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추격해 오던 아웃스페이서가 이를 기회라 여겼는지, 4개의 날카로운 흉기로 내 몸을 찌르려고 한다.
놈이 아는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헬사이드 호넷의 유전자 정수를 보유하고 있다. 내 전투용 팔 끝에서 튀어나온 대형 뼈 낫과 놈의 칼날이 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놈의 팔 중 2개에 달린 칼날이 그대로 박살났다.
‘예리하다고 다가 아니지.’
나는 놈보다 몸이 거의 2배에 달한다. 당연히 전투용 팔에 생성시킨 칼날의 크기도 훨씬 크다.
하지만 놈은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길쭉한 주둥이를 쩍 벌린 놈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침식 촉수들이 일제히 놈에게 뻗어 나갔다. 촉수의 부속지가 놈의 다리와 꼬리를 할퀴었다.
그 상태로 꽉 붙들어 메두사 기관으로 죽이려 했는데, 방해가 들어왔다. 작스 알파급 전함이 발사한 초거대 열선이 내 등에 직격했다. 촉수 하나가 뜯어지고 배갑(背甲)이 움푹 파였다. 그 탓에 잡고 있던 아웃스페이서를 놓치고 말았다.
놈은 부속지에 닿은 부위를 망설임 없이 칼날로 잘라버린 뒤, 빠르게 물러났다. 특수한 개체인만큼 회복 수단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금방 회복해서 돌아오겠지.
하나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놈을 쫓지 않았다.
대신 변형된 팔을 원래대로 돌리고 내 몸 주위에 ‘암흑 장막’을 깔았다.
그렘린 이끼를 기체화시켜 뿌리던 생체 파이프가 이번에는 칠흑과 같은 안개를 뿌렸다. 적 함대의 주포가 재차 불을 뿜었지만, 장막 뒤에 숨은 나를 맞춘 배는 없었다.
그 상태로 나는 각 머리들의 입을 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안에 있던 애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즈즈즈즈 즈 즈즈즈즈즈(미안하지만 좀 도와줘야겠어)]
「사냥」「시작?」
「나쁜 인간 많아!」
「…결국 이렇게 된 건가. 뭐부터 도와주면 될까?」
이런 상황이지만 애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6호는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는 적들을 마크하고,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는 함대를 상대할 예정이다. PS-111은 내 위에서 지원 사격을 할 거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사벨의 역할이다.
‘만상의 천안이라면 적의 비장의 수를 캐치해 낼 수 있을 거야.’
상대의 정보를 읽는 이사벨의 특전이라면 초광속 항해를 방해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적들이 숨겨둔 카드가 또 있다면 이사벨이 발견하고 알려주겠지.
[즈 즈즈 즈즈즈즈(좋아. 모두 이해했지?)]
「응! 이해했어!」
「강적」「사냥」「어려워」「그래도」「노력할게」
「후우, 쉽지 않겠지만 해야만 하겠지.」
사념파와 파장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멤버들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보내 왔다.
「우주, 소통, 어려움, 다만, 노력합니다.」
「나도, 도와, 줄게.」
재구성될 당시 26호로부터 사이킥 파워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을 배운 PS-111, 그 기술을 그대로 이식받은 이사벨도 어눌하게라도 응답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최대한 다치지 않게 조심해)]
「응! 큰애기도 아프면 안 돼!」
「동의」
솔직히 현 상황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 종족의 랭커의 지휘를 받는 대규모 함대와의 전투는 이 세계에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애들이 다치지 않길 바라지만, 그건 역시 욕심이겠지.
‘하지만….’
이 세계에 온 이후, 나의 삶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위험과 강대한 적이 쉴 틈 없이 나의 생존을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그 끝에 서 있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와 나의 가족은 살아남을 것이다.
나와 애들을 둘러싼 검은 구름이 연신 번뜩인다.
적 함대가 날린 플라즈마 열선이 ‘암흑 장막’을 관통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를 맞추지 못하고 있지만,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 적은 과거에 나와 수십 번 이상 싸워 본 랭커들이다. 암흑 장막의 파훼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터.
적들이 장막을 뚫고 공격해 오기 전, 나는 강력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나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특성, ‘사냥의 표상’ 말이다.
시야가 암전한다. 딱딱한 갑각이 눈, 그리고 턱 아래에 보조기관을 감싸는 게 느껴진다. 보조기관을 감싼 갑각이 칼날 형태로 완성된 순간, 내 감지 영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참 멀리서 플라즈마를 충전하고 있는 군함들, 암흑 장막을 향해 다가오는 크고 작은 비행체들, 내 등에 올라탄 PS-111과 이사벨의 움직임 등등. 강화된 보조기관이 온갖 요소들을 샅샅이 잡아낸다.
