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 기동은 방어력을 그대로 유지해주면서 몸무게는 줄여주는 특성. 나 다음으로 잠입 관련 활동이 맞은 녀석에게 알맞은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특성을 받은 녀석은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고.
여기서 하이재킹까지 이식하면 잠입과 정보전의 스페셜리스트가 될 거다.
‘어차피 전파 장애는 없어도 돼.’
탐지 시스템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암흑 장막’을 얻은 시점부터 전파 장애의 중요도가 낮아졌다. 기계를 무효화시킬 뿐 아니라 조종도 가능한 하이재킹은 여전히 유용하지만, PS-111이 있는 상황에서는 딱히 필요가 없다.
‘뭐,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볼까.’
PS-111이 미니 스크리머를 들고 내게 찾아온 뒤, 얼마 안 있어 다른 애들이 내 배로 돌아왔다.
「큰어른」「먹이」「가져왔어」
「애기들 먹는 애기밥이야!」
「버섯처럼 생겨서 이런 맛이 난다는 게 신기하다니까.」
“맞아.”
아드하이의 둥지에 내려갔다 온 넷은 나의 본체 앞에다 가져온 것들을 쏟아냈다. 느타리버섯을 조각낸 것처럼 생긴 식물이 산처럼 쌓였다.
저건 갤러곤 둥지 주변에서 서식하는 식물이다. 전에도 한 번 먹어 본 적이 있다.
‘아몬드우유 맛이 나는 살구 통조림 느낌이었지.’
조합만 봐서는 이상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큰어른」「왜」「어린 동족」「먹이」「먹어?」
아드하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 말대로 저건 블루 갤러곤들이 주로 먹는 식물이다. 식물 자체에 물기가 많고 영양이 매우 풍부해서 어린 갤러곤들의 주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때 옆에서 26호가 자기는 안다는 듯 촉수를 들었다.
“나 알아! 정자하려는 거지? 정자!”
“정자가 아니라 저장입니다. 발음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즈 즈즈즈즈즈즈즈(맞아. 저장하려는 거야)]
이번에 메탈릭 그렘린 무리와 조우한 일은 다행히 잘 풀렸다. 하나 앞으로도 이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굶주림’의 부작용 때문에 행동과 사고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녀석들에게 내가 배고플 때마다 먹을 식량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뭐, 나만 먹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애들과 함께 먹이를 구하러 갔던 하늘의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리폰 형태를 취한 그녀는 식물 파편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거 요리해서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독도 없고.」
“실제로 이거랑 비슷하게 생긴 버섯을 사용해서 만드는 스프가 있어.”
「진짜로?」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한번 만들어볼게.”
비교적 인간의 정신이 많이 남아 있는 그리폰과 뮤턴트 스크리머는 식량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얘기 중이었다.
“…….”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의 뒤편에서 허겁지겁 먹이를 먹는 세찬이 보였다. 도착 전까지 몇 개 안 되는 칼로리바로 버틴 놈은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기생충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놈은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인 LV-06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도착하기 전까지는 되도록 살려 둬야 한다.
「그러면 저장하는 애기밥 더 가져올게.」
「동족」「지원」「먹이」「이동」「부탁할게」
[즈(그래)]
「나도 갔다 올게.」
“나도.”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그 후 애들이 몇 번 더 왕복하니 배에 약 일주일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쌓였다. LV-06까지 가는데 길어봐야 5일 정도 걸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봐야겠지.
‘그럼 가 볼까.’
애들이 각자 배 내부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초광속 항해를 준비했다. 나를 둘러싼 배가 푸른빛에 휩싸이자 주변에 머물던 메탈릭 그렘린 무리도 똑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안 데려갈까 생각했지만.’
우주에 진출한 지성체들에게 메탈릭 그렘린은 사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녀석들과 함께 성계에 진입하면 모두 저 은색 구름에만 집중할 거다. 그사이 배로 위장한 나는 무사히 식민지 위에 착륙하면 되고.
잠시 후, 생체 조직으로 덮여 있는 배 외벽에 강한 압력이 들이닥쳤다.
빛과 공간을 초월한 영역이 나를 인도한다. 나는 26호가 부리는 새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성계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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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콥 공식 지정 식민지 LV-06.
