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등학생을 상대할 때도 최선을 다하지2
올해 서른인 샤즈광은 무척이나 아니꼬웠다.
일부러 뻗대듯 다리를 활짝 열고 건들거렸다.
관대? 좆까. 훈련? 좆까. 군법? 좆까.
우창성은 샤즈광이 태어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온 터전이다.
보병영의 병사들은 태반이 아는 형들이고 삼촌이고 소꿉친구이며 친한 동생들이다.
타지역에서 갓 건너온 신출내기 장교들은 자신의 밥이었다.
독대(중대장)든 초관(소대장)이든 다 잡아먹었다.
이건 단순히 편한 군생활 그 이상의 문제였다.
샤즈광은 그깟 무비학당 좀 졸업하고 왔다고 거들먹거리는 장교 놈들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구는 봉급이 여섯 달째 밀려 땅 파먹고 사는데 별 나이 차이도 나지 않은 어린놈이 장교랍시고 자신의 윗대가리에서 이것저것 명령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이번 관대는 부임하기 전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던 터였다.
"이름이 한신이라는데?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이래."
"한신은···. 그 저기, 초한지에 나오는 게 한신아니냐?"
"동명이인인가 보지. 일본육사를 전체 1등으로 졸업했다네."
"그게 뭐, 씨발. 나도 서당에서 1등 한적 있는데."
"나이도 존나 어리대."
신임 관대는 과연 부임하자마자 보병 제18영 전체 소집을 걸었다.
샤즈광은 동료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말 절대 듣지 마. 그냥 무시해."
"그래도 우리 부대 대장인데 대놓고 그럴 수는···."
"뒤질래? 반항하냐?"
"아, 아냐."
신임 관대 앞에서는 일부러 보란 듯이 쌩까게 시켰다.
병사들은 술을 퍼마시고, 배를 들어 까고, 낮잠을 청했다.
샤즈광은 연병장 한복판에 자리를 깔고 마작을 쳤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함부로 굴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이번 관대를 보니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것이 만만해 보였다.
과연 몇시간째 그 지랄을 하는데도 관대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하하. 우리 병아리 관대, 잔뜩 쫄아서 움츠러든 거 봐."
"내 말이 맞지? 학당을 나온 책상물림들은 강하게 나가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몇 달 못 버티고 바로 전출 신청하는 거 아냐?"
"그럼 우리야 좋지. 새로 오는 놈을 또 골려주면 되니까."
제식훈련을 한다고 다른 병사가 알려주러 왔으나 단박에 쫓아냈다.
"아. 저 찌질이 새끼. 말 듣지 말라니까 또 쫄래쫄래 따까리 노릇하네."
"놔둬. 저런 놈도 있어야지."
이번엔 관대가 직접 왔다.
샤즈광은 대뜸 일어나 몸을 들이밀었다.
몸집으로 기를 죽일 셈이었다.
"당신이 신임 관대요? 뭐이리 어려. 몇살이요?"
"스물하나."
"이야. 내가 돼지를 처음 잡은 게 아홉살 때인데. 그때 막 태어났다는 거네? 이런 젖내 나는 대장이 오다니. 누구, 집에서 젖먹이 키우는 사람 있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우리 대장이 오줌싸면 어떡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만."
과장되게 몸을 흔들자 병사들이 따라 웃었다.
샤즈광은 다시 말했다.
"우린 훈련 같은 거 받아본 적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고. 지금까지 생활해 왔던 대로 있을 거니까, 대장도 어디 다락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시오. 아니면 기생집이라도 가든가. 얼굴이 반반하니 잘해주겠네."
"훈련은 됐다. 말했잖냐. 마작이나 치자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요? 우리랑 마작을 치겠다고?"
"그래."
무슨 생각이지?
일순간 샤즈광은 혼란스러웠다.
병으로 10년을 복무하며 하고많은 장교 놈들을 만나보았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같잖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거였다.
대단한 공부를 끝마치고 온 자신과 일반병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태도.
건방. 교만. 샤즈광은 눈꼴사나워 보기 싫었다.
특히 보병영 전체를 지휘하는 관대는 사병 따위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 게 보통인데.
같이 마작을 치자고?
"갑자기 끼려니 다른 사람 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오늘 처음 부임했으니까 사정을 좀 봐줘."
"어···. 예. 이리 앉으쇼."
"고맙다."
대뜸 자리에 앉은 관대를 포함하여 새로운 마작판이 돌아갔다.
분위기가 어색하여 애꿎은 패만 딸깍거리는데 관대는 거북한 것도 없는지 자연스레 물어왔다.
"이름이 샤즈광인가?"
"예."
