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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80화 (381/400)

     

   6개의 긴 촉수들이 함선의 심장으로 향한다. 엔진실에 먼저 도달한 촉수부터 점액을 마구 토해낸다.

     

   검은 점액의 파도가 순식간에 초광속 엔진을 집어 삼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나와 함선 전체를 잠식해나갔다. 확실히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침식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저게 뭐야? 배가…둥지로 변하는 거야?”

     

   밖에 있는 이사벨의 목소리에서 놀라움이 느껴졌다.

     

   녀석은 악몽의 지평선으로 함선을 지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게임에서 이와 비슷하게 배를 장악하는 것은 아웃스페이서나 가능한 일이니 놀랄 수밖에.

     

   「배를 지배해서 생체함선으로 만드는 특성이야. 녀석이 가진 특전으로 만든 것 같더라.」

   “혹시 숨겨둔 기가크래커, 그것도 장악할 수 있어?”

   「크기에 따라 지배 여부가 갈리는 것 같은데 아마 가능할 거야. 다만 생체함선이 되면 제한 시간이 있어. 그 시간이 끝나면 배가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되더라.」

   “흠. 과연.”

     

   배를 지배하는 것을 여러 번 본 하늘의 어머니가 녀석에게 설명해줬다.

     

   「딴딴이도 데리고 와야 하고, 공부 물건도 챙겨야 하고, 먹이도 챙겨야 하고. 또, 또….」

   “제가 돕겠습니다. 먼저 ‘딴딴이’부터 데리고 오겠습니다.”

   「응!」

     

   26호와 PS-111은 떠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배를 장악하는 와중에도 둘이 바삐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

   

   배의 전(前) 주인, 세찬은 자신의 배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 안에 든 기생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배가 생물로 변하는 것은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었으니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아드하이만이 홀로 편안한 자세로 몸을 만 채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자는 와중에 꼬리 끝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걸 보면 즐거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침식을 개시한지 5분이 지났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해적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배는 침식 촉수가 내뱉은 검은 점액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되었다.

     

   ‘됐다.’

     

   본체와 연결된 생체 함선은 전적으로 나의 통제에 따라 움직인다. 쓸모없는 시설과 칸은 전부 제거하고, 마운틴크롤러가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즈 즈즈(다 됐어)]

   “그래?”

   「밖에서 보면 그런데 내부는 완전히 딴판이야.」

   “겉만 보면 별 차이가 없는데.”

     

   현재 내가 장악한 배의 겉모습은 색깔만 검은색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나머지는 그대로다. 이사벨이 몸을 살짝 띄워 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악몽의 지평선으로 장악한 배에는 내가 가진 특성 중 일부를 반영시킬 수 있다. 나는 배 전면부에 커다란 입, ‘수확자의 아가리’를 만들어서 녀석에게 보여줬다.

     

   “언니 말대로 제2의 몸이구나.”

   [즈(그래)]

   “배 안은 사실상 에이모프의 뱃속이나 다름없고.”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약간 다르지만 비슷해)]

   “신기하네.”

     

   배에 들어왔다고 해서 전부 내 먹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배를 지배한 상태에서 먹이를 포식하고 싶으면 수확자의 아가리로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전자 정수를 획득할 수 있다.

     

   수확자의 아가리를 해제한 나는 배의 옆면에 새로 입구를 만들었다. 이사벨은 흥미롭다는 듯 둘러보다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들어갈래!」

   “옮길 것이 많습니다. 문을 더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PS-111과 26호는 배 안을 들락날락거리며 이 행성에서 구한 먹이와 각종 기계 장치를 옮겼다. 나도 배 외벽에 촉수를 생성해서 녀석들을 도왔다.

   

   ‘이제 아드하이도 깨워야겠네.’

     

   나는 촉수 하나를 빼서 녀석의 통통한 꼬리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뭐임?」「방금」「뭐임?」

   [즈즈즈 즈즈즈즈(일어날 시간이야)]

   「큰어른?」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이곳을 떠날 테니 준비해)]

     

   녀석은 앞발로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르르릉」

   「걱정하지 마.」

     

   지상으로 올라온 마운틴크롤러다. 녀석은 4개의 눈을 내게 고정한 채 코를 킁킁거렸다.

