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81화 (382/400)

     

   본체에서는 용의 심장이 작동하며 에너지를 펌핑하는 중이다. 함선에도 잔여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고.

     

   ‘오히려 이건 정신적인 문제로 봐야 하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배가 고파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때와 비슷하다.

     

   ‘생각보다 거슬리네.’

     

   게임의 경우, 굶주림을 얻은 상태에서 에너지가 바닥나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그러니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을 줄은 몰랐다.

     

   ‘중간에 뭐라도 먹어야겠어.’

     

   용의 심장이 있는 한, 내가 정신을 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도 지금처럼 신경이 거슬리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다. 심지어 누가 뒤쫓는 것 같은 초조함까지 느껴질 정도니까.

     

   가는 길에 잠깐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할 듯싶다.

     

   ‘하는 김에 마운틴크롤러의 밥도 주고.’

     

   배 안에 고기가 소량 저장되어 있지만, 마운틴크롤러를 위한 먹이는 따로 없다. 장기간 광물을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긴 하나 그렇다고 굶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녀석에게는 우주에 떠다니는 운석을 주면 될 거고.’

     

   나는 가까운 곳에 돌아다니는 해적선이나 상선(商船)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초광속 항해를 중단하니 나를 짓누르던 압력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에이모프? 엔진이 멈춘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하얀 돌’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초광속 항해가 중단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큰애기 힘들어? 힘들면 자야 해. 자면 좋아져!」

   “저 괴물이 이런걸로 힘들 리가 없는데.”

   「휴식?」「나」「밖」「나가도 돼?」

     

   내가 멈추자 배 곳곳에서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애들이 한마디씩 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잠시 쉬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좋아)]

   「나」「예쁜아이」「함께」「비행」「훈련」「할 거야」

   “응? 잠깐, 나도 같이 하라고?”

   「예쁜아이」「약해」「훈련」「더」「많이」「해야 해」

     

   애들에게 휴식하겠다고 알린 뒤, PS-111과 세찬을 이쪽으로 불렀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이 근처에 활동하는 해적이 있어?)]

   “해당 성계는 주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메가콥에 등록된 상선 중 1.2%가 해당 성계를 경유한 적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범법자들이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82%입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배들이 다니긴 하는데 그리 자주 다니는 곳은 아닌 듯하다.

     

   사실 너무 많은 배가 오가는 장소는 스페이스독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열강의 추적을 받으면 끝장이니까.’

     

   나는 세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는 카르텔은 없지만, 소규모 카르텔이 여기서 약탈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생충에 의해 뇌의 반쪽을 빼앗긴 놈은 멍한 눈으로 내 본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해적이 활동하기는 하나보네.’

     

   마침 잘 됐다.

     

   지금 나는 배를 침식해 지배 중이다. 덕분에 탐지 시스템에서는 일반 배로 표시된다. 외형도 색깔이 검은색이라는 걸 빼면 메가콥의 군함과 똑같이 생겼다.

     

   해적들의 눈에는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일 터. 여기에 해적이 있다면 필시 나를 쫓아올 것이 틀림없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혹시 그것 말고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

   “함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적 말고 다른 위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즈즈(그래?)]

     

   그렇다면 좀 돌아다녀도 큰 문제는 없겠지.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움직일 테니 모두 돌아와)]

     

   밖에 있는 애들을 불러들인 나는 천천히 이동을 개시했다.

     

   이곳은 아스카44가 위치한 성계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도라네 성계의 풍경은 적색 거성 올가 덕분에 매우 화려했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별과 그에 대조되는 새까만 공간들. 인간 시절에 봤던 우주 사진, 일러스트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반면 이곳의 분위기는 매우 정적이다. 인상적인 별도, 아름다운 성운도 없다. 그저 끝 모를 어둠만이 계속될 뿐이다.

     

   ‘사실 우주 공간이 대부분 이렇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있는데, 함선 겉면을 덮고 있는 검은 점액질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어떤 움직임이 발생했다.

     

   ‘해적선인가?’

     

   움직임이 점점 크게 느껴진다.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거다.

     

   ‘시간이 더 걸릴 줄…응?’

