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 입학식.
진무의 서너배는 되어 보이는 연병장이 무겁게 생도들을 압박해왔다.
분위기가 다르다.
고작 입학식일 뿐인데 마치 전쟁이라도 나가는 것 같은 전운이 감돈다.
육사 신입생도 754명이 서 있는 연병장이 숨죽은 듯 조용하다.
청의 유학생도 56명은 좌측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다들 긴장하여 표정이 굳은 채였다.
언제나 거만하던 시치아 조차도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육사는 진무와는 전혀 달랐다.
실상 청의 무비학당을 그대로 일본으로 옮겨놓은 것이나 다름없던 진무학교.
그러나 육군사관학교는 오늘날 용솟음치는 일본제국의 국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었다.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일본군의 정예 장교양성소였다.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청의 유학생도는 철저한 약자이자 이방인.
정신이 해이했다가는 잡아먹힐지 모른다.
육군 중장인 학교장의 훈화가 끝나자 훈육 교관이 단상에 올랐다.
교관이 학생 규칙인 생도심득(生徒心得)을 읊었다.
"제1 본교 생도교육의 목적은 유능한 황국육군장교를 양성하는 데 있다. 장교는 군대의 근본이 되며 천황 폐하를 보호하고 도와야 하는 의무를 진다···."
대충 육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은 천황을 위한 것이며 천황의 뜻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질 거라는 내용.
메이지 천황을 우상시하여 근대화된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일본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였다.
생도심득 낭송이 끝나자 다음에는 모든 신입생도가 함께 군인칙유를 복창하였다.
"하나! 군인은 충절을 다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인 생도들이 연병장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합창했다.
나는 적당히 웅얼웅얼거렸다.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정치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한결같이 군인으로서 자신의 의무인 충절을 지키며, 의는 험난한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깃털보다 더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지조를 깨뜨려 실패를 초래하고 오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 악에 받친 게 있나?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해온 일본군의 사상교육이 점차 먹혀들어 가는 모습.
집단적 광기가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현장이었다.
또다시 지겨운 합숙 생활이 시작되겠지.
문득 홍콩에서의 흥청거리던 삶이 그리워졌다.
같이 온 애들은 지금 뭐하려나.
삼합회의 조직원들은 근처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도쿄에 「가능성」 2호점을 내기 위해서는 3가지의 선결 요소를 해결해야 했다.
1. 파칭코를 제조할 업체 선정.
2. 도쿄시의 사업 허가.
3. 나와바리 확보.
그중 제일 걸리는 건 3번 나와바리다.
도쿄에는 물론 야쿠자가 있다.
함부로 장사하다가 시비가 걸리면 으으. 생각하기도 싫다.
길 가다 일본도에 몸이 썰릴지 몰라.
일단 육사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파칭코 문제는 시간을 두고 접근하기로 했다.
육사 역시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하였으니 서두를 것 없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병과가 결정되었다.
나는 부대배속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주는 대로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남는 자리야 뻔하니까.
보병과.
바라던 바였다. 중국은 당연히 땡 10보지.
내세울 건 무지막지한 인력밖에 없는 중국군에서 모든 전술의 기초는 보병이 될 수밖에 없다.
의복과 생필품이 지급되고 방 배정까지 완료되었다.
육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정돈되고 규율이 잘 잡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하지만 입학 첫날 저녁.
헬게이트가 열렸다.
***
내가 속한 1중대 2구대는 총 30명이었다.
담당 구대장이 점호를 마쳤다.
"이상. 오늘 수고 많았다. 취침에 들기 전에 소개할 사람이 있다. 신입이니만큼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터. 너희와 내무반을 함께 쓰며 생활지도를 할 모범학생이다. 나오도록."
구대장의 뒤에서 걸어 나오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22기 무다구치 렌야(牟田口廉也)다. 잘 지내보자."
형이 여기서 왜 나와?
이거 너무 불길한데.
