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4화 (375/400)

     

   볼프가 신격화 단계를 높일 때는 다른 생물의 심장이 필요하다. 에이모프의 사례를 보면 타 플레이어의 특전을 획득할 때도 비슷하게 적용될 터.

     

   결심한 하늘의 어머니는 살만에게 다가갔다.

     

     

   -

     

     

   ‘응?’

     

   살만의 기지가 있던 장소로 날아가던 중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떨렸다. ‘왼쪽 머리’, ‘오른쪽 머리’ 복제물들로부터 묘한 신호가 날아왔다.

     

   ‘뭐지?’

     

   위험한 상황이라 보기에는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내 기준에서도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 듯하다.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날던 중 멈추자 이사벨이 물었다. 언니 PS-111에게 문제가 생겼는지 걱정돼서 그런 것이리라.

     

   나는 잠깐 확인해 보겠다고 말하고 지상에 내려앉았다. 땅 위에 엎드린 채 보조기관에 감각을 집중하자 의식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연결이 완료되고, 이곳과 다른 환경 요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서 옅은 피 냄새가 난다. 그와 함께 미약한 에너지의 파장이 감지된다.

     

   에너지 파장은 특이하게도 어떤 생물의 시체에서 느껴졌다. 시체는 몸 대부분이 손상된 상태여서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특히 가슴 부분은 누가 잡아 뜯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피 냄새는 그 생물 뒤에 있는 야산에서 났다.

     

   아니, 작은 바위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상에 눈이 4개씩 달린 산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가늘게 뜬 4개의 눈이 내 복제물들을 주시했다.

     

   ‘마운틴크롤러?’

     

   저렇게 커다란 덩치를 가진 마운틴크롤러는 생전 처음 본다. 녀석들은 죽을 때까지 무한히 성장하는데 저 정도 크려면 족히 수천 년 이상은 묵어야 할 거다.

     

   ‘그런 녀석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 성장한 개체라면 어떤 유익한 특성을 지녔을지 모른다. 일단 복제물로 제압해 두고 본체로 잡아먹어야겠다.

     

   왼쪽 머리와 오른쪽 머리를 움직여 공격하려는데, 녀석의 등 위에서 익숙한 녀석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눈처럼 하얀 비늘과 붉은 뿔을 가진 갤러곤, 아드하이였다.

     

   ‘위성을 부수고 여기로 왔나 보네?’

     

   아마도 반물질 폭탄의 폭발을 보고 여기 온 것이리라.

     

   “상처 중 일부는 봉합했으나 임시….”

     

   녀석과 함께 등에서 내려오려던 PS-111과 하늘의 어머니도 내 복제물을 발견했다.

     

   그리폰 수인 형태로 돌아온 하늘의 어머니는 전과 달리 몸 전체가 검은색으로 빛났다. 새로 만든 볼프 전용 장비를 착용해서 그런 거다.

     

   함께 있던 PS-111이 마운틴크롤러 몸에서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전투 중 피해를 입었는지 팔 2개가 부서진 상태였다.

     

   “서브컨트롤러 ‘에이모프’와 82% 유사. 복제물입니까?”

   “응. 어떻게 된 거야?”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목표 제압에 실패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

   “목표가 사이오니움류 약물을 과복용하여 체내 유전자 구조 변질 및 세포 붕괴가 발생했습니다. 에이모프가 도착하기 전까지 생존을 유지시킬 수 없었습니다.”

     

   녀석이 설명하는 동안, 옆에 있는 하늘의 어머니로부터 미세한 사이킥 파워가 느껴졌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뭔가를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사념파를 쏘는 중인가?’

     

   안타깝지만 지금은 알아들을 수 없다. 복제물에게 괴물의 촉수가 없어서 사이킥 파워로 구현한 사념파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S-111은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에 추가로 26호와 비슷하게 미세한 특수 파장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의태기관, 턱 아래 보조기관만 있으면 녀석과 이사벨하고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하늘의 어머니나 아드하이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녀석들과 대화하려면 괴물의 촉수도 함께 있어야 한다.

     

   ‘본체로 와서 얘기하자.’

   “확인할 게 있어. 주변에 적은 더 없는 거지?”

