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65화 (366/400)

     

   어이없다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지만, PS-111은 물러나지 않았다. 금속 피부 덕분에 표정이 없는 녀석은 대답하기 전까지 계속 물어볼 기세였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남성인 걸로 알아.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습니까?”

   「…….」

     

   PS-111이 말한 생물학적 근거가 무슨 뜻인지, 그녀도 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도 안다. 과거 현실 세계에 있을 때,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른 에이모프의 ‘그곳’ 사진을 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알게 됐다.

     

   ‘근데 왜 다 나한테만 묻는 건데?!’

     

   전에는 26호와 아드하이가 그녀에게 묻더니, 이제는 스크리머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마치 그녀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한테 묻지 말고 직접 물어봐.」

   “전에 물어 봤는데 거절당했습니다.”

   「확실히 그런 쪽에는 내성이 없…아니, 잠깐.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적 랭커가 숨어 있는 기지에 잠입해야 할 상황인데, 쓸데없는 얘기나 나누고 있다니. 현실에서도 이런 종류의 화제는 익숙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야….’

     

   그 순간, 그녀의 바람을 듣기라도 한 듯 기지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조용하던 항만 시설에서 크고 작은 함선들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숨어!」

     

   그녀와 PS-111은 재빨리 몸을 낮췄다. 급하게 이륙한 구축함과 초계함들은 대열을 이룬 채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여태껏 조용하다가 저러니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마치 뭔가 문제가 생겨서 급히 출동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이륙한 함선들은 전부 빠른 속도가 장점인 모델입니다.”

   「…에이모프를 찾으러 간 걸까?」

   “무장 상태를 봤을 때, 정찰 작전을 펼치려는 의도로 추정됩니다.”

     

   뭐가 됐든 적들이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에이모프에게 알려야 해.’

   “가스 분출까지 30초 남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 기지 내부에 잠입해야 한다.

     

   용암 호수에서 가스와 불로 이루어진 기둥이 치솟는 걸 보며 그녀는 작전을 개시했다.

   파이로맨서가 다닐 법한 장소를 찾는 일은 의외로 일찍 끝났다. 용암 호수를 떠난 이후, 다수의 생물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몇 군데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 찾다니 의외인데?’

     

   화산형 행성은 얼음형 행성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몹시 척박하다. 몇몇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들은 끝없이 먹이를 찾아 유랑한다.

     

   용암 호수 같은 지역은 수많은 떠돌이들이 잠깐 쉬는 공간이다. 파이로맨서가 호수에 자주 찾아오는 것도 휴식하러 온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서고.

     

   그런 공간을 제외하고는 생물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오래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딱히 많이 모일만한 곳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즈즈(글쎄)]

     

   아무 것도 없는 벌판 위에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카록스들은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는 중이고, 그 근처에는 라바랩터 무리가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스토너와 같은 중, 소형 잡식동물들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서식지가 서로 다른 생물이 휴식 장소도 아닌 곳에 모여 있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화산 활동 때문에 서식지를 떠나온 건가?’

     

   이 행성에 서식하는 생물 중 폭발하는 화산을 곁에 두고 멀쩡히 지낼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도망치던 중 우연히 저렇게 모였을 가능성도 있다.

     

   ‘기왕 일찍 발견한 김에 저기 있는 생물들은 내가 먹을까?’

     

   아까 포식할 때 사냥의 표상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포식 확률 증가 혜택은 누릴 수 없다. 그래도 모여 있는 생물이 많다 보니 지금 이 상태로 사냥해도 서너 개 정도의 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저곳 말고도 파이로맨서가 찾아올 만한 장소가 더….’

     

   모여 있는 괴물들을 잡아먹는 방향으로 생각이 쏠리는 그때, 낯익은 파장이 느껴졌다.

     

   꽤 먼 거리에서 날아온 그 파장은 기생충이 보낸 신호였다.

     

   ‘갑자기 기생충이 왜?’

     

   설마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위험해 처한 건가 싶어 재빨리 기생충이 보낸 신호를 확인했다.

     

   ‘내게 신호를 보낸 건….’

     

   기생충 세 마리가 똑같은 신호를 보냈다.

     

   셋이 동시에 신호를 보냈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이 행성에 도착한지 얼마 안 지나서 지배한 탐사대원들.

