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98화 (399/400)

   그러나 전투가 시작된 지 수십 분이 지난 지금, 네메아 파이브는 깨달았다.

     

   기계위원회가 잘못 판단했다고.

     

   「앤더에스 요청합니다! 메탈릭 그렘린에게 포위당했습니다! 당장 지원 바랍니다!」

   「사샤비 보고합니다! 특수목표A가 데리고 있는 생물이 갑자기…으악!」

   「타, 탐지 시스템에 감지되지 않는 괴물이…사, 살려 줘! 끄아아아, 치지지직.」

   「게스타씨 보고…치지지직. 뚝.」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기계들의 성채, XAX01급 전함.

   

   배의 지배자 네메아 파이브는 투박한 금속 옥좌에 앉아 사방에서 날아오는 급박한 통신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특수목표A는 메가콥 CEO가 준비한 덫에 걸렸고, 놈이 데리고 있는 기형 갤러곤은 치명상을 입었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함대가 입은 손해가 적지 않았지만, 허용 범위 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토벌대 쪽. 이대로 작전을 속행하는 게 유익하다는 것이 최고위원들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오판이었다. 전황은 순식간에 변화했다. 이제는 최고위원들조차도 전투의 행방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네메아 파이브는 자신들의 오랜 동료들에게 통신을 보냈다.

     

   「네메아 파이브. 피해 현황 보고하라.」

   「레드테일 에이트. 8번 함대의 손실률 55%. 통신 문제로 인한 지휘 문제 발생. 3분 21초 내로 손실률 60%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칼리온 일레븐. 11번 함대. 손실률 72% 집계. 궤멸 단계에 도달했다.」

     

   현재 네메아 파이브가 지휘하는 5번 함대의 손실률은 31%. 손실률이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나, 함께 온 8번, 11번 함대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특히 파기된 피라 일레븐 대신 새로 제작된 칼리온 일레븐은 아직 많이 미숙했다. 가진 지식과 신체 기능은 다른 위원들과 동일하나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

     

   「네메아 파이브. 작전 실패 확률 연산 결과, 71%에 달한다. 당장 후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레드테일 에이트. 부정. 기계위원회는 확률 80%를 달성하면 후퇴할 것을 요구했다.」

   「칼리온 일레븐. 기계위원회에 분석을 요구한다.」

     

   네메아 파이브가 꺼낸 의견에 레드테일은 반대를 표시했고, 칼리온은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네메아 파이브. 부정.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8번 함대가 궤멸 단계에 진입할 확률이 67%로 계산된다. 그 전에 판단해야 손실률이 감소한다.」

   「레드테일 에이트. 일부 긍정. 8번 함대 궤멸 전에 판단해야 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단, 5분 이내로 후퇴를 결정하는 것은 기계위원회의 결정에 반한다.」

   「칼리온 일레븐. 분석하기 어려움. 기계위원회에 분석을 요구한다.」

     

   완고한 레드테일의 태도, 칼리온 일레븐의 기계적인 반응에 네메아 파이브는 손가락을 아주 살짝 움찔거렸다.

     

   「네메아 파이브. 작전 속행시 최고위원의 손상이 우려된다. 작전에 참여한 위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레드테일 에이트. 일부 부정. 현 최고위원 모델은 개량되었다. 특이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위원 손실이 일어날 확률은 11%에 불과하다.」

     

   그 특이 변수가 지금 계속 발생하고 있기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감각이 네메아 파이브의 머릿속에서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그것이 ‘조급함’이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려던 찰나, 네메아의 머리로 메시지 하나가 전달되었다.

     

   메시지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 네메아는 즉시 해당 정보를 위원들과 공유했다.

     

   「네메아 파이브. N-51 성계 내에 대규모 에너지 반응을 확인.」

   「칼리온 일레븐. 질문. 지원군인가?」

   「네메아 파이브. 부정. 에너지 반응 분석 결과, 세인트케이산(産) 대(對)행성병기 5척이 진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확인됨.」

   「레드테일 에이트. 의문. 메가콥에서 이번 작전 수행에 대행성병기는 투입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거짓인가?」

   「네메아 파이브. 부정. 해당 대행성병기들은 메가콥 함선에서 보낸 구조 신호를 받아 자의적으로 지원으로 오는 것을 확인됐다.」

   「칼리온 일레븐. 질문. 도착 예정 시간은?」

   「네메아 파이브. 10분 이내로 추정된다.」

     

   논의되지 않은 지원군의 난입.