구대장이 나간 뒤에도 2구대는 엉거주춤 서 있었다.
다들 무다구치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무다구치는 평온하게 뒷짐을 쥐고 있다 구대장이 사라지자마자 표정이 뒤바뀐채 천천히 내무반을 돌았다.
주도권을 쥔 자의 당당한 행보였다.
"청소는 했나?"
"···예."
단번에 대답이 안 나오고 조금 늦었다.
"대답 안 한 새끼 앞으로 나와라."
갑작스러운 무다구치의 지시에 생도들은 힐끔힐끔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어슬렁거리던 무다구치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신입생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놈, 대답했는가?"
"아, 안 했습니다!"
"근데 왜 앞으로 안 나왔나?"
"죄송합니다!"
무다구치가 생도의 멱살을 쥐었다.
"네놈, 출신 학교가 어디냐?"
"도쿄부립 제 2 중학교를 나왔습니다!"
"하! 그럼 그렇지."
무다구치는 난폭하게 내무반의 중앙에 생도를 내팽개쳤다.
생도는 볼썽사납게 바닥에 엎어졌다.
무다구치는 뒤이어 다른 생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놈은 대답했는가?"
"예!"
"출신은?"
"육군유년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럼 그렇지."
무다구치는 육유출신 생도의 어깨를 몇 번 쳐주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춘 곳은 바로 내 앞이었다.
"네놈은 대답했는가?"
"예."
"출신을 말해라."
"진무학교입니다."
"진무? 아아, 지나(支那, 일본에서 중국인을 욕할 때 쓰는 경멸적인 지칭)인이로군. 그런데 돼지 꼬리는 어디다 팔아먹었는가?"
"거추장스러워 잘랐습니다."
무다구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항상 드는 생각.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갈굴 때 왜 이러는거야?
딴에는 겁을 주려는 듯한데 나로서는 뽀뽀하려는 것 같아 심란하기만 하단 말이다.
"흥. 운 좋은 줄 알아라."
잔뜩 긴장하였는데 다행히 무다구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 의외로 잘 보인 건가?
무다구치는 같은 방식으로 2구대 전체를 심문했다.
멱살을 잡혀 중앙으로 패대기당하는 기준은 육군유년학교출신이냐, 일반 구제중학교 출신이냐였다.
육유 출신의 경우는 대답을 제대로 못 했어도 그럴 수 있다며 덕담을 해주고 넘어가는 반면.
구제중 출신은 대답을 아무리 잘하여도 다른 꼬투리를 잡으며 내무반의 중앙에 패대기쳤다.
나를 포함한 청의 유학생은 두 명이었는데 둘 다 그대로 두었다.
처음에는 대답을 잘해서 넘어간 줄 알았는데 나 말고 다른 녀석이 답하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보다는 기수열외의 느낌.
일본군으로 취급조차 안 하는 느낌이었다.
뭐. 어느 쪽이든 갈굼을 안 당하면 나는 상관없다.
오히려 개꿀이지.
"똑바로 서라."
중앙에 모인 구제중 출신 생도들이 일렬로 섰다.
무다구치가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교육은 앞으로 육사에서 교육받는 내내. 아니, 임관하여 천황폐하의 뜻을 받들어 군 복무를 하는 내내 너희의 피와 살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이 고통을 기억해라!"
처음엔 따귀였다.
짝! 짝! 짝! 짝! 짝···!
다음엔 배빵.
퍽. 퍽. 퍽. 퍽···.
쪼인트까지.
빡. 빡. 빡···.
고통을 이기지 못한 한 생도가 넘어졌다.
"일어나라! 상급자가 교육 중일 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차렷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넘어져도 곧바로 다시 일어서라! 일본제국은 바로 이 불굴의 야마토 정신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니라!"
찰리 채플린이 그랬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문서로 읽었던 무다구치의 행각은 분명 웃음벨이었는데.
