝 놀랐다.

     

   내 반응을 본 이사벨은 파란색 눈을 살짝 찡그렸다.

     

   “언니 때문에 화산형 행성에 여러 번 와봤거든.”

     

   그 말을 들으니 바로 이해가 됐다.

     

   ‘화산형 행성에도 갤러곤이 서식하니까.’

     

   녀석의 쌍둥이 언니 페넬로페는 자타공인 갤러곤 매니아. 내가 알기로 그 녀석은 갤러곤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먹이나 천적 같은 것들도 분석했다. 게임에서 갤러곤에 대해 알려진 설정 중 상당 부분은 페넬로페가 밝혀낸 것들이다.

     

   ‘고생 좀 했겠네.’

     

   딱히 갤러곤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언니 때문에 온갖 위험한 행성을 돌아다녔을 테니까.

   

   내 짐작이 맞는지 이사벨은 사파이어를 닮은 아름다운 눈동자로 PS-111을 흘낏 쳐다봤다. 기계가 아닌 콜드블러드의 눈을 이식한 것이다 보니 그 눈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된 자매를 쳐다본 녀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내게 향했다.

   

    “무엇부터 잡을 거야?” 

   [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먼저 파이로맨서를 노리려고)]

   “파이로맨서라. 랭커는 언제쯤 칠 생각이야?”

   [즈즈 즈즈즈즈(놈은 마지막에)]

     

   살만은 마그마사우르를 칠 때 함께 정리할까 한다. 이사벨은 똬리를 튼 몸 위에 자기 머리를 올려 두며 말했다.

     

   “싸우는 중간에 난입할 생각이구나.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현재 놈은 나와 같은 목표를 노리고 있으니 어부지리를 노리기 좋은 상황이다. 놈이 먼저 마그마사우르를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고, 적당한 시점에 기습하면 되니 말이다.

     

   ‘게다가 특전도 미리 관찰할 수 있으니 더 좋지.’

     

   아무튼 이걸로 어떻게 움직일지 정리가 됐다.

     

   나는 애들과 함께 둥지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덥지근하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열기와 뜨거운 화산재가 우리를 반겼다.

     

   「기지가 있는 방향이 저쪽이라 했지?」

   “맞습니다.”

     

   PS-111과 함께 떠나려는 하늘의 어머니.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하려던 찰나,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즈즈즈(잠깐만)]

   「?」

     

   그녀를 불러 세운 나는 전투용 팔을 내밀었다. 팔에 있는 구멍에서 강화된 기생충이 빠져나와 손가락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걸 본 그녀가 호박색 눈을 크게 떴다.

     

   「기생충? 갑자기 이걸 왜?」

   [즈즈즈(통신용)]

     

   녀석들과 멀리 떨어지면 원활한 소통이 어렵다. 만에 하나 그녀에게 문제가 생겨도 내 쪽에서는 온전히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기생충이 있으면 그럴 걱정이 없어.’

     

   강화된 기생충을 들고 다니다가 소식을 전해야 할 일이 생기면 기지에 있는 인간에게 심으면 된다. 감염된 인간에게 그녀가 용건을 말하면, 기생충이 내게 그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혹은 그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그때는 기생충을 죽이면 된다.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나쁘지 않은 생각이지?)]

   「…정확히 너다운 생각이네.」

     

   내 아이디어를 설명해주자 그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태도로 기생충을 받았다.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섬세한 녀석이니까 조심히 다뤄)]

   「…….」

     

   그리폰 수인의 팔에 올라탄 기생충이 꿈틀거린다.

     

   장어처럼 생긴 검은색 벌레가 움직이다가 쇄골 부근에 난 털을 살짝 건드렸다. 녀석의 애교 섞인 몸짓에 그녀의 털이 빳빳이 곤두섰다.

     

   “혹시 거북스러우시다면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네.」

     

   이왕이면 하늘의 어머니가 맡아주길 바랬는데, 그녀는 PS-111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기생충을 넘겼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몸 속이라면 훨씬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PS-111은 갈고리 손톱으로 기생충을 부드럽게 쥐고 몸통 아래로 가져다 댔다. 금속음이 들리며 몸통 아래의 판이 열리고 안에 약 70cm 정도 되는 수납 공간이 나타났다.

     

   안에는 볼텍스원의 살점과 드래드송의 가죽이 들어 있었다. 물건들 사이로는 녀석의 소화기관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이미 든 것이 많은데 불편하지 않겠어?)]

   “기생 생물의 수납까지는 가능합니다.”

     

   녀석은 태연스럽게 뱃속에 기생충을 집어넣고 금속판을 닫았다.

     

   ‘뭐 괜찮겠지.’

     

   녀석의 몸이 반 토막 나지 않는 이상, 기생충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걸로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은 살만의 기지가 있는 곳을 향해 떠났다.

