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5화 (376/400)

     

   ‘…아니야. 그럴 거면 애초에 크래딧을 안 줬겠지.’

     

   게다가 그가 만난 고객 ‘S’는 매사에 신중하고 의심이 많았다. 이곳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는 해적들과 친하게 지낼 확률은 낮았다.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건데.’

   “계속 연락이 안 돼?”

   “예. 신호 자체가 안 가는 것을 보아 위성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주변에 초광속 항해 흔적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도라네 성계는 주인 없는 땅이다. 아스카44에 머무는 자들이 사실상 이곳의 유일한 지성체들이다. 그런 상황에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을 확률은 없다고 해도 좋으리라.

     

   ‘위성에 문제가 생겨서 수리 중이면 다행인데.’

     

   그렇게만 보기에는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다른 고객이었다면 당장 물러났겠지만, 하필 상대가 고객 S다. 여기서 계약을 파투내면 앞으로 저만한 고객을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함장석 옆에 서 있는 부함장이 그에게 물었다.

     

   대답하지 않고 홀로그램을 주시하던 세찬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스카44까지 접근해서 다시 한 번 통신을 보낸다. 통신 위성이 없어도 행성에 가까이 가면 신호가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목적지가 설정되자 선체 측면과 후면에 달린 로켓 추진기가 불을 내뿜었다.

     

   함선이 움직임에 따라 홀로그램의 지도가 시시각각 변했다. 세모 모양으로 출력된 배가 서서히 아스카44와 가까워졌다. 그 외 다른 구조물은 표시되지 않았다.

     

   “통신 위성이 감지되지 않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닙니까?”

   “가보면 알겠지.”

   “…신중히 움직이셔야 합니다.”

     

   부함장의 조언에 세찬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 한 시간이 지난 뒤, 세찬의 배는 아스카44 근처에 다다랐다.

     

   “좋아. 다시 시도해 봐.”

   “옙.”

     

   세찬의 지시를 받은 선원이 통신을 시도했다. 함선이든 구조물이든 상관없이 행성에 통신 설비가 있다면 이들이 보낸 신호를 받을 것이다.

     

   모두가 침묵한 채 홀로그램으로 출력된 ‘통신 시도 중’이라는 메시지를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후, 메시지에 변화가 생겼다.

     

   “지상과 통신 연결되었습니다.”

   “후우. 잘 됐군. 연결된 장소는?”

     

   통신을 담당하는 선원은 컴퓨터를 조작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게, 기지가 아닌 함선 통신망에 연결되었습니다.”

   “함선 통신망? 아니, 기지는 어디 가고 배에서 연락을 받지? 아니, 그보다 왜 영상 연결을 안 하는 거야?”

   “확인해 보겠습니다.”

     

   선원이 메시지를 입력해 상대편에서 전달했다. 그러자 새로운 메시지가 홀로그램 하단에 출력되었다.

     

   “초화산의 이상 활동 때문에 기지가 붕괴, 화산재가 대기를 덮어 전파 장애가 발생했으니 양해를 부탁…이게 뭔 개소리야?”

   “확실히 아스카44의 화산 활동이 격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가 봤는데 그런 거로 무너질 수준이 아니야.”

     

   세찬은 전에도 거래 때문에 아스카44의 기지에 여러 번 방문했다. 그래서 그 기지가 얼마나 튼튼한지 잘 알고 있었다. 내부에서 폭탄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절대 붕괴할 리 없는 수준이었다.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고, 선원이 이를 확인했다.

     

   “현재 기지의 인원들은 남은 함선을 끌고 안전한 장소에 대피 중이라 합니다.”

   “대피 중? 탐지 시스템 가동해서 저 말이 맞는지 확인해 봐.”

   “예.”

   

   이 배는 에저튼 가문의 대형 구축함을 개량한 물건이다. 전장에서 현역으로 뛰는 함선인 만큼 일반 해적들이 쓰는 고철 배와는 차원이 다르다. 탐지 시스템 또한 훨씬 고성능이다.

     

   선체 밖에 장착된 외부 카메라가 작동하며 통신이 연결된 지점을 촬영했다. 이윽고 카메라가 찍은 결과물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송출되었다.

     

   검은색 대지 위에 아이보리색 함선 몇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대부분 외벽이 검게 그을린 상태였고, 일부는 함포나 추진기 부분이 약간씩 손상된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임시로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구조물들이 보였다.

