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1화 (372/400)

     

   「쿠그그!」

   「그윽!」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마그마사우르. 놈이 온힘을 다해 앞다리로 왼쪽 머리의 복부를 걷어찼다. 녀석은 허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채 나가떨어졌다.

     

   ‘어딜!’

     

   나는 뼈 낫 팔을 즉시 빼고, 왼쪽 머리가 하던 일을 대신했다. 침식 촉수로 적의 두 앞다리를 휘감고, 전투용 팔로 놈의 아래턱을 콱 붙들었다.

     

   순식간에 나에 의해 전신이 속박당한 놈에게 이제 남은 공격 수단은 꼬리뿐. 놈의 꼬리가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왔다.

     

   집게발이 달린 꼬리를 희생하려고 했는데, 적의 꼬리가 허공에서 정지했다. 26호가 사이킥 파워로 꼬리를 멈춰 세운 거다.

     

   「쿠그그그…쿠르르르르르!」

     

   내 손에 잡힌 놈의 아가리가 서서히 벌어진다. 턱 사이의 암석 가죽이 찢어지고 안에서 마그마를 닮은 피가 흘러내렸다.

     

   날개 팔을 따라 흘러내리는 달콤한 냄새. 적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 순간, 내게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여섯 개의 눈에 두꺼운 막이 덮였다. 불과 천둥의 악마가 가진 막강한 공격 기술, ‘이온 라이트닝’이 발사되려는 신호였다.

     

   강제로 벌려진 아가리에서 검은 번개가 발사되기 직전, 놈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번개 대신 독한 연기뿐이었다.

     

   「쿠르윽?!」

   ‘이사벨!’

     

   아까 녀석이 내가 만든 상처를 통해 적 몸 안에 침입했다. 전부 전기 생성 기관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녀석이라 해도 마그마사우르의 전기 생성 기관을 파괴하는 것은 무리다. 가죽만큼 단단하지는 않더라도 내장 역시 매우 튼튼하기 때문이다.

     

   하나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어 준 것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활짝 벌어진 놈의 아가리에 날개 팔을 쑤셔 넣었다.

     

   「?!」

   「그르르르르!」

   「그르르르!」

     

   적 주둥이에 처박은 날개 팔, 아래턱을 붙잡은 두 개의 전투용 팔, 그리고 위턱을 붙잡은 오른쪽 머리까지. 총 5개의 팔이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오직 에이펙스 괴물의 아가리를 찢어 버리기 위해서.

     

   잠시 후, 놈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턱을 잇고 있는 뼈가 부러진 것을 넘어 머리가 위와 아래로 뜯어지고 있다.

     

   위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혓바닥으로 뜨겁고 달달한 피를 핥으며 마지막으로 팔에 힘을 줬다.

     

   그러자 내 몸이 뒤쪽으로 확 쏠렸다. 날개 팔과 전투용 팔 끝에서 적의 뼈와 살점이 느껴진다. 위쪽에 있던 오른쪽 머리도 뒤로 넘어졌다.

     

   뒤이어 대지가 쩌렁쩌렁 진동했다. 머리를 잃은 마그마사우르가 마침내 바닥에 쓰러진 거다.

     

   나는 뜯어낸 놈의 아래턱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혓바닥이 감지한 것은 승리의 맛이었다.

   「이겼다!」

   「그르르르!」

     

   마그마사우르의 시체 위에서 26호가 몸을 빛냈다. 옆에 있던 ‘오른쪽 머리’도 맞장구치듯 기쁨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르르르」

     

   적의 앞발에 차여 허리가 부러졌던 ‘왼쪽 머리’도 세레머니에 동참했다. 자칫하면 몸이 절단될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지금 녀석의 몸은 멀쩡했다. 내부기관 특성 ‘우월적 항상성’으로 상처를 치료한 거다.

     

   ‘나눠져서 싸우는 것도 괜찮네.’

     

   ‘히드라 분열’을 사용하면 내 양쪽 머리를 분리시켜서 60분 동안 함께 싸우도록 시킬 수 있다. 내 습관이나 전투 방식도 이어받아서 그런지, 따로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 움직였다.

     

   ‘특성도 일부 사용 가능하고.’

     

   새 육신을 얻은 각 머리들은 내가 가진 육체, 특수방어, 내부기관, 환경적응 관련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 복제물들 또한 내 성장에 따라 강해질 수 있다. 실제로 우월적 항상성을 획득한 덕분에 녀석들의 생존력이 대폭 상승하지 않았는가.

     

   ‘내 능력을 전부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역시 그건 욕심이겠지.’

     

   나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사냥의 표상 상태에서 분열되었으나 녀석들에게는 강화 효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머리가 하나뿐인 에이모프 성체의 모습이었다. 사냥의 표상 효과가 적용된다면 시너지가 있어서 좋을 텐데 아쉽다.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강하지만.’

