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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2화 (373/400)

     

   왜 녀석들이 나를 불렀는지 이제 알겠다.

   

   지상에서 불카록스, 라바랩터, 스토너 등 다양한 생물들이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인데 싸우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설마?’

     

   저 무리에 있는 짐승들의 움직임은 명백히 비정상적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이성을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야생동물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바로 귀환파의 장비 관리인.

     

   ‘내가 온 걸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반물질 폭탄을 옮기는 걸 보고 그럴 거라 짐작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아래에 보이는 저 동물들 전부가 놈의 지배를 받고 있다. 침입자를 방지하기 위해 사방에 깔아둔 것이리라.

     

   게다가 지금 기묘한 조합의 무리가 향하는 방향은 내 복제물이 날아가는 방향과 일치했다.

     

   그건 즉, 살만이 저들을 자신 근처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상대가 지원군을 부른다면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두 머리에게 계속 날아가라고 지시한 뒤 링크를 끊었다.

     

   ‘떠나기 전에….’

     

   텍스트박스가 아까부터 나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확인을 선택하자 에이펙스의 유전자 정수가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갑각, 외피, 내장 등 여러 부분에서 변이가 발생했으나, 목표는 모두 동일했다.

     

   바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

   -

     

     

   “후방에서 ‘파일플라이’ 6마리 접근 중입니다.”

   「알았어!」

     

   PS-111의 말에 하늘의 어머니는 커다란 날개로 공기를 세게 때렸다. 그녀의 몸이 가속하며 앞으로 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 뒤로 넓적한 날개를 지닌 잠자리 괴물들이 따라붙었다.

     

   놈들의 정체는 ‘파일플라이’.

     

   화산형 행성이나 암석형 행성에 주로 서식하는 육식성 곤충이다.

     

   글라이더처럼 상승 기류를 타는 식으로 날아다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배 부분에 달린 커다란 생체 말뚝을 쏴서 잡는 습성을 지녔다.

     

   온갖 괴수들이 들끓는 이 행성에서 불과 3, 4m 크기에 불과한 파일플라이가 생존할 수 있는 것도 생체 말뚝 덕분이다. 놈들이 쏘는 생체 말뚝은 투척 속도와 관통력이 매우 높다. 그래서 불카록스 같이 중장갑을 두른 생물도 죽일 수 있다.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생체 말뚝이 검은 날개의 천둥새에게 쏟아졌다.

     

   하늘의 어머니는 70cm짜리 투사체의 세례를 피하기 위해 지상 쪽으로 강하했다. 등을 덮고 있는 검은 깃털 위로 아슬아슬하게 말뚝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더 빨리 비행한다면 놈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겠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그녀 뒷다리에 매달린 PS-111 때문이다.

     

   갈고리 손톱으로 뒷다리를 붙잡고 있던 PS-111이 긴 꼬리를 움직여 후방을 향했다. 꼬리 끝에 달린 데몰리셔가 작동하고, 물질분해탄을 쏘기 시작했다.

     

   “키엑!”

     

   기류 흐름을 타서 따라오던 거대 잠자리가 날개 한 짝을 잃고 추락했다. 이어서 날아온 남색 에너지탄이 3마리의 날개나 머리를 맞췄다.

     

   따라오던 6마리 중 4마리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같이 있던 동족 중 절반 이상이 죽었는데도 추격자들은 물러날 생각을 안 했다. 그저 계속 말뚝만 쏴 재낄 뿐이었다.

     

   먹이사슬 하위에 있는 포식자가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 건 명백히 비정상적이다.

     

   “이래서는 끝이 없습니다.”

   「나도 알…칫!」

     

   그 순간, 생체 말뚝 중 서너 개가 날개를 향해 날아왔다. 이미 피하거나 요격하기에는 늦은 상황. 날아온 말뚝이 날개에 박히려던 찰나, 깃털 위로 검은 팔이 자라나 말뚝을 튕겨냈다.

     

   하늘의 어머니가 착용한 장비, ‘옵시디언 암즈’의 기능을 이용해 방어한 것이다. 그녀가 검은 팔 조종에 집중하는 동안, PS-111은 데몰리셔로 남은 적들을 마저 요격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진정한 위협이 아직 남아 있다.

     

   하늘의 어머니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곳에 본능이 완전히 말살된 상태의 짐승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머리 위에는 기괴한 모습을 한 존재가 떠다니는 중이었다.

     

   환수(幻獸) ‘시무르그’로 변신한 볼프 랭커, 살만이다.