     

   나는 남은 애들과 함께 파이로맨서가 있을 만한 곳으로 움직였다.

     

   ‘용암 호수부터 찾아볼까.’

     

   사실 파이로맨서는 유랑형 포식자다. 한 군데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사냥을 한다.

     

   그런데도 용암 호수에 가려는 이유는 그곳에 놈의 먹이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용암과 암석 위에 뒹굴어서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불카록스, 그걸 노리고 용암 속에 숨어 있는 라바랩터. 모두 놈이 즐겨 먹는 생물들이다.

     

   뷔페나 다름없는 곳을 놈이 그냥 지나칠 리 없으니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잡을까 한다.

     

   나는 검은 대지 위에 깔린 용암의 길을 따라 낮게 비행했다. 그때 내 곁에서 함께 날던 이사벨이 내게 물었다.

     

   “아까 물어보려다가 말았는데, 엘리멘탈호저가 더 찾기 쉽지 않아?”

   [즈즈 즈즈즈즈(영역 동물이니까?)]

   “응. 그 고슴도치 녀석들은 화산분화구에 주로 살잖아.”

   [즈즈 즈즈즈 즈즈(그것 때문에 그래)]

   “?”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살만의 부하들이 마그마사우르를 수색 중이니까)]

   “아하.”

     

   내 뜻을 이해한 이사벨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화산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걸리기라도 한다면 일이 귀찮아진다.

     

   「큰애기야, 고슴도치가 뭐야?」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몸에 가시가 난 작은 생물이야)]

   「가시?」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 즈즈즈즈(이거랑 비슷한 건데 더 얇고 작아)]

     

   머리에 달린 뿔을 가리키며 말하자 26호는 이해했다는 듯 몸을 빛냈다.

     

   「뾰족한 부속지가 달렸구나! 인간하고 비슷하네!」

     

   그것 말고 다른 점이 많지만, 설명하기 복잡해서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이거」「부속지」「아냐」「뿔」「부속지」「달라」

   「뿔? 뿔이 뭐야?」

   「뿔」「수컷」「상징」「뿔」「크기」「중요해」

   「부속지 크면 좋은 거야?」

     

   함께 비행 중이던 아드하이는 내 중앙의 머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꼬리 끝으로 내 뿔을 살살 쓰다듬다가 땠다.

     

   「매우」「매우」「중요」

   “…….”

     

   이사벨이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 역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계속 용암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피부 위에 도드라진 핏줄처럼 가느다랗던 것이 어느새 강이라 해도 좋을 만큼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강줄기의 끝에는 드넓은 불의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가스로 인해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그 가장자리에 라바랩터 무리가 숨어서 두 갈래로 나눠지는 꼬리만 내놓은 게 보였다.

   

   들끓는 용암 밖에는 놈들이 노리고 있는 불카록스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불카록스는 짝짓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 그래서 커다란 청동 황소들은 서로 띄엄띄엄 거리를 벌린 채 움직였다.

   

   그리고 황소 주변에는 60cm에서 70cm 사이 정도 되는 크기에 전신을 비늘로 감싼 쥐들이 있었다. 녀석들은 청동 황소 주변을 멤돌다가 몸 위에 올라타 뾰족하게 돌출된 암석을 갉아 먹었다.

   

   저 작은 괴물의 이름은 스토너. 희귀 광물이나 암석 등을 주로 먹고 산다. 그 습성 덕분에 용암과 돌을 몸에 두르는 생물들과 공생하는 관계에 있다.

   

   가령 불카록스의 몸에 용암과 암석이 과하게 쌓이면 움직이는데 장애 요소가 되는데, 스토너가 이를 주기적으로 제거해 준다. 불카록스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스토너가 귀찮게 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파이로맨서는 없나보네.’

     

   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호수 주변이 이렇게 평화로울 리 없다.

     

   ‘먹이는 풍부한 것 같고. 여기서 기다리자.’

     

   나는 아스카44에 왔던 것처럼 애들을 각 머리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용암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호수는 엎드린 상태로 몸이 푹 잠길 정도로 깊었다. 전신을 휘감는 열기를 느끼며 머리를 호수 위로 살짝 뺐다. 불과 마그마 속에 서식하는 악어가 있다면 지금 내 모습과 비슷하겠지.

     

   ‘좋아. 그러면….’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새 먹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

     

     

   “아빠, 나 너무 아파….”

   “그래? 진통제 좀 놔달라고 할까?”

   “아니. 이거만 풀어 줘. 아프고 숨을 못 쉬겠어.”

   “■■야, 붕대 풀어 주는 선생님이 지금 안 계시거든? 내일 풀자. 응?”

   “응….”

   “착하다. 우리 ■■. 아, 그러고 보니 아빠가 재밌는 영화 가져 왔거든? 같이 보자.”

   “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