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3화 (374/400)

     

   본래 사이오니움은 성장 단계가 끝에 이른 자, 여러 번 사용해서 지속시간이 0으로 된 자에게는 효과가 발동하지 않는다. 과하게 복용한다고 해서 피해를 입거나 일은 없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강화 사이오니움은 아니었다. 대량의 약물이 흘러 들어간 이후,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체가 에너지 입자로 전환되었다.

     

   에너지 조작에 능통한 시무르그라서 육신을 대체한 에너지 덩어리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뇌가 남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가 착용한 장비, ‘골든 샐러맨더’가 없었다면 진작 몸이 붕괴했을 것이다.

     

   ‘재생 효과가 없었다면, 쿨럭, 죽었겠지.’

     

   커뮤니티에서 ‘게코갑’이라 불리는 골든 샐러맨더는 에너지 공격에 대한 방어력과 신체 재생에 특화된 장비다. 갑옷이 신체를 재생시켜 주는 동안, 어떻게든 에너지를 통제해서 붕괴를 막아야 한다.

     

   그는 가슴팍에 꼽힌 황금색 단창을 내려다 봤다.

     

   ‘일단 이 창부터….’

     

   회복에 방해되니 뽑아버리려는데, 목 뒤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의 지배를 받는 동물들이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아직 남아 있었구나!’

     

   에이모프가 보낸 노예들. 그들이 살만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살만은 지배하는 짐승들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각 동물들과 감각이 이어진 결과, 그들이 보고 느끼는 감각이 그의 뇌리에 전달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어두컴컴한 구름 속을 주시한다. 잠시 후, 적이 구름을 헤치며 나타났다.

     

   ‘응?’

     

   그가 이성을 잃기 전까지 싸웠던 적은 뮤턴트 스크리머와 검은 천둥새였다. 그런데 지금 숨어 있다가 나타난 존재는 천둥새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선명히 빛나는 붉은색 날개를 가진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갤러곤?”

     

   야생 짐승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살만은 놈의 정체를 즉각 파악했다. 일반 갤러곤보다 훨씬 작은 데다가 적색과 백색 비늘이 뒤섞인 모습이었으나, 틀림없이 갤러곤이었다.

     

   그리고 이 행성에는 갤러곤이 서식하지 않는다.

     

   ‘…에이모프!’

     

   놈 또한 살만을 노리기 위해 이곳에 나타났다.

     

   붉은색 날개로 주변을 빛내던 갤러곤이 움직인다. 살만 근처에 있던 비행생물들도 적 요격에 나섰다.

     

   하지만 살만은 저들에게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갤러곤이다. 시간 끌기에 성공하기만 해도 다행이다.

     

   ‘상관없어.’

   「시간만 끌어도 충분하다. 놈을 붙잡아.」

     

   파일플라이를 비롯해 비행 가능한 모든 생물들이 갤러곤에게 달려든다. 작은 구름만큼 모인 비행생물 무리와 적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일반 갤러곤에 비해 작은 크기를 가진 놈은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날카로운 뿔이 달린 머리가 날개처럼 붉게 물든 순간, 살만의 무리와 놈이 충돌했다.

     

   상대는 하나, 이쪽은 수백. 누가 우세한지는 명확했다. 양측이 부딪친 결과는 살만의 예상대로였다.

     

   별똥별처럼 날아온 갤러곤은 그의 노예들을 찢어발겼다. 그 어떤 괴물도 놈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었다.

     

   ‘좋아!’

     

   화산재로 가닥 찬 구름 위에 피와 살점을 뿌리는 놈의 모습. 정확히 그가 기대하는 바였다.

     

   살만은 전신에 흐르는 모든 에너지를 일제히 방출했다. 날개 모양으로 응집된 에너지가 전부 열선으로 바뀌었다. 육신까지 희생해서 만든 에너지다 보니 그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컬트의 궤도병기 뇌신의 뇌신의 포격 이상으로 거대한 열선이 하늘을 향해 질주했다. 그 끝에는 살만의 부하들에 정신이 팔린 갤러곤이 있었다.

     

   열선이 표적을 맞추자 강렬한 섬광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와 함께 지배하고 있던 생물들과의 링크가 일제히 끊겼다.

