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84화 (385/400)

     

   “뭐야?”

   “저거 부두목의…?”

     

   상대는 프랭크가 데려온 사이보그 노예였다. 알몸의 성노예가 뛰어와 주인의 품에 안겼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주, 주인님! 저기에 괴물이 있어요!”

   “뭐?”

     

   노예 입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라는 단어에 세 명 모두 몸을 굳혔다.

     

   프랭크는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두 명의 부하들이 바짝 긴장한 채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복도 끝에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돈 순간, 그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가다 멈….’

     

   라이플을 들고 뒤따라가던 프랭크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합금 판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벽은 붉은 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 위에 금속 색깔의 외피를 가진 무언가가 서 있었다.

     

   족히 수십 개는 될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팔을 지닌 그 존재는 뭔가를 통째로 삼키는 중이었다. 피범벅된 팔들 사이로 두 다리가 살짝 보이다가 사라졌다.

     

   해적 한 명을 순식간에 삼킨 괴물이 손전등의 빛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존재의 얼굴은 프랭크가 안고 있는 성노예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입가에 묻은 피가 아니었다면 해적 하나를 잡아먹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늘처럼 새파란 눈을 가진 괴물은 해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벌렸다. 사람을 가볍게 삼킬 정도로 턱이 크게 벌어지고, 그 안에서 엄니를 연상시키는 갈고리 이빨 2개가 튀어나왔다.

     

   “히이익?!”

   “으아아악!”

     

   이국적인 느낌의 얼굴이 흉측한 괴물로 변하자 해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들고 있던 레이저 소총으로 괴물을 공격하려 했다. 하나 괴물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접근한 괴물이 뱀처럼 긴 몸통을 이용해 프랭크의 부하 두 명을 동시에 휘감았다. 몸에 달린 수많은 팔들이 부하들의 몸을 찢어발긴 것은 덤이었고.

     

   “켁!”

   “사, 살려….”

     

   부하들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는 와중에도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괴물이 몸을 휘감은 탓에 숨이 막혀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제야 프랭크는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씨, 씨발!”

     

   플라즈마 라이플이 있지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프랭크가 택한 것은 부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도주였다.

     

   “이거나 처먹어라!”

   “꺄아아…커헉?!”

     

   그는 안겨 있던 사이보그 노예를 세게 밀었다. 앞으로 넘어지던 노예는 괴물의 꼬리에 달린 날카로운 가시에 찔렸다.

     

   “……?”

     

   자기 꼬리에 찔린 여자 노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괴물. 적이 노예에 관심을 갖는 사이 프랭크는 서둘러 반대편으로 달렸다.

     

   “난 죽을 수 없어!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미친 듯이 질주한 덕에 그는 함재기가 위치한 격납고에 금방 도착했다. 괴물은 그가 버린 노예를 먹느라 바쁜 것인지 쫓아오지 않았다.

     

   격납고의 문을 함재기에서 열 수 있도록 설정한 그는 재빨리 작은 전투기에 올라탔다.

     

   “나는 안 죽어. 나는 안 죽는다고.”

   마르시오 카르텔이 붕괴할 때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만큼 운이 좋은 그가 이런 자리에서 죽을 리 없다.

     

   그렇게 믿으며 프랭크는 격납고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빛이 거의 없는 우주 공간에 배 1척이 떠 있다. 그의 휘하에 있는 해적선이다.

     

   그리고 그 뒤에 처음 보는 배가 있었다. 그 배는 해적선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응?”

     

   다시 보니 바짝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낯선 배가 해적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대형 구축함이나 대형 전함이 소형 초계함을 배에 적재하거나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배는 커다란 이빨과 턱으로 해적선을 통째로 씹어대는 중이었다. 흩어져 떠다니는 금속 파편들은 주변에 맴도는 은색의 구름이 처리했다.

     

   그걸 본 프랭크는 조종간을 놔버렸다.

     

     

   -

     

     

   메탈릭 그렘린에게 습격 받던 배들의 주인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즈(저 자가 시노미츠 카르텔의 부두목이라고?)]

   “응.”

     

   내 질문에 이사벨이 긍정했다.

     

   이 주변에 해적이 많이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었다.