     

   그것도 일반 평범한 함선이 아닌 대행성병기 기가크래커 5척이 갑작스럽게 이곳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기가크래커 5척의 화력이면 특수목표A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스타유니언의 함대 전부를 쓸어버릴 수 있다. 스타유니언의 최고 권력자인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아주 수상한 행위였다.

     

   「네메아 파이브. 재차 작전 취소를 건의한다.」

   「레드테일 에이트. 동의한다. 통신 기능이 복구된 함선부터 차례대로 후퇴한다.」

   「칼리온 일레븐. 동의한다.」

     

   레드테일이 말한 ‘특이 변수의 발생’.

     

   그걸로 작전의 실패가 결정되었다.

     

     

   -

     

     

   에이모프를 닮은 형태로 변이한 아키라.

     

   놈은 가슴쪽의 작은 팔과 전투용 팔, 꼬리를 다른 모양으로 바꿨다. 전투용 팔은 둔탁한 워해머 모양으로 변했고, 작은 팔은 갈고리 손톱이 달린 팔이 되었다. 꼬리에는 내 침식 촉수처럼 끝에 뾰족한 부속지가 달린 입이 생겼다.

     

   신체 부위를 임의로 바꾸는 특전과 나를 모방한 특전을 동시에 사용한 거다.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저것 말고 다른 특전은?)]

   「생명 유지, 특전이 있, 어.」

   [즈즈 즈즈(생명 유지?)]

   「특수, 기관이 있으면 언, 제든지 죽지, 않아. 머리, 심장이 없어져도.」

     

   녀석 말대로 놈은 머리가 날아갔음에도 움직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볼텍스원과 비슷한 메커니즘인가?’

     

   놈들도 어비셜 코어라는 부위를 파괴하지 않으면 죽지 않으니까.

     

   ‘그러면 유전자 정수 포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생명체처럼 머리를 먹으면 되는 건지, 아니면 볼텍스원처럼 놈의 생명 유지 기관을 먹어야 하는지 확실치가 않다.

     

   ‘직접 먹어서 확인해 봐야 하나.’

     

   다만 놈을 포식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아키라는 유전자를 오염시킬 수 있어.’

     

   섣불리 놈의 신체를 먹었다간 그림자를 먹었을 때처럼 함정에 걸릴 확률이 높다. 특수 기관이든, 머리든 상관없이 놈의 고기를 먹는 순간 내 몸은 크게 약해질 거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된다지만.’

     

   한창 싸우는 중에 지금보다 약해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먹기 전에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결국 답은 하나인가.’

     

   아키라가 한동안 못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 머리와 특수 기관은 놈을 무력화시킨 다음에 노려야 한다.

     

   나는 날개를 펼친 채 아키라를 향해 질주했다. 놈도 똑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내게 맞섰다.

     

   그리고 강한 충격이 내 머리를 흔들었다. 육중한 망치 형태를 취한 팔이 내 뿔을 부수고 머리갑각 안쪽에 박혔다. 동시에 뼈 칼날로 둘러싸인 나의 보조기관이 놈의 다리를 꿰뚫었다. 그 상태에서 놈은 말뚝화된 전투용 팔에 힘을 줘 내 머리 안쪽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벌려 이중 턱을 밖으로 뺐다. 이중 턱의 힘은 마그마사우르의 외피도 으스러트릴 정도로 막강하다. 턱이 놈의 복부를 사정없이 물어뜯으려는 순간, 가슴쪽으로 옮겨간 갈고리 손톱 팔이 움직였다.

     

   「고통 경감 발동!」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입 안에 피 맛이 확 퍼졌다. 놈이 갈고리 손톱으로 이중 턱이 달린 혀를 벤 거다.

     

   놈은 머리에 박아 넣은 팔을 빼서 내 주둥이에 뺨을 치듯 후려쳤다. 목이 의지와 상관없이 옆으로 꺾이고, 내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만약 이곳이 행성 위였으면 꼴사납게 땅에 머리를 처박았겠지.