     

   지상에 있는 다른 동물의 눈을 통해 보니 화염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일반 시무르그의 에너지탄 공격은 그린 갤러곤이 쏜 사이킥 브레스 이상의 화력을 지녔다. 강신 상태에서 쏜 에너지탄은 그보다 훨씬 위력적이고.

     

   이번에 그가 발사한 열선은 기존의 강신 상태에서 쏜 것보다 월등히 강하다. 그가 괜히 뇌신을 연상한 게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방어력을 지닌 마그마사우르도 이 열선에 맞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정도다. 저 작은 갤러곤이라면 살점 하나 남지 않으리라.

     

   ‘놈은 죽었으니 이제 다른 놈을 찾아야겠군.’

     

   뮤턴트 스크리머와 천둥새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터. 시력이 서서히 돌아오는 동안, 땅 위에 있는 생물들이 어디에 적이 있는지 살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타오르는 하늘에 작은 불꽃이 있었다. 사방에 화염이 가득한 가운데 그 불꽃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아까까지만 해도 붉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여 있던 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의 대부분이 루비색으로 붉게 물들었다.

     

   랭커들 중 저 붉은 비늘이 뭘 상징하는지 모르는 자는 없다.

     

   ‘아니야! 잘못 본 걸 거야!’

     

   살만은 서둘러 에너지를 다시 끌어모았다. 신체가 붕괴되는 고통도 잊어버릴 만큼 그는 당황한 상태였다.

     

   그래서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존재를 늦게 인지했다.

     

   「?!」

     

   살만이 고개를 들자 거미와 전갈의 특징이 섞인 것처럼 생긴 뮤턴트 스크리머가 보였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놈의 꼬리에서 남색의 빛이 번뜩인다. 그게 사격 신호였다는 것을 깨달은 살만은 다급히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에너지로 이루어진 탄환은 그의 얼굴 한쪽을 스치고 어깨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한 번이 아니었다. 약 8m 크기의 적이 그의 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탑승 성공.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빌어먹을 놈이…!」

     

   놈은 예리한 갈고리 발톱으로 그의 갑주를 할퀴었다. 갈고리 발톱이 매끄러운 표면에 박히며 여기저기 구멍을 뚫었다. 상대는 골든 샐러맨더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감히!’

     

   갤러곤이 살아 있는 이상, 위로 도망치는 것은 자살행위다. 지상에는 아직 그의 노예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 살만은 등 위에 뮤턴트 스크리머를 태운 채 강하했다.

     

   그리고 땅에 몸이 닿기 직전에 몸을 돌려 등에 탄 적을 바닥에 깔아뭉갰다. 그 충격에 뮤턴트 스크리머가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검은 대지 위에 나뒹군 놈에게 불카록스가 달려들었다. 막 일어나려던 놈은 청동 황소의 돌진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불카록스 말고 다른 괴물들도 속속히 적을 공격하기 위해 뛰어왔다.

     

   그사이 그는 갑옷 상태를 확인했다. 연달아 손상을 입은 탓에 골든 샐러맨더는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크, 크아아악! 네놈…!」

     

   갑옷의 회복 효과가 떨어지자 통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살만은 분노와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이 창! 이 창 때문에!’

     

   이성을 잃은 살만은 머리를 숙여 황금색 단창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창을 억지로 빼냈다.

     

   「에이모프의 노예 주제에!」

     

   창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그가 증오를 가득 담은 사념파를 흘렸다. 갈고리 발톱으로 불카록스의 머리를 밀어내고 있던 적이 그를 쳐다봤다.

     

   「너 같은 괴물 따위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두 가지 오류가 있어 정정합니다. 첫 번째, 에이모프와 저는 소유자와 소유물의 관계가 아닙니다.”

     

   인간 여성의 얼굴을 가진 괴물은 칼날이 달린 다리로 불카록스의 급소를 찌르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저의 임무는 이미 완수되었습니다. 목표를 제거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물으려던 찰나, 그는 배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보석을 닮은 두 눈이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하복부에는 피로 범벅된 창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와 함께 몸통 전체를 감싼 갑주에 균열이 생기더니 곧이어 작동이 중지되었다.

     

   “크헉!”

     

   창이 뽑히자 상처 부위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마저 사라진 살만은 바닥에 쓰러졌다.