     

   「그우우」

     

   모습이 달라졌지만 냄새는 그대로일 터. 잠시 후, 마운틴크롤러는 경계를 풀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배 후면부에 커다란 문을 만들어 녀석과 하늘의 어머니를 태웠다.

     

   녀석이 올라탈 때 배가 살짝 휘청거리긴 했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즈즈즈즈 즈즈즈(이 정도는 괜찮아)]

   「…몸이 너무 큰 것도 문제네.」

     

   저 거대 마운틴크롤러는 반물질 폭탄의 폭발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정도 방어력이면 지상전에 한해 굉장히 큰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가 있다.

     

   ‘덩치가 너무 커서 데리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

     

   지금이야 악몽의 지평선 덕분에 무난히 데리고 다닐 수 있지만, 특성에 쿨타임이 걸리면 그게 불가능해진다. 식민지 연구 센터를 공략한 이후 저 거대생물을 옮기려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기가크래커를 동원하거나.’

     

   대량의 광물을 쉽게 운송할 수 있는 기가크래커라면 마운틴크롤러를 태우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즈즈 즈으으으 즈즞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먼저 아드하이 집에 가서 녀석을 두고 가자)]

   「먹이는 어떻게 하고?」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기가크래커에 저장된 광물을 꺼내 주면 돼)]

   「콜드블러드들에게 부탁할 생각이구나.」

     

   얼음 행성에는 갤러곤들과 함께 사는 콜드블러드들도 있다. 그들에게 잠깐 마운틴크롤러를 돌봐달라고 하면 한동안 버틸 수 있으리라.

   

   모두가 탑승한 뒤, 나는 홀로 남은 세찬을 바라봤다.

   

   ‘저놈도 데려갈까.’

   

   놈의 인맥은  LV-06에 진입할 때 제법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여기서 먹어 치우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낫겠지. 나는 기생충을 시켜 놈도 배에 태웠다.

     

   ‘좋아.’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장악한 함선 통제에 의식을 집중했다. 추진기에서 나의 생체 에너지로 만든 플라즈마가 마구 뿜어져 나온다.

     

   날개 팔로 비행할 때와는 또 다른 묘한 부유감과 함께 함체가 위로 떠올랐다. 이어서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내 몸이 하늘에 가득 찬 화산재의 구름을 꿰뚫었다.

     

   내 뒤로 불과 재로 가득한 별이 보인다. 아스카44에서의 모든 일을 마무리한 나는 어두컴컴한 우주를 향해 내달렸다.

   

   

   -

   

   

   검은색 우주선이 아스카44에서 떠난 이후, 우주 공간에 떠다니던 돌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식자’가 ‘두 번째 미끼’를 물었다.」

   

   그것의 정체는 아웃스페이서의 여왕. 

   

   일반 여왕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를 가진 여왕이 바위 파편 속에 몸을 숨긴 채 외부를 관찰하고 있었다.

     

   「‘포식자’로 추정되는 비행체, 이탈했다.」

   「그의 종자,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다.」

   「여제와 ‘위대한 원수(怨讐)’의 계획에 지장없다.」

     

   여왕은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검은색 우주선이 남긴 빛무리로 접근했다. 여왕의 몸에서 가느다란 촉수 몇 가닥이 나와 초광속 항해로 발생한 잔여 에너지를 건드렸다.

     

   「‘포식자’는 위험하다. 그러니 조심해서 추적한다.」

   「지난번 조우 이후 개량했으니 문제없다.」

   「‘포식자’는 위험하다. 신중히 움직인다.」

     

   잔여 에너지가 아슬아슬하게 사라지기 직전, 여왕의 몸이 파랗게 빛났다.

     

   곧이어 여왕 또한 푸른빛과 돌 조각들만 남긴 채 모습을 감췄다. 

   -

     

     

   프랭크가 시노미츠(しの三) 카르텔에 가입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본래 그는 우주요새를 운영하는 거대 해적, 마르시오 카르텔의 말단 간부였다.

     

   그가 하는 일은 카르텔의 돈을 떼먹고 달아난 빚쟁이들을 잡아 오는 것. 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해적선을 이끌고 요새를 떠나곤 했다.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그가 일을 마치고 복귀했을 때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빚쟁이를 붙잡아 돌아왔는데 요새가 보이지 않았다.

     

   선원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처럼 그가 속한 카르텔과 본거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초계함을 개조한 해적선, 그리고 십여 명의 부하들뿐이었다.

