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78화 (379/400)

     

   그때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둥지에 울려 퍼졌다.

     

   “…이건?”

     

   세찬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사람, 그것도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겠지.

     

   ‘저런.’

     

   안타깝지만 그가 기대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씨발 다 뒈졌다!”

     

   거친 욕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인간과 거리가 먼 생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분홍빛으로 빛나는 해파리를 본 세찬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함장님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씨발! 어머, 진짜요?”

     

   그가 아는 익숙한 목소리가 저 생물의 촉수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촉수 표면을 뒤덮은 작은 돌기가 움직일 때마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마치 녹음된 목소리를 재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크, 큰애기. 하하하하. 씨발!”

   [즈즈즈 즈즈 즈즈(그 말은 쓰면 안 돼)]

     

   내 파장을 인식한 분홍색 해파리, 26호가 움직임을 멈췄다.

     

   「안 돼? 왜?」

   [즈즈 즈즈즈(나쁜 말이야)]

   「큰애기 부른 건데 안 돼?」

   [즈 즈즈 즈즈 즈즈(그 부분 말고 뒤에)]

   “씨발?”

   [즈즈(그거)]

     

   그동안 ‘소리로 말하기’를 공부하던 것이 성과가 있었는지, 26호의 어휘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마도 유치원생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알았어. 안 할게.」

   [즈즈즈(착하네)]

   「응!」

   “그, 그 목소리…설마 동료들 모두?”

     

   일반 인간은 나와 26호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 유전자 개조 시술을 받은 걸로 보이는 세찬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분위기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 못 할 멍청이는 아니다.

     

   나는 전투용 팔에 의식을 집중했다. 팔에 있는 기관에서 아주 작은 물체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장어처럼 길쭉한 몸통을 지닌 기생충이 전투용 팔을 타고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내 손에 잡혀 있는 세찬은 다가오는 기생충을 보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부하들과 달리 너는 죽지 않는다.”

   “자, 잠깐…으허억?!”

   “머리에 든 것을 다 털어놓기 전까지는 말이야.” 

     

   놈은 기생충에 감염당하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몇 초 후, 기생충에게 신체의 제어권을 빼앗긴 해적이 축 늘어졌다. 그걸 처음부터 지켜보던 그리폰 수인, 하늘의 어머니는 진저리를 쳤다.

     

   「기생충은 언제 봐도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즈 즈즈즈 즈즈(그래? 귀엽지 않아?)]

   「이제 와서 할 말은 아닌데, 너 취향 좀 이상한 것 같아.」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얘가 뭐 어때서? 리트리버 같아서 귀엽잖아.」

   「그우우」

     

   그녀는 사념파를 흘리며 마운틴크롤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주인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눈을 살며시 감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녀석의 모습은 리트리버와 닮은 점이 단 하나도 없다. 현실이든, 이 세계든 눈이 4개, 다리가 6개인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덩치도 나와 엇비슷할 정도로 크다. 몸길이는 나보다 확실히 작지만, 몸을 보호하는 거대한 배갑(背甲) 덕분에 나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심지어 파괴수 갑피를 얻어서 벌크업된 편인데도 그렇다.

     

   「그릉?」

     

   내 시선을 느낀 마운틴크롤러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작은 산만큼 커다란 녀석이다. 움직일 때마다 내 둥지가 크게 흔들렸다.

     

   나와 거리를 좁힌 녀석은 고개를 쭉 빼더니 내 몸에 머리를 비볐다. 그녀 말대로 애완견이 생각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마운틴크롤러는 새끼를 낳을 때만 빼고 평생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새끼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 가족 전체가 다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그 정도로 독립성이 강한 종인데 이렇게 애교를 부릴 줄은 몰랐다.

     

   「봐봐.」

   [즈 즈즈즈 즈즈(뭐 귀엽긴 하네)]

   「딴딴이 귀여워!」

   「그우우우」

     

   나는 녀석의 목 뒤를 적당히 긁어 주고, 기생충에 감염된 세찬을 내려다 봤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내가 명령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네가 맡았던 일부터 설명해라.”

   “예.”

     

   어디서 물건을 공수해왔는지, 또 살만이 옮기라 한 물건이 있다면 어디로 옮겼는지 등등 녀석에게서 알아낼 수 있을 법한 것들은 죄다 물어봤다.

     

   심문은 2시간쯤 지나고 나서 끝났다. 녀석은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내게 털어놓았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였지만, 딱 하나 흥미로운 정보가 있었다.

     

   ‘그건 나가서 알아봐야겠지.’