     

   해적이라면 시노 연합에 관해 알고 있을 수도 있어서 이사벨에게 부탁했다. 내가 배를 삼키는 동안, 다른 배에 잠입해서 상대의 정보를 읽어달라고 말이다.

     

   사실 배 표면에 스페이스독 마크도 없고, 일반적인 해적선처럼 지저분하게 개조한 것도 아니라서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반 상선들로 꾸려진 소규모 선단일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시노 연합 소속 해적이라니.’

     

   하마터면 모르고 전부 먹어버릴 뻔했다.

     

   나는 이사벨을 먼저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부두목을 내려다 봤다. 그는 넋이 나간 상태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그런데 상태가 왜 저래?)]

   “부두목한테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가 잡으려 할 때도 저 꼴이었거든.”

     

   여태껏 나의 본체를 마주한 사람은 반응이 둘 중 하나다. 무서워서 벌벌 떨거나, 아니면 나를 죽이고 싶어 이를 박박 갈거나. 프랭크라는 이름의 해적은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난 왜 저런지 알 것 같은데.」

   「그우우우」

     

   길들인 마운틴크롤러에게 함선의 합금 파편을 먹이고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제대로 겁을 준….」

   “배에서 해적들이 노예를 부리고 있었어. 심지어 저 새끼는 자기만 살려고 노예를 미끼로 던졌고.”

   「…겁만 주지 말고 더 괴롭혀도 됐을 텐데. 아니면 그냥 죽여 버리던가.」

   「그우?」

     

   둘 다 노예였거나 노예가 될 뻔했던 기억이 있기에 스페이스독과 싸울 때는 자비가 없었다.

     

   ‘뭐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기생충으로 감염시킬 거니까 괜찮겠지.’

     

   기생충의 좋은 점은 상대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 상관이 없다는 거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기생충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수월하게 새 몸을 찾아갔다.

     

   ‘그럼 몇 가지 좀 물어볼까.’ 

   “시노 연합은 6개의 카르텔이 뭉친 집단이라던데, 각자 어디서 활동하는지도 알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물어보니 프랭크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이름에 3이 들어가서 그런 걸까? 프랭크는 전에 만났던 시노로쿠 카르텔의 두목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 혹시 연합의 두목이 누구인지도 알아?”

   “그것은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는 압니다.”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디 있는지 안다고?”

   “연합에서 주기적으로 회의를 합니다. 그때는 연합의 두목도 회의에 참여합니다.”

     

   그것도 꽤 흥미로운 정보다.

     

   ‘메가콥 식민지부터 턴 다음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현재 시노 연합의 두목은 플레이어거나 그와 관계된 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파벌은 아마도 지배파. 물론 나와 같은 아웃사이더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마 아닐 거다.

     

   ‘그랬으면 애초에 연합을 안 만들었겠지.’

     

   에이모프만큼은 아니더라도 스페이스독은 지성체 종족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연합을 만들면 다른 이들에게 주목받기 딱 좋다.

     

   상대는 지배파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대놓고 연합체를 굴리고 있는 것이리라.

     

   ‘잘됐어. 지배파하고도 계산해야 할 것이 있으니까.’

     

   이사벨이 귀환파와 악연이 있다면, 지배파는 하늘의 어머니, PS-111과 원한 관계에 있다. 지배파에 속하는 메가콥과 스타유니언 랭커들과도 언젠가는 싸우게 될 터. 그 전에 해적 플레이어를 통해 지배파의 정보를 얻어두면 큰 도움이 될 거다.

     

   나는 PS-111을 시켜 시노 연합의 플레이어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 뒤 고장난 해적선으로 놈을 돌려보냈다. 시노로쿠 카르텔한테 했던 것처럼 내가 해적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배를 채우려고 잠시 들렸는데 의외로 얻은 게 많네.’

     

   메탈릭 그렘린 군대, 해적 플레이어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새로운 타입의 특성도 얻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전에 얻었던 특성이지만.’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마구잡이로 잡아먹은 덕분에 전에 얻었던 ‘워프 생물’ 특성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워프보이’한테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인데 운이 좋았다고 할까.

     

   ‘굶주림’ 특성의 부작용 때문에 나빠진 기분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아직 누군가가 뒤를 쫓아오는 것 같은 초조함은 남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조금만 더 배를 채우고 떠날까.’

     

   나야 그렇다 쳐도 마운틴크롤러는 배가 고플 거다.