   “중간애기가 획득한 새 능력으로 주변의 적대적 생물들을 쫓아냈습니다.”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역시 하늘의 어머니가 살만의 특전, 야수신의 올가미를 획득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는 살려둘 줄 알았는데.’

     

   직접 그녀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던 것은 아니다. 하나 그녀라면 살만이 가진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놈은 알샤스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인물이니까.

     

   그런데 가슴이 갈라진 놈의 시체를 보면 손상이 너무 심해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 보였다.

     

   정보 획득은 불확실해졌고, 특전도 얻지 못하게 됐다.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을 믿은 결과 치고는 꽤 실망스러운 결과물이다.

     

   ‘그래도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자세히 들어봐야겠지.’

     

   나는 본체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링크를 해제했다. 내가 몸을 움직이자 이사벨이 다급히 내게 다가왔다.

     

   “언니는? 언니는 괜찮은 거야?”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멀쩡하니 걱정 안 해도 돼)]

   

   여덟 개의 팔 중 2개가 박살난 것을 봤지만, 그 정도는 녀석에게 큰 부상이 아니다. 적당한 재료만 있으면 스스로 수복할 수 있다.

     

   나는 26호와 이사벨과 함께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얼마 동안 비행을 이어나간 뒤, 셋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언니? 그 다리는?”

   “전투 중 손상되었습니다. 해당 부분은 유용한 자재를 사용해 개량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탁이니까 몸 좀 조심해. 기계라고 안 죽는 건 아니니까.”

   

   도착한 직후, 이사벨은 손상된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큰어른?」「모습」「달라졌어?」

   「큰애기는 크고 딴딴한 먹이 먹고 변했어!」

   

   아드하이는 자수정을 닮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훑어봤다. 그러자 26호가 촉수를 들어 마그마사우르 흉내를 냈다. 

   

   「뿔」「커」「많아」「좋아」

     

   이윽고 녀석은 변화한 본체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꼬리를 흔들었다. 녀석의 취향을 보면 ‘파괴수 갑피’가 적용된 내 모습을 좋아할 만했다.

     

   다른 때 같으면 녀석에게 내 몸의 변화에 관해 설명해줬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아까 할 말이 있던 것 같던데.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줘.”

     

   하늘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살만과 싸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떠한 이유로 그녀가 특전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과연.’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결과를 피하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게다가 개량 버전 사이오니움의 부작용 문제는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그밖에 그녀가 특전을 얻은 것도 나름 소득이라 보면 소득이겠지.’

     

   내가 얻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하늘의 어머니가 가져갔다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미안. 내가 더 강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자책하지 마.”

     

   살만에 관한 부분은 그걸로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널브러진 랭커의 시체를 들어 입에 넣었다.

   

   PS-111이 유전자가 변이되었다고 말했는데 정말인가 보다. 씹자마자 지우개 같은 끔찍한 식감이 나를 반겼다. 이렇게 맛없는 먹이는 에이모프가 된 이후 처음 먹는다.

   

   워낙 맛이 없었기에 대충 씹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지만 몸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했는데 안 되네.’

   

   의태 기관과 인면충 숙주는 상대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관. 유전자 단위로 망가진 적의 고기에서는 정보 획득이 불가능했다.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달랜 나는 하늘의 어머니가 데려온 새 친구를 쳐다봤다. 

     

   “저 마운틴크롤러, 살만이 데리고 온 녀석이야?”

   「어? 응.」

     

   내 질문에 그녀가 막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얌전한 걸 보니 네가 지배했나 보네.”

   「사실 지배라고 하기 좀 애매한 관계야. 특전 효과가 좀 바뀌었거든.」

   “그래?”

   「교감이라 해야 하나? 단순한 지배하는 것 말고도 녀석의 감정이나 기억 같은 것도 읽을 수 있어.」

     

   그녀는 마운틴크롤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거대한 야수가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건 애완견이 주인의 손길을 느끼는 모습과 똑같았다.

     

   “교감이라.”

   「지금도 녀석의 고통, 두려움 등이 느껴져. 이곳에서 경험했던 고통스러운 기억도.」

     

   마운틴크롤러의 감각을 느끼는지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얘기만 들었을 때는 내가 지닌 기생 군체의 상위 호환에 가까운 것 같았다.

     

   ‘잠깐.’

     

   그녀의 말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지금 기억이 느껴진다고 했지?”