     

   마그마사우르는 에이펙스 생물 중에서도 뛰어난 방어력과 신체 스펙으로 악명이 높다. 게임이었다면 사냥하는데 며칠 이상 걸렸을 거다.

     

   그때 쓰러져 있던 마그마사우르의 시체가 꿈틀거렸다.

     

   놈에게는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부활 능력이 없다. 바닥에 누운 목 부위가 꿀렁거리더니 머리가 날아간 부분으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겼으면 나 좀 빼주지?”

     

   시체에서 빠져나온 존재는 이사벨이었다. 전신을 검붉은 피로 물들인 녀석은 머리 근처의 팔을 뻗어 얼굴을 닦아냈다.

     

   [즈즈즈즈(고생했어)]

   “게임에서 ‘블러드 리버’가 맡는 역할을 여기서는 내가 하네.”

     

   녀석 말대로 마그마사우르 공략법 중 하나가 블러드 리버를 쓰는 방법이다. 적의 몸 안에 어떻게든 블러드 리버를 넣어서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소모시키는 것.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 빼고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블러드 리버보다 효율적이니 좋지)]

   “몸이 이렇게 됐다고 진짜 기계로 취급하지 않으면 좋겠어.”

     

   짧게 투덜거린 이사벨은 손가락에 묻은 피를 쭉 빨았다. 그것만 봐도 충분히 인간을 벗어난 모습이었지만, 딱히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놈은 정리됐고.’

     

   이제 살만 쪽을 확인할 차례다.

     

   반물질 폭탄이 터진 뒤,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그쪽으로 향했을 거다. 만약 놈이 폭발에서 살아남았다면, 지금 한창 싸우고 있을 터.

     

   ‘지금이면 이 녀석들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

     

   26호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두 복제물들. 녀석들은 이제 전리품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중이었다.

   

   이전에 내가 히드라 분열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적의 감시망에 걸릴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

     

   복제물은 ‘암흑 장막’ 같이 적의 탐지를 무효화할 수 있는 특성을 사용할 수 없다. 적의 거점이 멀쩡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내 비장의 수를 노출할 수 없으니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살만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통신 위성은 아드하이가 정리하러 갔다.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다 차단되었으니 더 이상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저 둘부터 보낼까.’

     

   내가 여기서 시체를 먹는 동안, 녀석들을 보내 하늘의 어머니 일행의 상태를 살펴야겠다.

     

   ‘살만의 기지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가서 도와.’

     

   내 의지를 읽은 두 성체 에이모프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르르르」

   「그르….」

   

   고기를 먹지 못한 게 아쉬운지 녀석들은 연신 혓바닥으로 입가를 핥았다. 물론 내게 지배받는 녀석들이다 보니 내 명령을 거부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른쪽 머리는 내게 두 동강난 마그마사우르 머리를 건넸다. 그리고 왼쪽 머리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펼치고 위로 날아올랐다. 녀석들은 곧 검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애기들 안 먹고 어디 가?」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할 일이 있어서 그래. 쟤네는 이따가 먹을 거야)]

   「이따가?」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그러니까 먼저 먹으래)]

   [응.]

   

   전혀 아니었지만.

     

   ‘어디 그럼….’

     

   게임에서 적을 잡아먹을 때 맛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VR기기로 미각을 구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다. 새로운 먹이를 먹을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맛이 날지 늘 기대된다.

     

   나는 두 개로 쪼개진 마그마사우르의 머리를 모아서 한 입 깨물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단단함이었다. 껍데기를 까지 않은 호두를 그대로 입에 넣은 기분이었다. 놈의 두개골이 너무 딱딱해서 이빨이 박히지도 않았다.

     

   ‘아이스 호러를 먹었을 때처럼 먹어야겠네.’

     

   두개골을 씹는 것은 포기한 나는 먼저 아래턱 부분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두꺼운 턱뼈 부분을 피해 혀와 입 안쪽의 살점을 씹었다. 질긴 가죽이 찢어지고, 안에서 적당히 식은 피가 살점과 함께 흘러나왔다.

     

   ‘흠.’

     

   바깥 가죽은 단단하고, 안쪽 가죽은 질겼다. 당연히 살점도 똑같이 질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재밌는 식감이네?’

     

   가죽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살점은 씹히는 맛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부드럽고 기름졌다. 특히 따뜻한 핏물까지 겹쳐서 그런지 상당히 흥미로운 맛이 났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마치 진한 풍미를 담은 고기 스튜를 앞에 두고 국물과 고기 한 점을 같이 떠서 먹는 느낌이다. 고기를 씹을 때마다 나오는 달콤한 육즙, 피에서 느껴지는 깊은맛. 전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죽에 붙어 있는 용암 파편. 이걸 씹을 때마다 허브 같은 향이 확 퍼지는데 이게 또 별미다.

