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봉화2
우창성 북쪽의 무기고.
방비는 놀랄 만큼 허술했다.
물론 수비할 적 병력이 없는 내륙에 방비를 엄중히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이 땅에서 솟아난다면?
"뭐, 뭐냐!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더 다가오면 적으로 규정한다!"
"이봐. 얼른 무기고 문이나 열어. 봉급도 주지 않는 상부를 위해 네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그건 그래."
"우리에 합류해라."
무기고 문이 활짝 열렸다.
독일제 마우저, 일본제 무라타, 한양식 등 소총 수만정이 쌓여있었다.
거기에 맥심 기관총, 산포와 야포까지.
이제 화력은 문제없다.
중요한 건 선동이다.
우창성 바깥의 병력은 쉽게 분위기에 휩쓸리니 아군으로 만들기 어렵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휘체계를 붕괴시킬 필요가 있다.
오늘 밤 전투에서 지휘관은 나 하나로 족하다.
"바로 제21혼성협(여단)을 습격한다. 단 살상은 장교들로 족하다. 병들과는 교전을 피하고 아군으로 포섭해라!"
"예!"
일개 대대에 불과한 병력으로 여단을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그것이 밤중 불시에 일어난 반란이라면.
또한 목적이 여단의 섬멸이 아닌 소란과 혼란을 가중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이렇게 된다.
"우와아! 혁명이다!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이라고? 우리 통대는 어디 갔지?"
"너희들 지휘관은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도망쳤다! 너희들도 이쪽에 가담해라!"
"···그럴까? 에라 모르겠다. 살기도 좆같은데, 혁명이다!"
이것은 마치 피리 부는 부대가 아닌가.
교전을 거듭할수록 병력이 점점 불어난다.
지휘관들이 도망쳤다는 말은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
하지만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21혼성협의 사령부에 도달할 때까지 어떤 조직적인 반격과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였다.
"통령을 찾아라!"
"없는데요? 이미 내뺀 모양입니다."
여단장까지 바로 토꼈다고?
아무런 저항없이 사령부에 무혈입성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똥 싸러 간 거 아냐?
"혹시 모르니 샅샅이 살펴라."
"대장님! 찾았습니다! 통령입니다!"
"어디냐!"
변소였다.
정말 똥 싸고 있던 건 아니고···.
변소에 숨은 모양이었다.
제21혼성협의 통령, 리위안훙(黎元洪)이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왔다.
살이 뒤룩뒤룩찐 몸에 변발이 돼지 꼬리처럼 덜렁거렸다.
잔뜩 겁을 먹은 눈이 애처로웠다.
"뭘 하는 거냐! 장군이시다! 함부로 대하지 마라!"
"예."
내가 통령을 거칠게 다루던 병사를 나무라자 리위안훙의 눈이 동그래졌다.
"장군님. 욕보셨습니다. 병사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너, 너는···. 새로 부임한 관대가 아니더냐?"
"맞습니다. 한신입니다."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이냐···? 반란이라니. 혁명이라니!"
내 얼굴을 알아본 리위안훙이 매달렸다.
나는 덜덜 떨고 있는 두툼한 살덩어리를 위로했다.
"장군님. 실제상황입니다. 우창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학정을 감내하던 병사들이 들고일어나 이미 무기고를 습격하고 완전무장했지요. 우창성은 함락당하기 직전입니다."
"그, 그럴 수가!"
"일어난 사실입니다."
"잠깐만. 그렇다면 너는 왜 반란군과 함께 있는 거냐···?"
나는 짐짓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겠습니까."
"네가. 네가! 반란군의 수괴인 거로구나!"
"반란군에 가담한 것은 맞지만, 아니요. 틀렸습니다. 저는 수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어떤 개자식이?"
