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83화 (384/400)

   “내 특전으로 확인하려는 거구나.”

   [즈(그래)]

     

   이사벨이 보유한 특전, ‘만상의 천안’은 상대의 정보를 상세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 타이타보스를 확인하면 될까?”

   [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응. 그 다음 26호도 부탁해)]

   “26호?”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으으으(만약 특이점이 없으면 아드하이도)]

   “뭐 상관없겠지. 알았어.”

     

   사실 아드하이는 이 상황과 무관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부탁을 들은 이사벨이 고개를 돌려 26호를 향했다.

     

   현재 녀석의 몸은 PS-111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인공적인 육체다. 다만 뇌와 눈만큼은 원본, 그러니까 콜드블러드의 것을 이식했다. PS-111이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녀석의 눈은 어떤 문제도 없이 제대로 기능했다.

     

   하늘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눈이 선명하게 빛난다. 비밀과 지식을 수집하는 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26호, 타이타보스, 아드하이 순으로 훑어본 뒤,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 확인했어. 일단 확실한 건 타이타보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무언가에 지배되고 있나 보군)]

   “응. ‘야만의 보주’라는 물건에 종속된 상태야.”

   [즈즈즈 즈즈(야만의 보주?)]

   「그런 물건은 처음 들어 보는데?」

     

   나 또한 하늘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야만의 보주라는 물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개량된 사이오니움, 뮤턴트 스크리머처럼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도구겠지.

     

   “흥미로운 것은 26호야.”

   [즈즈즈 즈(26호가 왜?)]

   “만상의 천안에 따르면 26호가 야만의 보주를 활성화시킨 상태야.”

   「잠깐, 지금 씨 데몬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중이라는 거야?」

     

   나의 본체와 하늘의 어머니가 동시에 26호를 쳐다 봤다.

     

   녀석은 자꾸 친한 척하는 타이타보스가 귀찮은지 촉수로 밀어내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가 품은 의문에 이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녀석은 우리와 많이 다르니까. 플레이어처럼 장비를 장착하고 사용하거나 한 것은 아닐 거야.”

   [즈즈(하긴)]

     

   26호는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때마다 내게 쪼르르 달려와 일일이 말해주곤 한다. 그런 녀석이 야만의 보주란 물건을 얻고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나는 타이타보스와 티격태격 대는 녀석을 불렀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잠깐만 이리 와 볼래?)]

   「응.」

     

   녀석이 몸을 통통 튕기며 내 본체 앞으로 왔다.

     

   겉면만 보면 동글동글한 몸을 가진 분홍색 풍선처럼 보인다. 녀석의 몸 위에는 그 어떠한 도구나 장비도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몸 안에 있으려나?’

     

   26호는 먹이를 포식할 때 촉수를 이용해 몸에 집어넣은 후 천천히 용해시킨다. 신시아가 갖고 있던 도구도 그런 방식을 거쳐 몸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전에 무서운 인간하고 싸웠을 때 기억나?)]

   「무서운 인간?」

   [즈즈 즈으으으 즈즈즈 즈즈(너와 아드하이가 사냥한 인간)]

   「응! 기억나! 머리에 부속지가 달린 나쁜 녀석! 나쁜 녀석 파박 해서 혼내줬어!」

   「나」「기억나」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드하이도 기억하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뿔난 난쟁이」「작은어른」「나」「함께」「죽였어」 

   「맞아! 작은애기랑 같이 혼내줬어!」

   「동의」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둘이서 그 녀석을 먹을 때 특별한 거 없었어?)]

   「특별한 거」「있었어」「맛」「안정적」「훌륭해」

   「응! 맛있었어!」

   [즈즈즈즈(맛 말고는?)]

     

   그것 말고는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는지, 아드하이는 사념파를 흘리지 않았다. 26호도 파장을 보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역시 둘이 기억하는 것은 무리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26호가 몸에서 빛을 냈다.

     

   「생각났어! 그때 딱딱하고 동그란 거 먹었어!」

   [즈즈즈즈 즈즈즈즈(딱딱하고 동그란 거?)]

   「응. 먹으면 배불러지니까 내버려 뒀어.」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난다.

     

   신시아가 메탈릭 그렘린을 불렀을 때, 놈이 손에 무엇을 쥐고 있었는지.

     

   ‘은색의 오브였지.’

     

   타이타보스를 지배하는 야만의 보주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즈즈즈 즈즈 즈즈(아직도 몸에 있어?)]

   「딱딱하고 동그란 거?」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남아 있다면 꺼낼 수 있어?)]

     

   아직 소화되지 않고 몸에 남아 있다면 꺼낼 수 있을 터.

     

   「해볼게!」

     

   녀석이 끙끙거리며 힘을 줬다. 파르르 떨리는 분홍빛 몸통 안쪽에서 은색 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윽고 녀석의 몸에서 은색의 촉수 한 가닥이 튀어나왔다.

     

   ‘응?’

   「전에 있던 거 이렇게 변했어!」

     

   메탈릭 그렘린의 피부처럼 선명한 은색을 띤 촉수. 그 끄트머리는 구체 형태로 뭉쳐 있었다. 마치 전에 신시아가 들고 있던 은빛 오브가 녀석의 촉수와 융합한 것 같은 형태였다.

   

   ‘소화되면서 몸에 특성처럼 적용된 건가?’

   “에이모프, 잠깐만.”

     

   그때 이사벨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 촉수가 야만의 보주야. 다만 이름 옆에 ‘변이 중’이라고 되어 있어.”

   [즈즈(변이?)]

     

   녀석은 눈에서 푸른빛을 뿌리며 말을 이었다.

     

   “응. 26호가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장비의 성질이 변한 것 같아.”

