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08)

홍콩의 이방인(수정)

 내 이름 한신(韓信).

 태어난 것은 1890년.

 아버지는 조선의 야망에 찬 젊은이였다.

 선원 일을 하며 세계가 넓다는 사실을 알곤 반도를 떠나는 꿈을 품었다.

 단순한 만용을 넘어 신화 속 영웅적 객기에 가까운 위업이었다.

 아직 십 대에 불과했던 어머니까지 대동한 채였다.

 우여곡절 끝에 둥지를 튼 곳이 홍콩.

 동아시아의 황제국을 자처하던 청나라가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영국에 할양한 지역이었다.

 어쩌다 홍콩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물으면 어머니는 대뜸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으니 말하지 않아도 헤쳐온 가시밭길이 짐작이 갔다.

 19세기의 홍콩은 터무니없는 양극화의 도시였다.

 영국인들이 장악한 홍콩섬은 빅토리아 양식의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홍콩섬을 마주 본 건너편 구룡반도에서는 다닥다닥 붙은 빈민가가 참혹함을 자랑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 바로 구룡반도의 침사추이(尖沙咀)였으니.

 처음 환생하고 난 후, 세계정세에 따른 역학관계와 강대국들의 파워 게임 따위에 골몰하던 나는.

 다섯 살 때 처음 가본 침사추이의 뒷골목에서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온통 똥으로 가득 찬 길거리에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쥐 떼가 우글거리는데.

 골목마다 아편굴이 깔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밑바닥의 불길한 냄새에 숨을 참아야만 했다.

 아편을 피우다 죽은 이들은 있던 연고도 끊긴 놈들이 태반이었다.

 처리가 골치 아프니 국경 바깥에 버리곤 했는데 청나라 조정도, 영국령 홍콩 정부도 신경 쓰지 않아 몇 달이고 방치된 시체에 구더기가 들끓었다.

 이 시대는 상상 이상의 야만과 잔혹의 시대였다.

 21세기의 합리와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악의가 날 두렵게 했다.

 무엇보다 어린 나를 힘겹게 했던 것은 이방인에 대한 박해였다.

 홍콩섬에 자리 잡은 영국놈들도 이방인인데 그놈들에게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이 새끼들, 그저 만만한 조선놈이나 건드릴 줄 알지.

 “야! 가오리방쯔! 오늘은 한 끼라도 먹었냐? 우리 집 개밥 좀 줄까?”

 “니 가랑이 밑을 기어서 통과하면 준다 그래.”

 “점마는 고개가 하도 빳빳해서 그대로 가랑이를 통과했다가는 내 좆을 핥을걸.”

 세계니, 열강이니, 군대니, 거창한 소리 지껄이기 전에.

 우리 집 반경 30미터 골목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청나라 한족 애새끼들을 격퇴하는 것이 세계 멸망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던 아홉 살의 늦은 오후는 그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시대 홍콩의 암흑가에서는 무시무시한 조직이 태동했으니.

 나는 조직에 가입한 후, 형들과 함께 몰려가 일진 패거리를 박살 내고 골목의 평화를 이룩했다.

 "야, 방쯔. 요즘 안 보이더라? 안 처맞으니 기가 살지?"

 "잠깐, 뒤에 있는 사람은 뭐야?"

 "어? 어? 왜 이러세요? 으악!"

 이 시대의 삼합회(三合會)는 홍콩에 적을 둔 작은 조직일 뿐이지만 그 영향력을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었다.

 성격도 단순 범죄폭력조직이 아니었다.

 청나라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에 가까웠으며 만주족이 장악한 청나라 조정을 무너뜨리려는 혁명 세력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

 삼합회에서의 일은 제법 잘 맞았다.

 물론 아편 밀매 따위가 정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따거. 물건 받아왔습니다.”

 “오냐. 근데 이번엔 양이 좀 많다?”

 “양놈에게 빅토리아 여왕의 생전 은혜와 자비로움을 찬양했더니 덤을 좀 줬습니다.”

 “역시 조선놈이 유능하다니까. 새끼들아, 좀 배워!”

 낮에는 홍콩의 중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생활.

 밤에는 하역일을 하며 삼합회의 운반책으로 돈을 벌었다.

 슬슬 움직일 때였다.

 전생의 핵 멸망 엔딩을 생각하면 언제나 식은땀이 났다.

 내가 환생하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영토에 인구에 자원에 역사까지 모두 가진 중국.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저들은 그리 병신같이 살며 씨발 같은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서울에서 감았던 눈을 홍콩에서 다시 뜬 순간.

 해야 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중국을 정상 국가로 만든다. 자유민주주의를 대륙에 이식시킨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는 법.

 야만과 잔혹의 세계에서 힘은 곧 군대를 의미한다.

 얼마 안 있어 다가올 대군벌 시대.

 누구든 출신 따위 상관없이 천하를 집어삼킬 수 있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

 이미 어릴 적부터 내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라며 손을 놔버리셨다.

 방임인지. 신뢰인지.

 어느 쪽이든 내게는 좋았다.

 구룡반도에서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건너갔다.

 확실히 20세기의 초입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는 최첨단을 달리는 홍콩이었다.

 삼합회의 행동대장 두징쯔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신아. 군인은 왜 되려는 거냐? 그냥 우리 조직에 있으면 앞날이 탄탄대로일 텐데.”

 “형, 알죠. 그래도 사내대장부가 큰일을 하려면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조직을 위해 또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야, 됐다. 조직은 무슨. 육사에 가면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

 “가게 된다면 말이죠.”

