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64화 (365/400)

     

   “츠, 츠아아!”

     

   이 자리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놈은 자신의 무기를 포기했다. 자기 팔을 스스로 자른 놈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츠아아아악!”

     

   몇 분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치명상을 입었으나, 지금의 놈은 처음 조우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실로 경이로운 회복력이었다.

     

   놈도 그걸 알기에 당당하게 포효하는 거겠지.

     

   ‘글쎄, 과연 어떨까.’

     

   이걸로 세 번째다. 침식 촉수의 부속지가 놈의 몸에 ‘무언가’를 주입한 횟수 말이다.

     

   “츠아아, 악?”

     

   놈이 움직임을 멈춘다. 몸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감지한 놈이 머리를 갸웃거린다.

     

   하나 이제 와서 깨달아 봐야 너무 늦었다.

     

   “츠, 츠츠?!”

   

   놈이 결정화된 어깨를 보고 당황해한다. 반대편의 팔을 휘둘러 어깨의 비늘을 부쉈지만, 소용없다.

     

   내가 주입한 규소 기반 미생물이 이미 놈의 몸에 퍼져나갔기에.

     

   “저거 혹시?”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아)]

     

   자신을 본 자는 돌로 만드는 신화 속의 괴물 이름을 딴 특성.

     

   환경적응 계열의 유일 특성, ‘메두사 기관’이 파이로맨서를 석영 조각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츠아악?! 츠아아악!”

     

   놈은 크리스털 비슷한 물질로 변해가는 자기 신체 부위를 깨부수며 발악했다.

     

   만약 처음에 뒷목을 공격당했을 때, 그리고 어깨를 찔렸을 때 바로 그 부위를 도려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메두사 기관의 미생물은 퍼지기 전에 오염 부위를 제거하면 소용없으니까.

     

   하나 놈은 그 사실을 몰랐고, 심지어 그 부위를 남겨두고 나머지 몸을 재생시켰다. 덕분에 미생물이 금방 전신에 퍼질 수 있었다.

     

   이제 놈의 초월적인 재생력은 사실상 무력화된 거나 다름없다. 놈의 재생력과 메두사 기관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신체를 재생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너를 잡으러 왔을 것 같아?)]

   

   이상적인 사냥꾼의 몸을 가진 파이로맨서.

     

   어느 때든 자신감이 넘치던 에이펙스 생물은 더 이상 없었다. 내 앞에 있는 그것은 그저 겁에 질린 먹이에 불과했다.

     

   여태껏 그래왔듯, 전의를 상실한 먹이를 죽이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는 원하는 걸 얻었어?”

     

   이사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드송 때와 달리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특성을 바로 얻었기 때문이다.

     

   ‘파이로맨서한테는 함정 카드가 있으니까.’

     

   메탈릭 그렘린의 ‘왜소화’, 스카이웨일의 ‘에너지 흡수’는 특성을 얻었을 시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파이로맨서에게도 그런 식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특성이 있다.

     

   파이로맨서가 가진 특성 중에는 ‘굶주림’이라는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을 보유한 자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최대 한계가 크게 증가한다.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많은 놈에게 필수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단점도 만만치 않지.’

     

   굶주림 특성을 보유하면 체내에 저장된 에너지가 지속해서 감소한다. 그리고 에너지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이름 그대로 굶주림에 미쳐 마구 날뛰게 되는 거다. 놈이 끝까지 도망치지 않은 것도 저 굶주림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얻은 특성은 굶주림이 아니다.

     

   「우월적 항상성: 대량의 에너지를 소모해 자연 치유력을 극도로 향상시킵니다. 특성 사용 후 에너지 생성 특성의 효과가 일정 시간 약화됩니다.」

     

   파이로맨서가 가진 마술에 가까운 회복력, ‘우월적 항상성’이 현재 내 몸에 적용 중이다.

     

   ‘원본보다는 성능이 좀 떨어지지만.’

     

   에이모프가 획득할 수 있는 특성 중 일부는 원본이 가진 특성보다 효과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효과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우월적 항상성도 원본에 비해 약화되어 적용되는 특성이다.

     

   이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파이로맨서처럼 몇 초 만에 신체를 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원본하고 똑같았으면 에이모프가 최강의 종족이 됐겠지.

     

   물론 그렇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우월적 항상성은 에이모프에게 유용한 보조 특성 중 하나니까.

     

   내부기관 계열로 분류되는 이 특성은 설명대로 신체의 치유력을 엄청난 수준으로 회복시킨다. 다른 회복 특성과 다르게 임의로 활성화해야만 적용되지만, 일단 발동만 된다면 원본에 버금갈 만큼의 재생력을 보여 준다.