심지어 내 몸에 있는 상처들이 회복되는 과정까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였다. 감각을 집중하니 변화한 몸 상태가 보조기관을 타고 뇌까지 빠르게 전달되었다.
100m를 가볍게 초과하는 길이로 성장한 몸, 인두 턱(咽頭顎)이 생긴 입, 허리 부근에서 튀어나온 뼈 낫 팔 등의 변화는 몇 번 겪어 봤기에 익숙했다.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파괴수 갑피’ 덕분에 색깔이 다채로워졌다는 부분일까.
‘좋아.’
변이를 마친 나는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로 몸을 한 차례 쓸었다. 생체 대포를 단 아웃스페이서들이 내게 쏜 투사체들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육신 강화, 확인. 전투력, 상승 기대. 대신 부피 증가, 사격 취약.」
「걱정, 마. 언니. 얘, 피하는 것, 전문, 이니까.」
이사벨과 PS-111이 사냥의 표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갑자기 암흑 장막에 변화가 발생했다.
‘이건?’
보이지 않는 힘이 검은 안개를 압박하더니 한 곳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마치 암흑 장막을 작은 크기로 응축시키려는 듯이 말이다.
‘과연.’
암흑 장막은 탐지 시스템을 무효화시킨다. 그렇기에 장막 뒤에 숨으면 함선의 함포를 조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다만 장막의 효과는 탐지가 안 되게 만드는 거지 공격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날아오는 열선에 대한 방어 효과는 전무하다.
그리고 장막이 영향을 미치는 곳은 탐지 시스템에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관측 불가 영역 표시가 뜬다. 특별한 조준 없이 관측 불가 영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제이슨을 재료로 사용해 만든 스크리머들이 사이킥 파워를 이용해 지금 장막 자체를 축소시키고 있다.
장막의 크기가 줄어들자 강렬한 에너지 반응이 나의 머리를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중앙의 머리를 옆으로 살짝 비틀어서 열선을 피했다.
‘정확도가 올라가고 있어.’
슬슬 다음 카드를 꺼낼 차례다.
[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곧 움직일 테니 얘기한대로 해)]
괴물의 촉수를 움직여 애들한테 파장을 보낸 뒤, 나는 다음으로 쓸 특성을 사용했다.
-
“아키라 님. 스타유니언의 스크리머가 목표 타깃팅에 성공했습니다.”
함교에 마련된 옥좌에 앉은 아키라는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지도에 시선을 뒀다. 정상적으로 구현된 홀로그램 중 딱 한 지점만이 오류라도 생긴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진 가문의 기함 ‘천검’은 최첨단 탐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블랙홀 같이 특수한 사례가 아닌 이상, 천검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된 저 검은 안개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아키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놈의 저 능력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렇습니까?”
아키라의 말에 새로 임명된 코드 블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컬트들이 ‘세 머리의 악마’라 부르는 저 존재는 이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불명이다. 메가콥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생물을 그녀의 상관은 마치 잘 아는 존재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키라는 그녀의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 덕분에 공략 준비를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로군.”
스크리머 말고도 놈의 암흑 장막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여러 수단을 준비했다. 놈이 무엇을 꺼내 들어도 이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심지어 놈이 지니고 있을 특전조차도 말이다.
잠시 홀로그램을 주시하던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림자들은 어떻게 됐느냐?”
“모두 당장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됐습니다.”
“통제된 아웃스페이서들은?”
“하위 개체들은 방어 진형을 유지, 상위 개체 ‘여왕근위대’는 회복을 완료했습니다. 특수 개체는 워프차단장을 전개 중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아웃스페이서 대군이 메가콥 함대와 함께 움직이는 중이다.
이곳에 오기 전, 아키라는 유진 가문이 준비한 비장의 기술로 아웃스페이서 통제에 성공했다고 공표했다. 그래서 함대의 승무원들은 저것이 유진 가문이 비밀리에 양성한 아웃스페이서 군단으로 알고 있다.
물론 실상은 4위 랭커 여제가 지원한 병력들이지만,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아키라뿐이다.
“아키라님. 목표가 움직입니다.”
그때 홀로그램 지도에 변화가 생겼다. 암흑 장막 때문에 공백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적 마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면 저희도 움직이겠습니다.”
“그리하거라.”
코드 블랙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함교를 떠났다. 함선에서 대기 중인 다른 그림자들을 지휘해 적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떠난 뒤, 부함장이 대신 지휘를 맡았다.
“적은 첨단기기를 무력화시키는 미세 물질을 퍼뜨릴 수 있다. 초계함과 함재기는 견제와 유인에 주력하고, 전함은 장거리 사격 진영을 계속 유지하도록!”
