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광선을 발사하려고 했던 오른쪽 날개는 내가 아는 생물들의 것과 유사했다.
‘아케인오르카의 날개와 비슷해.’
크기도 원본에 비해 훨씬 작고 특유의 아름다운 문양도 없다. 그러나 형태와 에너지 광선 발사 능력은 아케인오르카의 것과 매우 닮았다.
그밖에 나를 할퀴려 했던 갈고리 손톱이 달린 팔, 새로 자란 왼쪽 날개와 다리도 전부 에이펙스 생물의 것을 모방한 형태였다.
‘여러 부위를 동시에 바꾸다니.’
가변형 생체병기는 공허의 주사위 상태가 아니라면 한 번에 한 부위씩,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바꿀 수 있다. 놈이 신체를 변형시키는데 어떤 제한이 있을지는 불명이나, 현시점에서 보면 놈의 특전이 이쪽보다 우위에 있다.
[즈즈 즈즈즈(다른 특전은?)]
「보이, 는 특전, 지금 것과 합쳐서 7개야.」
[즈즈(7개?)]
내가 죽였던 플레이어 중 특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자는 제이슨이다. 내 경우, 놈과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획득한 ‘강적의 증표’ 특성이 5개고.
놈이 나처럼 다수의 특전을 보유한 플레이어를 죽인 것인지, 아니면 자기 말고 다른 6명의 랭커를 죽인 것인지는 불명이다.
중요한 건 아키라가 많은 특전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다. 7개면 나보다 많다.
「그나마, 다행인, 건 2개, 는 여기서 사용 못, 해.」
[즈즈즈 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여기서 못 쓴다고? 제약이 있는 특전인가)]
내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유한 강적의 증표 특성은 강력한 대신 사용에 제약이 따른다. 놈의 특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도 5개면 나와 똑같아.’
이사벨이 보낸 사념파에는 불안감이 깊게 배여 있었다.
정리해 보자.
놈은 유전자를 오염시키는 특전, 가변형 생체병기의 상위 호환에 가까운 특전, 그외에 특전 3개를 더 갖고 있다.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겠지.
‘…쉽지 않겠어.’
게다가 이쪽은 상황이 좋지 않다.
나는 보조기관으로 놈을 감시하면서 작은 팔에 안겨 있는 아드하이를 확인했다.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작고 여린 몸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에이모프. ‘작은애기’ 상태, 매우 심각, 합니다.」
팔 위로 기어 내려온 PS-111이 아드하이를 재빨리 확인했다.
「APNC, 활성, 화 확인됨. 빨, 리 조치, 하지 않으면 위험, 합니다.」
정식 명칭 Anti Psychic Nanite Cartridge. 줄여서 APNC라 불리는 이 무기는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나노머신 탄환이다.
목표 타격에 성공하면 내장된 초소형 기계들이 작동해서 근처의 사이킥 파워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크기가 매우 작고, 사이킥 파워만 흡수하는 블러드 리버라 보면 된다.
다만 나노머신이 탑재되어 있다는 점만 빼면 스톰건의 열화우라늄탄과 큰 차이가 없다. 나처럼 갑각이 엄청나게 두꺼운 생물이나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에게는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한다.
‘문제는 내가 아닌 아드하이가 APNC를 맞았다는 거야.’
만약 녀석이 일반적인 화이트 갤러곤이었다면 이 정도로 치명상을 입지 않았을 거다. 갤러곤은 성장할수록 비늘이 단단해져서 스톰건급 화력으로는 피해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하이는 선천적으로 왜소한 몸을 지니고 태어났다. 레드아머가 없는 상태라면 탄 자체의 위력이 약한 APNC에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다른 독이나 오염 물질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내가 모르는 치명적인 독이 주입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나 그렇다고 낙관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버텨.’
부상 자체도 큰데다가 체내에서 나노로봇들이 계속해서 사이킥 파워를 갉아먹고 있다. PS-111이 경고한대로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대로 죽고 말리라.
‘마음 같아서는 회복 관련 특성을 이식시켜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아키라의 수작질 때문에 회복과 재생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이곳에 나 말고도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닌 존재가 또 있다는 거다.
‘하늘의 어머니.’
환수(幻獸) 천둥새의 힘을 얻은 그녀에게는 강력한 치유 능력이 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즉시 괴물의 촉수로 파장을 생성했다.