 “잘 될 거다. 네가 조직에 들어올 때도 가오리방쯔라고 무시하는 놈들이 태반이었지만 너는 능력으로 증명해냈지.”

 도착한 곳은 홍콩섬 중심가의 2층 건물.

 중국혁명동맹회(中國革命同盟會)의 홍콩 지부였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혁명 지사는 쑨원이다.

 그가 기존의 단체들을 모두 규합하여 세운 최대 규모의 반청혁명조직이 바로 중국동맹회였으니.

 삼합회 역시 암중에 중국동맹회를 지원하고 있었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두징쯔를 뒤로 한 채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뜻 유약한 인상의 남자가 만년필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자넨가? 육사 유학을 희망한다는 학생이.”

 “예. 한신이라고 합니다.”

 “조선인이라지? 광둥어를 잘하는군.”

 “태어난 곳은 홍콩입니다.”

 “나도 태어난 곳은 샌프란시스코라네.”

 남자의 앞에 명패가 보였다.

 랴오중카이(廖仲愷).

 쑨원의 돈주머니이자 살림꾼.

 과연 책상 위에 결재를 위한 서류가 수북했다.

 “제 혈통이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조선인을 굳이 거금을 들여 유학시킬 이유가 없지 않나.”

 “이유가 있습니다.”

 “말해보게.”

 “중국동맹회의 목표는 부패한 만주족의 나라인 청을 타도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그 이후의 일도 생각해보셨습니까? 청이 멸국한 이후의 천하 말입니다.”

 랴오중카이가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흥미로운 눈으로 날 응시했다.

 “계속해보게.”

 “새로 건국될 중국은 만주족이나 한족과 같은 특정 민족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대신 민족에 상관없이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겠지요.”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한족이든, 회족(무슬림)이든, 장족(티베트)이든, 조선 민족이든 그들의 핏줄보다 중요한 것은 배곯을 걱정 없이 다음 날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평화로운 침대. 뜻하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차별 없이 실현할 수 있는 천하입니다.”

 쑨원이 오족공화(五族共和)를 이야기하려면 몇 년이나 남았다.

 한족 중심의 무장세력으로 만주족의 청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만 골몰하던 랴오중카이로서는 생경한 얘기일 터.

 나는 내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청나라가 망한 후 기존의 규범이 깨어지고 갈라지는 세계에서 중국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같은 이민족들에게도 주어진 역할이 있겠지요. 저는 중국동맹회의 일원으로서, 육사의 군인으로서, 함께 혁명을 일구어내고 이후의 중국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럴듯하군."

 랴오중카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의구심이 생긴 듯 물어왔다.

 “헌데 자네는 조선 출신 아닌가."

 "예."

 "저 을사년(乙巳年)이후 자네 조국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던데···. 일본 유학이 괜찮겠나?"

 그랬다.

 이제 막 근대화의 초입에 들어선 청나라에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관학교가 있을 리 만무.

 각 성의 성도마다 육군학당이 있긴 했지만, 그 수준이 일천했다.

 오늘날 군부에 투신하기를 희망하는 청나라 젊은이들은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하지 않았습니까. 일본 육사를 희망하는 데에는 적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까닭이 있습니다.”

 “과연. 창창한 젊은이로군. 조선 민족의 앞날이 밝구먼그래.”

 “감사합니다.”

 물론 나라고 일본행이 썩 내키는 건 아니다.

 청나라에서도 방쯔라고 박해받기 일쑤인데 일본에 가면 그놈의 조센징 소리만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듣겠지.

 하지만 벌써 1907년.

 청이 멸망하는 1911년의 신해혁명이 멀지 않았다.

 나라가 동란에 빠져 혼란스러울 때 기회를 붙잡으려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출세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일본육사다.

 당금의 일본제국은 강대국 청나라와 러시아를 연거푸 쓰러뜨린 아시아의 떠오르는 태양.

 일본육군사관학교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지나친 적의는 삼가게. 누가 뭐래도 오늘날 일본은 자강으로 힘을 길러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지 않나.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낼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걸세.”

 랴오중카이가 선심 쓰듯 말을 덧붙였다.

 이것이 오늘날 아시아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이었다.

 일본을 보라!

 아시아도 할 수 있다!

 일본이 양이 놈들을 몰아내고 근대화를 이룬 것처럼 같은 아시아의 동지로 힘을 합쳐 변란을 이겨내자!

 물론 그런 확신에 찬 전망을 쏟아내던 지식인들은 훗날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죄다 버로우하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

 면담이 이어졌다.

 랴오중카이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절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출신이 걸린다는 지적에는.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은 중국 대륙에 사는 모두가 같습니다. 한족 중심의 혁명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니 절 등용하신다면 혁명의 외연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육사를 희망하는 이유에는.

 "적절한 자리에 있는 지휘관 한 명은 가히 천 명의 군대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니. 일본육사를 졸업한, 혁명 의지에 불타오르는 엘리트 장교는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인재입니다. 제게는 그러한 자리에 올라설 자신감이 있습니다."

 청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저는 열두 살 때부터 돼지를 도축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혁명의 봉화가 타오르면 저는 가장 먼저 베이징으로 달려가 돼지 꼬리들을 도축할 것이니, 부디 소임을 맡겨주십시오."

 면담은 훈훈한 분위기로 끝났다.

 랴오중카이는 연줄이 있는 고위 관리에게 편지를 작성하여 보내겠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다.

 그 덕인지 얼마 후, 유학생 선발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굳이 현대인 천재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 시대 시험의 수준은 보잘 것 없으니 나는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1908년.

 열여덟의 나는 일본으로 향하는 여객선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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