뿔이 난 리위안훙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주변의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통령의 명을 전하겠다. 지금부터 제21혼성협은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북쪽의 무기고에서 무장을 완비하여 우창성 내부로의 진입을 준비하라. 특히 남쪽의 포병표와 연락하여 총독부를 포격할 수 있게끔 대비하여야 한다."
"예!"
"좋다. 나가봐라."
병사들이 우르르 떠나고 리위안훙과 나만 남았다.
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통령의 명이라니? 나는 그런 명을 내린 적 없네만."
"조금 있으면 명을 내리게 될 거니 상관없습니다. 순서가 약간 다를 뿐 결과는 같으니까요."
"자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촉망받던 신임 장교가 어떻게 청조의 은혜를 저버리고 반란군에 가담하는 것인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리위안훙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장군님. 제게 반란의 수괴인지 물어보셨지요."
"그랬네."
"수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삼족을 멸할 개새끼 같으니라고! 누군가! 빨리 말하게!"
"리위안훙."
리위안훙이 얼빠진 표정이 되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리위안훙? 그건 내 이름인데?"
"예. 맞습니다."
"내가 반란의 수괴라고?"
"예."
"도대체 무슨 허튼소리인가!"
혁명군의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얼굴마담이 필요하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적당한 커리어에 혁명군 안에서도 전혀 견제가 되지 않는 무능력함.
그 두가지를 모두 갖춘 인재가 바로 리위안훙이다.
이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도 꿈이 있으실 거로 압니다."
"헛소리 말고 내가 반란의 수괴라는 그 얘기나 설명해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엄밀히 말하면 반란의 수괴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후베이성 군정부의 도독."
리위안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독? 내가?"
"예. 그리고 장차 더 높은 자리까지도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더 높은 자리라니?"
"혁명군은 후베이성의 총독부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목표는 베이징의 자금성이지요. 청조는 영락하고 공화정부가 탄생할 겁니다."
"그, 그런 일이···. 청조가 영락한다고···."
나는 리위안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보다는 서른살 가까이 어렸으나 마치 어린아이에게 충고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번 혁명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그 혁명의 봉화를 피워 올린 도시가 우창이라는건 만인이 인정하겠지요. 그런 우창봉기의 최일선에 선 공로자가 바로 장군님입니다."
"나, 나는 한 게 없는데···?"
"아니요. 좀 전에 제21혼성협에 훌륭하게 명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사령부 밖에서는 부대 전체가 전투 태세에 돌입하여 포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위안훙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날 후베이성 군정부 도독에 추대하겠다고 했지."
"예."
"또한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가능하다 하였는데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거냐?"
"청나라가 멸망하고 황제는 폐위되거나 혹은 기껏해야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겁니다."
"그, 그렇겠지."
"황제를 제외한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혀드리겠습니다."
거칠게 숨을 들이쉬는 리위안훙.
"그렇다면···?"
"공화정부의 대총통."
"···!"
이제 내 나이 스물하나.
나 혼자 다 해 먹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안다.
특히 조선의 핏줄은 앞으로 생겨날 정적들이 날 공격하기 딱 좋은 소재거리이니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뜻을 관철할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
리위안훙은 아주 훌륭한 재목이다.
평소엔 청조에 충성하지만 그렇다고 그 충성심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적당히 야심을 품고 또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소시민.
자기 능력을 과신하지 않으며 남에게 의지하기 좋아하는 빈대.
그게 리위안훙이다.
"장군님. 생각해보십시오. 불과 몇시간 전까지 저는 보병영의 관대에 불과했고 장군님은 통령이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그저 평범한 청의 관료로 생을 마감했겠지요. 하지만 이제 기회가 왔습니다. 움켜쥘지는 장군님의 선택입니다."
선택이라고 했지만.
이걸 누가 마다해.
"조, 좋아! 좋네! 혁명일세. 혁명이야!"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직책은···."
"참모장이면 족합니다."
"좋아! 자네를 후베이성 혁명군의 총참모장으로 임명하네!"