     

   그 정보를 확인하려면 놈의 배가 필요하다. 왠지 이럴 것 같아서 이사벨한테 해적선을 맡겼는데, 다행이다.

     

   [즈즈 즈즈즈 즈즈(잠깐 나갔다 올게)]

   「나도 같이 가.」

     

   나는 감염된 세찬을 하늘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가 정보를 빼내는 동안 마운틴크롤러와 놀고 있던 26호가 내 머리 위에 올라탔다.

   

   나와 녀석은 마운틴크롤러가 파둔 굴을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갔다.

     

   검은 땅 위로 기어 나오니 컬트식 함선 3척 외에 처음 보는 배가 보였다.

     

   ‘저 배인가?’

     

   전에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봤던 에저튼 가문의 군함과 비슷하게 생긴 함선이었다.

     

   길이는 대략 500m 정도 되는 걸로 보여서 전에 봤던 것보다는 크기가 많이 작은 편이었다. 크기는 작아도 인상적인 황금색 장식이 달린 점, 매끄러운 유선형 디자인의 동체를 가진 점 등은 동일했다.

     

   그 화려한 인상의 대형 구축함이 지금 땅에 반쯤 처박혀 있었다.

     

   불시착한 것으로 보이는 배 앞에 이사벨과 PS-111이 있었다.그 옆에는 수송선을 파괴하고 돌아온 아드하이가 몸을 둥글게 만 채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서아 언니도 그렇고, 다들 우주선 운전을 잘하는 게 신기하다니까.”

   “비행 시뮬레이션 모듈을 이식하면 에이스 파일럿급의 조종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거 혹시 머리에다 박는 거 아냐?”

   “감각 반응과 정보 분석 능력도 함께 수정해야 하므로 뇌를 일부 조작해야 합니다.”

   “…….”

     

   전에 살만과 싸우다 손상을 입은 PS-111.

     

   보다시피 녀석은 멀쩡했다. 오히려 3일 간 몇 가지 몇 가지 개조를 한 덕분에 전보다 약간 더 업그레이드됐다.

     

   달라진 점은 녀석의 팔. 8개 중 2개가 새로운 형태의 팔로 교체되었다.

     

   몸통 뒷부분에 달린 2개의 팔을 보면, 손대신 짤막한 원통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원통 끝에는 3개의 부속지가 있었는데, 이는 이동 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하기 위함이다.

     

   그밖에 등에 금속 파이프 4개가 추가된 것도 소소한 차이점이었다.

     

   “원하신다면 즉시 개조해드리겠습니다.”

   “이미 미각도 이상해졌는데 여기서 더 바꾸고 싶지 않아.”

   “그렇습니까? 아쉽습니다.”

   “그보다 언니, 다리 부분은 괜찮…앗, 에이모프?”

     

   언니와 대화를 나누던 이사벨이 나를 발견하고 말하던 것을 멈췄다.

     

   [즈즈즈(저 배야?)]

   “응.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괜찮아. 함선 컴퓨터만 살아 있으면 돼)]

     

   어차피 함선 자체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함선 데이터를 습득한 뒤 나머지는 다 정리할 생각이니까.

     

   “정보를 원하시면 제가 돕겠습니다.”

   [즈즈즈즈(부탁할게)]

   “필요한 정보는 어떤 것입니까?”

     

   나는 녀석에게 뭘 찾아야 할지 설명해줬다.

     

   “저장된 항로 기록과 함장의 개인 기록을 확보하겠습니다.”

   [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그래. 혹시 네가 봤을 때 유용해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챙기고)]

   “알겠습니다.”

   「나도 친구랑 같이 갈래. 공부 물건 찾을 거야.」

   “그것도 확인하겠습니다.”

     

   PS-111은 고개를 끄덕이고, 함선에 다가갔다. 그리고 몸통 뒷부분에 있는 새 팔을 들어 외벽을 조준했다.

     

   원통에 달린 부속지가 바깥쪽으로 접히고, 팔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원통에서 백색의 불길이 쏟아져 나와 함선 외벽을 태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등에 있는 금속 파이프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사벨로부터 들은 파이로맨서의 공격 방식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화염방사기다.

     

   파이로맨서가 팔을 고열로 달궈 공격하는 것처럼 녀석 또한 저 2개의 팔로 고열의 화염을 내뿜을 수 있다.

     

   물론 녀석은 파이로맨서처럼 열에너지를 완벽히 제어하지는 못한다. 원통형 총신(銃身)도 마그마사우르의 시체를 가공해서 만들었기에 그나마 녹아내리지 않는 거다.

     

   그것으로도 쉽지 않아 등에 있는 파이프로 열기를 제어할 정도다.