     

   현재 그의 모습은 아까 싸웠을 때와 달랐다.

     

   개과 짐승의 머리, 공작새의 몸 등 기본적인 특징은 그대로였으나 날개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화되었다. 10m 길이의 몸이 작아 보일 정도로 커지는 바람에 나비나 나방에 가까운 체형이 됐다.

     

   게다가 날개와 꼬리를 덮은 에메랄드와 라피스라즐리 색의 깃털이 계속해서 분해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빛 입자와 에너지 덩어리였다.

     

   거대화된 날개는 이미 사라져서 각양각색의 빛무리로 대체된 상태였다. 아직은 날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내부에서 빛이 끊임없이 요동쳐서 몹시 불안정해 보였다.

     

   이윽고 혼란스럽게 뒤엉키던 빛의 흐름이 점점 격해지더니 주변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위험해!’

     

   그걸 본 하늘의 어머니는 다급히 날개를 펼쳐 고도를 높였다. 동시에 줄기 형태로 뻗어 나온 수백 개의 열선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 굵은 열선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녀는 현란한 회피 기동을 펼치며 쫓아오는 빛의 포화를 피했다.

     

   하지만 PS-111을 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처럼 적의 공격을 완벽히 피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뒷다리에 매달려 있던 PS-111이 열선에 스치고 말았다.

     

   ‘칫!’

     

   PS-111의 신체도 내구도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지만, 시무르그의 에너지 공격을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알 수 없는 요인으로 강화된 공격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하늘의 어머니는 구름 속으로 숨은 뒤 놈이 있는 곳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마구 열선을 쏴대던 적은 그녀가 물러나자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부하를 보낼 뿐이었다.

     

   “■■■■■■!”

   “키리리릭!”

     

   아무리 봐도 정상으로 들리지 않는 괴성. 살만이 짐승처럼 울부짖자 놈 주변을 배회하던 파일플라이가 날아올랐다.

     

   하늘의 어머니는 고도를 높여 근처에 있는 먹구름 속에 숨었다.

     

   「괜찮아?」

   “고도로 가속된 정체불명의 입자 에너지로 인해 팔 두 개가 손상되었습니다. 해당 입자의 성질과 가속 조건을 분석하면 상당히 유용….”

   ‘…일단 괜찮은 것 같네.’

     

   일반 생물이 8개 중 다리 2개를 잃었으면 중상이지만, PS-111은 몸 대부분이 기계로 이루어져 있다. 무기를 잃은 것은 뼈아프지만 움직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동안, 그녀는 재빠르게 상황을 돌아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창을 맞고 추락한 뒤, 갑자기 저렇게 변했다.

     

   제사장의 황금창의 특징은 피를 머금을수록 더 예리하고 치명적인 무기로 변하는 것. 상대를 죽이면 죽였지, 저렇게 변이시키거나 하지 않는다. 놈이 착용한 갑옷 역시 변이와는 아무 상관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야.’

     

   놈이 복용한 거로 추정되는 개량형 사이오니움.

   

   그게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PS-111이 말했다. 사이오니움과 유사한 각성제를 복용하고 문제가 생긴 거라고 말이다.

     

   사이오니움 앰플은 짧은 시간동안 복용자의 단계를 한 단계 뛰어넘게 만들어 준다. 가령 볼프가 이를 복용하면 신격화 단계가 하나 올라간다. 만약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단계에서 앰플을 사용하는 경우, 작용하지 않는다.

     

   즉 최종 미션을 앞둔 단계, 화신체 상태에서 먹으면 강화 효과를 누릴 수 없다. 약물을 복용했다고 몸이 붕괴하고 뒤틀리는 현상은 그녀도 처음 본다.

     

   ‘저 갑옷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거야.’

     

   하늘의 어머니는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살만을 노려봤다.

     

   천둥새의 시력은 그리폰에 비해 훨씬 높다. 덕분에 그녀 눈에는 놈이 어떤 상태인지 훤히 보였다.

     

   몸 전체가 기이하게 변이되는 와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부분은 몸통과 머리를 감싼 금빛 갑주뿐이었다. 갑옷의 가슴 부분에는 그녀가 투척한 ‘제사장의 황금창’이 꽂혀 있었다.

     

   저 장비는 착용자가 상처를 입었을 시 빠르게 회복시킨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몸이 붕괴하는 와중에도 살아 있는 것은 전부 저 갑옷 덕분이다.

     

   ‘놈이 겪는 신체 붕괴가 약물의 부작용 때문이라면….’