리위안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나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밖에 병사들이 도열해있어···. 이제부터 뭘 하면 되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자, 자네만 믿겠네!"
확실히 훌륭한 재목.
이것이 대총통의 자질이다.
***
"쏴라!"
콰쾅!
후베이성 총독부와 제8진 사령부를 포위하고 포격을 계속하였다.
일본육사에서의 워게임 이후 처음 겪는 실전.
하지만 오히려 워게임 때보다 더 쉬운 싸움이었다.
적을 몰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겁에 질리게만 만들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령부로 진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포탄만 뻥뻥 쐈다.
소총을 허공에 갈기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제8진 사령부에서 전언이 왔습니다!"
"뭐라 왔나."
"즉시 원대로 복귀하면 죄를 묻지 않겠답니다."
"그럴 일은 없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전해라. 총독부는 함락당했으며 후광 총독 루이청도 도망쳤다고 말이다."
"예!"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총독부에서 전언이 왔다.
대충 비슷한 얘기였다.
원대로 돌아가면 죄를 덮어주겠노라는.
"총독부에 전해라. 제8진 통제 장뱌오는 군대를 버리고 달아났으니 총독은 아까운 목숨 버리지 말고 투항하라고."
"예!"
쉽다. 쉬워.
전화기만 없어도 이렇게 요리해 먹기가 간편하니.
제 21혼성협을 포함한 혁명군의 규모는 5,000여명.
장뱌오가 군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선다면 여전히 못 이길 싸움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제8진의 지휘계통은 산산분해되었고 루이청과 장뱌오는 투항과 도주를 두고 갈등하고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다른 쪽이 무너졌다고 하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과연 밤 12시가 지나기 전에 총독부의 문이 열렸다.
화약 냄새가 가득한 관저에 여기저기 수비병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루이청은 없었다.
"여기 땅굴이 있습니다!"
총독부의 담벼락 밑에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땅굴이 파여 있었다.
"소문을 퍼뜨려라. 후광 총독 루이청은 총독부를 버리고 개처럼 담벼락 밑을 기어서 도망쳤다고."
"예!"
"장뱌오 쪽은 어떤가?"
"간간이 항전하던 수비병들이 조용하니 곧 뚫릴 것 같습니다."
그 말대로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우창성 전체를 장악한 혁명군은 떠나갈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성문에 철혈 18성기(鐵血十八星旗)가 내걸렸다.
청나라의 압제에 반대하는 18개 성을 상징하는 기였다.
건물에 숨어있다 달려 나온 리위안훙이 감격한 듯 속삭였다.
"자네 말대로 하니 대승리를 거뒀군."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달아나기 전, 장뱌오가 베이징에 원군을 요청하였으니 청조에서도 곧 대처할 것입니다. 그전에 최대한 이득을 보아야 합니다."
"무슨 이득?"
"가까운 한양에는 병공창이 있으며 한커우에는 양쯔강과 맞닿은 항구가 있으니, 빠르게 두 도시를 점령하고 태세를 갖추면 청조에서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좋아, 좋아! 진행하게!"
다음날.
군대를 정비하여 한양으로 진격한 나는 포탄 대신 환영 세례를 받았다.
이미 성문에 혁명군의 기가 걸려있었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간다더니. 우리는 손쓸 필요도 없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리위안훙과 나는 곧바로 병공창을 시찰하였다.
한양병공창은 전국 최대규모의 군수공장. 든든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바로 다음 날, 한커우로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이번에는 도착하기도 전에 전령이 달려왔다.
"한커우에서 혁명이 일어나 도시를 함락했답니다!"
봉기를 일으킨 지 채 3일이 지나지 않아 우창과 한양, 한커우의 우한3진이 모두 혁명군의 손에 들어왔다.
제18영 500명으로 시작한 혁명군 병력은 어느새 4개 여단 규모 2만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날이었다.
청나라 최강의 군대. 북양 6진의 진압군 5만명이 베이징에서 출병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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