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한마디를 내뱉은 것을 끝으로 해적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방금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촉수들이 냉동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저게 뭐야?!」」
「모두 사격 개…으아악?!」
「사, 살려 줘! 뚜둑」
「끄아아아…치지지직」
패닉에 빠진 해적들이 사격을 개시하려 했지만, 촉수들이 더 빨랐다. 성인 남성 허벅지만한 촉수들이 해적들을 하나둘씩 붙잡아 냉동고로 끌고 들어갔다.
「씨, 씨발!」
동료들이 학살당하는 와중에 고참 해적은 재빨리 주방에서 빠져나와 활짝 열려 있는 식당 문을 향해 달렸다.
이 배에 있던 자들, 전부 저 괴물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이 사실을 모두에게 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식당 밖을 막 나가려는 찰나, 그의 두 다리가 멈췄다.
「이, 이런 썅?! 이거 왜 이래?」
아무리 다리에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돌이 된 것처럼 굳어 버렸다.
알 수 없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상황실에 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배가 곧 우리 것이 될 거란 말이지?”
“어디 가?”
“저. 저게 뭐야.”
“사. 살려 줘.”
고참 해적은 수많은 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자기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라 동료들의 목소리도.
무형의 힘으로 그를 속박한 존재가 뒤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분홍색 촉수들이 그의 팔과 다리를 휘감았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잡았다.”
그건 침묵이었다.
-
“기록이 없다고?”
「예. 누가 와서 싹 지운 것처럼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통신 기록은? 20분 전에도 통신을 보냈는데?”
「확인해 보니 그것도 완전히 날아갔습니다.」
배에 잠입한 직후, 상황실로 직행한 세찬은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배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불과 수십 분 전의 통신 기록이 말소된 상황이다. 고객 S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함정? 그랬다면 이미 공격해왔어야 정상인데.’
「누구냐!」
그때 부하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세찬과 다른 해적도 그에 반응해 다급히 무기를 들었다.
「복도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걸 봤습니다.」
“사람인가 보군. 뒤쫓겠다.”
상황실에서는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찬과 해적들은 밖으로 빠져나왔다. 부하 말대로 산발을 한 인간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예!」
현재 세찬의 부하들은 전원이 강화복을 착용한 상태. 아무런 무장도 갖추지 않은 생존자를 잡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잠시 후, 세찬 앞에 도망자가 무릎을 꿇었다.
“도망쳐봐야 소용없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의 대기는 맨몸으로 나갈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니까.”
“…….”
“네놈의 동료, 다들 어디 갔지?”
“…….”
도망자는 세찬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해적이 발로 그의 허벅지를 짓밟았다.
“끄윽?!”
「이 씨발 새끼가 대답 안 하냐?」
“그만.”
고통스러워 하며 몸부림치는 상대. 다리가 부러지기 직전 세찬이 부하를 말렸다. 부하는 발을 치우자 도망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네놈의 동료와 상관은 어디 있지?”
“다, 당신, 이들의 대장입니까?”
「이 새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네?」
“조용. 내 이름은 세찬 헤밀턴, 네놈들과 거래하러 온 헤밀턴 카르텔의 대장이다.”
그의 말을 들은 도망자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세찬이 맞습니까?”
“그래.”
“…제가 섬기는 분이라면 아래에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도망자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하가 다시 그를 제압하려 하자 세찬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도망자의 행색을 보면 이 배에 숨은 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옷, 퀭한 얼굴과 비쩍 마른 몸은 절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객 S와 그 부하들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해져 있다고 봐야 할 터.
살아남으려면 좋든 싫든 헤밀턴 카르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놈을 따라가겠다.”
세찬과 그 일행은 도망자의 안내를 받아서 이동했다.
다리를 절면서 걷던 도망자는 화물칸 앞에 멈춰 섰다. 그가 문을 열자 빛 한 점 찾아볼 수 있는 짙은 어둠이 외부의 방문을 반겼다.
“이 안에 있는 건가?”
“아닙니다. 그분은 저 아래에 계십니다.”
“아래?”
도망자는 대답하지 않고 걸어 들어갔다. 해적들도 적외선 감시 시야를 활성화하고 뒤를 따랐다.
“?!”
「함장님, 이건…?」
들어가자마자 해적들은 화물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내부에 있는 내부에 있는 화물과 컨테이너, 천장과 벽 할 것 없이 모든 곳에 기이한 점액들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리고 입구 근처를 제외한 나머지 바닥 부분이 모두 사라졌다. 함선의 바닥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자리 잡았다.
사방을 뒤덮은 점액과 동일한 재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구덩이. 도대체 얼마나 깊은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다 뭐지?”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그분이라 그러는데 말이야. 그 자의 이름, 살만 맞지?”
“이름을 알고 싶으시다면 직접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뭐?”
세찬이 되묻는 순간,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이 크게 진동했다.
지진이 아니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구덩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행성에서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상황, 정상이 아니야!’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낀 세찬은 다급히 통신을 연결했다.