     

   잠시 후 엄청난 열을 집중적으로 받은 함선 외벽이 녹기 시작했다.

     

   몇 초 만에 함선 외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은 녀석은 화염방사기의 작동을 멈췄다. 파이프가 체내의 열을 순환시킨 덕분인지 녀석의 팔은 금세 원래 색을 되찾았다.

     

   “이후의 쓰임새를 위해 손상을 최소화했습니다.”

   [즈즈즈(고마워)]

   「와! 친구 세다! 멋지다!」

   “메인컨트롤러의 호평, 감사합니다.”

     

   PS-111은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훑어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26호도 폴짝폴짝 몸을 튕기면서 녀석의 뒤를 따라 함선 내부로 사라졌다.

     

   ‘새 무기를 자랑하고 싶었나 보네.’

     

   녀석은 해킹으로 얼마든지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다. 웬일로 녀석답지 않게 비효율적인 행동을 한 것을 보니 내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언니 지금 새 다리를 얻었다고 자랑한 거야?”

   [즈즈즈 즈즈(그런 것 같네)]

   “예나 지금이나 어린애라니까.”

     

   물론 이사벨은 대놓고 그 점을 지적했지만.

   

   아무튼 PS-111이 컴퓨터 기록을 뽑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사이에 향후의 계획이나 다시 생각해 볼까.’

     

   이 행성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마지막으로 내 몸 상태와 이후의 계획을 점검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전과 달라진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띄웠다.

   세찬을 기다리는 3일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마운틴크롤러의 치료는 물론이고, 행성 곳곳에 내 둥지들을 만들었다. 다른 적이 침투할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한 외적의 습격을 막기 위해 대비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여러 생물들을 더 포식했다. 덕분에 ‘파괴수 갑피’ 이후 유용한 특성 하나를 더 획득할 수 있었다.

     

   「파괴수 갑피: 생체금속물질로 이루어진 가죽을 생성해 몸을 보호합니다. 정제된 금속을 소화시킬 때마다 갑피와 몸이 성장합니다.」

     

   「발열 가시 배갑: 등에서 고열을 발생시키는 가시가 자라납니다. 해당 가시는 특정 목표를 향해 발사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육체 관련 일반 특성인데다가, 육신을 크게 변형시키는 특성이다.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은 행성에 도착했을 당시와 꽤 달라진 편이다.

     

   파괴수 갑피가 적용되면서 팔들과 다리, 몸통 등 각종 신체 부위가 전반적으로 두꺼워졌다. 그리고 몸 전체에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붉은색 무늬가 생겼다. 불타는 용광로를 연상시키는 갑피를 두른 덕에 특성의 전(前) 주인 마그마사우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게임에서도 좋아하는 특성이었는데.’

     

   파괴수 갑피는 초월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특성이다. 일반 특성 중에서는 최상위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많이 싸울수록 강해지니까.’

     

   툴팁에 쓰여 있듯이 파괴수 갑피의 효과는 간단하다.

     

   인위적으로 제작한 합금, 가령 함선이나 건축물 같은 걸 먹고 소화시킬 때마다 몸이 계속 성장하는 것.

     

   소화되는 즉시 성장 효과가 적용되므로 전투 중 적의 함선을 집어 삼킬 때마다 몸이 조금씩 자라난다.

     

   그 성장폭은 대형 전함을 통째로 먹었을 때 0.1cm쯤 자랄 정도다. 낮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특성을 얻을 때쯤이면 수백, 수천 척의 배와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전투가 한 번 끝날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이 커진다.

     

   몸이 커지는 만큼 갑피 두께도 두꺼워져서 생존력도 높아진다. 육탄전 능력이 올라가는 것은 덤이고.

     

   게다가 이론상 파괴수 갑피로 성장할 수 있는 크기에는 제한이 없다. ‘왜소화’ 같이 신체의 성장 자체를 제한하는 특성을 얻은 게 아니라면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이 특성이 강력하긴 해도 약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합금 덩어리를 마구 집어 먹다간 덩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몸이 과하게 커지면 그만큼 피격 면적이 늘어나니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는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특성을 얻은 시점부터는 합금을 먹는 것도 계산해야 한다. 아니면 일부러 왜소화 같은 특성을 얻어서 강제로 몸을 줄이던가.

     

   ‘뭐 게임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봤으니 이 부분은 주의해야지.’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이 ‘발열 가시 배갑’. 엘리멘탈호저를 잡아서 얻은 특성이다.

     

   현재 내 등에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가시가 일렬로 나 있다. 이 가시는 엘리멘탈호저의 방어 수단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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