[즈즈 즈즈즈(모두 이리 와)]
나의 메시지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멀리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애들이 이에 반응한다.
함선 사이사이로 뻗어 있는 은빛 구름이 푸르게 물들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내 근처의 공간을 찢으며 나타났다.
26호가 내 메시지를 받아서 메탈릭 그렘린들에게 전달한 덕분에 모두가 함께 이곳으로 왔다.
「■■?」
「그르르.」
「방금 적 함대가 도약하다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된 거야?」
한창 싸우던 중에 날아온 은색 악마들과 내 분신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26호와 함께 날아왔다.
「작은애기?」
가까이 온 둘은 내가 안고 있는 아드하이를 보고 멈칫했다. 이윽고 전투 모드 상태였던 26호의 몸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작은애기 다쳤어!」
그리폰 상태였던 하늘의 어머니도 피범벅이 된 아드하이를 보고 호박색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그 피, 설마?」
「죽으면 안 돼!」
[즈즈즈(진정해!)]
나는 강한 의지를 담아 둘에게 파장을 쐈다.
[즈으으으 즈즈 즈즈 즈즈(아드하이는 절대 죽지 않아)]
여태껏 녀석들에게 이렇게 파장을 강하게 파장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둘, 특히 26호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즈(시간이 없어. 나를 도와줘야 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늘의 어머니는 이미 소중한 것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26호보다 일찍 공황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아드하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여기서 너한테 레버넌트 기관을 넘길게)]
「뭐?」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녀석을 살리려면 천둥새의 힘이 필요해)]
내 말을 들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레버넌트 기관’의 상세한 발동 조건은 하늘의 어머니도 알고 있다. 아드하이의 전(前) 고향에서 제이슨과 싸울 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얘기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내가 ‘이중나선의 모노리스’ 덕분에 특성을 2개까지 타인에게 넘길 수 있게 됐을 때, 그녀는 레버넌트 기관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월적 항상성도.’
레버넌트 기관은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만 자동 발동되는 특성. 이 단점을 해소하려면 강력한 회복 특성이 필요하다. ‘우월적 항상성’은 레버넌트 기관과 궁합이 잘 맞는 특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산 행성에서 마그마사우르 사냥이 끝난 뒤 그녀에게 특성을 넘겼다. 이후 다시 획득했기에 지금 그녀와 나 둘 다 해당 특성을 보유하고 있고.
따라서 하늘의 어머니가 레버넌트 기관을 활용할 조건은 전부 갖춰졌다.
[즈즈즈 즈즈즈 즈으으으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특성을 넘긴 다음 아드하이와 PS-111을 기가크래커로 보낼 거야)]
PS-111도 함께 보내는 이유는 작동 중인 APNC 때문이다.
사이킥 파워를 빨아들이는 초소형 기계 장치는 회복 능력으로 제거가 불가능하다. 하늘의 어머니가 천둥새의 능력으로 아드하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동안, PS-111이 나노머신을 처리해야 한다.
「…정말 괜찮겠어?」
하늘의 어머니가 복잡한 감정을 담은 사념파를 흘렸다.
그녀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의 어머니는 게임에서나 이 세계에서나 레버넌트 기관을 써 본 적이 없다. 커뮤니티에서들은 정보, 내가 말해 준 설명이 전부다.
강력한 전력인 그녀를 굳이 안전한 곳에 보내려는 것도 이 점 때문이다. 실수하거나 일이 잘못된다면 그녀와 아드하이 모두 위험에 빠질 테니까. 아마 많이 부담될 거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즈즈 즈즈즈즈(너는 할 수 있어)]
「…….」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아드하이에게 가진 감정의 힘을 믿는다.
소중한 것들을 잃은 경험을 가진 그녀이기에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다.
짧고 강한 내 파장을 접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
불안하게 뛰던 심장 박동이 그녀의 마음에 따라 서서히 안정됐다.
「부탁할게.」
마음을 가다듬은 하늘의 어머니가 내 주둥이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사냥의 표상으로 변신하면서 예리한 뼈 칼날로 둘러싸인 보조기관이 그리폰의 부리에 닿았다.
유전자 정수를 조작하는 힘, ‘이중나선의 모노리스’를 활성화하자 몸 안쪽으로부터 반응이 온다. 피, 살점, 뼈, 갑각 등, 육신을 구성하는 모든 구조가 쪼개지고 합쳐진다. 겉으로는 변화가 없어도 내부에서는 고도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다.
