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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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씨발아

 중국 국제정치사 기말고사.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을 우려하는 관측이 많다. '하나의 중국'이 오늘날 중국 정부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게 된 배경을 중국 정치사와 결부하여 서술하시오. 또한 '중화사상'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서술하시오. 」

 곧바로 펜을 들었다. 

 떠오르는 내용을 절반쯤 적었을 때 내 앞에 그림자가 졌다.

 “저기···, 더 작성하실 건가요···?”

 “예?”

 “시험시간이 끝나서요.”

 시험 조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과연 3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아. 그럼 쓴 것만 낼게요. 잠시만요. 마무리만 하고요.”

 열 한장째 쓴 답안지의 마지막을 적당히 끝맺었다.

 「 ···하여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권역의 힘으로는 중국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 유일한 해법은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는 미국의 개입인데 이 말은 곧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중국이 대만침공을 결심한다면 그 배후에는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킨 러시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리하면, 어떤 식으로든 좆됀거다.」

 텅 빈 강의실.

 답안지를 제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정을 걸어 내려갔다.

 중국 국제정치사를 마지막으로 기말도 끝났고.

 뭐하지 이제.

 전역 후 첫 학기.

 나름대로 부푼 마음을 안고 캠퍼스 라이프를 기대했건만.

 현실은···.

 집에 가서 강철의 심장 5 나 해야지.

 딱히 불평하는 건 아니다.

 졸라 재밌어서 미칠 지경이니까.

 당장 어제까지도 중국 대륙을 질타하는 군벌들의 기상에 정신 못 차리고 새벽까지 달리지 않았던가.

 정문에 다가갈수록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대자보가 잔뜩 붙은 앞에 사람들이 삿대질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걸 왜 떼시는 거예요? 어디서 허락받고 대자보를 훼손하는 거예요?”

 “중국 사람에요?”

 “아뇨. 한국 사람인데요.”

 “한국 사람이 무슨 상관에요?”

 “정의롭지 않은 중국의 만행을 규탄하는데 국적이 중요해요?”

 “한국은 가만있어요. 다음 차례 되기 싫으면.”

 “뭐라고요? 말 다했어요?”

 중국 유학생 여러 명이 몰려들어 대자보를 찢고 있었다.

 대자보는 대충 중국의 대만 침공을 우려하고 규탄하는 내용.

 최근 중국의 정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종신 독재로 나아갈 것 같던 시진핑은 공산당 내부의 파벌싸움에 흔들리고.

 방역실패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터져나온다.

 여론을 돌릴 목적인지 대만 건너편 근지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진핑이 아저씨.

 만약 대만 침공이 현실화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는 차원이 다른 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한국 역시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 할 터.

 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긴 하다.

 우리의 영원한 우방.

 미합중국 형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모셔야지.

 그리고 그 길은 양안 전쟁 참전밖에는 없을 터.

 벌써부터 캠퍼스 교정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난리 치는 것도 당연하다.

 “악! 씨발! 이거 놔!”

 “찢어! 부셔! 죽여!”

 “꺅!”

 정문 앞은 바야흐로 집단 난투의 현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때 의인이 출현했다.

 나타난 사람은 초인적인 힘으로 한국 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 사이를 가르고 양쪽을 중재했다.

 중국 말로 뭐라 쏼라쏼라 떠들고 한국 학생들 쪽에도 유창한 한국말로 사과했다.

 나는 상황이 정리되고 정문 앞이 한적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의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대단한데?”

 “아, 너였냐? 별거 아냐.”

 “한중 관계에 평화를 가져왔네.”

 “쉬펄. 평화는 무슨. 시진핑 개새끼가 뒈져야 평화가 오지.”

 찰진 발음으로 한국식 욕을 하는 의인의 정체는 이번 학기 중국 국제정치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

 류웨이(劉偉).

 중국인이었다.

 “뭐냐. 그렇게 욕해도 괜찮은 거냐?”

 “안 괜찮으면 시발. 바다건너 나 잡으러 오던가. 몰라. 시험도 끝났는데 술이나 마시러 가자.”

 “먹지. 뭐.”

 류웨이. 이놈은 확실히 독특한 데가 있다.

 네이티브라 해도 믿을만한 유창한 한국말에 어딘가 득도한 듯한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중국 정치사를 수강하는 도중에도 여타 중국 유학생들과는 달리 자기 조국에 냉정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탁.

 뚜껑을 깐 류웨이가 맥주를 부었다.