   「응.」

   “얼마만큼 자세히 알 수 있지?”

   「그건…앗!」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초대형 마운틴크롤러는 살만이 데리고 온 존재다. 주인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봤을 확률이 높다.

     

   ‘좋아.’

     

   정보를 얻으려면 일단 녀석의 상처부터 치료해야 한다.

     

   나는 상처 입은 채 새 주인과 교감하는 중인 녀석에게 공생물 포자를 이식했다.

     

   ‘그 다음 필요한 게 둥지.’

     

   예상했던 것과 상황이 달라졌지만, 문제는 없다.

     

   잘만 하면 이 행성에서 노리던 목표를 전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

     

     

   거대한 별이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화롯불처럼 타오른다.

     

   적색거성 ‘올가’라 명명된 오래된 천체가 스스로 빛을 내는 가운데, 한 우주선이 푸른빛을 내며 나타났다.

     

   “초광속 항해 완료. 적색거성 ‘올가’ 확인. 도라네 성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백색의 대리석으로 지은 것처럼 깔끔한 분위기의 상황실.

     

   중앙에 떠 있는 성계 지도의 홀로그램 앞에서 군복을 입은 인간들이 컴퓨터들을 조작 중이다. 상황실에 있는 자들은 복식, 행동 모두 군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질서정연했다.

     

   하나 이들의 정체는 군인이 아니다.

     

   “어이. 도착했으니 고용주한테 다시 연락해 봐.”

   “예. 함장님.”

     

   선원에게 함장이라 불린 자의 이름은 세찬 헤밀턴. 메가콥 출신 스페이스독이다.

     

   한때 그는 군함 소속 위기관리팀이나 우주도시 보안팀 등에서 근무하던 군인이었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그는 해적이 되었다.

     

   메가콥에서 해적질은 중죄이지만, 많은 군인들이 해적 카르텔과 교류하며 부정을 저지른다. 대부분은 메가콥에게 걸려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운 좋게 걸리지 않고 은퇴하는 경우가 있다. 세찬과 그의 부하들 역시 그런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세찬의 세력, 헤밀턴 카르텔은 구성원 전원이 퇴역 군인 출신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일반 해적과 달리 양지에서의 활동을 지향하는 편이었다.

   

   밀수나 인신매매 같은 중범죄 대신 요인 경호 및 중요 물품 운반 등의 보안 관련 활동으로 크래딧을 벌었다.

     

   물론 합법적 활동만 했다면 해적이라 불리지 않았을 터. 범죄자를 경호한다거나, 테러용 물건을 비밀리에 운반한다거나 등등 뒤가 구린 일도 자주 맡았다. 이런 비합법적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수익이 나므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튼 세찬은 꽤 일을 잘했다. 헤밀턴 카르텔은 메가콥이나 다른 거대 세력의 추적을 받은 적이 없었다. 다른 해적들과의 사이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는 그가 인맥 관리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군인 시절에 맺었던 인연, 돈이 되는 고객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거래를 계속하는 것. 그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철저히 관리했다.

   

   덕분에 헤밀턴 카르텔은 거대 세력의 추적을 피해 안전하게 해적질을 할 수 있었다.

     

   도라네 성계의 아스카44에 있는 고객도 세찬의 주 관리 대상 중 하나였다.

     

   고객이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노예 다수와 사치품 및 기타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조달할 것. 요구 자체도 간단한데 보상금도 아주 후했다.

     

   심지어 이런 좋은 조건의 계약이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세찬 입장에 이 이상의 우량 고객은 없었다. 그래서 매번 거래가 이루어질 때마다 직접 행성에 방문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보통 도착 3일 전에 연락을 보내면 답장이 오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어제까지 계속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함장님,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뭐? 계속해 봐.”

   “옙.”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 세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뭔 지랄이지?’

     

   이미 7일 전 저쪽과 거래 얘기가 끝났고, 거래액 중 일부를 선입금으로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저쪽에서 갑자기 거래를 파기할 리 없다.

     

   ‘설마 우리 말고 다른 새끼들과 거래를 튼 건가?’

     

   최근 도라네 성계 주변에 이상한 이름을 가진 해적이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있었다. 자신들을 시노 연합이라 지칭하는 놈들인데 그 세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