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91화 (392/400)

     

   내가 전함들과 가까워지자 수집벌레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꽁무니를 바짝 쫓아오던 놈들이 모두 방향을 돌려 나와 거리를 벌렸다.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가 무기물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면….’

     

   거품에 닿으면 안 되는 중요한 개체가 함대 속에 숨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에이, 모프, 4시 방향.」

     

   이사벨이 말한 지점에서 이색적인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진다.

   

   초광속 항해 때 방출되는 에너지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독특한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에너지를 뿜어내는 존재의 크기는 겨우 소, 중형 구축함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특유의 에너지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저놈이구나.’

     

   다수의 전함과 아웃스페이서들의 보호를 받는 저 생명체가 바로 초광속 항해를 방해하는 존재다.

   

   적 랭커들이 나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마련한 히든카드를 마침내 발견했다.

   사냥의 표상 상태가 되면 시각이 사라지는 대신, 다른 감각기관의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코와 귀가 없는 에이모프의 경우에는 턱 아래에 위치한 촉수 형태의 보조기관이 집중적으로 강화된다.

     

   그 덕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인지하거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에너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보조기관으로 확인한 저 아웃스페이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개체였다.

   

   ‘여왕을 개조한 것 같은데.’

   

   전에 베르잔02에서 싸웠을 때도 그렇지만, 4위가 부리는 여왕들은 외형이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 탓에 어떤 유전자 정수를 재료로 써서 만든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아니면 놈이 보유한 특전 때문일지도.’

   

   아무튼 저 특수개체가 나의 퇴로를 차단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했다.

     

   놈의 주변에는 20m 크기의 비행괴수 3마리가 있었다. 아마도 정체불명의 아웃스페이서를 호위하는 역할이겠지.

     

   만상의 천안으로 적을 관찰하던 이사벨이 사념파를 보냈다.

     

   「적, 특, 징 봤어. 비행, 괴수, 에, 너지 흡수, 가능해.」

   [즈즈즈 즈즈 즈즈(가운데 있는 놈은?)]

   「항해, 에너지, 차단. 할 수 있어. 범, 위, 매우 넓어. 그리고, 에너지 감지, 고속, 초광속 항, 해, 할 수 있, 어.」

   [즈즈(고속?)]

   「거의 워, 프보이, 수준.」

     

   얘기를 들어 보니 저 4마리의 아웃스페이서가 뭘 노린 구성인지 알겠다.

     

   ‘사이킥 브레스와 검은 탐식자 대포의 카운터.’

     

   에너지 흡수 능력을 보유한 비행괴수는 사이킥 브레스를, 가운데 있는 특이 개체는 ‘검은 탐식자 대포’를 막는 용도다.

     

   ‘검은 탐식자 대포는 막을 수 없으니 아예 회피해 버릴 셈이야.’

     

   만약 내가 대포를 쏠 기미를 보이면 즉시 초광속 항해에 대한 통제를 풀고 자신은 도망치려는 거겠지.

     

   그때, 뭉쳐 있는 함선 사이에서 2개의 작은 투사체가 날아왔다. 그림자 두 명이 사격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적들도 공격을 개시했다.

     

   ‘일단 상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알겠어.’

     

   어떻게 싸우면 좋을지도.

     

   적의 공세에 발맞춰 나 또한 비행을 시작했다.

     

   메가콥의 함선들은 전면부에 장착된 주포뿐만 아니라, 측면에 위치한 보조 함포들까지 동원해 사격했다. 스타유니언의 함선들은 외벽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함포를 이용해 유도 어뢰를 마구 발사했다.

     

   거리가 가깝다 보니 적들의 공세는 쉴 틈이 없이 이어졌다. 플라즈마 열선과 어뢰에 직격당한 내 갑각이 손상과 회복을 반복했다.

     

   내 덩치로는 회피가 어려울 정도로 화망이 촘촘하다. 이래서야 PS-111과 이사벨의 견제 사격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서부터는 보조기관을 믿을 시간이다. 뼈 칼날로 덮인 보조기관이 맹렬히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한다.

     

   다른 공격은 몰라도 자이언트건이 발사한 전용탄만큼은 어떻게든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적 함대와의 거리를 좁힌 나는 침식 촉수들을 일제히 뽑아 가까운 곳에 있는 함선에게 날렸다. 전함이 뒤늦게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덩치보다 2배 이상 큰 거대한 배가 촉수에 붙잡혔다.

     

   검은 공간을 가르며 날아온 자이언트건의 전용탄은 내가 아닌 함선 외벽을 꿰뚫었다. 다른 적들의 공격 또한 촉수가 들고 있는 전함에 막혔다. 동료가 내게 붙잡혔음에도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그래 봐야 저쪽이 손해지.’

     

   나는 전함을 방패로 삼으면서 동시에 입으로 배의 외벽을 뜯어먹었다. 합금 덩어리를 소화시킬 때마다 전신에 ‘파괴수 갑피’의 효과가 발동했다. 상처 입은 갑각은 회복되었고, 몸 크기는 아주 조금씩 커졌다.

