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08)

혁명의 봉화

 후베이성 제8진 사령부.

 후광(胡廣, 호북과 호남) 총독 루이청(端征).

 즈리(直隸, 하북) 총독 돤팡(端方).

 제8진 통제(사단장) 장뱌오(張彪).

 쟁쟁한 장성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나는 말단에 앉아 듣기만 했다.

 "쓰촨(四川, 사천)성의 반군이 10만이 넘었소."

 "말도 안 돼. 아무것도 못 배워먹은 무지렁이 놈들이 뭘 안다고 들고 일어나는 거야? 어련히 조정에서 알아서 할까."

 "후베이성과 후난(湖南, 호남)성, 광둥(廣東, 광동)성에서도 시위대가 늘어나는 추세요. 조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더 불어날 거요."

 "젠장. 모름지기 민초(民草)란 것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짓밟아 줘야지 분수를 깨닫는 법이니 이번 기회에 내가 확실히 진압하겠소."

 전국은 한창 철도수호 운동인 보로운동(保路運動)으로 시끄럽다.

 경위는 이러하였다.

 이 시대 최고의 첨단 산업이자 근대화의 상징인 철도.

 그러나 무식하게 넓은 중국 대륙에 철도를 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금도 기술도 없던 청나라는 탐스러운 먹잇감이었으니 승냥이 떼처럼 몰려든 열강들은 담합하여 철도 부설권을 나누어 가졌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청 조정은 뒤늦게 민간 사업자들을 끌어들여 국내 자본으로 철도부설 운동에 나섰다.

 서구 열강들에 대한 적대 감정을 고조시켜 민족 자본을 끌어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민족 감정에 호소한다고 철도가 저절로 깔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민간자본에 빵꾸가 나며 철도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위기에 몰리니 조정은 결단을 내렸다.

 철도 국유화.

 중앙정부에서 사업을 도맡겠다는 결정.

 그러나 중앙정부라고 돈이 어디 있겠는가?

 도로 처음으로 돌아가 열강에게서 차관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손실 난 민간사업자들에게는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으니 이게 무슨 꼴인가.

 이전까지는 아무리 호소해도 불씨가 붙지 않던 민족 감정이었는데.

 철도 국유화 결정 한 번에 화르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시위가 심한 곳은 쓰촨성이었다.

 쓰촨성의 제17진만으로는 시위를 진정시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철도 국유화 책임자인 즈리 총독 돤팡이 진압을 위해 군대를 조달받으러 제8진에 온 것이다.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2개 표(연대)만 주시오."

 "부족하지 않겠소?"

 "낫 들고 설치는 무지렁이들이오. 부족하다니, 농담 마시오."

 돤팡의 호언장담.

 고개를 끄덕인 후광 총독이 제8진 통제에게 말했다.

 "장군. 되겠나?"

 "문제없습니다."

 "좋아. 알아서 차출하게."

 "예."

 사단장이 통대(연대장)들의 얼굴을 흝는데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꼴들이 가관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쓰촨성에 가게 될 지 이미 알고있다.

 그러게 평소에 사단장한테 좀 잘하지 그랬어.

 눈 밖에 난 2개 연대가 당첨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성곽의 으슥한 공터로 향했다.

 이미 십수 명의 사내들이 모여있었다.

 "한신 총대장께서 오셨다."

 사내들이 일어나 모두 내게 허리를 숙였다.

 썩 반갑지는 않았다.

 억지로 앉힌 총대장 자리였기에.

 "동맹회 상부에서 10월 9일을 거사일로 지정했습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이 빠져나갔으니 봉기에는 최적기인 셈입니다. 우리가 들고일어나면 우창의 병사들이 바로 호응할 겁니다."

 "한커우(漢口)의 비밀 거점에서 제조한 폭탄도 조만간 들어옵니다."

 사내들이 한마디씩 떠들었으나 나는 심드렁했다.

 이들은 동맹회가 우창에 설치한 하부조직 문학사(文學社)의 간부들.

 하지만 말이 간부지 군사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애송이들이다.

 나이대도 내 또래의 어린 친구들이니 봉기가 시작되었을 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제8진에 잠입한 병사는 얼마나 됩니까?"

 "100여명 가량입니다."

 "명단을 주세요."

 이미 상당한 숫자가 후베이군에 입대해있다.

