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67화 (368/400)

     

   그렇게 되면 에이모프는 마그마사우르의 유전자 정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들.

     

   남은 숫자가 10이 되었을 때, 살만은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악명 높은 에이모프를 상대로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시종장. 그 폭탄, 위치도 확인할 수 있는가?”

   “예? 확인하겠습니다.”

     

   숫자가 5를 가리켰을 때, 시종장이 손가락으로 단말기의 화면을 터치했다.

     

   바뀌는 화면을 본 시종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 살만님?”

   “왜 그러지?”

   “위, 위치가….”

     

   그가 보여 준 지도에는 낯익은 장소가 찍혀 있었다. 폭탄이 있는 장소, 그건 그들의 기지였다. 화면 옆에 남은 숫자는 이제 2.

     

   “이런 애미…! 마리드(مارد)!”

     

   살만이 외치자 그의 뒤에 있던 거대한 바위산이 움직여 그를 덮었다.

     

   그 직후, 기지 안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이 그들을 휘감았다

   눈앞을 가리던 검은 연기가 일순간 흐트러진다. 몸을 달구는 열기도 잠깐 사그라졌다.

     

   멀리서 날아온 바람 때문이다.

     

   중앙의 머리를 들어 바람이 날아온 방향을 향했다. 저 멀리 하늘과 땅의 경계 사이에 버섯처럼 생긴 불기둥이 보인다.

     

   스타유니언의 설치형 폭탄 병기, 감마급 반물질 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핵구름이다.

     

   ‘제때에 잘 도착한 것 같네.’

     

   화산재로 가득한 구름 속에 숨어 4시간을 기다린 뒤, 정찰 함대를 습격했다.

     

   내가 가장 먼저 노린 대상은 화산에 착륙한 자들이었다.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내려간 그들은 수동으로 폭파시킬 수 있기에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이들이었다.

     

   그와 함께 나는 애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맡겼다. 이사벨과 26호는 상공에 떠 있는 본대의 교란을, 아드하이는 행성 궤도에 있는 통신 위성 파괴를 말이다.

     

   전투 모드에 들어간 26호는 강력한 사이킥 기술인 ‘심해의 공포’를 사용해 적들의 혼을 쏙 빼놨다. 지상에 있던 자들도 녀석의 환각을 보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지상 병력을 빠르게 정리한 나는 폭탄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살만이라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 처리해 놨을 터. 내 예상대로 함대가 공격받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폭탄의 타이머가 켜졌다.

     

   폭탄 가동까지 남은 시간이 10초쯤 남았을 때, 나는 강적의 증표 중 하나인 ‘별빛 좌표’를 사용했다. 적이 폭탄 위치를 확인하고 도중에 정지시킬 수 있기에 일부러 아슬아슬한 타이밍을 노렸다.

     

   목표는 PS-111에게 맡겨뒀던 기생충의 위치.

     

   작전을 개시하기 1시간 전에 기생충으로부터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기지를 떠났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1시간이라면 둘이 반물질 폭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한 나는 폭탄을 별빛 좌표로 옮겼다. 이사벨만큼 커다란 크기의 폭탄은 푸른빛과 함께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가 바로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핵구름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잘 풀렸어.’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다음부터다.

     

   살만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확률은 반반이다. 게임이었다면 100% 죽었겠지만, 놈에게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

     

   하나는 귀환파가 보유한 장비들.

     

   게임과 많이 다른 이 세계에서 오래 머무른 자들이 어떤 장비를 숨기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솔직히 반물질 폭탄으로부터 생존 가능한 방어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혹시 모른다.

     

   만약 놈이 그런 장비를 입고 있었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 말고는 놈이 부리는 생물이 변수야.’

     

   마그마사우르를 노리던 놈이다. 지배해서 데리고 있는 생물들의 스펙도 상당히 높을 거다. 저 대규모 폭발에서도 주인을 지켜낼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치명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성체인 나라 해도 감마급 반물질 폭탄을 직격으로 맞으면 꽤 위험하다. 놈 또한 운이 좋게 생존한다 쳐도 크게 다쳤을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쯤이면 아드하이가 지상에서 발생한 폭발을 보고 통신 위성을 정리했을 거다. 살아남은 살만이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전에 놈이 이미 지원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대한 빠르게 볼일을 끝마치고 적들을 요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마그마사우르를 치자.’

     

   여기서 살만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놈이 죽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들 거야.’