"내가 아는 형이랑 닮았네. 배우 한다고 베이징에 갔는데 지금 잘살고 있는지 몰라. 되게 잘생겼었는데."
이 새끼. 뭔 말하냐? 배우는 씨발.
그런데 요상하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얼굴 칭찬을 받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샤즈광은 무심한 척 말했다.
"나는 소싯적에 쌈박질하다가 앞니가 다 깨졌는데 닮긴 뭘 닮았다는 거요."
"아. 내가 설명을 안 했군. 그 형은 굉장히 쾌남형으로 잘생겼었는데 너도 비슷한 느낌이야. 남자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니 오히려 이빨이 없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흥. 헛소리요."
"이빨 사이로 침 뱉을 수 있나? 해봐."
"이렇게?"
"오오. 멋있어. 이게 남자지."
자기도 모르게 말에 따르는 샤즈광이었다.
관대는 마작은 완전히 초보자였다.
"아하. 대가리 1개에 몸통을 4개 만들어야 끝나는 거구나."
"그렇소."
"니들은 어떻게 그리 잘하냐? 나는 해도 안 되네."
"대장은 머리가 좋으니 금방 배울 거요."
마작패가 돌아갈수록 분위기도 흥겨워졌다.
까마득한 상급자가 아닌 똘똘한 동생 하나 두고 같이 노는 것 같았다.
"이야! 이게 나네. 1삭(索)은 내가 처음부터 들고 있었던 건데. 아, 버리지 말 걸 그랬어."
"크하하! 대장! 내가 뭐라고 했쇼. 마작은 기다리는 자가 승리한다고 했잖요."
"담판엔 이긴다. 빨리 패 돌려!"
마작을 치다 보니 자연히 살아온 이야기도 털어놓게 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것.
그래서 더 무시당하기 싫어 몸집을 키우고 싸움을 벌였던 것.
우창에 기근이 들어 어머니까지 굶어 죽을 지경에 몰리자, 끼니는 준다는 말에 입대하여 자신은 굶고 어머니를 살린 일화···.
술도 안 들어갔는데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화답하듯 관대도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정말 일본놈들이 중국을 그리 우습게 본단 말이요? 그래서 대장은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나 보구려."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이 날 무시하든 말든 상관없어. 나는 다만 내가 공부한 지식으로 이 나라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 있을 뿐이야."
"오오! 과연 우리 대장!"
일본육사에서 1등을 했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분명 첫판에만 해도 기본적인 규칙조차 알지 못했는데 실력이 무섭게 성장하여 판돈을 끌어모으는 관대였다.
마침내 막판이었다.
평소에 마작을 잘 치는 편은 아니었던 샤즈광. 헌데 오늘은 묘하게 패가 잘 붙어 2등에 자리 잡고 있다.
1등은 관대였다. 어느새 점수를 야금야금 먹어 올라갔는지 감탄만 나왔다.
"좋아. 막판 가보자고."
배패는 좋았다. 삼원패가 여러 개가 들어왔다.
1등과 2등 사이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백발중(白發中)을 모아 완성만 시킨다면 일발 역전이 가능하다.
샤즈광은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긴장을 잘 안 하는데 오늘이 특이하였다.
드디어 한 걸음이 남았다.
중(中)패, 혹은 발(發)패만 들어오면 소삼원(小三元)이다.
이제 패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얼마 없다. 역전이 될까?
샤즈광은 관대가 버리는 패를 눈으로 훑었다.
저게 중이었으면, 혹은 발이었으면. 제발. 제발. 제발!
딸각.
떨어진 패에 빨간 글씨의 선명한 중(中)자가 보였다.
"우와아! 이겼다! 대장! 이것 보쇼. 소삼원이요. 하하."
"아니? 여기서 또 쏘인다고?"
"그러니까 기다리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라니까!"
이깟 마작에서 이긴 것뿐인데 왜 이리 기분이 좋을까.
극적인 승리.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관대가 혀를 내둘렀다.
"아깝네. 마지막에 역전당하였어. 완패야."
"마작은 그냥 운이요. 오히려 관대의 실력이 순식간에 늘었으니 그 점이 더 대단하오."
"승자의 여유야? 됐다. 그만하자. 어차피 오늘은 신임 지휘관이 왔으니 얼굴이나 보여주려 모이라 한 거니까. 이제 다 해산하라고 해."
명에 따라 제18영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관대는 가지 않고 있었다.
"어이. 샤즈광. 술 마시러 가야지. 이긴 사람이 바로 내뺄 생각은 아니지?"
"어···. 우리는 이제 술 마시러 갈 거긴 한데. 대장도 같이 가려는 거요?"
"왜? 내가 많이 먹을 거 같아 나 빼고 가려는 건가?"