 그들은 병사들 사이에서 함께 생활하며 다른 병사들을 선동하고 때가 되면 무기를 들고 봉기하는 임무를 맡았다.

 책만 읽은 샌님들보다는 훨씬 귀중한 인재들이다.

 "이들에게 제 신분을 노출하지는 않았겠지요."

 "예. 분부대로. 다만 군의 높은 위치에 아군이 있다는 정도는 말했습니다만."

 "그런 얘기도 삼가세요."

 이번 우창 봉기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나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상황이 꼬여버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비밀 유지입니다. 계획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잘해야 돼요."

 "예. 총대장님. 그럼 거사 당일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우창의 중심부에 있으니 가능하다면 적의 수괴부터 제압해야지요."

 "좋아! 목표는 후광 총독 루이청과 제8진 통제 장뱌오의 목이다!"

 문학사의 젊은이들이 소리높여 포효했다.

 "아니, 아니.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니까 다들 뭐 하세요."

 "어차피 여기는 외진 곳이라 아무도 안 옵니다."

 "그깟 어설픈 정신상태로 되겠습니까? 명심하세요. 우리는 지금 반란을 일으키려는 겁니다. 걸리면 목이 뎅강이라고요."

 아무래도 불안하다.

 돕겠다고 나서기는 하는데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 같다.

 "명심하세요. 여러분, 뭐 보여줄 거 없으니까 뭐 하려 하지마요. 제가 명령하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으세요."

 "예!"

 쓸데없이 우렁찬 대답.

 우리 비밀 혁명 조직 맞지?

 ***

 아니었다.

 예상 적중!

 고작 며칠 만에 사고가 났다.

 쾅!

 제8진 통제 장뱌오가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책상을 쳤다.

 "군기가 어떻길래 대놓고 병영에서 총기가 발사돼? 야, 너 뭐 했어. 네 담당이잖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거리에서 도는 소문은 뭐야? 중추절에 무장봉기가 일어나 만족을 살육할 거라고? 대체 어디서 나온 괴소문이야?"

 "검문에서 의심스러운 자를 체포하였으니 조사중입니다."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흉흉해. 아무래도 뭔가 잘못됐어."

 포병영 제8표 제3영에서 술자리를 가지다 말다툼이 있었고, 공포탄을 발사하는 등의 소란이 일었다.

 소란의 당사자들은 동맹회의 병사들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도망쳤으나 자칫 잡혔더라면 거사 시작도 전에 숨어든 병사들이 일망타진 당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검문에서 붙잡혔다는 놈인데.

 에이 설마 문학사의 간부는 아니겠지.

 내가 거사 전까지는 그렇게 주의하라고 일렀는데.

 장뱌오가 지휘관들을 갈구는데 심문을 맡았던 자가 급히 들어왔다.

 귓속말을 들은 장뱌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혀, 혁명? 문학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오. 들켰네.

 "계, 계엄이다! 당장 병사들의 외출을 금하고 무기를 회수해라! 특히 실탄은 철저히 간수해라!"

 "예!"

 "베이징에 원군을 요청해라. 위험하다. 위험해. 우창의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노리다니."

 그날 저녁.

 비상이 걸렸다.

 총독 루이청까지 관저에서 뛰쳐나왔다.

 "주동자를 색출하고 엄중 처벌한다!"

 우창의 성문이 굳게 닫혔다.

 장뱌오의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동맹회의 비밀 거점을 타격하러 출동하였다.

 계엄령이 떨어졌다.

 무장 해제되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나는 더 미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늘이다. 오늘 해야 한다.

 ***

 제18영 전체가 오랜만에 모였다.

 나는 괜히 뒷짐을 지고 걸으며 분위기를 잡았다.

 "제8진에 비상이 걸렸다."

 "···."

 "상부에서 무기와 실탄을 반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유는 알겠지?"

 "대장! 설마 저희를 의심하는 겁니까!"

 병사 샤즈광이 소리쳤다.

 "의심하다니. 뭘 의심한다는 건가."

 "저희가 술 먹고 베이징의 윗대가리들을 자주 욕하긴 했습니다만, 그게 진심이 아니란 건 대장도 알지 않습니까! 그저 술 취한 넋두리였을 뿐입니다!"

 아니. 제발 진심이었으면 좋겠는데.

 "샤즈광. 그게 정말이냐? 넌 조정의 대신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차례로 똥침을 먹이고 싶다고 했었잖나. 내가 분명히 기억한다."