잠시 후, 그 결과물이 보조기관을 덮은 뼈 칼날 끝에서 흘러나왔다. 그건 성장할 때 생성되는 검은 점액과 유사한 성분이 모인 유전자 정수였다. 인간의 손가락 마디만큼 작은 액체방울이 하늘의 어머니에게 넘어갔다.
‘레버넌트 기관’의 정보를 담은 액체는 순식간에 그녀의 부리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금세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특성은 무사히 넘어갔다. 유전자 정수가 재배열되는 작업이 끝나면 그녀도 레버넌트 기관을 사용할 수 있다.
[즈즈 즈으으으 즈즈즈(이제 아드하이를 보낼게)]
아직 체내에서 조율이 진행 중인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하이에게 별빛 좌표를 사용하려는데, 갑자기 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스타유니언의 전함이 발사한 어뢰가 내 머리갑각에 맞아 폭발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적의 공세가 다시 시작됐다.
「놈, 이야!」
다급히 경고하는 이사벨.
날아드는 어뢰들 중 유독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된다. 아키라가 투사체들 사이에 숨어 나를 노리고 있다.
놈이 라이플을 닮은 무기의 총구를 내게 향한다.
APNC는 내게 무용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다른 탄환을 장전한 것일 터.
놈은 이미 한 차례 내 갑각을 잘라냈기에 내 방어력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APNC가 아니라면 내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갖춘 탄환이겠지.
‘뭐가 됐든 맞으면 좋지 않아.’
수수께끼의 공격을 피하려던 찰나, 굳어 있던 26호가 나섰다.
「이이! 작은애기 아픈데 자꾸 방해하지 마!」
내가 말리기도 전에 녀석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사이킥 파워가 방출되었다. 컬트 함대가 일제히 사이킥 주포를 발사한 것처럼 크고 작은 보라색의 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날아오던 어뢰와 함재기들은 녀석이 펼친 사이킥 그물에 닿는 족족 폭발했다. 순식간에 사방이 붉은 화염과 금속 파편으로 가득 찼다.
‘무시무시한데.’
26호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파괴적인 사이킥 파워 운용술이다. 게임에서 씨 데몬이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난폭하게 힘을 행사할 때를 연상시켰다.
분노한 26호가 만든 불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건재한 존재는 아키라였다. 갑자기 엄폐용이었던 어뢰가 터지는 바람에 기습에 실패한 놈은 재차 나를 조준했다.
그때 이사벨이 볼텍스원의 권총을 빼들었다. 둘 다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사벨 쪽이 근소하게 더 빨랐다.
막 발사된 탄환이 그대로 사라진다. 보이지도, 감지할 수도 없는 볼텍스원의 힘이 탄환과 함께 아키라가 들고 있는 총신까지 집어삼켰다.
26호와 이사벨의 연계 덕분에 놈이 쏘려고 했던 탄환이 무엇인지는 결국 알 수 없게 됐다.
한순간에 비장의 수를 잃은 놈은 망가진 무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직접 나를 공격하기 위해 날아들었다.
좀 전처럼 갈고리 손톱으로 나를 벨 생각이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히드라 분열’로 탄생한 분신체, ‘왼쪽 머리’와 ‘오른쪽 머리’가 놈 앞을 가로막았다.
「그르르!」
「그륵!」
내 분신들과 아키라가 싸우기 시작하자 후방에 있던 전함들도 놈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들었다. 인간과 사이보그가 만든 금속 구조물에 맞서 이쪽의 메탈릭 그렘린들도 다시 움직였다.
‘지금이 기회야.’
적들은 난전에 휘말려 정신이 없다. 덕분에 아드하이를 옮길 시간을 벌었다.
나는 작은 팔에 안긴 아드하이를 조심스럽게 밖으로 뺐다. 별빛 좌표를 사용하기 위해 보조기관을 가까이 대려는데, 녀석이 살짝 움직였다.
「큰어른」
아드하이가 흘린 사념파는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미약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괴물의 촉수로 겨우 감지할 정도였다.
「컸다고」「칭찬」「했는데」「미안」
[즈즈(아니야)]
나는 손가락으로 녀석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넌 나의 자랑거리야. 네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처음에는 그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였다. 귀한 유전자 정수의 보고인 용의 둥지로 안내할 안내인으로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