 놈의 눈이 착 가라앉아있었다.

 아무렴 심란할 수밖에 없겠지.

 “너네 조국이 진짜 대만을 침공할까?”

 “응.”

 “그럼 조지는데.”

 “응. 조졌어~.”

 정치학과 학생들 아니랄까 봐 대낮부터 맥주를 까며 하는 게 또 정치 얘기다.

 “야. 중국은 대체 뭔 문제가 있어서 이 지랄이냐?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는 좆만한 땅덩어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는데. 너네 나라는 인구 빵빵하지. 땅덩어리는 그냥 대륙이지. 역사와 문화 유서 깊지.”

 “뭐가 문제냐고?”

 “그래. 중국 인민 입장에서 조국의 문제점을 진단해봐라.”

 “하···, 문제라.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냐.”

 놈이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시진핑 이 개새끼가 문제야. 이 새끼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거든? 덩샤오핑의 실사구시 정신에 의해 나름대로 개방의 물결을 착실히 이어가고 있었단 말이야. 근데 시진핑이 일인 독재에 들어가고부터 꼬였어.”

 “근데 어차피 시진핑 이전부터 공산당 독재였던 건 똑같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마오쩌둥이 문제였나.”

 인류 역사상 직간접적으로 가장 많은 인간을 죽였다고 알려진 마오쩌둥.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수천만에 이른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중국인들은 그놈의 정신 승리법을 버려야 돼.”

 “정신 승리?”

 “사회, 문화, 제도적인 면에서 중국은 서구사회보다 확연히 뒤떨어지지. 그런데도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자기들이 특별하고 잘났다는 걸 증명하려다 보니 되도않는 정치체제를 발명하고 정신 승리를 하는 거라니까.”

 “그게 공산 체제라고?”

 “그래. 그냥 눈 딱 감고 양놈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자유민주 체제를 받아들였으면 이 꼴이 났겠냐? 괜히 무슨무슨 위대한 업적을 선보인답시고 대약진이든 문화혁명이든 뻘짓거리를 해대잖아.”

 류웨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네가 보는 중국의 문제점이야? 시험장 나올 때 보니까 미친놈처럼 답안지를 휘갈기던데.”

 “쓸 말이 많았거든.”

 “미친 새끼. 뭐라 적었는데? 만약 장제스가 승리했더라면 이런 걸 썼냐?”

 “내가 좀 미친놈이긴 하지만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시진핑한테 노빠꾸로 패드립박는 중국인이 어딨냐. 장제스 얘기는 별로 안썼다.”

 마오쩌둥과 장제스가 맞붙은 국공내전.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국 대륙을 먹었고 패배한 장제스는 대만으로 튀었다.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시나리오도 재밌긴 하네. 장제스의 중화민국이라면 대약진이나 문혁은 없었겠지. 근데 또 역사는 모르는 거야. 그 파시스트가 중국을 먹었으면 도리어 천안문 같은 사태가 십수번은 일어났을지도.”

 “그럼 답안지에 뭐라 썼는데?”

 “마오쩌둥이나 장제스보다도 더 전. 중국은 분명 기회가 있었어.”

 “그 전은 군벌 시대인데.”

 “그래. 그 시기.”

 류웨이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 시대에 뭐가 있다고? 국제사회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변하고 바다 건너에서는 일본이 호시탐탐 대륙을 노리는데 그런 사정은 나 몰라라 하고 븅신같은 놈들끼리 치고박은 시대가.”

 “그만큼 가능성의 시대였지. 하나의 중국이 아닌 여러 개의 중국.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당시 중국 앞에 무수히 놓여있던 거야.”

 “하지만 그 미래를 파시즘과 코뮤니즘이 집어삼켰군.”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는 신해혁명이 기점이야. 당시 중화민국은 분명 자유민주 체제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었어.”

 “오···, 너 쑨원 빠였냐?”

 “쑨원이 진정 시민 중심의 민주정을 원했으면 중국은 민주정이 되었을걸. 위안스카이와 타협을 했을 리 없지. 쑨원은 의지가 없었어.”

 쑨원의 목표는 만주족의 나라인 청을 멸망시키고 한족의 나라를 세우는 것.

 한족인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대총통 자리에 오르는 것을 놀랄 만큼 자비롭게 용인했다.

 이후 위안스카이는 민주정을 짓밟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올랐으며 베이징의 짧았던 의회정치는 종말을 고했다.

 “쑨원도 아니면 누가?”