 "그, 그 똥침은···! 믿어주십시오! 저희는 혁명이니 뭐니 그딴 거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정말로 그런가? 여기 모인 500명 중에 혁명파의 잔당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저희는 모두 청에 충성하는 군인입니다!"

 지난 몇 달간 군기를 너무 잡았나.

 이봐, 샤즈광. 조금은 헐렁해지라고.

 나는 방향을 돌려 걷다 한 사람 앞에서 멈추어 섰다.

 "리페이양. 집사람은 잘 있나?"

 "예! 챙겨주신 덕분입니다."

 "그래. 너도 샤즈광과 같은 생각인가?"

 "예? 어떤 생각을 말씀하시는지···."

 "청조의 충성스러운 군인이냐는 말이다."

 "···예. 그렇습니다."

 리페이양이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들은 얘기와는 다르군."

 "···?"

 "첩보가 하나 들어왔단 말이지."

 "···!"

 "다시 묻겠다. 리페이양. 너는 청조의 군인인가?"

 병사 리페이양이 온몸을 덜덜 떨다 무릎을 꿇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집사람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에 불과합니다. 모든 건 저 혼자 계획하고 실행한 겁니다···."

 "그 말은 혁명파의 일원인 걸 시인하는 건가?"

 "예···. 죽여주십시오···."

 리페이양은 모든 걸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자의 처분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병장에 적막이 흘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내가 군법에 따라 이자를 참수하길 원하는가? 청의 연좌제는 몇 년 전 폐지되었으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지. 내가 이자의 마누라에게까지 죄를 묻길 원하는가?"

 영원할 것 같던 고요를 샤즈광이 깨뜨렸다.

 "···눈 감아 주십시오."

 "뭐라 했나? 샤즈광."

 "리페이양은 천성이 멍청한 놈인데 혁명이라니, 뭔가 잘못됐습니다. 분명 뭣도 모르고 쌀을 준다니까 호응한 걸 겁니다. 녀석은 미련하기는 해도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모범군인이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를만한 친구가 아닙니다."

 샤즈광이 포문을 열자 이구동성으로 병사들이 외쳐댔다.

 "리페이양은 전에 만두를 그냥 준 적이 있습니다! 착한 녀석입니다!"

 "살려주십시오! 리페이양을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나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했다.

 "리페이양은 반역을 꾀했다. 그런 죄를 눈감아 달라는 건 내게도 반역을 꾀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병사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제18영 전체에 이른다. 알겠다고."

 "?"

 "리페이양의 죄를 눈감아주겠다. 나는 오늘부터 반역자다."

 "??"

 "너희들도 다 반역자다."

 "???"

 "우리는 모두 반역자다. 그런고로 지금부터는. 혁명이다."

 움직임도 없이 입을 헤 벌린 병사들을 보며 나는 우렁차게 외쳤다.

 "청조는 쇠락하여 이 나라를 이끌어갈 역량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위정자라는 자들은 오로지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할 생각에만 골몰하고, 기근과 홍수보다 가혹한 정치가 더 무섭다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천하가 도탄에 빠져 신음한지 오래이니 손에 무기를 든 군인으로서 무엇이 최선의 길인가?"

 병사들이 사이에서 은은한 기파가 느껴졌다.

 하나둘씩 울컥하여 무기를 잡는 것이 보였다.

 "무엇이 과연 정의롭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저 베이징의 유력자들에 굽실거리며 어떻게든 곳간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는 것이 정의인가? 쌀을 살 돈으로 아편을 사 세상사 시름에서 도피하여 개인의 허무한 쾌락이나 좇는 것이 정의인가? 세상을 바꿀 용기를 품고 혁명의 불길을 가슴에 담은 사내를 군법에 따라 참수하는 것이 정의인가?"

 "아닙니다!"

 병사들이 아우성댔다.

 "청조를 무너뜨릴 병사는 들고 일어서라! 우창에서 혁명의 봉화를 피울 사람은 나를 따르라!"

 "우와와아아아!!!"

 "어이어이 우리 대장 믿고 있었다고!"

 "저는 입대했을 때부터 오늘만을 기다렸습니다, 관대님!"

 고막이 멍멍할 정도로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앞줄에서 샤즈광이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우헤헤! 똥침이다! 혁명이다! 똥침이다!"

 바야흐로 똥침, 아니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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