     

   ‘마음에 들어.’

     

   이런 식으로 맛에 여러 층이 있는 먹이는 또 오랜만이다. 전에 ‘페일 마스크’를 먹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네.’

     

   아래턱을 뼈만 남기고 싹 먹어 치운 나는 남은 것들도 먹기 시작했다. 얇은 뼈를 부수고 안쪽에 있는 뇌와 살점들을 싹싹 긁어냈다.

     

   그때 26호가 내게 다가왔다. 몸 색깔을 보니 방금 잡은 먹이가 어떤 맛인지 궁금한 것 같았다.

     

   「큰애기야, 맛있어?」

   [즈즈즈(먹어봐)]

     

   내 파장을 들은 녀석은 촉수를 삽과 비슷한 형태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이사벨이 파고 들어간 상처 안에 변형된 촉수를 집어넣어 살점을 파냈다.

     

   「와! 맛있다! 맛있다!」

     

   고기를 맛본 녀석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제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즈즈즈 즈즈(마음에 들어?)]

   「응! 맛있어!」

   [즈즈즈즈(다행이네)]

   「작은애기랑 중간애기랑 친구랑 애기들이랑 다같이 먹자!」

   [즈(그래)]

   

   마그마사우르의 크기는 약 300m. 뼈 같이 먹을 수 없는 부위를 제외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이다. 앞다리 하나만 먹어도 히드라 분열에 소모한 에너지를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모두가 함께 먹으면 최소 이틀 동안 배터지게 먹을 수 있으리라.

     

   「작은친구야, 너도 먹어.」

   “나는 이미 많이 먹었으니까 괜찮아.”

   「쑥쑥 크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해.」

   “여기서 더 커지라고?”

   「그래야지 나쁜 인간 혼내줄 수 있어!」

   “그건…부정할 수 없네.”

     

   26호와 이사벨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나는 남은 아래턱을 마저 끝냈다.

     

   윗부분도 아래턱과 똑같은 방법으로 먹었다. 두꺼운 뼈는 피하고, 얇은 뼈는 부숴서 안쪽에 있는 뇌와 살점을 긁어냈다.

     

   그렇게 남은 뇌수 한 방울까지 싹 비운 그때, 텍스트박스가 내 앞에 나타났다.

     

   「포식 효과 발동! ‘파괴수 갑피’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마그마사우르’의 생물 특성 중 ‘파괴수 갑피’를 탈취.」

   「‘파괴수 갑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좋아!’

     

   지난번처럼 특성 획득에 실패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다. 게다가 마침 내가 노리던 특성이 나왔다.

     

   ‘파괴수 갑피라.’

     

   마그마사우르가 가진 특성 중 에이모프에게 도움이 되는 특성은 총 두 개.

     

   하나는 육체 관련 특성인 파괴수 갑피고, 다른 하나는 이온 라이트닝을 방출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유일 특성이다. 둘 다 다른 생물에게서는 얻을 수 없다.

     

   내가 마그마사우르를 노린 것은 어디까지나 초월 시스템으로 유일 특성을 만들기 위한 것. 유일 특성은 융합 재료로 쓸 수 없으니 그 대신 파괴수 갑피가 나오길 원했다.

     

   ‘그럼 습득을….’

     

   막 특성을 적용하려는 찰나, 턱 아래의 보조기관에서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뭐지?’

     

   현재 나는 사냥의 표상 상태라서 보조기관들 모두 뼈 갑각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나는 텍스트박스를 놔둔 채 보조기관에 집중했다. 약하게 찌릿찌릿 울리는 이 느낌, 왠지 낯이 익었다.

     

   ‘분명 얼마 전에…아.’

     

   생각났다.

     

   처음 히드라 분열을 사용하고 복제물에게 감각을 링크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당시 분열된 왼쪽 머리를 통제하고 싶다고 생각하자 지금처럼 보조기관이 짜릿하고 울렸다.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녀석들로부터 내게 뭔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걸까? 나는 보조기관이 붙잡은 신호에 정신을 집중했다.

     

   둥지와 링크할 때처럼 내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간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 걸까? 전에는 금방 링크됐는데, 지금은 꽤 시간이 걸린다.

     

   ‘기억해놔야겠어.’

     

   몇십 초 정도 지나자 전신에서 묘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갑각 위를 쓸어내리는 서늘함, 흩날리는 화산재와 불씨. 구름 위를 비행 중인 두 머리와 감각이 연결된 거다.

     

   ‘왜 부른 거지?’

     

   폭발을 피한 적 함선과 조우한 것인가 싶어 주변을 확인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위쪽에는 느껴지는 게 없어 아래에 의식을 집중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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