 “드넓은 중국 대륙에 누구든 있지 않았겠어?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든 개변할 수 있다면 난 1911년 신해혁명. 그때가 출발선이라고 본다.”

 “그러냐.”

 류웨이는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슬슬 취기가 돌았다.

 아오. 뭔 얘기를 하고 있냐.

 적당히 마시고 집가서 강철의 심장이나 돌려야겠다 생각하는데 옆 테이블이 시끄러웠다.

 중국 유학생이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인가. 인민복을 입었는데 말투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알아듣진 못해도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영상통화를 하던 중국 유학생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술집을 나가버렸다.

 계산도 않고 빠져나가는데 어찌나 급했는지 점원이 잡을 새도 없었다.

 “뭐래는 거냐? 왜 저래?”

 “핵미사일이 발사됐대.”

 “뭐?”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히 이야기하는 류웨이의 분위기가 묘했다.

 “점마 아빠가 공산당원인데 방금 중국이 전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동시 발사했대. 서울에는 13분 후에 떨어질 예정.”

 이놈이 이런 농담을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장난이라기에는 너무 서늘한 놈의 표정에 온몸의 소름이 쫙 돋았다.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왜?”

 “시진핑으로서는 이판사판인 거지. 어차피 실각하면 자긴 죽은 목숨이고 자유 동맹 세력을 놔둔 채 대만침공이 성공할 리도 없으니. 몰라. 그 새끼 머릿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삐이이이이.

 귀청을 찢을 듯한 공습경보가 강하게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었다.

 - 속보. 중국, 전 세계 주요 14개 도시에 핵미사일 동시 발사.

 - 가장 먼저 타격 입을 도시 서울. 즉시 대피하라.

 -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즉시 핵미사일로 응전.

 - 러시아, 데드맨 스위치 작동. 파멸의 날 시나리오 가동···.

 - 종말이 다가왔다. 핵전쟁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 세계는 어떻게 되나. 3차대전의 개막···, 중국 씨발아.

 줄줄이 올라오는 속보들.

 머릿속에 곧바로 몇 가지 행동 지침이 떠올랐으나.

 금방 무기력해졌다.

 이건 단발적인 전술핵 테러 같은 게 아니다.

 상호확증파괴에 의해 전 지구적 수순의 핵 보복이 이루어지는 묵시록적인 상황이다.

 서울의 대도심에서 내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

 어찌어찌 핵폭발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한국의 구호체계는 박살 날 테고 구하러 와줄 사람 따위 있을 리 없으니 난 피폭에 고통받다 끔찍하게 죽겠지.

 술집에 소요가 일었다.

 죄다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대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점원도 없는 가게에 류웨이와 나만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우리 죽는 거냐···?”

 “응.”

 “넌 뭔데 그리 침착하냐?”

 “글쎄···, 넌?”

 “나?”

 아니.

 태어났으니 언제든 죽을 거란 건 아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 인생이 끝난다고?

 시발.

 시발.

 청춘의 몽상적인 믿음일 뿐이었지만 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너는 할 수 있을 거 같아?”

 “어?”

 “세계의 정세에 발맞춰 중국의 역사 또한 급변하던 그 시기. 청이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며 군벌 시대가 열리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자유민주주의 중국을 건설할 수 있을 거 같아?”

 “씨발. 지금 그게 중요하냐?”

 “어. 중요해.”

 “하···. 뭐, 할 수 있었겠지.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런 핵전쟁 엔딩도 닥치지 않았을 건데.”

 “그러냐.”

 류웨이는 생각에 잠긴 듯 묵묵히 있다 덧붙였다.

 “너라면 가능할지도.”

 놈이 무슨 말을 하든 들리지도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핵 대피요령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만.

 암담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아비규환.

 이게 종말의 풍경인가.

 분명 십수 분 전만 해도 평온한 거리였는데.

 온 하늘에 재를 뿌린 듯 암담한 기운이 거리를 옥죈다.

 까마득한 창공에 시커먼 점이 보인다.

 점점이 가까워진다.

 거리의 모든 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폭발.

 온 시야를 뒤덮는 백색의 섬광.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돌아보니 류웨이다.

 무어라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으로 겨우 유추했다.

 잘해봐. 라고?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작열하는 것이 느껴졌다.

 서울에 피어오를 버섯구름을 상상하며.

 암전.

 인 줄 알았는데.

 어째 다시 눈이 뜨여졌다.

 그리고···.

 20세기를 목전에 둔 청나라 항구도시의 열악한 단칸방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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