     

   가령 머리만 남았다고 해도 특성을 활성화하면 10분 내로 몸을 전부 복구시킬 수 있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몸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다.

     

   ‘이 특성만 있으면 레버넌트 기관하고 타이런트로이드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레버넌트 기관, 부상이 심해질수록 효과가 증폭되는 타이런트로이드. 둘 다 좋은 특성이지만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의 여부에 따라 발동 여부가 정해진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월적 항상성이 있으면 이러한 단점이 많이 해소된다.

     

   물론 그렇다고 단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월적 항상성을 사용하면 ‘용의 심장’처럼 에너지를 펌핑해주는 특성들이 봉인된다. 봉인되는 시간은 특성마다 다르지만 짧으면 한두 시간, 길면 하루 이상 가기도 한다. 이때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은 원시적인 방법, 그러니까 적을 먹고 소화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이런 단점이 없는 재생 특성도 있지만, 그건 여기서 못 얻지.’

     

   완벽한 상위 호환에 있는 유일 특성이 있긴 하나 그건 얻기가 매우 어렵다. 현시점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재생 특성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우월적 항상성이다.

     

   “원하는 걸 얻은 것 같은데. 이 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즈즈(글쎄)]

     

   원하는 특성이 안 나올 것을 대비해 일부러 넉넉하게 계획을 짰다. 파이로맨서를 최소 세 마리 이상 사냥할 걸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데 예상보다 일찍 나왔으니 이 이상 파이로맨서를 잡을 이유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장은’ 잡을 필요가 없다.

     

   ‘나중에 하늘의 어머니가 있을 때 잡아야 하니까.’

     

   다른 애들이 나로부터 특성을 한두 개 씩 받을 때 그녀도 원하는 특성을 말해줬다.

     

   그녀가 이식받기 원했던 특성은 크게 두 가지. 레버넌트 기관과 우월적 항상성이었다.

     

   그녀의 특전, ‘사냥신의 둔갑껍데기’는 여러 종류의 환수(幻獸)로 변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 대가로 그리폰을 제외한 다른 짐승으로 한 번 변신할 때마다 30일씩 쿨타임이 걸린다.

     

   강력한 특전인데도 불구하고, 이 쿨타임 때문에 전술적 다양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그 단점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 했다.

     

   ‘레버넌트 기관과 우월적 항상성의 조합이라면 특전을 쓸 때 좋겠지.’

     

   다만 여기서 내가 줄 수 있는 건 후자, 우월적 항상성뿐이다. 레버넌트 기관을 여기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긴 한데.’

     

   베르잔02에서 시현 유진이 가진 크리스털 장비를 포식한 덕분에 레버넌트 기관과 유사한 능력을 얻었다.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 효과로 얻은 능력의 이름은 ‘공허의 주사위’. 이 능력을 사용하면 모든 특성의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그 덕분에 레버넌트 기관도 다시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밖에 다른 효과도 있는 것 같지만 아직은 확인 못 했지.’

     

   베르잔02에서 얻자마자 바로 사용한 이후 66일의 쿨타임이 걸렸다. 쿨타임이 아직 남은 탓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험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넘길 수 없어.’

     

   다시 생각해봤으나 역시 안 되겠다.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안다. 하나 공허의 주사위를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레버넌트 기관을 줄 수는 없다.

     

   ‘마그마사우르와 볼프 랭커라는 큰 적을 앞두고 있으니까.’

     

   레버넌트 기관은 보류하고, 우월적 항상성은 나중에 건네줘야겠다. 모든 위험이 사라지고, 내가 동일한 특성을 다시 획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된 다음 말이다.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즈즈(파이로맨서가 서식할 만한 곳을 체크해 두자)]

   “엘리멘탈호저는?”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연구원들이 조사하지 않는 화산부터 뒤져야겠지)]

     

   내 말을 들은 이사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팔 하나를 들어 턱 아래를 긁적이던 녀석이 내 뒤쪽을 가리켰다.

     

   “차라리 나와 아드하이가 찾아다니는 것은 어때?”

   [즈즈즈(둘이서?)]

     

   녀석이 손가락을 뻗어 아드하이와 26호를 가리켰다.

     

   「난 얘가 맛있어.」

   「부정」「이것」「더」「맛있어」

   「그것도 맛있지만 이게 더 맛있어!」

   「먹을 부위」「적어」「별로야」

     

   둘은 파이로맨서가 학살한 생물들을 포식 중이었다.

