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08)

혁명의 봉화3

 후베이성 자의국(諮議局, 지방의회) 건물.

 민둥민둥한 머리의 리위안훙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 아침 자기 손으로 변발을 자른 후였다.

 "제21혼성협 통령 리위안훙을 후베이성 혁명 군정부의 도독으로 임명한다."

 리위안훙에게 혁명정부의 깃발과 칼이 수여되었다.

 건네는 사람은 중국동맹회에서 쑨원 다음가는 2인자인 황싱(黃興).

 우창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었다.

 "다음은 제8진 보병 제18영 관대 한신 앞으로 나오라."

 내게도 깃발과 칼이 주어졌다.

 수여하는 사람은 쑹자오런(宋敎仁)이었다.

 그는 쑨원과 황싱에 이은 동맹회의 3인자. 이번에 황싱과 같이 도착한 참이다.

 "후베이성 군정부의 총참모장으로 임명한다."

 단번에 몇계단을 건너뛴 거지.

 임시직이긴 하지만 장군이 되었다. 서시가 이걸 봐야 하는데.

 1인자 쑨원은 아직 미국.

 하지만 동맹회의 핵심 인물 황싱과 쑹자오런이 도착함으로써 우창 봉기는 단순한 반란이 아닌 청조를 타도하는 혁명전쟁이 되었다.

 황싱과 쑹자오런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혁명의 최일선에서 오랫동안 투쟁해온 투사답게 눈빛은 형형하고 신태는 비범했다.

 임명식이 끝난 후. 곧바로 작전회의가 이어졌다.

 나는 보고받은 정보를 풀어놓았다.

 "진압군은 베이징의 제1진, 톈진의 제4진, 산둥성 지난의 제5진 등 3개 진과 4개 혼성협으로 이루어진 5만명 규모. 이틀 전 베이징을 출발해 징한철도를 타고 남하 중입니다."

 황싱과 쑹자오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북양군은 위안스카이가 직접 훈련한 정예군인데. 상대가 될런지···."

 "우한3진은 산지가 적고 사방이 뚫려있어 방어가 어렵지요. 또한 중심부를 양쯔강이 관통하니 군함이 포격하기도 쉽습니다."

 "한커우에서 후퇴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 같소. 강 건너에서 수비 한다면 그나마 나을 테니. 아니면 상황에 따라서 우한을 버리고 난징을 공략하는 것도 괜찮은 방안이요. 어쨌건 우한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지켜내기 쉽지 않은 도시니까."

 "확실히 급조한 혁명군으로 진압군과 전면전을 펼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쑹자오런의 시선이 리위안훙에게 향했다.

 "도독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방어가 가능하겠습니까?"

 "어어. 방금 무슨 얘기 했소?"

 "후베이성으로 남하하는 진압군 5만의 수비에 관해 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한3진의 방어가 가능한지 여쭈었고요."

 "음···. 참모장의 의견은 어떤가?"

 쩔쩔매던 리위안훙이 내게 질문을 넘겼다.

 "한커우는 버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쑹자오런이 날카롭게 물어왔다.

 "한커우의 항구는 군함 수십척이 정박할 수 있어 수로를 통한 진지구축이 용이합니다. 또한 한커우가 함락된다면 한양이 지척입니다. 아시다시피 한양의 병공창만은 적에게 절대 내줄 수 없습니다."

 "허면 방안이 있습니까?"

 "예."

 "어떤···?"

 "이미 우창의 성공 소식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니 버티기만 하면 상황은 유리해질 겁니다. 저는 한커우 북쪽 평원에 전선을 깔 생각입니다."

 쑹자오런이 심각해진 채 인상을 찌푸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군사전문가가 아니라 자세한 사항은 모릅니다. 참모장께서 막을 수 있다면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해군에 대한 대비는 모르겠습니다. 한커우의 항구가 그리 크다면 오히려 군함이 몰려왔을 때 위험하지 않습니까?"

 "옳은 지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베이징의 육군과는 별개로 2950톤급 방호순양함을 포함한 군함 15척이 소집되어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온다는 기별을 받았습니다."

 "해군까지!"

 "걱정 마십시오. 대비는 되었으니."

 나는 턱을 괴고 멍하니 있는 리위안훙을 호출했다.

 "해군은 도독께서 상대해주셔야겠습니다."

 "내, 내가?"

 "계책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도독인데. 직접 싸우는 건 좀."

 "손무의 병법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계책이지요."