메가콥의 모든 식민지는 특정 목표에 따라 운용된다.
어떤 곳은 인적 자원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어떤 곳은 행성 내 자원 채굴을 주 목표로 삼는다. N-51 성계에 위치한 LV-06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식민지의 주력 상품은 바로 오락.
LV-06의 소유자 프라임캐피탈 자오 가문은 이 행성을 엔터테인먼트 촬영 장소로 사용한다. 행성에 지어진 대부분의 건물, 그 안에서 거주하는 인간들 모두 오락물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세트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소유주가 어떠한 오락물을 만들고자 하느냐에 따라 식민지민들의 운명이 갈린다. 전쟁물 촬영한답시고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거나, 실감나는 드라마를 위해 실제로 가족을 죽이도록 강제한다거나 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온갖 비윤리적 행위가 다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 LV-06이다.
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지옥이나 다름없던 곳이 최근에는 꽤 조용해졌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쯤 LV-06의 총독이자 오락자원개량연구소장 리 자오가 화성으로 복귀한 이후, 행성 전체가 줄곧 어수선한 상황이다.
그뿐만 일까?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메가콥 CEO의 갑작스러운 발표로 인해 식민지의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노블캐피탈 내부에서 CEO 아키라 유진이 제시한 ‘임시연방추진론’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이게 성사되면 스타유니언, 컬트 제국과의 관계 개선….」
“예. 연구소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예. 예.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꾸며져 있는 집무실.
한 남자가 시선은 책상 위에 있는 홀로그램 장치로부터 송출되는 뉴스에 고정한 채, 통신기로 통화 중이었다.
“예? 공사라 하시면, 그 10일 전에 지하에 파묻은…아, 아닙니다! 토를 달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남자는 벌떡 일어나 단말기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확인하고 바로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리 자오 총독님. 그럼.”
이윽고 남자, 총독 대리는 통신이 종료된 단말기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연구소 보안도 체크해야 하고, 쓸데없는 지하 공사건도 확인해야 하고…쯧, 오늘도 잠자기에는 글렀군.”
총독 대리는 혀를 차며 홀로그램 뉴스에 시선을 돌렸다.
「스타유니언은 휴전의 선물로 아웃스페이서 특수개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로 하고, 메가콥에서는 이에 대해….」
“하. 아무리 아웃스페이서가 무섭다고 해도 그렇지 저 미친 깡통 새끼들과 휴전이라니…응?”
그는 갑자기 뉴스 위로 붉은색 메시지가 나타난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N-51 성계에 메탈릭 그렘린 출…뭣?!”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자마자 총독 대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다급히 홀로그램 장치 옆에 있는 컴퓨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메탈릭 그렘린이라니! 그것도 대규모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총독 대리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행성에 있는 한, 그가 메탈릭 그렘린의 습격을 받을 일은 없다. 놈들은 행성 대기권에서 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행성 밖에 설치된 통신 위성, 성계를 감시하는 함대 등은 안전하지 않다. 만약 그것들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부 그의 책임이다.
잠시 후, 식민지에 주둔한 방위함대 전부가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출동했다. 홀로그램 장치에서 성계 지도가 출력되고, 함대의 움직임이 표시되었다.
식민지와 우주요새에서 출발한 세모 모양의 마크들이 엑스 모양 마크를 포위하듯 움직인다. 몇 분 후면 엑스 마크와 충돌할 것이다.
‘제발…!’
제발 적은 피해로 끝나기를 기도하는 그때, 홀로그램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표시한 엑스 마크가 느닷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 이거 왜 이래?”
설마 적이 탐지 시스템을 교란한 것인가 싶어 당황해하고 있는데, 새로운 보고가 그에게 날아왔다.
‘무리 이탈 확인? 뭐야? 진짜 도망간 거야?’
보고를 받아도 믿기지 않아 통신기로 방위함대에 직접 연락까지 했다. 대답은 똑같았다.
“하, 하하.”
위기가 가셨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그는 의자에 푹 파묻혔다.
‘아무래도 한 잔 해야겠어.’
