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대한 금속의 용광로의 불길이 꺼진다면.
그때 하늘의 어머니는 볼프 전용의 유일급 방어구를 손에 넣을 것이다.
‘갑자기 웬 폭탄이지?’
그것도 스타유니언산(産) 폭탄이라니.
현재 화산 주변에 배치된 우주선들은 전부 컬트식 군함이다. 스페이스독이 아닌 이상, 컬트가 사이보그들의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컬트 제국의 무기 체계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사이킥 파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계열 무기. 굳이 스타유니언의 드론 무기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물론 그건 일반적인 관점이고.’
아스카44의 지배자, 살만은 플레이어다. 컬트의 상식에 구애받지 않을 테니 스타유니언의 무기를 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3대 열강 중 스타유니언은 가장 강력한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나노머신 폭탄 말고도 전통적인 스타일의 폭탄, 그러니까 핵무기 같은 종류의 재래식 폭탄 병기도 다량 존재한다. 그리고 그 위력은 현실의 핵폭탄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하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폭탄양은 얼마나 돼?)]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 다만 감마급 반물질 폭탄을 옮기는 걸 봤어.”
이사벨이 말한 감마급 반물질 폭탄은 스타유니언의 설치형 폭탄 병기 중 세 번째로 강력한 무기다. 그 위력은 바이오돔으로 보호받는 도시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하다.
‘문제는 저걸 왜 여기서 꺼내느냐는 건데.’
다른 적을 상대할 때라면 모를까, 마그마사우르는 반물질 폭탄으로 죽일 수 없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스카이웨일처럼 놈은 열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그마사우르와 싸울 생각인 랭커가 그 사실을 모를까? 여기서 감마급 따위를 터뜨려 봐야 적의 배를 채워주는 것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저 폭탄은 다른 의도로 설치된 거다.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잠재우려는 거야.’
마그마사우르의 주식은 화산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와 부산물이다. 에너지는 몸에 달린 골판으로 흡수하고, 용암이나 암석 같은 무기물은 커다란 입으로 단번에 빨아들인다.
거기서 소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넘게 되면 마그마사우르는 식사를 멈추고 스스로 잠든다. 휴면 상태가 되면 몸이 빠르게 변형되어 새로운 화산으로 재탄생한다.
‘이 세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게임에서는 육신이 변형된 마그마사우르가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지형으로 취급됐다. 당연히 유전자 정수도 얻을 수 없었다.
운이 좋게 머리가 변형되기 전에 섭취하지 않는 이상, 정수를 포식하기 어려울 터.
살만도 마찬가지다. 특전이 어떻게 작용할지 미지수이나 유전자 단위로 몸이 변하는 중인 거대 생물을 지배할 수는 없을 거다.
“아무래도 함정 같아.”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생각 중인 내게 이사벨이 말했다.
살만이 깐 함정이라.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연구원을 지배할 당시만 해도 살만은 마그마사우르를 열심히 수색 중이었다. 그 목적은 당연히 더 강한 생물을 지배하려는 거지,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목표가 바뀌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자기가 지배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뺏기지 않게 미리 정리하는 걸로.
그리고 그 타인은 나를 말한다.
‘내가 이 행성에 온 것을 알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는 초화산에 폭탄을 설치하는 정찰 함대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잘 아는 자라면 내가 이곳에서 무엇부터 노릴지 알 거다. 어떻게든 유전자 정수를 획득하지 못하게 막으려 할 터.
내 판단이 사실이라면 나는 현재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고 봐야 한다. 살만이 나의 침입을 인지했다면 이미 지원군을 불렀을 테니까.
어쩌면 이미 귀환파의 랭커 전원이 아스카44에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큰애기야, 괜찮아?」
그때 중앙의 머리 위에 있던 26호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격해지는 나의 감정을 감지하고 걱정한 거다.
‘진정하자.’
생각이 한쪽으로만 비약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 침착함을 잃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황을 차근차근 돌아보면….’
일단 확실한 것은 놈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부분이다. 만약 알았다면 진작 귀환파의 랭커들이 나를 덮쳤겠지.
