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82화 (383/400)

     

   「■■■!」

   「■■■!」

     

   동족이 연달아 학살당하고 있는데도 놈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이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그저 이빨로 내 외피를 물어뜯고 있을 뿐이었다.

     

   ‘우두머리는 어디 있지?’

     

   대규모 무리 이상이면 반드시 지휘관 개체, ‘타이타보스’가 존재한다. 배에 올라탄 불청객들 중에는 없으니, 아마 저기 워프보이가 있는 무리 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터.

     

   나는 입과 꼬리로 주변의 적들을 정리하며 타이타보스가 숨어 있는 무리를 향해 이동했다.

     

   「■■■■■!」

     

   무리에서 메탈릭 그렘린보다 몇 배 이상 큰 개체들이 앞으로 나왔다. 양팔이 검은색으로 물든 저 존재들은 ‘볼프람 고블린’. 메탈릭 그렘린의 상위종으로 원거리 견제에 특화된 개체들이다.

     

   볼프람 고블린 떼거리들이 팔을 내게 겨냥한다. 손끝에서 발사된 수천 개의 바위 덩어리가 나를 향해 쏟아진다.

     

   저 발사체는 볼프람 고블린의 배설물로, 안에 금속을 부식시키는 미생물이 섞여 있다. 일반 함선에게는 실로 치명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쪽은 아니다.

     

   나는 적들을 공격을 몸으로 때우며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배 전체에 붙어 있는 발열 가시들을 활성화시켰다.

     

   흑색의 가시들이 피에 젖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가시 근처에 있던 메탈릭 그렘린들은 고열에 의해 그대로 녹아버렸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가시들을 적들에게 쏟아 냈다. 몇몇은 위기를 감지하고 스스로 피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수만 마리가 모여 만든 은색 구름에 가시가 꿰뚫은 구멍이 송송 뚫렸다.

     

   ‘이 다음에는 회피하려 하겠지.’

     

   예상대로 워프보이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은색 구름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놈들이 뒤로 빠진 사이에 적들의 시체를 수확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나서려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뭐야?’

     

   갑자기 사방에서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졌다.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이 에너지는 초광속 항해를 시도할 때 방출되는 흔적이다.

     

   ‘후퇴하려는게 아니야?’

   

   무리에 속한 워프보이들이 나와 가까운 거리로 순간이동을 시도하고 있다.

     

   전체 무리 중 3분의 1에 해당한 적들이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머지 3분의 2는 나의 퇴로를 차단하겠다는 듯이 후방으로 이동했다.

     

   ‘왜 이리 호전적이지?’

     

   놈들이 일반적인 생물과 상이한 생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해도, 놈들 또한 생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고, 동족이 죽으면 무서워한다.

     

   수많은 동족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 이렇게 공격에만 몰두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여기 나타난 것도 이상하긴 해.’

     

   저렇게 많은 메탈릭 그렘린을 배불리 먹이려면 최소한 우주도시 정도의 합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성계에는 금속 구조물도 없고 배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놈들이 여기 나타날 이유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대규모 무리. 일반적인 메탈릭 그렘린과 다른 행동 방식.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케샤 아르마의 메탈릭 그렘린들.’

     

   귀환파의 플레이어 신시아가 대규모 무리를 끌어들여 나와 싸우게 만든 적이 있다. 그때도 놈들은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설마 플레이어가 보낸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나는 지금 굉장히 큰 위험에 처해 있는 상태다. 플레이어들이 언제 이곳에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내가 잠깐 멈칫한 사이, 놈들이 포위망을 빠르게 좁혀 왔다. 전방에서 나타난 적들은 오로지 내게 올라타서 외피를 갉아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내 입에 들어와 먹히기 직전까지도 깨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해.’

   [즈즈 즈즈즈(모두 도와줘)]

     

   배를 버리지 않는 이상, 내가 쓸 수 있는 특성은 제한된다. 여기서는 나 혼자 정리할 게 아니라 다른 애들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싸움이다!」

   「밖」「냄새」「이상해」

   「생각보다 적이 많은가 보네.」

     

   내 파장을 전달받은 26호,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가 전투를 준비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언니, 잠깐만 기다려. 우리는 안 돼.”