     

   그들을 조종 중인 기생충이 보낸 신호였다.

     

   ‘놈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내가 그들을 지배할 당시, 그들은 이미 다섯 군데의 화산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서 마그마사우르가 움직인 흔적이 발견되어 이동 중이라고 한다.

     

   ‘아직 토벌에 나선 것은 아니야.’

     

   조종당하는 연구원들은 나와 만났을 때와 똑같은 비행선에 탑승한 상태였다.

     

   화산의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마그마사우르는 별명대로 살아 있는 화산 같은 존재. 랭커들도 놈을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적이다. 일개 연구용 비행선이 전투에 동원될 가능성은 낮으니 정찰을 위해 움직이는 거라 봐야겠지.

     

   “왜 그래?”

     

   내가 이동을 멈추고 날개 팔만 흔들고 있자 이사벨이 물었다.

   

   [즈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마그마사우르가 발견된 것 같아)]

   “뭐? 생각보다 빠르네.”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이미 조사 중이었다고 하니까)]

   “하긴 그랬지.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내 계획은 살만이 마그마사우르와 싸울 때 뒤를 치는 거였다. 쉽지 않은 적을 상대할 때는 역시 어부지리를 노리는 게 제일 좋으니까.

     

   ‘일단 가서 위치랑 지형부터 봐둘까.’

   [즈즈즈 즈즈즈즈(장소만 확인하자)]

     

   나는 애들과 함께 기생충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고도를 낮추며 이동하다가 화산재가 넓게 퍼져 있는 곳이 나오면 검은 구름 속에 몸을 숨겼다. 다른 때와 다르게 적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이므로 조심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싸우더라도 내가 원하는 시점과 장소에서 싸워야 해.’

     

   그렇게 생각하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기생충 세 마리의 위치와 가까워졌다. ‘암흑 장막’으로 적의 탐지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나는 고도를 서서히 낮췄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에서 머리를 아래로 내린 그때, 새로운 신호가 내게 날아왔다.

     

   나를 안내하는 기생충과 또 다른 녀석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번에는 또 뭐…응?’

     

   이번에 받은 신호는 PS-111에게 건넨 기생충이 보낸 거였다.

     

   ‘다수의 정찰용 함선들이 기지를 떠났다고?’

     

   기생충에 조종당하는 자들이 움직이는 신호를 받은 게 대략 30분 전이다. 기지에서 함선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늦게 알리는 걸 보니 이제 막 잠입했나 보다.

     

   탐사대의 갑작스러운 이동 소식, 그리고 기지를 떠난 정찰용 함대까지. 확실히 전투보다는 탐색에 집중하려는 것이 맞는 듯하다.

     

   ‘출동한 함선 수가 많다고 하니 좀 더 조심해야겠네.’

     

   현재 암흑 장막을 몸에 두른 상태라 적 함대가 나를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혹시 모른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함재기가 맨눈으로 날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화산재로 인해 검게 물든 구름 속에 여전히 몸을 숨긴 채, 중앙의 머리만 아래로 뺐다.

     

   대지와 구름이 맞닿은 지평선 위에 아주 큰 화산이 있었다. 아드하이의 전(前) 고향에 있던 검은 산만큼 거대했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봤던 그 검은 산은 휴화산이었지만 여기 있는 화산은 아니라는 것. 멀리 있는 초대형 화산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연기와 화산재가 분출되고 있었다.

     

   에이모프 성체가 된 이후 나는 거대 괴수라 불러도 무방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경이로운 자연 현상 앞에서는 여전히 작게 느껴졌다.

     

   ‘저곳인가.’

     

   종말의 날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산. 그 주변에 수백 척의 함선들이 떠 있다.

   

   하늘의 어머니가 말한 정찰 함대였다. 작은 비행선이 산의 중턱과 함대를 오가는 걸 보니 한창 수색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거리를 좁혀볼까.’

     

   나는 함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날갯짓을 했다.

     

   저들은 구름 속에 내가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화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들 머리 위에서 뭐가 움직이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산 중턱에 착륙한 비행선과 워커들이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머리를 다시 구름 속에 숨겼다. 내 머리만 해도 녀석의 몸 전체만큼 크다 보니 이 이상 가까이 가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이사벨에게 대신 부탁했다. 산에 착륙한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이다.