     

   “상태는 어떻지? 저 말대로 화산 폭발 때문이야?”

   “고온의 열로 인한 금속 구조가 변화된 흔적이 보입니다.”

   “저 부분은 충돌로 인한 손상으로 보입니다.”

   “생명체 반응은?”

   “통신이 연결된 함선으로부터 반경 10km 전체에서 생명 반응 확인. 전파 장애 현상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 듯합니다.”

     

   여러 탐지 시스템을 돌려봤지만, 카메라로 함선과 간이 구조물을 찍은 것 말고는 죄다 엉터리로 나왔다. 저쪽 말대로 행성에 존재하는 초화산이 터지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세찬은 이해가 안 됐다.

     

   굳이 이 외진 성계의 화산형 행성까지 찾아와 거주하던 자들이다. 화산 몇 개가 터졌다고 저렇게 완전히 무너진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가 의심의 끈을 놓치 않고 있는데,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함장님, 상황이 이러하니 저쪽에서 이쪽으로 직접 와서 물건을 받겠다고 합니다.”

   “내 배로 온다고?”

   “어떻게 합니까?”

   “…….”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확신했다.

     

   ‘이 씹새끼, 뭔가 꾸미고 있어.’

     

   고객 S가 그의 배에 사람을 보낸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무조건 자기 기지에서만 거래를 했다.

     

   그런 자가 갑자기 상황이 이러하니 상대의 배에서 거래하겠다니, 누가 봐도 수상했다.

     

   잠시간 침묵하던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이쪽에서 가겠다고 해. 부함장. 내려갈 인원 차출하고, 내가 쓸 장비들 준비해.”

   “위험합니다!”

     

   부함장도 이 상황이 수상하다고 느끼고 세찬을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생각을 정했다. 그의 시선이 카메라에 찍힌 함선들을 향했다.

     

   ‘뭔 수작질인지 모르겠으나….’

     

   군인 출신인 그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저 배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고 있다.

     

   ‘저쪽은 기지도 파괴되었고 함선도 적다. 생존자들도 얼마 없겠지.’

     

   저래서는 앞으로 계속 거래를 이어나갈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지금부터 부함장이 임시 함장직을 맡는다. 기간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함장님!”

     

   부함장에게 지휘를 맡긴 세찬은 상황실을 나섰다.

     

   고객 S는 그동안 그에게 많은 이윤을 남겨 준 고객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지만, 그는 해적이다. 상대로부터 더 뽑아먹을 수 있는데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함선들은 거래 종료의 기념품으로 챙기도록 하지.’

     

   10분 뒤, 세찬의 함선에서 수송선 한 척이 행성 대기권을 뚫고 강하했다.

   -

     

     

   “도착 예정 시간은?”

   “도보로 20분 예상됩니다.”

   “모두 생명 유지 기능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여분용 산소 캡슐과 메디컬 키트도 잊지 말고 체크해라.”

   “옙!”

     

   목적지로부터 수십km 떨어진 곳에 착륙한 수송선 내부.

     

   21명의 해적들이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자기 장비를 점검했다.

     

   “이곳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들은 가죽이 좆같이 두껍다. 그러니 관통탄과 철갑탄이 기본이다. 모두 교체하도록.”

   “알겠습니다!”

     

   헤밀턴 카르텔의 구성원들은 모두 메가콥 군인 출신이다. 해적이 되기 전에도 전투에 여러 번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강화복과 가우스 소총을 점검하는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전원, 강화복 작동. 출발한다.”

     

   두목, 세찬 헤밀턴의 명령에 20명의 해적들이 머리에 쓴 바이오 헬멧을 작동시켰다.

     

   이 장소는 고열로 들끓는 지옥과 같은 행성이다. 그렇기에 다들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에 주로 사용하는 특수 강화복을 준비했다.

     

   해적들이 착용한 강화복은 가르멜다 가문에서 출시한 신제품.

     

   일반 중급 강화복과 달리 우주복처럼 전신을 완전히 보호하는 형태다. 방어력뿐만 아니라 근력 보조 기능도 대폭 강화되어 혹독한 환경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수송선의 문이 열리고, 세찬이 앞서 내렸다. 뒤이어 두터운 강화복을 입은 해적들이 따라 나왔다.