     

   내가 강해지는 것과 반대로 붙잡힌 함선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됐다. 우주복을 입은 승무원들이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합금 파편과 함께 내 입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PS-111의 사격에 맞고 조각나든가, 둘 중 하나였다.

     

   「포식 효과 발동!」

     

   덕분에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손재주’나 ‘치악력’ 같은 특성들도 몇 개 얻었다. 손재주는 바로 ‘전파 장애’랑 융합해서 ‘하이재킹’으로 만들었다.

     

   ‘마침 필요했는데.’

     

   그렇게 배 하나를 금방 해치운 나는 전함들에게 달려들었다. 뭉쳐 있던 배들이 나를 피해 재빨리 산개했다.

     

   나름 기민하게 대응했으나 방금 상황이 변했다. 나는 막 나를 타격하려는 어뢰 하나에게 하이재킹을 사용했다. 어뢰 내부에 있는 유도칩을 조종해서 도망치는 스타유니언 전함에게 보냈다.

     

   전함 후방에 달린 추진기가 폭발하고 움직이는 속도가 뚝 떨어졌다. 배 외벽에 달린 수십 개의 함포들이 미친 듯이 불을 뿜어댔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좀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망가진 전함을 방패로 삼았다.

     

   ‘밑 준비는 다 됐고.’

     

   4위가 준비한 카드들을 깨부수려면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든 커다란 엄폐물도 그 중 하나다.

     

   ‘그 다음은….’

     

   나는 배 뒤에 숨은 채 적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했다. 타이밍이 늦거나, 실수하면 안 되기에 모든 집중력을 준비하는데 쏟아 부었다.

     

   「위험, 하지만, 효과적. 돕겠, 습니다.」

   「언니, 총알. 요격해.」

     

   이사벨과 PS-111은 자이언트건의 탄환과 어뢰, 그리고 우회해서 내 뒤를 노리려는 수집벌레 무리들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마지막 공격 수단, 검은 탐식자 대포를 사용했다.

     

   전신에 퍼져 있는 에너지가 왼쪽 꼬리로 몰려든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내 몸이 흔들린다.

     

   아니, 내 몸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우주 한복판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빛이 굴절되고, 공간이 요동친다.

     

   적들 또한 이변을 감지하고 급히 움직인다. 서로간의 간격을 바짝 좁힌 배들이 푸른색 광채에 휩싸인다. 그 가운데에는 4위가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아웃스페이서가 있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에너지가 이제는 먼 거리에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놈이 통제를 풀고 함대와 함께 초광속 항해를 시도하려는 거다.

     

   아웃스페이서와 함대가 사라지던 찰나, 꼬리로부터 검은 포탄이 발사되었다.

     

   함선들이 만들어 내는 폭발, 생명이 꺼져가며 흘리는 비명 등, 전장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조기관에 감지되는 것은 오직 정적뿐이었다.

     

   잠시 후, 멀리 떨어진 공간에 에너지가 집중되었다. 나는 놈들이 튀어나오기 전, 미리 준비해 놨던 ‘물건’에 ‘별빛 좌표’를 사용했다.

     

   이윽고 공간을 뛰어넘은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아웃스페이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적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남은 함선들 수를 보면 대략 10%에서 20% 정도가 탐식자의 아가리 속에 빨려 들어갔다.

     

   ‘상관없어.’

     

   내가 노린 것은 적 함대가 아니니까.

     

   함대와 거리가 멀어지자 수집벌레를 비롯한 아웃스페이서 무리가 다시 나를 습격하려 한다.

     

   별빛 좌표를 사용하면 최소 1분간 아무 활동을 못한다. 적의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기회를 놓치기 어려울 터.

     

   그런데 놈들이 갑자기 멈췄다. 당장 나를 찢어발기려 하던 수집벌레들이 몸을 굳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아웃스페이서 하위 개체들은 상위 개체의 지휘를 받아 움직인다. 상위 개체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아래의 존재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상위 개체 중 가장 높은 지휘권을 지닌 존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성, 공이야.」

     

   적의 상태를 확인한 이사벨이 내게 말해줬다.

     

   방금 내가 순간 이동시킨 물건은 엄폐물로 삼았던 스타유니언의 잔해 중 하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심연의 색채로 강화된 사이킥 거품을 묻힌 잔해지만.’

     

   검은 탐식자 대포는 미끼였다.

     

   놈이 피할 거라 예상했던 나는 배를 먹어 치우면서 몰래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가 묻은 합금 파편을 준비했다. 이 불경한 거품이 ‘무기물에게는 발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거다.

     

   거품이 묻은 파편을 갖고 있다가 놈이 이동했을 때에 맞춰 별빛 좌표를 사용했다. 본인이 도망치기 위해 초광속 항해 통제를 잠시 멈춘 놈은 내가 날린 무기에 그대로 당했다.