     

   제사장의 황금창으로 그를 찌른 볼프 랭커가 그의 앞에 섰다.

     

   “목표 제압 성공.”

   「아슬아슬했어.」

   「네, 네놈…!」

     

   상대는 천둥새 모습이 아닌 그리폰 수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뮤턴트 스크리머를 떨어뜨린 뒤, 기습을 준비했던 것이리라.

     

   사실 이제 와서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골든 샐러맨더가 망가지면서 몸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길어봐야 십여 초 이내.

     

   ‘이게 끝이라고? 저따위 하찮은 놈들 손에 죽는 것이?’

     

   살만은 선택받은 자였다. 현실에서 그는 유명한 대부호였고, 이 세계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강자였다. 즉, 양쪽 세계에서 그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다.

     

   “목표의 생체 반응 급격히 저하 중.”

   「…뭐? 갑자기 왜?」

   “신체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붕괴가 가속화? 설마 골든 샐러맨더가 망가진 건가?」

   “예. 현재 생명 보조 장치는 기능 정지된 상태입니다.”

   「기다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면 안 돼!」

   「뭐임?」「사냥」「안 끝남?」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끝날 운명이 결코 아니다.

     

   ‘그래! 범호라면 나를 도와주겠지?’

     

   귀환파의 리더는 그의 가치를 잘 아는 자다. 실제로 이번에도 광기에 빠진 그를 도와주지 않았는가?

     

   범호가 그를 버릴 리 없다.

     

   ‘범호! 시간이 없다! 빨리! 빨리 도와줘! 범호오오오!’

     

   살만은 죽기 직전까지 범호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어떻게든 살려야 해. 뭔가 방법이 없을까?」

   “세포 단위의 변질 및 붕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보조설비가 필요합니다.”

   「머리라도 보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늘의 어머니는 죽어 가는 살만을 내려다봤다.

     

   그의 전신이 동시다발적으로 빛 입자로 분해되고 있었다. 날개와 다리 같은 부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머리는 4분의 1정도 날아갔고, 몸통도 피부가 사라져 근육과 장기가 훤히 노출되었다.

     

   원래 그녀의 생각은 살만을 제압하고 에이모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였다.

     

   놈은 귀환파의 장비를 총괄하는 자다. 머리 안에 든 정보가 적지 않을 터. 귀환파에 한해서는 알샤스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특전도 있지.’

     

   야생동물을 복속시키는 능력, ‘야수신의 올가미’는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생물의 유전자 정수로 힘을 얻는 에이모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능력이다.

     

   그랬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다.

     

   이대로 가면 에이모프가 오기 전 놈의 육신이 전부 붕괴해버린다. 정보는 물론이고, 특전 획득도 물 건너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녀는 살만에게 시선을 떼고 주변을 돌아봤다.

     

   수많은 생물들이 꼼짝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죽지 않은 살만의 특전이 아직 그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힘이 소실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게는 힘이 필요해.’

     

   과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했다. 그 결과, 남편과 가족을 잃었다.

     

   이번 싸움에서도 그녀는 선택해야만 했다. PS-111이 미끼가 된 사이 적을 칠 것인지, 아니면 후퇴할 것인지.

     

   그 기로에서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아니, 사실상 전보다 더 안 좋은 최악의 선택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아드하이가 없었더라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빠졌을 거다.

     

   과거와 지금, 계속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선택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복수.

     

   가족을 죽인 자들이 아직 이 세계를 활보하고 있다.

     

   애초에 그녀가 저 에이모프와 협력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복수를 위해서였다.

     

   에이모프의 친구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그녀는 복수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새롭게 친해진 저 작은 괴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의지만으로는 불충분해.’

     

   새로운 변신 능력과 강력한 장비를 얻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녀는 단창을 쥔 손에 힘을 꾹 쥐었다.

     

   ‘타인의 특전을 뺏은 적은 없지만….’

     

   예전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특전을 두고 다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획득하는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들은 건 아니지만, 에이모프의 사례를 보면 얼추 짐작이 갔다.

     

   「나 좀 도와줘.」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놈의 심장을 뽑을 거야. 주변에서 방해가 들어오면 막아줘. 잠시라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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