     

   사이오니움의 효과가 끝난다면 신체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터. 정신도 함께 돌아올 지는 미지수이나 회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뭐가 됐든 이 이상 시간을 끌면 놈이 도주할 확률도 높아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카드를 노출했어. 어떻게든 여기서 놈을 잡아야 해.」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제가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끄는 동안 ‘중간애기’가 접근해 목표를 제압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역시 안 되겠어. 그랬다간 네가 너무 위험해질 거야.」

     

   마운틴크롤러가 쓰러졌다고 해도 지상에서 살만을 지키고 있는 괴물이 아주 많다. 게다가 라바랩터 같은 놈들은 PS-111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만약 그녀가 살만을 잡는데 실패하면 녀석이 죽을 수도 있다.

   

   “목표의 잠재적 위험성은 매우 높습니다. 제압에 실패한다면 관측 불가의 위험 요소가 대폭 상승합니다.”

   「…….」

   “제 육신을 소모하더라도 목표를 제압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녀석의 딱딱한 말을 들은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뮤리엘과 싸우던 그날, 남편 대지의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이 적의 공격을 받는 동안, 그녀가 나서서 적의 숨통을 끊으라고.

     

   당시 그녀는 뮤리엘이 위험한 무기를 들고 왔을 거라고 예상했다. 뇌신인 것은 몰랐지만 그에 버금가는 무기가 적의 손에 있을 거라고. 남편이 아무리 강해도 궤도병기급 무기의 화력 앞에서는 버티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

     

   ‘그때와 똑같아.’

     

   그녀의 선택은 남편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다. 대지의 아버지는 뇌신의 불길 속에서 그녀를 지키느라 큰 피해를 입었고, 그것이 패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모르겠어.’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지만, 과거의 기억 때문일까.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파일플라이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알아.」

   「시간」「없어?」「왜?」

   「놈이 도망치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응?」

     

   고민 섞은 사념파를 흘리던 하늘의 어머니는 중간에 낀 익숙한 사념을 감지했다. 익룡을 닮은 길쭉한 주둥이 끝이 위쪽을 향했다.

     

   앞쪽에서는 파일플라이 무리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배에서 자란 생체 말뚝이 정확히 그녀와 PS-111을 겨냥했다.

     

   말뚝이 막 배를 떠나려는 순간.

     

   붉은 섬광이 그들 위의 먹구름을 찢으며 나타났다.

     

   “키엑?!”

   “캬악!”

     

   붉은빛과 충돌한 파일플라이들이 전기 파리채에 맞은 벌레마냥 산산조각이 났다. 순식간에 잿빛 구름을 붉게 물들인 존재가 그녀 앞으로 날아왔다.

     

   「못생긴 친구」「고민 중?」

   

   작은 갤러곤은 늘 하던 대로 요상한 별명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 괘씸한 사념파가 지금은 몹시도 반갑게 느껴졌다.

     

   붉은 악동, 아드하이가 그녀를 돕기 위해 찾아왔다.

   -

     

     

   “헉?!”

     

   살만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깨어난 그는 다급히 자기 양손을 내려다 봤다. 알록달록한 깃털로 덮인 날개 대신 잔털로 덮인 익숙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쿨럭,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몸이 분해되고 있었다. 그런데 말끔한 손에서는 그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거 내 손이잖아?’

     

   태양빛에 적당히 그을려 보기 좋은 피부, 운동을 통해 다져진 근육, 잘 관리된 손톱.

     

   그 손은 인간 남성의 손이었다. 오래전 잃어 버린 그의 손 말이다.

     

   설마 현실로 돌아온 건가 싶어 그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있는 곳은 새하얀 방이었다. 어떠한 물건도, 장식도 없는 방에서 살만은 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 한 쪽에 작은 키의 컬트 소년이 서 있었다.

     

   잘린 뿔 때문에 마치 인간처럼 보이는 소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입을 열 때마다 노이즈가 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들이 만든 사이오니움에 저런 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너, 너는?”

   “덕분에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요. 마침 이번에는 ■■■■도 없으니까 도와드리죠.”

     

   상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살만은 전신이 불타는 통증을 느꼈다. 익숙한 힘이 광기에 빠진 그의 정신을 회복시킨 것이다.

   

   전에도 이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사, 사이오니움에, 크윽! 이딴 부작용이 있었을 줄이야!’

     

   적이 투척한 창이 가슴팍을 꿰뚫을 때, 안에 들어 있던 사이오니움 앰플들도 모조리 깨져 버렸다. 앰플에 있던 강화 사이오니움은 일제히 상처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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