 이번 해군을 통솔하는 통제는 싸전빙(薩鎮冰).

 청일전쟁 이후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인 청 해군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력 있는 제독.

 그리고 무엇보다 북양수사학당(北洋水師學堂) 출신인 리위안훙의 옛 스승이다.

 "싸전빙 교관님이라고?"

 "예. 작전은 간단합니다. 도독께서 직접 북양함대에 찾아가 담판을 짓는 겁니다. 최소 요구치는 중립, 나아가 도독의 역량에 따라 아군으로 회유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그렇다. 믿을 건 꽌시뿐이다.

 그리고 이곳 중국에서 단신으로 적 함대에 들어가 꽌시에 호소한다는 전략은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다!

 "흐음. 교관님은 내게 매우 잘 대해주셨지. 그 시절이 그립구먼."

 과연 리위안훙은 못하겠다는 말도 없이 바로 추억회상에 들어갔다.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은근히 자신 있는 눈치였다.

 회의는 얼마간 더 지속되었다.

 주로 열의에 찬 황싱과 쑹자오런이 묻고 군 장교들이 답하는 방식이었다.

 초반에는 조심스럽게 도독인 리위안훙의 발언을 기다리는 그들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버버하는 리위안훙 대신 내게 질문이 집중되었다.

 종래에는 거진 나와 쑹자오런의 대담이었으니.

 회의가 끝나고 동맹회의 인물들이 나가자 리위안훙이 씩씩 성을 내며 다가왔다.

 "저 자식들은 한 것도 없으면서 다 된 밥에 코 푸려 하는군! 싹 밀어버릴까? 어떤가, 참모장."

 "이번 혁명의 기치를 잊으셨습니까?"

 "뭐, 뭐였지?"

 "멸만흥한. 동맹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부흥하기 위해 암중에서 힘써왔습니다. 우창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혁명의 기운이 일렁이는 것도 멸만흥한의 표어에 공감한 덕입니다. 여기서 동맹회와 반목했다가는 후베이성은 혁명파와 청조, 양쪽에서 고립될 겁니다."

 게다가 동맹회의 인물들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황싱이나 쑹자오런이나 두사람 다 나름의 세력을 지닌 거물들.

 상황에 따라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

 자의국에서 나와 곧장 병영으로 향하는데 한 사람이 따라붙었다.

 쑹자오런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지요?"

 "바쁘기야 하지만 말씀할 게 있다면 시간은 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까는 공적인 자리라 표하기가 껄끄러웠는데, 예전부터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제 친구 녀석에게 말씀을 엄청 많이 들었거든요."

 "친구요?"

 "예. 기타 녀석 말입니다."

 앗. 기타 잇키. 

 그리운 이름.

 "참모장님 활약 덕에 도쿄 본부가 자기 손에 들어왔다며 전략의 천재시라고 찬양을 늘어놓더군요. 워낙 쎈 용어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친구라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오늘 참모장님이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해보니 기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더군요. 참모장님이 들어 올린 혁명의 등불이 천하를 굽어 비출 것처럼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동맹회의 창설 멤버로서 감사에 또 감사를 드리는 마음뿐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날이 구만리인데요, 뭘."

 "어이쿠. 겸양까지!"

 쑹자오런은 은근슬쩍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 말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요. 게다가 본격적인 혁명은 아직 초입에 들어서지도 못했습니다. 단순히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쟁을 벌이는 건 혁명이 아니지요. 반드시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를 전복하는 체제 개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누가 기타 잇키 친구 아니랄까 봐. 하는 얘기가 판박이다.

 다만 쑹자오런의 말은 확실히 흥미가 동한다.

 일단 동맹회 회원이 만주족을 욕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이다.

 "체제 개혁이라 함은 청조를 뒤엎고 공화정을 구성하는 걸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는 한발 더 나아가 의원내각제를 지지합니다."

 "의회는 필요하지요."

 "쑨원과 황싱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핏줄에 집착하여 한족 대총통이 통치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무늬만 공화정이지 군주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슬슬 감이 온다.

 기타 잇키는 핑계고 이제 진짜 쑹자오런이 하고 싶은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잠자코 말했다.

 "혁명군이 베이징에 입성한 후의 파벌 싸움을 생각하시는 거군요. 정치는 미리 기반을 다져놓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쑹자오런이 뜨끔했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치라···. 예. 물론 정치입니다. 동맹회 내부의 파벌 싸움이라 비하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서구에 뿌리내린 의회제도가 결국은 파벌 싸움 아닙니까? 서구의 열강은 의회를 통해 정치를 안정화하며 세계를 제패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지지하길 원하십니까?"

