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를 담은 탄환이 표적과 가까워진다. 이를 감지한 아키라가 고개를 돌린다.
놈은 26호의 공격을 방어했을 때처럼 날개로 몸을 보호했다. 다른 공격이었으면 괜찮은 판단이었겠으나 지금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쏜 공격은 ‘심연의 색채’를 머금은 사이킥 브레스였기에.
작은 구슬이 날개에 맞아서 산산이 깨진다. 안에 담겨 있던 혼돈의 색채가 밖으로 흘러나와 피막을 적셨다.
「?!」
사이킥 브레스가 날개를 빠르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놈은 당황하며 날개를 잘라냈다. 그 과정에서 불길한 색채의 거품이 다른 부위로 옮겨 붙었다.
심연의 색채가 적용된 사이킥 브레스는 유기물이 소멸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놈이 여기서 벗어나려면 거품이 묻은 부위 전부를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말은 그 전까지 무력화된다는 거지.’
나는 4개의 발에 힘을 줘서 함선 외벽을 세게 박찼다. 내 몸이 총구를 떠난 탄환처럼 빠르게 솟구쳤다.
놈도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나를 발견했다. 입자광선으로 나를 요격하려고 꼬리를 움직였지만, 꼬리 또한 거품에 의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 에너지를 모으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
뒤늦게 거품의 파해법을 깨닫고 꼬리를 분리하려는 아키라.
하나 너무 늦었다.
‘이걸로 끝이야.’
놈도 이젠 알 거다. 여기서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고개를 세게 휘저었다. 턱 아래에서 자라난 뼈 칼날이 주둥이를 따라 움직이며 놈의 목을 벴다.
에이모프를 어설프게 따라한 역겨운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다. 머리를 잃은 혼종이 팔, 다리를 움직이며 퍼덕거린다.
나는 손을 뻗어 아키라의 머리를 챙겼다.
‘이 다음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특수 기관이 어디 있는지 찾을 차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떤 이미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깔끔하게 깐 귤껍질, 혹은 만개한 꽃봉우리처럼 생긴 거대 우주선 5척이 보인다.
곧이어 우주선들 중앙에 위치한 초대형 포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서 청록색 불길이 피어오르려는 찰나, 이미지가 뚝 끊겼다. 동시에 몸에서 강한 충격이 엄습했다.
근처에서 맴돌던 메가콥의 배가 나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에 먼 거리까지 날아간 나는 어떤 부서진 함선 잔해에 처박혔다.
‘방금 그건?’
사냥의 표상이 유지되는 중에 눈에 이미지가 보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포식자 감각이 내게 위험을 알릴 때다.
‘분명 기가크래커 5척이었어.’
몸에 충격을 받는 바람에 이미지가 도중에 끊겼지만 확실하다.
이 성계 어딘가에 있을 슈퍼무기들.
그들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