리 자오가 시킨 일이 있긴 하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무실을 나서려던 찰나, 주머니에 든 개인용 통신기가 울렸다. 통신기를 확인한 그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허, 이놈은 언제 이곳에 왔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낸 자는 제법 오랫동안 알고 지낸 비즈니스 파트너다.
‘마침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상대로부터 접대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통신기를 활성화했다.
“세찬인가. 최근 거래 때문에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이 행성 어딘가에 있을 상대와 대화하며 집무실을 떠났다.
LV-06에 들어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메탈릭 그렘린 무리가 시선을 끈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시간이 더 걸렸겠지.
[즈즈즈즈(녀석들은?)]
「갔어!」
은색 촉수를 안테나처럼 세운 26호가 내 물음에 답했다.
「부르면 다시 온대! 잘했지?」
[즈즈즈(잘했어)]
녀석은 저 촉수를 이용해 성계 밖에 있는 메탈릭 그렘린과도 연락을 취할 수 있다. 그래서 녀석에게 부탁했다. 내가 행성에 진입하는 즉시, 메탈릭 그렘린들을 뒤로 후퇴시켜달라고 말이다.
‘그대로 싸워도 녀석들이 이기겠지만….’
그렇게 하면 수가 많이 줄어든다.
이후 랭커들과 싸울 때 녀석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여기서 아깝게 소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튼 녀석들은 안전히 물러났다. 내가 요청하기 전까지 26호의 새 친구들은 다른 성계를 떠돌며 지낼 터.
나는 녀석들에게 신경을 끄고 배 밖의 상황에 집중했다.
‘메가콥 식민지에 온 것도 오랜만이네.’
현재 내가 침식한 배는 어느 한적한 공원에 착륙한 상태다. 공원 주변에는 수많은 빌딩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나 그 안에서 인간의 움직임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된 빌딩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간의 수. 왜 저런 상태인지는 얼추 짐작이 간다.
‘지금은 아직 촬영 때가 아닌가 보네.’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메가콥은 꽤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인간이 주가 되는 세력이고, 사회 및 문화도 현대인에게 친숙한 형태다. 처음 게임을 접하는 사람이면 친숙함을 느끼기 쉽다.
다만 게임 좀 오래한 플레이어에게 이 게임에서 가장 사악한 세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메가콥이라 대답한다.
메가콥의 악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용인’이다.
설정상 고용인은 인간이 아니라 지능이 약간 높은 가축, 혹은 살아 있는 기계 취급이다. 고급 고기나 안드로이드가 고용인보다 비싸므로 사실상 매우 저렴한 도구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 보니 메가콥의 고용인은 노예보다 안 좋은 취급을 받는다. 똑같이 노예를 부리는 컬트 제국이 선 세력으로 분류되는데 반해, 메가콥이 악평을 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고용인의 지위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가진 빚을 ‘변제(辨濟)’해야만 하는데, 만약 이를 달성하지 못할 시 자손에게도 빚이 이어진다.
설정에 따르면, 식민지 거주민들은 이러한 변제 활동에 실패한 자들이거나 그 후손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어느 식민지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식민지민들은 노예나 가축보다 못한 삶을 산다.
‘괜히 극악무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니지.’
물론 오히려 그게 메가콥의 매력이라 말하는 플레이어도 적지 않다. 인권이 경시된 미래 사회라는 설정은 SF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 그건 현실이 아닌 게임일 때나 내릴 수 있는 평가지만.’
내가 찾아온 이곳, LV-06은 오락을 위해 존재하는 식민지다. 이 행성에 있는 모든 요소가 식민지의 주인이 원하는 오락물에 동원된다. 공원과 빌딩은 물론이고, 사람들 또한 오락물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일종의 세트, 도구다.
‘여기는 보니까 시대극을 만드는 장소인가 보네.’
공원의 분위기나 빌딩의 디자인이 제법 낯이 익다. 메가콥이 탄생하기 전의 지구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물을 만드는 곳 같다.
메가콥의 시민들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오락물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게 아니라면 만족하지 못한다. 그 탓에 메가콥의 엔터테인먼트는 현실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위가 높다.
‘여기도 아마 그렇겠지.’
촬영이 시작되면 사방에서 피 냄새가 풀풀 날 거다.
「큰어른」「나」「밖」「나갈래」
「나도 나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