   [즈즈 즈즈 즈즈즈(둘은 남아 있어 줘)]

     

   PS-111도 지원하고 싶어 했지만, 나와 이사벨이 말렸다.

     

   녀석과 이사벨은 몸을 구성하는 요인 중 상당 부분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잘못해서 뇌를 담당하는 부분이 공격당하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둘을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이 밖으로 나왔다.

     

   「많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게 무슨…?」

     

   나오자마자 득실거리는 은색 괴물들을 마주한 하늘의 어머니가 놀랐다. 그리폰 형태로 변신한 그녀는 곧바로 압력을 조종하는 마노(瑪瑙)색 입자를 뿌렸다. 그녀 주변에 있던 적들이 순식간에 온몸이 으깨졌다.

     

   「적」「예전」「큰어른」「괴롭힘」「기분」「나빠」

     

   내가 전에 메탈릭 그렘린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는 것을 기억한 아드하이는 ‘레드아머’를 몸에 두른 상태로 학살을 시작했다. 녀석은 적들을 들이받으며 고기 조각으로 만들었다.

     

   「작은애기 말이 맞아! 큰애기 괴롭힌 애들이야! 나쁜 애들은 다 혼내줄 거야!」

     

   마지막으로 나온 26호도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녀석의 몸이 급속도로 커졌다. 그와 동시에 분홍색 피부 위에 수많은 눈들이 생겨났다.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그 눈들이 빛나자 적들이 움찔했다. 씨 데몬 고유의 기술, ‘심해의 공포’가 발동하며 적들에게 공포스러운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거다.

     

   ‘좋아. 빨리 놈들을 정리해야….’

     

   그때 갑자기 주변에 있던 모든 메탈릭 그렘린들이 26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와 싸우던 녀석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말이다.

     

   「잠깐?!」

   「작은어른」「위험!」

     

   그뿐만 아니라 내 후방에 있던 무리들도 일제히 26호 주변으로 초광속 항해를 개시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젠장!’

   

   준레이드 보스급 생물 씨 데몬과 일개 메탈릭 그렘린 사이에는 아득한 격차가 있다. 수백, 수천 마리가 달려들어도 26호에게 상처를 입히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우리와 싸우고 있는 적은 수만 이상. 26호에게 이기지는 못해도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나는 다급히 26호의 앞으로 이동해서 적들을 가로막았다.

     

   꼬리와 입, 배에 있던 함포들까지 내가 쓸 수 있는 수단들을 전부 동원했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가 죽었지만, 적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죽은 수만큼이나 많은 수가 26호에게 달라붙었다.

     

   「큰애기야!」

   ‘배를 버려야…!’

     

   당장 침식을 취소해서 녀석을 지키려고 한 그때, 메탈릭 그렘린으로 뒤덮인 26호가 몸을 빛냈다.

   

   ‘응?’

     

   금속 피부의 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치 은색 해파리처럼 보이는 녀석. 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은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저 빛의 색깔은  26호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색깔이었다.

   

   「■■■」

   「■■■」

   「간지러워!」

     

   놈들은 26호의 몸을 꽁꽁 싸맨 상태로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은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26호는 그런 놈들의 행동이 간지럽다는 듯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렸다.

     

   「뭐임?」「뭐임?」

   「…지금 메탈릭 그렘린이 쟤한테 애교를 부리는 거야?」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던지는 아드하이와 하늘의 어머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여태껏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하고 기만한 나였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상상치도 못한 광경에 나 또한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메탈릭 그렘린의 이상 행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26호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놈들 말고도 다른 놈들도 녀석 주변을 맴돌았다. 그중에는 무리의 우두머리, ‘타이타보스’도 있었다.

     

   우두머리건 하위종이건 상관없이 모든 개체에게서 일말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들을 보고 누가 우주의 약탈자라는 악명을 떠올릴 수 있을까? 방금까지 나를 물어뜯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놈들이 순한 양이 됐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당장 적대적이지 않더라도 언제 미쳐 날뛸지 모른다.

     

   나는 놈들로부터 26호를 빼내기 위해 접근했다.

     

   「■■■!」

   「■■■!」

     

   얌전하던 무리의 반응이 격렬해졌다. 더 가까이 오면 나를 공격할 기색이었다. 타이타보스도 무리를 강화시키는 물질을 다시 분비하기 시작했다.