“부함장! 여기는 세찬이다! 당장 여기로….”
「함장, 님, 치지지직, 괴물, 치지직, 배로 침입, 치직, 우리 모두 죽, 치직, 아아아아악!」
“부함장? 부함장! 이런 썅!”
「함장님, 다른 녀석들도 연락이 안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동료에게 통신을 시도한 부하들도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를 악문 세찬이 도망자의 멱살을 잡았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는 위대한 분을 섬깁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지혜를 원하십니다.”
“미친놈!”
세찬은 주먹으로 도망자를 세게 후려쳤다. 강화된 주먹에 맞은 탓에 상대의 얼굴이 그대로 으깨 져버렸다. 얼굴이 박살난 시체는 휘청거리다가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다.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 해!’
다른 배에 수색하러 간 부하들이 남아 있지만 그들을 챙길 시간이 없다. 함선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정말로 끝장이다. 최대한 빨리 수송선에 돌아가야 한다.
“당장 여기를 떠나 수송선으로 뛴다!”
세찬이 명령했지만, 부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멍하니 세찬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들아, 정신 안 차려?”
「하, 함장님. 뒤에….」
“뭐?”
부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뒤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세찬은 부하들이 왜 움직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뒤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것’이 있었다.
「그그그그」
“…….”
구덩이에서 긴 목을 내민 그 존재는 턱을 움직여 좀 전에 떨어진 시체를 가볍게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도 세찬과 해적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유전자를 개조해도, 아주 강한 무기와 강화복을 장비해도 눈앞의 존재는 이길 수 없었다. 인간의 육신이 아무리 강해져도 항성 위를 거닐 수 없는 법이다.
그들 앞에 있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였다.
“네가 그 운반자구나.”
‘그것’의 입에서 방금 죽은 도망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뇌에 들어 있는 것이 유용하면 좋겠군.”
그제야 세찬은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에 그저 입을 벌린 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즈즈즈 즈즈(이 녀석 맞아?)]
「그릉?」
언덕만한 크기를 가진 천산갑이 4개의 눈을 끔뻑거린다. 그 옆에 있던 그리폰 수인이 사념파를 흘렸다.
「나쁜 주인이 데리고 온 자. 그자와 냄새가 비슷한지 확인해 줄래?」
「그우우우」
부드러운 감정이 담긴 사념파에 거대한 짐승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한참이나 작은 인간에게 머리를 가까이 댔다.
“…….”
인간은 자기보다 한참이나 큰 짐승이 바로 앞에 있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입고 있는 강화복도 자신을 지켜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윽고 거대 마운틴크롤러가 세차게 콧바람을 흘렸다.
「그르르릉」
「맞대. 저자가 살만에게 물자를 보급했어.」
[즈(그래)]
녀석이 냄새를 맡을 때 혼란스러워 할까 봐 일부러 기생충도 안 심었다.
나는 날개 팔을 뻗어 놈을 집어 들었다. 이제 이 작은 해적의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빼봐야겠다.
“자, 잠깐 기다려! 원하는 걸 다 말할게!”
“다 말하겠다고?”
“그래! 고객 S와 거래한 내역들 전부! 그 새끼가 시킨 것들까지 모두 말할 테니까 제발 살려 줘!”
내 손에 꽉 붙잡힌 해적, 세찬은 필사적이었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그런데 어쩌나.’
우주에 떠 있는 해적선은 이사벨이, 지상에 착륙한 수송선은 아드하이가 처리하러 갔다. 놈이 운이 좋게 내게 벗어난다고 해도 이 행성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
애초에 놈이 이곳에 오고자 마음먹었을 때, 놈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해도 좋으리라.
‘내 입장에서는 감사할 일이지만.’
오늘은 살만이 죽고 3일째 지난 날이다.
놈이 데려온 고대 마운틴크롤러가 말하길, 아스카44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올 때마다 항상 먹이와 피 냄새가 났다고.
나와 하늘의 어머니는 그들이 보급과 운반을 담당하는 자들이라 추측했다. 아스카44는 테라포밍이 이루어지지 않은 행성. 당연히 외부로부터 모든 것을 조달해야만 한다. 이를 전담할 보급 담당자도 행성 밖에 존재할 터.
물론 마운틴크롤러는 인간이 아니다 보니 보급 담당자가 어디 있는지, 언제 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행히 그 문제는 행성에 남아 있는 살만의 잔당들 덕분에 해결되었다. 전투를 담당하는 방위 함대는 전멸했으나, 정찰을 위해 기지를 떠난 배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행성을 샅샅이 뒤져 생존자들을 찾아냈고, 그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들은 살만이 죽은 날로부터 약 3일 뒤에 보급 담당자가 올 것이라 말했다. 이미 4일 전에 기지와 상대 쪽이 일주일 후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3일 동안 아스카44에서 기다렸다.
만약 오늘까지도 놈이 오지 않았다면 이 행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일이 잘 풀렸네.’
“이 안이 마지막입니다. 식당? 애새끼 울음소리가 왜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