     

   오브 형태의 물건이 촉수로 변한 걸 보면 녀석 말대로 사실상 다른 물건, 아니 다른 존재가 된 거라 봐야겠지.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능력도 확인할 수 있어?)]

     

   내 질문에 이사벨이 다시 구체를 보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서 그런지,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 상태는 아니야.”

   [즈즈 즈즈즈(역시 그런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촉수가 있는 한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건 이미 확인했다. 무리 전체가 26호를 우두머리처럼 여기고 있었으니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를 미친듯이 갉아댔던 것도 이제 이해가 간다. 배 안에 있는 26호가 갇혀 있는 걸로 오인해서 그런 것이리라.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놈들이 돌변할 가능성은?)]

   “밖에 있는 개체들도 확인해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해. 아마 타이타보스를 죽여도 저항하지 않을 걸.”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저 물건 위험하지는 않겠지?)]

   “몸과 융화된 상태라 문제없을 거야.”

     

   나와 이사벨이 얘기하는 동안 26호는 밖으로 뺀 촉수를 다시 몸으로 집어넣었다.

     

   촉수 끝에 달린 구체를 자르면 어떻게 될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사벨은 저 도구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괜히 분리했다가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아까운 무기를 헛되게 날리는 셈이 된다.

     

   그리고 녀석을 통해 저 은색 괴물들을 부리는 거나, 내가 아이템을 빼앗아 직접 부리는 거나 큰 차이가 없다.

     

   ‘메탈릭 그렘린 군대라.’

     

   어찌 됐든 우주의 약탈자 무리가 나의 것이 됐다. 잘 활용한다면 메가콥이나 스타유니언의 영토를 침공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다.

     

   ‘좋아.’

     

   놈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 문제는 여기까지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이 성계에서 남은 볼일은 두 가지다.

     

   메탈릭 그렘린을 먹고 얻은 특성을 확인하는 것과 우주 공간을 떠도는 암석을 가져와 마운틴크롤러에게 먹이는 것.

     

   ‘아, 그러고 보니….’

     

   싸우느라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추진기가 부서진 채 떠도는 함선 3척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

     

     

   “이런 썅! 왜 아직 불이 안 들어오는 거야?”

     

   어두컴컴한 상황실 안에서 프랭크가 고함을 질렀다. 손에 들린 손전등의 빛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 흔들렸다.

     

   “그, 그게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그래서?”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뭐 씨발? 밖에 좆같은 씹새끼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확인? 당장 배를 못 움직이면 우리 다 뒈진다고! 알아?”

     

   수수께끼의 함선이 시선을 끄는 동안 도망치려 했는데 이 모양이다.

     

   배가 갑자기 크게 흔들린 뒤, 내부 시설 중 상당수가 먹통이 됐다. 생명 유지 장치는 아직 작동 중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당장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의 미래는 정해져 있을 뿐이다.

     

   ‘젠장!’

     

   새로 나타난 함선이 시간을 끌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 행운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너희들. 여기서 정상이 될 때까지 고쳐.”

   “예? 하지만….”

     

   부하들의 눈에 불안과 반발심이 깃든다. 프랭크도 그걸 알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알아. 씹새끼야. 내가 가서 확인할 테니까 여기서 대기해.”

   “아, 옙!”

     

   불안해 하던 부하들은 부두목이 직접 가서 살펴보겠다고 말하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개인 통신기는 작동하지? 그거 켜두고 기다려. 너, 너는 나를 따라와.”

     

   플라즈마 라이플을 손에 쥔 프랭크는 부하 2명을 데리고 상황실을 나섰다.

     

   에너지 공급이 끊긴 복도는 정말 어두웠다. 3명은 손전등의 빛에 의지해 금속 통로 위를 걸었다.

     

   “뭐가 이리 조용해?”

   “다들 어디 갔지?”

   “닥쳐 새끼들아.”

     

   어둠에 잠겨 있긴 해도 평소 다니던 길이다. 손전등이 있는 이상, 이동하는 것 자체에는 지장이 없다.

     

   문제는 소리였다.

     

   그들이 걷고 있는 복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제아무리 함선 설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이 침묵에 오히려 안도했다.

     

   ‘아직 시간이 있어.’

     

   메탈릭 그렘린 무리가 공격했다면 지금처럼 조용할 리 없다. 놈들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들 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려는 부하들과 달리 프랭크는 왼쪽으로 향했다.

     

   “어? 이쪽 길이 아닌데요?”

   “이쪽으로 가면 격납고가 나옵니다만….”

   “나도 알아.”

   “예?”

     

   프랭크가 봤을 때 이 배로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배가 무언가와 충돌해서 이 꼴이 되기 전에도 이미 추진기에 문제가 있었다. 그때 이미 이 배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함재기를 타고 이 배를 탈출한다.”

   “예?”

   “밖에 놈들이 깔렸는데 함재기를 탄다고요?”

     

   부하들은 얼토당토않은 농담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프랭크는 진심이었다.

     

   밖에 있는 메탈릭 그렘린 무리는 그 수가 매우 많다. 먹을 입이 많은 만큼 당연히 큰 먹이를 먼저 노릴 터.

     

   “이 배로 시간을 끌 동안 좆나 튀면 돼.”

   “어, 그, 그건….”

   “카르텔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우리 셋만 말을 맞추면 걸릴 일도 없어. 그러니까 아가리 닥치고 있어.”

   

   프랭크는 그 말과 함께 플라즈마 라이플로 부하들을 겨눴다. 그에 부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경계나 잘….”

     

   부하들에게 경고하던 중 그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발소리와 헐떡거리는 숨소리였다.

     

   소리는 그 혼자 들은 것이 아니었다. 셋이 들고 있는 손전등이 짙은 암흑이 깔린 전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발소리를 낸 장본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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