그런데도 에이펙스의 서식지에 폭탄을 깔았다는 건, 내가 아스카44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놈이 지배하는 생물.’
고유 특전 ‘야수신의 올가미’를 이용해 행성 곳곳에 살아 있는 감시 카메라를 깔아둔 게 틀림없다. 내가 행성을 돌아다니던 중 스파이들은 자신의 주인에게 나에 대한 사실을 보고한 거고.
그동안 나는 적 함선의 감시망을 피하는데 주력했지, 야생동물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적의 행동 타이밍을 보면 드래드송, 파이로맨서를 잡으러 가던 도중 걸린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지배한 동물이 본 것을 살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특전 자체의 한계인 건지는 알 수 없다.
요점은 놈이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저 폭탄은 마그마사우르라는 미끼를 통해 작동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내가 마그마사우르를 잡기 위해 폭탄을 제거한다면 그걸로 나의 침입은 확실시된다.
다른 경로로 나의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폭탄을 터뜨려 마그마사우르를 잠재우면 그만이다. 비록 에이펙스를 지배할 기회를 잃겠지만, 대신 내가 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다음은 다른 동료들을 불러 나를 상대하려 하겠지.’
그렇다면 왜 놈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취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아스카44에 동료들이 없기 때문이다.
전에 알샤스가 말하길, 귀환파의 멤버들은 각자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맡은 일을 내팽개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아스카44에 침입했다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즉시 이곳으로 몰려올 거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지원을 요청해서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야.’
나는 이사벨에게 내가 추론한 것들을 설명했다. 말없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들은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다.
살만의 동료들이 도착하기 전에 놈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
‘하나 상대는 꽤 신중한 성격이야.’
동료를 미리 불렀든, 아직 부르지 않았든 상관없이 내가 자신부터 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을 터. 필시 나의 침입을 대비해 온갖 함정을 깔아놨겠지.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은 기지 잠입에 성공했지만, 나와는 사정이 다르다. 사실 녀석들도 둘 중 하나만 있었으면 아마 잠입에 실패했을 거다. 하늘의 어머니는 기계 해킹이 불가능하고, PS-111은 잠입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정면에서 승부하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그것 역시 놈이 마련한 판에 끌려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큰애기 기분 안 좋아 보여.」
「난쟁이」「만나면」「늘」「기분」「나빠」
「인간들 나쁜 물건 갖고 있어서 그래.」
「난쟁이」「몸」「약해」「막대기」「강해」
「나쁜 인간은 나쁜 물건으로 때려 줘야 해!」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애들이 지루한지 잡담을 나눈다.
‘잠깐.’
녀석들의 대회를 들은 순간, 문득 머리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스쳤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나쁘지 않겠는데?’
살만에게 치명상을 주는 동시에 내가 목표로 하던 것을 전부 이룰 수 있는 방법.
마치 마술과도 같은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하늘의 어머니가 만들려는 장비)]
“응?”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그거 완성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지?)]
“어떤 설비를 이용하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그 정도 걸리던 걸로 기억해.”
[즈(좋아)]
잠입한 녀석들이 빠져나갈 시간까지 포함하면 4시간.
그 시간만 지나면 살만은 끝이다.
-
“폭탄 담당측은 어떻게 됐나?”
천장에 돔 형태의 게이트가 달린 거대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산 앞에서 살만은 시종장에게 물었다.
“설치 후 4시간이 지났지만, 접근한 존재는 따로 없다고 합니다.”
“놈은 분명 그곳에 나타날 것이다. 접근을 확인하는 즉시, 폭탄을 터뜨리도록.”
“원격 제어 스위치를 이쪽에서 갖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종장이 검은색의 단말기를 꺼내자 살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단 여제가 시키는 대로 다 했어.’
귀환파의 멤버 중 에이모프와 가장 많이 싸워 본 자는 여제와 범호였다. 살만은 여제에게 통신용 비석으로 연락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문을 구했다.
그녀, 아니 그가 말하길, 정말 놈이 그 행성에 도착했다면 크게 두 가지 목표를 위해서 왔을 확률이 높았다.