     

   외부의 지원이 오기 전까지 나를 귀찮게 하는 것. 그게 놈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놈이 자신을 과신해서 동료들을 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폭탄을 터뜨린 후에 연락을 취해도 늦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고.

     

   하나 놈이 어떻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놈에 대한 문제는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에게 맡긴다.

     

   지금쯤 둘은 만든 임시 둥지로 돌아가는 길일 거다. 하늘의 어머니라면 저 폭발이 뭘 의미하는지 알겠지. 또 뭘 해야 하는지도.

     

   ‘이전 같았으면 내가 가서 같이 싸웠겠지만….’

     

   현재 살만은 자기 부하들과 요새를 상실했다. 지배한 동물들 대부분도 그와 함께 폭발에 휘말렸을 거다.

     

   어찌 됐든 살만은 물론이고 그가 지배한 생물 중 일부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크게 약화된 상태인 것은 틀림없다.

     

   ‘그 둘이라면 잘 해낼 거야.’

     

   새로운 장비를 얻은 하늘의 어머니, 다채로운 능력을 지닌 PS-111이라면 살만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둘이 살만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최대한 빨리 마그마사우르를 정리한다. 그 다음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게 나의 계획이다.

     

   나는 텅 빈 폭탄 거치대를 발로 밟아 부쉈다.

     

   [즈즈 즈즈즈(뒤를 부탁해)]

   「응!」

     

   수많은 눈을 가진 거대 분홍 해파리가 촉수로 구축함을 쪼개며 답했다.

     

   녀석의 뒤로 이사벨이 다른 함선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는 게 보인다. 잠시 후, 그 함선은 크게 휘청거리더니 근처에 있는 다른 함선을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배 둘을 무력화시킨 녀석은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함선을 노렸다.

     

   함대와 치열하게 싸우는 녀석들을 두고, 나는 날개를 펼쳐 화산의 봉우리로 날아올랐다. 내 날개가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화산재와 가스가 흩어졌다.

     

   분출구에 도착하자 무지막지한 양의 화산재가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화산 내부로 뛰어들었다.

     

   열기로 인해 녹아내리다 못해 기화된 암석, 극도로 응축된 가스, 그밖에 여러 유해 물질이 나를 가로막았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뇌신들에게 집중 포화를 당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경이로운 위력을 지닌 초화산도 나의 이동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장애물을 뚫고 차근차근 화산의 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계속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주변의 온도가 확 올라갔다. ‘지옥의 환영’ 특성으로 강화되었음에도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열기였다.

     

   그와 함께 검은 장착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던 풍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밤이 끝나고 태양이 바다 위로 떠오를 때처럼 붉은빛이 타오른다. 불을 품은 빛이 저 아래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빛의 크기도 커져간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불씨에 불과했던 그것이 어느새 용광로에서 흘러내리는 쇳물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다.

     

   빛과 열기가 한계에 도달할 때쯤, 공간이 확 넓어졌다. 화산과 지각판 사이에 존재하는 초거대 공동이었다.

     

   녹아내린 암석과 용암으로 장식된 불의 궁전.

     

   그곳에 화산의 주인이 누워 있다.

     

   그 존재는 원시 지구에 서식했던 용각류(龍脚類)를 닮았다. 몸통에 비례해 어마어마한 길이의 목과 꼬리, 그리고 모든 다리를 사용해 보행하는데 적합한 체형 등. 전부 용각류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물론 전체적인 부분에서 닮았다는 거지, 실제로 놈을 보고 공룡을 연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아니, 생물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하겠지.

     

   넓은 공동에 누워 있는 그 존재는 몸통만 봐도 지금 내 몸의 3배 이상이었다. 머리와 꼬리까지 합치면 지난번 나와 싸웠던 반쪽짜리 ‘고뇌의 고리’와 비슷할 정도였다.

     

   「쿠르르르」

     

   최소 300m 이상의 초거대 생물이 나의 존재를 인지했다. 놈이 숨을 크게 내쉬자 천둥소리가 공동 전체에 메아리쳤다.

     

   내 몸보다 길쭉한 놈의 목이 들리고, 큼지막한 6개의 눈이 나를 향했다.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놈의 눈은 초식동물의 눈처럼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는 사자나 표범이 아니라 코끼리나 기린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다.

     

   저 야산만한 크기의 초대형 괴수도 그렇다. 육식성만 아닐 뿐, 놈은 에이펙스 괴물이다.