     

   나는 우주에 떠다니는 암석들을 마운틴크롤러에게 적당히 먹인 뒤, 다시 초광속 항해를 준비했다.

     

   「■■■」

     

   26호를 따르는 타이타보스와 무리들도 나를 따라 초광속 항해에 돌입했다.

     

   ‘에이모프면서 메탈릭 그렘린과 함께 초광속 항해라니.’

     

   게임에서는 볼 때마다 희귀 유전자 정수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는데, 이렇게 함께 비행을 할 줄이야.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워프 생물은 초광속 항해 돌입까지의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특성.

     

   나는 이곳에 오기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계를 벗어났다.

     

     

   -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 위에 여왕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외피의 색깔을 검은 우주 공간처럼 바꾸고 있던 여왕은 ‘포식자’가 남긴 잔여 에너지를 확인했다.

     

   「‘포식자’가 ‘짐승들’과 만나고 돌발 행동을 한다.」

   「‘짐승들’의 흔적 때문에 추적 어렵다.」

   「여제와 ‘위대한 원수’의 계획에 지장없다. ‘두 번째 함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첫 번째 미끼’와 접촉했다. ‘첫 번째 함정’도 유효하다.」

   「여제에게 보고한다.」

   「추적을 중단하고 귀환한다.」

     

   그 말을 끝으로 여왕은 우주의 암흑 속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갤러곤의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운틴크롤러를 옮기는 일이었다.

     

   100m에 버금가는 덩치를 지닌 녀석을 기가크래커에 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가크래커가 슈퍼무기에 속하긴 하나 그 근본은 채굴선이다. 광물을 적재할 때 사용하는 대형 게이트가 있다. 침식한 배를 해당 게이트 크기에 맞춰 변형시킨 뒤 도킹하는 식으로 마운틴크롤러를 옮겼다.

     

   관리는 콜드블러드와 미니 스크리머들에게 맡겼다. 사실 관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기가크래커에 광물을 옮겨서 먹이로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

     

   마운틴크롤러를 옮긴 뒤, 나는 애들에게 필요한 것 몇 가지를 갖다 달라고 했다. 아드하이의 둥지에 들리지 않고 곧바로 메가콥 식민지에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을 가장 먼저 가져온 건 PS-111이었다.

     

   “MPS-05를 가져왔습니다.”

     

   녀석이 들고 있던 미니 스크리머를 내 본체 앞에 내려놓았다.

     

   [즈즈즈즈즈(오랜만이네)]

   “출동! 출동!”

     

   여성의 얼굴에 금속 다리 8개가 달린 작은 스크리머, MPS-05가 다리 한 짝을 들어서 내게 인사했다.

     

   이 앙증맞은 미니 스크리머는 통신 교란 및 연결에 특화된 모델이다. 메가콥 연구시설을 공략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다.

     

   ‘전에 베르잔02에 잠입할 때도 꽤 도움이 됐지.’

     

   MPS-05는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배와 연결된 내 몸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 얻은 특성도 나중에 이식해 봐야겠네.’

     

   메탈릭 그렘린을 잡아먹으면서 얻은 특성은 ‘워프 생물’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나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줬던 특성 ‘하이재킹’의 재료인 ‘전파 장애’도 확보할 수 있었다.

     

   전파 장애와 ‘손재주’ 특성이 합쳐지면 기계를 짧은 시간 동안 조종할 수 있는 하이재킹 특성이 된다. 이걸 새 미니 스크리머에게 이식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아니면 그냥 PS-111한테 줄까?’

     

   우주괴물 타입 2단계 보상으로 얻은 ‘이중나선의 모노리스’을 이용하면 녀석에게 특성을 최대 2개까지 넘겨줄 수 있다. 이미 전에도 녀석에게 특성 하나를 이식했으니 이제 하나 남았다.

     

   ‘은밀 기동을 줬었지.’

     

   베르잔02에서 노예 상인으로부터 받은 생물 중 ‘스노우밴시’도 있었다. 놈은 눈 위를 거닐 때도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조용한 포식자다. 이러한 스노우밴시의 특징이 특성화된 결과물이 바로 ‘은밀 기동’이다.

     

   이미 이 특성을 보유하고 있던 나는 스노우밴시를 포식하기 전에 PS-111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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