하나는 랭커의 목숨. 이미 죽은 알샤스로부터 살만의 존재를 들었을 테니, 그를 노리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여제는 최대한 생존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연락을 받은 직후, 그는 닥치는 대로 야생동물들을 잡아들여 부하를 최대한 늘렸다. 그것 때문에 생태계가 엉망이 됐지만 지금 그걸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부하를 늘리는 동시에 장비 보관소에 있는 장비 중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착용했다. 남은 장비들은 보관소의 보안 시스템을 폐쇄형으로 바꿔서 그 말고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놈이 아스카44를 노릴 두 번째 이유. 그건 화산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유전자 정수, 마그마사우르다.
상위권 에이펙스에 속하는 마그마사우르는 살만 또한 탐내는 대상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계속 탐사대를 이용해 화산 내부를 수색해 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여제는 이런 조언도 남겼다. 놈이 정말 아스카44에 왔다면, 마그마사우르는 포기해야 한다고. 그리고 기지의 부하들 중 외부에 나갔다 들어온 자들도 전부 의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수 있으니까.’
미친 모프박이 놈이 화산을 일일이 뒤질 리 없다. 게임에서도 놈은 상대의 계획을 역이용하는 것을 즐겼다. 필시 그의 부하를 몰래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나 같이 설득력이 있는 말들뿐이었기에 그는 순순히 따랐다. 외부 활동과 화산 수색을 전담하던 자들은 전부 폭탄 담당용 함대에 투입되었다. 그들 중 감염된 자가 있으면 모프박이를 유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리라.
“기지 내부에는 따로 보고된 문제가 없는가?”
“예. 살만님.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습니다.”
시종장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만은 시종장을 뒤로 하고 바위산에 다가가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밖에도 확인해 봐야겠군.’
바위산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감각이 지배한 동물들 중 하나와 연결되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뜨자 앞에 보이는 것은 바위산이 아니었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펄펄 끓는 용암뿐이었다.
현재 기지 밖 상공과 기지 아래의 용암에는 그의 지배를 받는 짐승들이 숨어 있다. 짐승들에게는 검은 구름이나 거대 괴수가 보이면 바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 중 용암 호수에 숨어 있는 불카록스와 동기화한 그는 머리를 들어 호수의 가장자리를 바라봤다. 검은색 대지가 잿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곳에는 그 어떤 존재도 보이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면 좋겠지만….’
동기화한 상태로 쭉 둘러봤으나 접근하는 존재는 따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머리 위쪽에 떠 있는 기지를 살펴보려는 그때, 용암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지반 밑에서 위로 분출하는 가스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찰나의 순간, 기지의 에너지 흡수 장치가 가스를 흡수하기 위해 열리면서 내부가 노출되었다.
‘응?’
그걸 본 살만은 흠칫했다. 극도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지가 외부의 위협에 노출된 것은 사실이다. 에이모프와의 싸움 중 저 부분이 약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링크를 해제한 그는 시종장에게 이 부분에 대해 말하려 했다.
“가스를 흡수하는 설비를….”
“살만님!”
그때 시종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살만을 부른 그는 몹시 놀란 얼굴로 통신기를 들고 있었다.
“폭탄 담당 함대의 연락입니다!”
“뭐?”
시종장이 통신기를 키자 작은 기기 안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괴, 괴물에게 습격당하는 중! 하, 함대 전력 60% 이상 소실된 것으로 확인!」
「지상에 내려간 폭탄 관리자와 연락 두절!」
「제, 젠장! 바, 밖에서 놈이 들어오려 하고 있어!」
「당장 지원 바란다! 당장 지원…으, 으아아아악! 뚝.」
정신없이 쏟아지던 목소리들은 곧 끊겼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폭탄을 터뜨려라! 당장!”
“예, 옙!”
살만이 단호하게 외치자 지르자 시종장이 재빨리 원격 제어 스위치를 가동했다. 검은색 단말기의 화면에 숫자 20이 떴다. 저 숫자가 0이 된다면 감마급 반물질 폭탄이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