 "원하냐고요? 물론 원합니다! 얼마나 강렬하게 원하는지 참모장님께서는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쑨원에 반감을 가진 동맹회원 또 하나 추가.

 기타 잇키도 그렇고, 천중밍도 그렇고.

 어째 저 쑨원 좀 말려달라며 다들 날 찾아오는 기분이다.

 쑹자오런의 솔직함은 나쁘게 보지 않는다.

 기타 잇키처럼 이자도 욕망에 솔직하다.

 그저 중국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환골탈태시키고 싶어 미쳐버리겠는 정치병 환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바로 따라줄 생각은 없다.

 나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거대한 대륙에서 의원내각제가 가능할까?

 지방에서 투명하게 선거를 관리하여 민의를 반영한 의원을 뽑는 것이 되겠나?

 일단은 보류다.

 "저는 군인일 뿐입니다. 정치제도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지요. 게다가 쑨원 선생님을 만나 뵌 적도 없으니 먼저 그분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그때 샤즈광이 급히 뛰어왔다.

 "대장님! 적이 한커우 외곽에 집결 중이라는 속보입니다!"

 "알겠다. 나중에 뵙지요."

 쑹자오런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곧장 진지로 향했다.

 "진압군이 벌써 도달했을 리는 없고. 장뱌오인가?"

 "예! 맞습니다. 허난성 일대에서 병력을 모아 다시 덤비려나 봅니다."

 원래는 후베이성에 주둔하던 제8진 통제 장뱌오.

 우창 봉기가 일어났던 당시, 수비를 포기하고 도주했었다.

 이대로면 청조에게 엄벌을 받을까 두려워 진압군이 도착하기 전에 뭐라도 해보려는 모양새다.

 사령부로 향하는 중 샤즈광에게 물었다.

 "샤즈광. 일은 할 만한가?"

 "에헤헤. 어색하게 왜 그러십니까."

 "어쭈. 참모장이 묻는데 대답을 안 해?"

 "일은 최고입니다! 물론 너무 정신없이 바빠 가끔은 대장하고 술잔을 부딪치던 때가 그립기는 한데···."

 "떽! 참모끼리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 나는 병한테만 친절해."

 참모로 특급진급한 샤즈광.

 물론 말이 참모지 아는 것 하나 없는 샤즈광은 그저 내 전용 노예일 뿐이다.

 하루아침에 일반병에서 참모가 되어버린 샤즈광은 당황스럽겠지만 오직 그만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2만에 달하는 병력.

 후베이성 총독부의 금고에서 나오는 넉넉한 자금.

 한양병공창의 군수물자까지.

 모든 것이 풍요로운 혁명군에서 무엇보다 부족한 게 있었으니. 장교의 수였다.

 청의 군제에서 장교가 되려면 충성을 맹세해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

 덕분에 몇 명 없는 장교들은 초고속 진급이 이루어졌다. 

 부사관이 하루아침에 대대장과 연대장이 되고.

 소대장이 여단장을 맡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나마 내가 몇 달이라도 훈련시킨 제18영의 사병들이 부사관과 위관급 장교의 머릿수를 채워주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제 몫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혁명군 사령부에 들어서자 암울하던 장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다! 오셨다!"

 "참모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놈의 군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혁명군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다.

 사냥꾼의 총성 한방이면 단박에 까마귀 떼는 흩어지고 말 테니.

 훈련시킬 시간이 한 달, 아니 일주일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제18영에 처음 부임하여 마주했던 개판.

 그것보다도 수준이 더 떨어지는 병사들이 지금의 혁명군이었다.

 병력의 수는 매시간 왔다 갔다 하였다. 합류하는 자들과 탈영하는 자들이 계속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합류하는 자가 많아 병력은 계속 불어나고 있었으나.

 대다수 병사는 멸만흥한이니 하는 거창한 가치보다는 그저 이 기회에 한탕 잡아볼까 하는 생각으로 혁명군에 합류한 것이다.

 이런 군기로는 본격적으로 적과 대치하고 전투에 돌입하면 분명 대량의 이탈자가 나올 것이다.

 군세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대에 달콤한 승리를 선사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한커우 외곽에 진을 친 장뱌오는 적절한 제물이었다.

 "자. 작전회의를 시작한다."

 우창의 봉기는 장난이었지.

 진정한 의미의 첫 실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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