     

   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이를 드러낸 채 웃는다. 나도 사냥에 성공했을 때 저런 식으로 웃는데, 남이 저러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 놈의 옆구리로 커다란 분홍 촉수가 날아들었다. 아키라는 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날개로 잽싸게 몸을 감싸 26호의 공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26호도 상대가 이번에는 막아 낼 것이라 예상한 것 같다. 녀석의 2차 공격, 응축된 사이킥 파워의 그물이 적에게 작렬했다. 그 양은 사이킥 브레스에 소모되는 에너지의 2배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났다.

     

   「큰애기 따라하지 마!」

     

   씨 데몬 이상의 막대한 힘으로 아키라를 압박하는 26호. 아키라도 이번에는 날개로 막는 대신, 신체 부위를 바꾸는 걸로 대응했다. 놈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뿔이 사이킥 파워에 닿자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갤러곤의 뿔.’

     

   놈은 에너지장을 찢는 효과를 가진 뿔로 속박을 풀고, 26호의 촉수를 물어뜯으려 했다. 특수한 씨 데몬인 26호의 외형을 모방하려는 속셈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나는 몸을 크게 회전시키면서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26호를 치려던 놈이 꼬리 끝의 집게에 맞고 멀리 날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놈은 날개의 피막을 펴서 스스로를 멈춰 세웠다. 다른 부분은 전부 멀쩡했지만, 가슴팍에 달린 팔들은 집게에 맞아 완전히 으깨진 상태였다.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빨로 망가진 팔들을 뜯어냈다. 잠시 후, 그 자리에 길쭉한 뼈칼을 단 두 팔이 생성되었다. 사냥의 표상이 되면 생기는 뼈낫이 달린 팔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나는 놈에게 돌격하는 대신, 몸을 돌렸다. 꽁무니를 빼는 것처럼 보이는 내 뒤로 놈이 바짝 쫓아왔다.

     

   놈의 꼬리 끝에서 청록색 광선이 뿜어져 나와 내 등을 때렸다. 크리스털윙이 쏘는 입자광선과 비슷한데, 출력이 높아서 그런지 위력이 훨씬 강력했다.

     

   광선에 맞을 때마다 배갑(背甲)이 떨어져 나가고 큼지막한 상처가 생겼다. 회복이 안 되다 보니 몸 위에 자잘한 상처가 점점 늘어만 갔다.

     

   입자광선으로 내 갑각들을 부순 놈은 가속해서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뼈칼이 달린 팔을 내 상처에 집어넣어 살점들을 파냈다.

     

   「고통 경감 발동!」

   ‘윽!’

     

   파열된 근육과 찢어진 살점으로부터 아찔한 고통이 밀려온다. 동시에 상처를 무자비하게 쑤시는 칼날에서 적의 감정이 느껴진다. 아키라는 나를 고문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놈이 보유한 특전들은 서로 간에 시너지가 매우 뛰어나다. 그 탓에 놈은 에이모프를 모방했음에도 나와 애들을 압도하고 있는 중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놈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지금처럼 나를 완전히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무력하게 도망치는 모습을 ‘연기’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놈을 특정 장소로 유인하는 것.

     

   멀지 않은 곳에서 강한 에너지 반응들이 느껴진다. 전함들이 발사한 열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내 등, 정확히 말하면 아키라에게 명중했다.

     

   26호가 뿌린 사이킥 파워 때문에 전함들의 조준 장치가 고장난 것일까. 놈이 당황한다.

     

   하나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 이어서 날아온 열선들은 전부 아키라를 타격했기에. 놈은 쏟아지는 플라즈마 포화를 피하고자 내 몸에서 떨어졌다.

     

   놈이 떨어지자 전함 주포들이 발사한 열선들이 두 갈래로 나눠졌다. 전함들이 노리는 목표는 정확히 놈과 나, 둘이었다.

     

   그걸 본 아키라가 흠칫한다.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깨달은 거다.

     

   ‘이제 와선 변신도 못 풀지.’

     

   내가 몸을 마음대로 바꿔서 싸울 수 있다는 걸 적들도 안다. 여기서 놈이 에이모프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신한다고 해도 저 군함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다.