"아니요. 그럴 리가. 아! 그럼 같이 가십시다!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주점을 뽀사보십시다!"
오늘 처음 본 관대와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퍼마시는 동안 샤즈광은 생각했다.
우리 대장.
맘에 든다.
***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필요한 준비를 챙긴 후 연병장으로 향했다.
전체 소집은 지난번 첫 부임했을 때 이후로 일주일만이다.
가까워가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똑바로 안 서? 대장님 오시기 5분 전이다!"
"아씨. 섰잖아. 존나 귀찮게 하네."
"어쭈. 이 새끼가 간덩이가 부었나. 차렷 몰라? 움직이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어."
"제대로 안 하면 뒤진다. 각오해라."
샤즈광과 그 친구들이 일진 놀이를 하는 중이다.
물론 선생님께 아주 충실한, 모범적인 일진들이다. 마음에 들어.
"쉿. 오신다."
내가 연병장에 들어서자 숨죽인 듯 부대가 조용해졌다.
단상에 서서 병사들을 훑었다.
여전히 군기가 잘 잡힌 군대라고는 볼 수 없지만 불과 며칠 전의 아사리판과 비교한다면 믿기지않는 광경이다.
500여명이 한데 모여 어설프게나마 서 있는 모습 자체가 기적이다.
"오늘 너희들을 부른 것은 보병영의 지휘관으로 사과할 일이 있어서다."
사과란 말에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지금 이 자리에 선 500명 중에 봉급이 밀리지 않은 자가 없다고 안다. 짧게는 한두 달 부터 길게는 일 년째 급료를 구경 못했다는 병사도 있다. 비록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만, 나 또한 청의 군제에 소속한 책임자로서 너희들의 서럽고 분한 마음을 가슴 깊이 통감한다."
나는 뒤편에 서 있던 독대 3명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놈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단상에 올라왔다.
"너희들의 봉급이 밀린 까닭. 물론 조정의 곳간이 빈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 년이 넘도록 급료를 못 받는 자가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가 이유를 알려주마. 이 셋은 지난 3년간 이천냥에 가까운 횡령을 저질렀다. 너희들의 급료를 착복하여 아편으로 죄다 탕진해 버린 것이다."
일순간에 소요가 일었다.
악에 받친 욕설이 쏟아졌다. 신던 신발을 집어 던지는 놈도 있었다.
샤즈광의 고함에 겨우 진정이 됬으나 여전히 연병장이 소란했다.
"물론 이놈들은 군법에 따라 엄히 처벌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마땅히 횡령한 돈을 토해내게 만들어 정당한 소유권자에게 돌려주어야 하지만 이놈들의 주머니에는 아편가루밖에 남아있지 않다. 완전히 빈털터리인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나는 대열의 가장자리에 있는 병사를 불렀다.
"리페이양(李沛洋)!"
"예. 관대님."
병사가 터벌터벌 나왔다.
"너는 일 년째 봉급을 받지 못했다고 했지. 맞나?"
"예."
"그간 어떻게 살았나?"
"집사람이 삯바느질을 하고 저는 짬짬이 수레를 끌었습니다."
"고생했구나."
"···예."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리페이양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네 거다."
"으, 은화!"
은화란 말에 병사들의 시선이 쏠렸다.
"제18영의 지휘관으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다. 지금부터 급료를 횡령당한 병사를 호명할 것이니 나와서 보상을 받아 가라."
"우와아!"
"은화다! 은화!"
병사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며 은화를 받아 갔다.
차례가 되어 올라온 샤즈광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장. 저놈들은 빈털터리라 했는데 보상할 돈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내 사비다."
"허억. 그럴 수가. 왜 대장이 그리 희생하는 거요!"
"괜찮아. 나는 받아낼 자신이 있거든."
"그렇다고 해도···. 대장이 희생할 의무는 없소···."
"희생이라니. 가당치 않다. 마땅히 해야 하는 데로 하는 거야."
무리로 돌아간 샤즈광이 내가 사비를 털어 보상했다는 사실을 퍼뜨리자 연병장은 거대한 콘서트장과 같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한신! 한신! 한신! 한신!!!"
초등학교 선생님에 빙의해 제18영을 내 반으로 만드는데 딱 일주일 걸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접대 마작도 기가 막혔고, 지나간 장부를 들추느라 고생도 제법 했다.
2000냥을 쓰긴 했지만, 받아낼 자신이 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횡령을 한 독대 3명은 불명예제대 후, 저 항구의 어느 도시로 끌려가 시커먼 깡패들 밑에서 꽤나 고된 노동을 하게 될 테니까.
이로써 드디어 내 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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