     

   잘됐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해적선의 움직임이 다른 배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배의 외벽에 감각을 집중했다. 둥지와 링크했을 때처럼 감각 영역이 넓어지고, 보조기관만으로는 감지하지 못한 부분까지 내 뇌로 전달된다. 멀리서 다가오는 존재의 움직임도 이전보다 뚜렷하게 느껴진다.

     

   ‘커다란 것 세 개, 그리고….’

     

   발달된 감각으로도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은 물체들. 커다란 것 주변에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것은 함선이 틀림없다. 여기서 문제는 함선을 에워싼 작은 물체의 정체다.

     

   ‘메탈릭 그렘린?’

     

   은색 괴물 수만 마리가 한 곳에 모여 함선들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3척 모두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날아오기에 급습하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격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런 거였다.

     

   ‘놈들이 왜 여기에 있지?’

     

   우주에 진출한 지성체들에게 메탈릭 그렘린 무리는 살아 움직이는 재난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메가콥이나 스타유니언에서는 우주의 약탈자가 나타난 장소를 반드시 기록에 남긴다.

     

   PS-111이 특별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놈들이 다른 성계에서 이곳으로 왔거나, 아니면 그동안 놈들의 습격을 받은 배에서 생존자가 없었다는 것.

     

   ‘뭐가 됐든 차라리 잘 됐어.’

     

   마침 배가 많이 고프던 참이다.

     

   함선 3척과 메탈릭 그렘린.

     

   이 정도 먹이라면 허기를 달래는데 충분하리라.

   -

     

     

   “우측 함포 3번부터 12번까지 전부 작동 불가! 좌측도 1번, 11번 작동 불가!”

   “이런 씨부랄! 함재기! 함재기들을 어따 팔아먹었냐!”

   “예? 메탈릭 그렘린과 싸우는 데 함재기를 보내라고요?”

   “씨발놈아, 그럼 여기서 다 뒈질래? 빨리 내보내!”

   “아, 알겠습니다!”

     

   해적선의 상황실 내부는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많은 이들이 스페이스독을 두려워하지만, 우주에는 해적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 많다.

     

   갑자기 나타난 메탈릭 그렘린도 그런 존재 중 하나였다.

     

   금속 재질의 피부를 가진 저 작은 악마들은 우주를 여행하는 자들에게 재앙과도 같다.

     

   날카로운 이빨은 제아무리 단단한 합금 장갑도 쉽게 갈아버리고, 피부에서 발산되는 특유의 파장은 드론이나 어뢰의 탐지 기능도 쉽게 무력화시킨다. 수백 마리의 메탈릭 그렘린 무리는 최신형 전함도 긴장해야 할 상대다.

     

   그런데 지금 해적들에게 달려드는 적들은 최소 수만 마리 이상이다. 시노미츠 해적의 부두목 프랭크도 이 정도로 큰 무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통신 담당! 어떻게 됐어?”

   “바, 방해 전파 때문에 통신이 먹통입니다! 다른 함선들과도 연락이 안 됩니다!”

   “이 병신 새끼야! 그러면 당장 전파 범위 밖으로 빠져나가면 될 거 아냐!”

   “후방 추진기 피해 65% 초과! 속도가 급감합니다!”

     

   메탈릭 그렘린은 정제된 금속에 아주 환장한다. 놈들이 함선을 습격하는 것도 사람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합금을 먹기 위해서다.

     

   인간에 비해 훨씬 작은 몸을 가졌지만, 식성 하나는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저들이 배에 붙는 순간, 100m가 넘는 이 함선은 금세 놈들의 뱃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해적선을 잃은 프랭크는 우주 공간을 떠돌며 죽어갈 것이고.

     

   ‘빌어먹을, 분명 안전한 성계였는데!’

     

   그가 여기 온 이유는 희귀 생물이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 기회라 생각해서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기 전,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정도는 미리 확인했다. 이곳은 무역선과 채굴선도 아주 가끔 오는 구역이다. 메탈릭 그렘린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저 새끼들이 여기서 나오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두목! 놈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뒤늦게 후회하던 그때, 부하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노, 놈들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뭐?”