     

   ‘4위가 아무리 나에 대해 잘 분석했다고 해도….’

     

   특성의 주인인 나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는 법.

     

   나를 포위한 상태로 멈춰 있던 수집벌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휘관을 잃은 그들에게서 체계적인 움직임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메가콥과 스타유니언의 전함들은 도망치는 아웃스페이서 무리를 내버려 두고 내게 접근했다.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을 잃은 이상, 거리를 벌리면 검은 탐식자 대포 때문에 불리할 거라 판단한 것 같다.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 이거지?’

     

   현재 내 몸은 별빛 좌표의 페널티로 1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수백 척의 배들이 쉬지 않고 포격하며 다가온다.

     

   그 중에는 그림자들도 있었다. 자이언트건을 든 그림자들이 옆으로 빠져서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사벨과 PS-111이 연신 견제 사격을 가했지만 두 그림자는 노련하게 공격을 회피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들이 막 자이언트건을 쏘려는 순간, 내 뒤쪽에서 커다란 물체가 빠르게 접근했다.

     

   아웃스페이서들과 싸우고 있던 나의 분신, ‘오른쪽 머리’였다. 싸움 상대였던 40m짜리 아웃스페이서를 죽이는 데 성공한 녀석의 입가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칠갑한 에이모프는 나를 지나 적 함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녀석과 함께 아웃스페이서와 싸우던 하늘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가 노리는 목표는 함선이 아니었기에.

     

   나를 저격하려는 그림자 중 한 명이 움찔하며 멈춘다. 원시적인 형태의 날붙이가 그의 복부에 튀어나와 있다.

     

   남들 몰래 접근한 하늘의 어머니가 제사장의 황금창으로 놈을 찌른 거다. 그 상태로 그녀는 창을 위로 올려 벴다.

     

   동료가 세로로 쪼개지는 걸 본 다른 그림자는 즉시 조준을 멈추고 도망치려 한다.

     

   ‘어딜 가려고.’

   「놓칠, 수 없, 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성가시게 굴던 놈이니 이대로 보낼 수 없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PS-111이 갤러곤의 발톱검이 달린 팔을 휘둘렀다.

     

   길쭉한 칼날 끝에서 뿜어져 나온 사이킥 파워가 도망치는 적에게 날아간다. 곧이어 놈의 몸이 양단되고 허리의 단면에서 뜨거운 액체가 솟구쳤다.

     

   「이번, 실수, 안, 합니다.」

   [즈 즈즈즈(좋아. 잘했어)]

     

   때마침 페널티가 끝난 나는 엄폐물로 삼은 함선 파편을 내던지고 놈에게 다가갔다. 허리가 잘린 그림자는 실드를 작동시켜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나의 침식 촉수가 그보다 더 빨랐다.

     

   촉수에 달린 입이 둘로 나뉜 놈의 몸을 통째로 집어 삼켰다.

     

   「포식 효과 발동! ‘울트라 컨트롤’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코드 블랙’의 생물 특성 중 ‘울트라 컨트롤’을 탈취.」

     

   그림자, 아니 새로 임명된 코드 블랙의 육신으로부터 강탈한 새 특성이 몸에 스며들었다.

     

   ‘울트라 컨트롤이라니! 좋았….’

     

   초월 재료로 쓸 수 있는 특성을 운이 좋게 손에 넣었다. 이에 기뻐하려던 찰나, 갑자기 입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것이 그림자가 아닌 나의 피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 흉부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왜 그러십, 니까?」

   「에, 이모프?」

     

   내 이상을 느낀 PS-111과 이사벨이 사념파를 보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가슴의 고통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열선에 맞아 손상된 갑각은 재생이 중단되었고, 검은 탐식자 대포로 인해 소모된 에너지들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갑자기 왜…설마?’

     

   내게 발생한 이상 현상의 원인이 뭔지 알 것 같다.

     

   방금 잡아먹고 소화시킨 그림자.

     

   메가콥의 랭커가 그림자의 몸에 뭔가를 심은 게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저 멀리 우주 공간에서 푸른빛의 구름이 나타났다.

     

   빛을 뚫고 나타난 것은 우주선들이었다. 수많은 군함들이 적 진영에 합류했다.

     

   적들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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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척박한 행성이었으나 이제는 생명이 넘치는 별이 된 OW-33.

     

   그곳에는 우주에서 가장 강대한 아웃스페이서 무리를 구축한 존재가 거주하고 있다.

     

   별의 심부에 위치한 옥좌에서 ‘여제’는 여왕 중 하나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역시.’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여왕의 죽음.

     

   아쉽긴 했지만, 예상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왕이 상대한 적은 그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으니까.

     

   ‘에이모프.’

     

   메가콥의 영토이자 여왕이 죽은 장소, N-51 성계에서는 전투가 한창이다. 지배파의 수장 아키라가 주관한 토벌대가 악명 높은 에이모프 랭커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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