     

   설령 놈이 변신 능력에 관한 정보를 함대의 지휘관들에게 남겼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26호의 사이킥 파워로 인한 통신 불안정, 내가 사용한 ‘대혼란의 전령’ 등으로 인해 적들의 연계는 매우 취약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원활한 소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즈즈즈 즈(멍청한 놈)]

   「■■■■■■!」

     

   나는 놈을 향해 이를 드러낸 뒤, 적 함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비웃음을 본 놈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내 뒤를 뒤쫓아 왔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열선 속에서 재개된 추격전. 다만 그 양상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좀 전까지는 속도로 나를 압도하던 놈이 지금은 내 꼬리 끝에 간신히 따라붙고 있었다. 굵기만 해도 내 몸통만큼 두꺼운 플라즈마의 비를 피하느라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거다.

     

   ‘역시 방어력은 나보다 떨어져.’

     

   놈의 크기는 겨우 10m. 갑각 재질이 나와 동일하다고 해도 두께가 얇으니 방어력에서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전함 주포에 맞았을 때 더 큰 피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놈이다.

     

   하나 놈에게는 월등한 성능의 보조기관이 있다. 분신체의 외형을 모방하면서 눈이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감지 기관이 그의 턱 아래에 생겼다.

   

   내가 그렇듯 놈 또한 보조기관을 이용해 전함들의 공격을 무리없이 피하고 있다. 물론 생소한 감각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그러니 그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수많은 함선과 메탈릭 그렘린이 얽혀 난장판이 된 전장 한 가운데, 나는 뭉쳐 있는 함선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배와의 거리가 적당히 가까워졌을 때, 나는 입 안에 넣어 놨던 MPS-05를 뱉어서 손으로 쥐었다.

   

   여기서 ‘영리한 약자’를 쓸 생각이므로 미리 빼 둔 거다.

     

   특성을 활성화하자 내 몸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길쭉한 목들, 거대한 날개가 작아지다 못해 아예 사라지고, 체형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변이를 끝날 무렵, 내 몸의 크기는 약 5m 정도가 됐다. 4족 보행의 켄타우로스를 닮은 체형과 몸 전체를 덮은 털들, 모두 영리한 약자의 대표적인 특징들이다.

     

   영리한 약자로 변신한 나는 근처에 있는 함선 아래에 달라붙었다. 나를 따라오던 아키라는 갑자기 내가 없어지자 당황한 기색이었다.

     

   가만히 서서 보조기관에 집중하면 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아마 안 될 거다. 이곳은 혼란스러운 전쟁터. 온갖 자극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는 공간에서 놈이 나만을 꼭 집어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가 몸이 작아졌으면 더더욱 그렇겠지.’

     

   곳곳에 있는 군함들이 아키라를 겨냥했다. 내가 달라붙은 함선도 그 주포의 포문(砲門)을 가짜 에이모프, 아니 자신들의 주인한테 향했다.

     

   적들에게 싸움을 붙인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함선 외벽을 기어올랐다. 그러면서 아직 전장에 남아 싸우고 있는 나의 분신 ‘오른쪽 머리’를 불렀다.

     

   그때 나와 불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던 전함이 청록색 광선에 맞고 폭발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아키라는 자기가 데려온 부하들한테 입자광선을 마구 쏴재끼기 시작했다.

     

   ‘역시.’

     

   3위는 게임에서도 나의 교란 전술에 말려들어 같은 동료를 공격하는 일이 잦았다. 이 세계에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고치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좋지만.’

     

   놈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사이, 나는 적당한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마침 분신체도 아키라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키라도 나와 똑같이 오른쪽 머리의 존재를 인지했다. 보조기관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놈의 머리가 옆으로 꺾인다. 그리고 즉각 오른쪽 머리에게 입자광선을 발사했다.

     

   광선에 맞아 흉부에 구멍이 난 나의 분신체. 아키라는 섬전처럼 날아가 뼈칼이 달린 팔을 분신의 상처에 쑤셔 넣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분신의 몸이 축 늘어진다. 그걸 보고 미소를 짓는 놈.

     

   그러던 중, 놈이 멈칫한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놈이 공격한 분신은 미끼였다.

     

   오른쪽 머리가 나타난 직후부터 나는 아키라를 저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방금 그 결실이 내 몸을 떠났다.

     

   불길하게 빛나는 혼돈의 구슬이 굴러간다. 영리한 약자 상태라서 위력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탄환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지금처럼 몰래 쏠 때는 더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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