     

   가진 것 대부분을 잃은 프랭크에게 남은 선택지는 2개였다.

     

   이대로 새 카르텔을 만들어 해적질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카르텔에 들어가거나.

     

   프랭크는 악인이긴 하나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가 빚쟁이들을 어렵지 않게 잡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의 뒷배 덕분이었다.

     

   스페이스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마르시오 카르텔은 막대한 정보력을 지녔다. 만약 그들의 정보망이 없었다면 도망자들을 결코 쉽게 잡을 수 없었으리라.

     

   따라서 프랭크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그는 최근 급격히 세력이 커진 해적 집단, ‘시노 연합’에 합류를 요청했다. 마침 연합 소속 해적 시노미츠가 조직원을 모집하고 있었기에 프랭크와 그 부하들은 시노미츠 카르텔에 들어가게 됐다.

     

   일단 배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메리트였기에 그는 새 조직에 들어가자마자 부두목의 자리에 올랐다.

     

   말단 간부에서 시작해 유명 카르텔의 부두목이 되다니. 요새가 날아갔을 때만 해도 망했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전환점이었다.

     

   이제는 수백 명에 달하는 부하, 함선 2척이 그를 따른다. 그리고 매혹적인 여자들까지.

     

   「부두목님, 계십니까?」

     

   함장실에 있는 프랭크는 부하의 통신을 무시했다. 한창 사이보그 노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인데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부두목님?」

   “…에이 씨발.”

     

   하지만 연달아 들리는 부하의 목소리가 전부 망쳐 버렸다. 그는 가랑이 사이에 있는 노예를 밀어내고 통신을 받았다.

     

   “야이 씹새야, 바쁘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게, 급한 일입니다.」

     

   현재 프랭크가 지휘하는 함선들은 주인 없는 성계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곳에 아주 희귀한 생물이 나타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프랭크뿐만 아니라 시노 연합에 속하는 다른 카르텔들도 각자 희귀 생물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서 대기 중이다.

     

   해적들 입장에서는 지루한 임무이긴 하지만, 별 상관없었다. 이럴까봐 일부러 성노예를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까.

     

   “우리 일에 급한 일이 어디 있다고 지랄이야?”

   「이걸 보시기 바랍니다.」

     

   부하의 말과 함께 작은 홀로그램 지도가 책상 위에 떠올랐다.

     

   “갑자기 웬 지도를…응?”

     

   성계를 모사한 홀로그램에 못 보던 것이 보였다.

     

   수많은 알갱이들이 한 군데에 뭉쳐 있었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단순히 암석 지대를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프랭크는 저게 설마 희귀 생물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니미?!”

     

   안색이 하얗게 질린 프랭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벗겨진 바지를 추스르며 고함을 질렀다.

     

   “애들 다 깨우고, 드론 준비해! 당장!”

     

   지도에 표시된 낯선 존재가 뭔지 프랭크는 안다.

     

   저건 우주선에 승선한 자들이라면 누구라 해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악명 높은 해적이라 해도 말이다.

     

   ‘씨, 씨발! 메탈릭 그렘린 무리가 왜 여기에 있냐고!’

     

   수만 마리에 달하는 약탈자들이 지금 프랭크의 함선이 있는 곳에 접근하고 있다.

     

     

   -

     

     

   당연한 얘기지만, 이 세계는 게임과 많이 다르다.

     

   게임에서는 별거 아니던 특성이 현실이 되면서 의외의 성능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턱 아래의 보조기관만 해도 그렇다.

     

   게임에서는 주변 환경을 미니맵 형태로 구현되어 시야에 이점을 주는 것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이 세계에서는 적의 공격을 감지하고 회피하거나 보이지 않는 적을 감지하거나 등등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밖에 많은 특성들이 게임에서 기억하던 것과 달라졌다.

     

   다만 그동안 이러한 차이가 대체로 내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그런 걸까?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아드하이의 가족이 머무는 얼음별을 향해 날아가던 중,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건 허기였다. 평소 초광속 항해를 할 때는 느끼지 못한 공복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거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금방 파악했다. 파이로맨서를 잡고 획득한 쓰레기 특성 ‘굶주림’ 때문이다.

     

   행성에 있을 때는 수시로 먹이를 먹어서 배고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굶주림의 리스크를 체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에너지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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