     

   “나와 녀석은 몸 크기가 작아서 레이더로 잡기 쉽지 않을 거야.”

   [즈즈즈(그렇지)]

     

   특히 아드하이의 경우는 레이더가 제대로 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비행할 수 있다. 이사벨은 속도가 느리긴 하나 엘리멘탈호저의 생태에 대해 잘 안다.

     

   꽤 괜찮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으로 쪼개지는 것은 좋지 않아.’

     

   살만의 기지에 잠입한 그룹과 달리 아드하이, 이사벨은 연락 수단으로 기생충을 이용할 수 없다. 녀석들, 아니면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이 안 되면 심히 곤란하다.

     

   [즈즈즈즈즈 즈 즈즈즈 즈즈(각개격파당할 수 있어서 안 돼)]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는 것은?”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그럴 거면 나누는 이유가 없지)]

     

   적어도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함께 있는 것이 좋다. 이사벨도 내 뜻을 이해하고 수긍했다.

     

   [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다 먹었으면 슬슬 움직일까)]

   「이번에는 어디가?」

   「새 먹이」「찾는 거?」

   [즈(그래)]

     

   나는 애들을 실고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작은 스토너들이 시체를 먹기 위해 돌아 오는 것이 보인다. 호수 주변에 널린 시체의 잔해는 저들이 대신 청소해 줄 거다.

   

    마지막으로 본 용암 호수는 내가 발견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

   

   

   큼지막한 바위 뒤에서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살만의 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개의 건물들이 중력 조절 장치 덕분에 용암 위에 떠 있었다. 각 건물들은 긴 통로로 연결되었고, 실드로 보호받는 중이었다.

     

   분자 구조 모형처럼 여러 건물이 얽혀 있는 저 기지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대형 전함을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공중 항구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사실상 지표 위에 있는 우주요새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변방에 저 정도 규모의 시설이 있다니.’

     

   저런 시설은 베르잔02 같이 부유한 행성에서나 볼 수 있다. 제아무리 랭커라 해도 이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행성에 저렇게 거대한 공중 부양 기지를 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저 기지가 왜 지어졌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저 기지에 잠입할지 생각해야 한다.

     

   기지를 바라보던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어떤 건물에 쏠렸다.

     

   용암 위에 떠 있는 건물 중 일부는 아래쪽에 굴뚝을 닮은 설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불타는 수면과 가까이 있는 그 설비는 열과 가스를 빨아들이는 일을 수행한다. 잔뜩 모인 열과 가스는 건물 내에 있는 다른 설비들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저곳 아니면 항구로 진입해야 하는데.’

     

   항구는 보는 눈이 많아서 몰래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실드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남들의 눈을 피해 잠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하나뿐이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성공 확률 62%로 확인. 통로의 크기는 저와 ‘중간애기’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추정됩니다. 돌파를 위해서는 정밀한 비행 실력이 요구됩니다.”

     

   뇌의 절반이 기계로 이루어진 스크리머다운 대답이었다.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저것보다 훨씬 좁은 통로도 뚫어 봤어. 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PS-111은 모르겠지만, 하늘의 어머니의 비행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게임에서 그녀의 전투기 조종 실력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에이모프가 괜히 그녀에게 아드하이에게 비행술 교육을 맡겼던 게 아니다.

     

   날개를 얻은 시간이 짧다 보니 지상전이 더 익숙한 것일 뿐, 필요할 때는 언제든 과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래에서 가스가 분출되는 타이밍을 노릴 거야. 가스로 인해 발생한 상승기류를 이용하면 실드의 감지를 피해 잠입할 수 있으니까.」

   “‘작은애기’의 실력으로도 쉽지 않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내가 걔를 가르쳤거든? 뭐, 그린 갤러곤일 때이긴 하지만.」

   “알겠습니다. 가스 분출 주기를 계산했을 때, 다음 분출은 6분 후에 발생합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속으로 다시 한 번 계획을 점검했다.

     

   그렇게 작전 수행에 관한 여러 위험 요소들을 검토 중인데, PS-111이 입을 열었다.

     

   “서브 컨트롤러 ‘에이모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응? 뭔데?」

   “에이모프의 성별은 남성입니까? 여성입니까?”

     

   순간 저 스크리머가 농담을 한 줄 알았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자 PS-111이 재차 물었다.

     

   “에이모프의 성별은 남성입니까? 여성입니까?”

   「…지금 이 상황에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

   “중간애기는 에이모프의 사고를 민첩하게 수용할 수 있는 주체로 확인됩니다. 그런 존재와 작전을 수행 중이니 정보 수집에 용이하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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