눈앞에 가해지는 폭력에 웃음기는 없었다.
멍이 차오르고 피부가 찢겨 피가 흐를 때까지 구타가 계속되었다.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사람을 패는 이유가 뭘까.
진심으로 천황의 충정으로 자행하는 교육인 건가?
확실한 건 있었다.
앞으로 2구대는 무다구치의 그림자만 보여도 벌벌 떨 거라는 것.
그런 점에서 무다구치 렌야는 추천받아 뽑힐 만큼 모범 학생이었던 것이다.
다만 첫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깨달은 사실은 2구대뿐만 아니라 23기생 전체가 비슷한 똥군기를 겪었다는 것이었다.
아냐. 그래도 2구대 애들이 제일 멍이 심하다.
무다구치 나쁜 자식. 그러지 마.
첫날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지금의 고통이 앞으로 군 생활에 이정표가 될 거라던 무다구치였으나.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되었다.
막 입교한 신입 기수의 분위기를 장악하려는 상급생들의 노력은 가상하여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으니.
일본군의 똥군기는 세계제이이이이이일!!! 이었다.
그딴 거에 자부심 좀 안 가졌으면 좋겠는데.
진무에서 시치아의 팔기파 패거리들이 하던 짓이 새똥이나 찍 싸는 거라면.
이 쪽발이들은 말똥을 삽으로 퍼댔다.
대표적인 똥 포대기는 구제중학교 출신들에게 쏟아졌다.
무다구치를 비롯한 육군유년학교출신들이 육사의 패권을 꽉 움켜쥐고 쥐락펴락했다.
육유 출신들은 구제중 출신을 D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혈통이 좋지 않은 저급의 말을 뜻한다고 했다.
반면 자신들은 카D로 칭했는데, 프랑스어로 유년학교 생도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팔기파와 북양파, 혁명파의 다툼은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친구 사이처럼 보일 만큼 D와 카D의 파벌싸움은 흉험했다.
서로를 진정으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 같았다.
23기 D들은 상급생에게 그저 얻어맞는 것 밖에 없었지만 22기에서는 D와 카D끼리 패싸움도 오가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수적으로 밀리는 D들이 항상 얻어맞는 쪽이었지만.
날 포함한 청의 생도들은 거진 천민 포지션이었다.
자신들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아서일까.
간간이 모멸적인 언어들을 쓰며 도발해오는 놈도 있었지만, 청의 생도는 애초에 수가 적었으며 분란을 일으키는 자도 없었기에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유령처럼 내무반과 교실, 강당과 연병장을 오갈 뿐이었다.
육군사관학교의 과목들은 확실히 본격적인 장교 양성과정에 돌입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외국어는 중요하게 다루었고 그 외에 수학과 물리 등 기초과목이 있었다. 이외에는 모두 군사학 관련 수업이었다.
교실에서는 전술학과 병기학, 지형학, 축성학 등을 배웠으며.
야외에서는 교련, 진중근무, 검술, 사격 등을 배웠다.
물론 과목이 그럴듯하다고 수업까지 그럴듯하지는 않았다.
천황에 대한 충효를 강조하는 정신교육이 모든 수업에 감초처럼 활약했다.
일본 교관은 어떻게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교 경전의 활용이었다.
진무를 벗어나면 더 이상 주역은 안 볼 줄 알았는데 헛된 꿈이었으니···.
아니. 전술학 수업에 유교 경구를 왜 공부하냐고.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론 따위를 기똥찬 전술이라고 배우는 꼬락서니가 기가 막혔다.
무슨무슨 론(論)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진무학교 때처럼 날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처연한 헛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대신 내가 기다리는 이벤트는 따로 있었다.
중간고사.
육사에서는 모든 학생을 성적으로 줄세운다.
수업따위 어떻게 듣든 시험만 잘보면 끝이다.
그리고 다행히 육사의 교육은 여전히 내겐 고등학교 수준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