     

   허공에서 날갯짓을 하는 나를 본 놈의 눈빛이 변했다. 소형 초계함 정도는 한입에 삼킬 정도로 커다란 주둥이가 쩍 벌어졌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

     

   천둥과 같은 포효와 함께 공동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그에 맞춰 나 또한 놈을 향해 가속했다.

     

   화산의 악마, 불의 천둥의 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존재, 마그마사우르.

     

   놈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비, 빌어먹을 에이모프 놈!」

     

   폭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살만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불과 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용암 호수 위에 떠 있던 그의 기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온통 화염만이 존재했다.

     

   감마급 반물질 폭탄은 도시도 거뜬히 날려 버리는 위력을 자랑한다.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무시무시한 위력의 폭탄이 그의 기지에 떨어졌다. 그 탓에 기지와 부하, 함선들은 전부 날아갔고, 지배한 생물 대부분도 잃고 말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원래라면 살만 역시 죽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그 중 첫 번째는 불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저 존재 덕분이다.

     

   바위산을 닮은 그것의 정체는 바로 수천 년 이상 성장한 마운틴크롤러. 살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암석형 행성에 주로 서식하는 마운틴크롤러는 아주 높은 방어력을 지닌 생물이다. 약한 새끼조차도 강화 합금탄을 튕겨낼 정도로 단단한 외피를 지녔다.

     

   하지만 마운틴크롤러의 진짜 강점은 식물처럼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점이다. 성장에 한계가 없으므로 나이를 먹을수록 강력해진다.

     

   게임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반영되어 엄청 오래 생존한 마운틴크롤러가 레이드 보스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살만이 지배한 마운틴크롤러도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경우였다.

     

   「마리드(مارد)!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여라!」

   「그르르르릉」

     

   물론 그런 존재라 해도 반물질 폭탄에 직격당한 것은 꽤 큰 피해였다. 폭발에 휘말리는 바람에 갑각 중 멀쩡한 곳이 없었고, 어느 부위는 갑각이 벗겨지다 못해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살만의 특전, ‘야수신의 올가미’에 걸린 이상 주인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마리드’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고대 마운틴크롤러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의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본 살만이 혀를 찼다.

     

   ‘젠장, 저래서는 쓸모가 없겠군.’

     

   원래 그의 계획은 마그마사우르나 에이모프와 싸울 때 마리드를 탱커로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놈은 반물질 폭탄으로부터 주인을 지키느라 갑각이 크게 손상되었다.

   

   에이모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지금, 마리드는 그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놈을 버려야 하나?’

     

   마리드는 엄청난 방어력과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다. 비행이 가능한 에이모프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다.

     

   ‘…약물을 먹은 지금이라면 놈으로부터 혼자 도망칠 수 있어.’

     

   살만은 환상 속 짐승으로 변한 자기 몸을 내려다 봤다.

     

   그가 변신한 환수(幻獸)의 이름은 ‘시무르그(Simurgh)’.

     

   페르시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날짐승을 모티브로 따온 존재다.

     

   신화 속 이미지처럼 그는 개의 머리에 공작새의 몸,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짐승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게임에서도 시무르그는 특유의 멋진 외모와 강력함 덕분에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게임 속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시무르그와 많이 달랐다.

     

   먼저 크기부터가 일반적인 환수라 보기 힘들 정도로 컸다. 원래라면 머리부터 꼬리 깃털 끝까지 합쳐봐야 3m를 넘기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10m에 달했기 때문이다.

     

   날개와 꼬리를 덮은 깃털의 색은 놀라울 정도로 화려했다. 에메랄드와 라피스 라줄리로 빚은 것 같은 아름다운 깃털은 스스로 신비한 빛을 내뿜었다. 그밖에 머리와 몸통, 뒷다리에는 금색의 반투명 갑주가 덮여 있었다.

     

   이 중 금색 갑주는 변신하기 전에 입은 장비가 변신에 맞춰 변형되어 그런 것이지만, 다른 부분은 아니다. 그의 덩치, 화려한 깃털들은 전부 그가 먹은 약물 덕분에 변화한 것들이다.

     

   강화 사이오니움 앰플.

   

   예전에 귀환파 동료에게 받았던 물건으로 8분 동안 그의 신격화 단계를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가졌다.

     

   그 덕에 볼프 화신체가 되어야 쓸 수 있는 강신 모드로 변신할 수 있었다. 약물이 없었다면 고대 마운틴크롤러가 그를 보호했어도 치명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도망가야….’

     

   그때 에메랄드를 닮은 그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저건?’

     

   불의 비가 내리는 하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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