아키라는 턱에 손을 괸 채 홀로그램 지도를 바라봤다.
사실 그는 이미 물러난 코드 블랙이나, 함선에 있는 그림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새로 제작한 그림자들이 선임자들보다 업그레이드됐고 장비도 훨씬 좋지만, 에이모프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의 역할은 에이모프를 이기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림자들의 패배가 놈을 치명적인 함정으로 인도할 것이다.
‘어디 그럼 최대한 발버둥…응?’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 홀로그램에 새로운 표시가 나타났다.
“적 다수로 확인!”
지도에 적을 뜻하는 붉은 표시는 1개가 아니라 5개였다.
‘놈의 애완동물들인가?’
컬트 제국의 베르잔02에서 벌어진 참사 덕분에 놈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아키라가 듣기로 놈은 특이한 외모의 씨 데몬, 몸집이 작은 기형 갤러곤, 제이슨이 사냥하려다가 놓친 볼프 랭커를 노예로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숨어 있었던 건가?’
에이모프의 덩치를 생각해 보면 애완동물을 숨기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터. 다만 문제는 왜 지도에 표시된 적이 다섯이나 되느냐는 점이다.
심해에 서식하는 씨 데몬은 우주비행이 불가능하다. 에이모프에게 올라탄 상태가 아니라면 이 우주 공간에서 홀로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갤러곤, 볼프 랭커, 에이모프 이렇게 셋만 표시되어야 정상이다.
잠시 후, 함재기와 초계함들이 기록한 영상 정보가 기함의 홀로그램과 동기화되었다. 홀로그램 중앙에 무중력의 세계를 유영하는 적의 모습이 나타났다.
“적 개체 확…앗! 동일 개체가 총 셋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에이모프는 총 셋이었다.
‘…분열했어?’
머리가 하나만 있는 성체 에이모프 세 마리가 세 종족의 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중이었다.
-
‘역시 혼란스러운가 보네.’
나한테 화력을 집중하던 적들이 우왕좌왕한다. 목표가 갑자기 셋으로 쪼개졌기 때문에 저러는 거다.
‘히드라 분열의 존재까지는 몰랐을 테니까.’
알샤스를 포식해서 얻은 ‘히드라 분열’은 지금까지 적에게 노출된 적이 없다. 랭커들도 복제 능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을 터.
그러니 적이 당황하는 동안에 목표물을 제거해야 한다. 나는 멀리 있는 적의 본대를 향해 가속했다.
근처에서 나를 견제하던 초계함과 함재기들이 나를 막기 위해 달라붙었다. 그들 중 일부가 함재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물체를 발사했다.
‘전투용 드론이구나.’
함선을 상대할 때라면 모를까, 나처럼 생물형 적과 싸울 때 전투용 드론은 그리 좋은 공격 수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적들이 꺼낸 것은 그만큼 준비가 됐다는 뜻. 중력장 형성 장치를 이용해 나의 움직임을 묶거나 아니면 ‘블러드 리버’를 넣은 거겠지.
「1시, 7시 방향, 리버 셋, 조심해.」
이사벨이 ‘만상의 천안’을 활성화한 채 내게 주의를 줬다.
나는 녀석이 말한 방향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목구멍 안쪽에 위치한 산성 진균샘이 즉각 작동한다. 내부에 저장된 강산성의 진균액이 뿜어져 나와 우주를 가로지른다.
마치 열선과 같은 형태로 날아오는 산성 진균을 보고 적들이 흩어지려 한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뭔가에 가로막힌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무형의 전파가 드론과 함선에 달린 추진기에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파는 내 뒤에 있는 ‘왼쪽 머리’의 등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파 장애’로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상관없다. 그 정도면 나의 산성 브레스, 그리고 ‘왼쪽 머리’ 뒤에 숨어 있는 아드하이가 공격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니.
산성 브레스에 닿은 드론들은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졌다. 개중에 어떤 것은 폭탄을 내장했었는지, 큰 폭발을 일으켰다. 다른 적들은 드론의 폭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회피하느라 정신이 팔린 적의 측면으로 붉은 별이 강습했다.
적색 드레스를 입은 용의 여왕이 함재기와 초계함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춤춘다. 함재기는 몸으로 들이받아 격추시키고, 작은 크기의 드론은 사이킥 브레스로 정리했다. 낭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간결한 움직임에 적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사이, 초계함들은 아드하이에게 견제 사격을 하며 뒤로 빠지려 했다. 하나 그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르르르」
왼쪽 머리가 사납게 이를 드러낸 채 초계함들에게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