     

   「때리지 마!」

     

   그걸 본 26호가 촉수로 놈들을 후려쳤다. 모여 있던 몇 마리가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무중력의 공간에 떠다녔다.

     

   놀랍게도 메탈릭 그렘린들은 반격하지 않았다. 코앞에서 동족이 박살나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공격은커녕 얌전한 태도를 유지했다.

     

   게다가 나를 경계하던 것도 멈췄다. 내가 가까워져도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마치 26호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에서 씨 데몬과 메탈릭 그렘린은 만날 일 자체가 없다. 서식 환경이 완전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두 생물종은 공통적인 특정이 전혀 없고, 서로 간에 소통도 불가능하다.

     

   ‘설령 얘기가 통한다고 해도 놈들이 26호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어.’

     

   그랬다면 이전에 메탈릭 그렘린 무리와 싸울 때 진작 알았을 터. 이 자리에 있는 무리가 특이한 거다.

     

   ‘일단 26호부터 빼자.’

   [즈즈즈즈 즈즈즈(위험하니 이리 와)]

   「응.」

     

   내 말을 들은 26호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내게 다가왔다. 녀석에게 붙어 있던 놈들과 다른 무리도 어미를 따르는 아기새마냥 뒤에서 따라왔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놈들은 26호를 따르는 게 분명했다.

     

   「적」「방심 중」「지금」「기회」

   [즈즈즈 즈즈즈(잠깐만 기다려)]

     

   아드하이가 흉흉한 사념파를 흘리며 공격을 재개하려 해서 말렸다.

     

   정확히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랭커들이 보낸 게 아니야.’

     

   귀환파든, 지배파든 굳이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에이모프, 잠깐만.」

     

   그때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즈(왜?)]

   「저 타이타보스, 전에 케샤 아르마에서 싸웠을 때 봤던 녀석 같아.」

   [즈(뭐?)]

   「목에 있는 흉터를 보니까 확실해. 내가 제사장의 황금창을 던져서 맞춘 흔적이야.」

     

   배 위에 올라탄 그녀는 호박색 눈동자로 타이타보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 무리가 그때 싸운 놈들이라고?’

     

   귀환파의 랭커 신시아가 알 수 없는 도구로 불러낸 메탈릭 그렘린 무리는 싸움 도중 후퇴했다. 아드하이와 26호가 놈들을 불러낸 장본인을 죽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놈들을 불러낸 도구가 망가져서 적들이 물러난 것으로 추측했다. 도구도 당연히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라 생각했고.

     

   ‘분명 둘이서 적을 죽이고 잡아먹었다고 했어.’

     

   아드하이는 신체 구조상 부피가 큰 물체를 삼키기 적절하지 않다. 아마 녀석이 먼저 피나 체액을 빨아먹고, 26호가 남은 잔재를 먹어치웠겠지.

     

   그 과정에서 메탈릭 그렘린을 부른 도구와 뭔가 상호작용을 했을지도 모른다.

     

   ‘확인해 보자.’

     

   나는 집게가 달린 꼬리를 움직여 타이타보스를 붙잡았다. 적을 찢어발길 때와 달리 약하게 쥐었다. 놈은 전혀 저항하지 않았고, 놈이 지배하는 무리도 마찬가지로 반응하지 않았다.

     

   [즈즈 즈즈즈즈(다들 들어와 봐)]

     

   나는 밖에 나와 있는 애들을 전부 불러들였다. 타이타보스도 함께 말이다. 남은 무리는 행성을 공전하는 고리처럼 내 주변을 느리게 회전했다.

     

   “저장된 생물 데이터와 대조 결과, 메탈릭 그렘린 아종 ‘타이타보스’로 확인.”

   “타이타보스를 데려왔다고?”

     

   이사벨이 배 내부에 들어온 타이타보스를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PS-111도 붉은색 카메라렌즈를 깜빡이며 자신과 상극인 존재를 관찰했다.

     

   “‘중간애기’의 힘으로 포획하신 겁니까?”

   「아니.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서아 언니가 아니면 에이모프가 한 거야?”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누가 했는지를 알아보려고)]

     

   눈을 깜빡이던 이사벨은 곧 내 말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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