     

   「참으로 좆같은 날씨입니다. 함장님.」

   “화산형 행성은 어딜 가도 이렇다. 헬멧이 벗겨지면 뒈지니까 다들 조심해라.”

     

   부하들에게 말하는 것과 달리 세찬은 헬멧을 쓰지 않았다. 특수 제작한 고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얼굴 대부분이 노출된 상태였다.

     

   수송선 밖의 공기는 일반 인간이었다면 순식간에 피부가 타들어 갈 정도로 뜨겁다.

     

   그런데도 그가 맨얼굴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피부 덕분이다. 고글로 보호받지 않는 그의 얼굴은 마치 바위처럼 거칠고 단단한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세찬은 메가콥 고위층이나 받을 수 있다는 유전자 이식 시술을 받았다. 뜨거운 열기와 유독한 공기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신 상태를 체크했다.

     

   “부함장, 위쪽에서는 잘 들리나?”

   「통신 상태 원활. 문제없습니다.」

   “좋아. 그럼 이동.”

   「예!」

     

   첨단 기계 장비로 무장한 21인이 달리기 시작했다.

     

   불과 재로 덮인 황량한 대지에서 이방인들이 질주한다. 검은 땅 위에 찍힌 발자국은 열풍과 함께 흩날리는 화산재 때문에 금세 사라졌다.

     

   강화복을 입고 뛰는 것이기에 그들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육중한 덩치가 공중으로 수m씩 뛰어오를 정도였으니까.

     

   달리는 와중에도 눈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헬멧에 달린 바이저에도 주변 환경과 관련된 여러 정보가 연신 출력되며 사용자를 지원했다.

     

   「2시 방향 150m 밖에서 움직임 확인!」

   「지하에서 분출된 가스로 확인! 생명체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야이 병신 새끼야, 정신 안 차리냐?」

   「죄송합니다!」

     

   출발한 지 10분이 지났으나 별다른 위험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들 적을 만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지만, 세찬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화산형 행성, 얼음형 행성, 바다형 행성 등 극단적인 자연 환경을 지닌 행성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환경뿐만 아니라 토착 생물들도 아주 위협적이라는 것.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괴물들답게 신체 스펙이 어마어마한 수준이고, 호전성도 극히 높다. 그래서 세찬은 고객 S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최소 한 번은 야생 동물과 조우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런데 10분 동안 아무 생물도 못 봤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동 중에 그 어떤 ‘생물’도 발견하지 못했다.

     

   멀리서 짐승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거나, 하늘에 있는 괴물을 포착한다거나 등의 일도 없었다. 포식자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동물이 돌아다닌 발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일대에 생물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부함장, 세찬이다. 생명 반응 탐지는 어떻게 됐지?”

   「여전히 사방에 생명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전파 장애 현상 때문에 제대로 파악이 안 됩니다.」

   “고객 S 쪽은?”

   「저쪽에서는 2시간 뒤에 방문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통신 종료 이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알았다. 생명 신호 탐지는 계속 시도해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면 바로 연락하고.”

     

   검은 연기와도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렇다고 작전을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운이 좋아서 괴물들을 안 만난 것일 수도 있어.’

     

   우연히 포식자들과 마주치지 않았을 수 있다. 아니면 이 주변 자체가 원래부터 생물이 살지 않던 곳이든가.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이곳을 뜨자.’

     

   그렇게 그는 억지로 마음속 불안을 가라앉혔다.

     

   부함장과 통신을 종료한 지 10분이 더 지나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적들은 높이 솟은 바위 언덕 뒤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폈다.

     

   검은 대지 위에 컬트식 함선 3척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위에서 이미 확인했지만, 직접 보니 확실히 급하게 착륙시킨 흔적이 역력했다.

     

   함선들 앞에는 임시 캠프로 보이는 간이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도 짓다 만 상태여서 상당히 보기 흉했다.

     

   “이미 얘기했던 대로 배에는 각각 6명씩 들어간다. 남은 3명은 임시 캠프 내부를 수색한다.”

   「예.」

   “저들이 대처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움직인다. 알아들었냐?”

   「예!」

   “그럼 시작.”

     

   세찬의 말을 끝으로 해적들은 바위 언덕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각자 수색할 함선과 구조물에 진입했다.

     

   만약 그들 중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자가 있었다면 그 광경을 봤을 것이다.

     

   가만히 있던 바위 언덕이 땅 아래로 기어들어간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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