     

   녀석은 헤엄치는 뱀처럼 부드럽게 몸을 흔들며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암흑 장막의 범위 내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려는 거다.

     

   몸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쌍둥이 언니의 조율을 받은 덕분에 녀석의 시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하늘의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저 정도 거리라면 적들이 무엇을 하는 중인지 얼추 확인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돌아왔다.

     

   “문제가 생겼어.”

   [즈즈(문제?)]

     

   PS-111도 그렇지만, 녀석 또한 금속 피부로 덮인 탓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목소리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놈들이 스타유니언산(産) 폭탄을 가져 왔어. 화산을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야.”

   [즈(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녀석의 목소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에이모프에게 메시지가 도착한 겁니까?”

   「응. 기생충을 심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신호가 갔을 거야.」

     

   희귀품들이 가득한 어떤 방.

     

   그곳에 커다란 몸을 지닌 스크리머 하나와 볼프 둘이 있었다.

     

   맹금류의 머리를 지닌 수인, 하늘의 어머니는 앞에 있는 볼프를 바라봤다. 상대는 여우의 머리를 가진 수컷 볼프였는데, 주둥이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PS-111이 그에게 강제적으로 기생충을 주입했기 때문에 저런 꼴이 된 것이다.

     

   ‘살면서 기생충을 다 써 보다니.’

     

   기생충으로 NPC 조종 및 플레이어인 척 위장하는 것. 이 둘이 에이모프가 악명을 떨치게 된 원흉이었다. 그녀도 기생충에 당한 경험만 수십 번이 넘었다. 저것 때문에 클랜원을 팀킬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 와서 기생충을 이용하게 될 줄이야.

     

   “당신의 지위는 엔지니어가 맞습니까?”

   “그, 에, 엔지니어라 할 정도는 아니고….”

   “대답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고통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자, 잠깐만요! 저, 저는 이 기지의 내부 전등을 유지하는 기술직을 맡고 있습니다!”

   “유용한 답변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그녀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동안, PS-111은 능숙하게 심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등 회로를 관리하는 컴퓨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 그건 왜…가 아니라! 제 개인 컴퓨터로 원격 접속이 가능합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PS-111은 고개를 끄덕였다. 뮤턴트 스크리머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하늘의 어머니에게 향했다.

     

   “이 자의 컴퓨터를 매개로 원격 해킹하면 Q구역에 진입 가능합니다.”

   「…고생했어.」

     

   문득 주변에 에이모프가 두 마리가 됐다는 생각이 든 그녀였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 후 PS-111은 여우 볼프가 가져온 컴퓨터에 자신의 선을 연결해 작업을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녀석은 몇몇 시설에 대한 접근 권한을 손에 넣었다.

     

   “장비를 보수, 수리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진 곳은 Q구역입니다. 가는 길의 경비 시스템을 수정해놨으니 제가 말씀드리는 루트로 가시면 됩니다.”

   「그게 가능해?」

   “특별한 저라면 가능합니다.”

   「그러면 혹시 여기서 장비 보관소도 들어갈 수 있어?」

   “몇몇 장소는 컬트식 보안 시스템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폐쇄형이라 원격 해킹이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으로 접근하거나 총관리실을 통해 해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렵겠네.」

     

   둘이 몰래 여기 온 것은 그녀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다. 적의 장비 보관소는 이후에 에이모프와 함께 와서 공략해도 충분하다.

     

   ‘살짝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쨌든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둘은 여우 볼프와 함께 창고를 나와 Q구역으로 향했다.

     

   수리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마주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이동 중에 PS-111이 컴퓨터로 계속 복도에 있는 카메라의 각을 조절한 덕분에 그들의 모습이 찍히지도 않았다. 기지에 들어올 때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여러 복도를 지난 끝에 그들은 마침내 Q구역에 도착했다.

     

   단단한 합금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공장 내부와 비슷한 풍경이 낯선 손님을 반겼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그 말과 함께 PS-111은 몸에서 드래드송의 가죽과 볼텍스원의 신체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구역 컴퓨터의 설정을 재료 가공과 조립에 맞게 수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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