     

   프랭크는 서둘러 홀로그램 지도를 확인했다. 해적선을 막 덮치려던 점들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우주의 약탈자들이 향하는 곳에 정체불명의 함선 표시가 떠 있었다. 전파 교란 때문인지 배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세부 요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씨발 뭔지 모르겠지만 잘 됐어. 이 틈에 도망쳐야….”

     

   저들이 싸우는 동안 빠져나가려고 마음먹은 순간, 배가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

     

     

   ‘이쪽으로 오네?’

     

   막 함선 3척을 삼키려던 무리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저들 따위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말이다.

     

   현재 내 본체를 둘러싼 배는 생체조직과 합금이 융합된 상태다. 메탈릭 그렘린 입장에서 나는 딱히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아니다.

     

   ‘뭐 저쪽에서 와주니 나야 고맙지만.’

     

   ‘악몽의 지평선’을 얻었던 당시, 나는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메탈릭 그렘린들과 싸웠다. 중간 규모의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나는 배를 변형해 ‘발열 가시 배갑’을 만들었다. 이름과 달리 장창에 가까운 외형의 가시들이 전면부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가시의 온도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3척의 배를 향해 발사했다. 붉은색 가시들이 차례차례 날아가 목표물에 적중했다.

     

   ‘도망가면 안 되니까.’

     

   추진기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으니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은 나는 다가오는 무리와 싸울 준비를 했다.

     

   적들을 먹어서 배를 채워야 하니 강력한 공격은 쓸 수 없다. 배에 장착된 함포를 침식해 활용하는 대신, 육탄전을 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좋은 특성이 있지.’

     

   나는 강력한 방어 특성인 ‘파괴수 갑피’를 배에 적용시켰다. 본체의 경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시 적용되지만, 침식한 배는 내가 임의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선체를 덮고 있는 검은 점액의 형태가 급변한다. 흑요석처럼 매끄럽던 포면이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마그마사우르의 외피와 비슷하게 변화했다. 거기에 발열 가시 배갑의 특징까지 추가되자 배 전체에 큼직한 가시들이 솟아났다.

     

   나는 차례차례 사용할 수 있는 특성들을 배에 반영했다. 함선 전면부가 갈라지며 엄니를 가진 길쭉한 주둥이로 변이했고, 후면에서 거대한 집게가 달린 꼬리가 솟아났다.

     

   이제 그 누구도 나를 보고 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지금 나의 모습은 우주 공간을 떠도는 거대 괴수에 가까우니까.

     

   「■■■?」

     

   거리를 좁혀 오던 놈들이 괴물로 변한 함선을 보고 주춤거린다.

     

   「■■!」

     

   혹시 도망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잠깐 멈칫했던 놈들의 몸이 푸른색으로 빛났다. 무리 안에 섞여 있는 ‘워프보이’가 대규모 초광속 항해 기술, ‘워프가이드’를 사용한 거다.

     

   이윽고 내 주변의 우주 공간에서 수백 마리의 메탈릭 그렘린들이 튀어나왔다. 얼굴을 꽉 채우는 소용돌이 모양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나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어딜!’

     

   나는 전면부에 달린 ‘수확자의 아가리’를 활짝 벌렸다. 500m 크기의 배에 생긴 입은 그 크기만 수십m에 달한다. 고래가 물고기 떼를 먹을 때처럼 입을 벌린 채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

     

   내게 달라붙기 위해 가속하던 적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내 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턱을 닫아 입 안에 들어온 적을 꿀꺽 삼켰다.

     

   「포식 효과 발동!」

     

   수십 마리를 단숨에 삼켜서일까. 텍스트창의 메시지가 떠오르는 한편, 아주 살짝 허기가 가셨다.

     

   그 사이, 금속 빛깔의 약탈자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놈들은 특유의 예리한 이빨을 파괴수 갑피에 박아 넣기 위해 애썼다.

     

   「■■?」

     

   놈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생체함선을 감싸는 외피는 매우 두꺼웠다. 표면까지는 어렵지 않게 손상시킬 수 있지만, 내부까지 침투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놈들이 내부까지 들어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거지만.’

     

   나는 길쭉한 꼬리를 휘둘러 갑피 위를 쓸었다. 꼬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육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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