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의 광인
거룩한 어머니 신 참호의 가호 아래 청군의 돌진은 분쇄되었다!
한커우 전투의 대승리.
진압군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나마 수비가 부실했던 초반에 대규모 돌격을 감행했더라면 몰랐을 터지만.
손에 소총 하나 들고 돌격해서 부수기에는 이제는 참호가 너무 견고해졌다.
수천의 사상자를 낸 청군은 조용히 물러나 다시 군세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혁명의 바람이 폭풍처럼 대륙을 휘감기 시작했다.
산시성(山西省, 산서성)의 제43혼성협 제86표 통대 옌시산(閻錫山)은 마치 우창의 성공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바로 봉기했다.
옌시산은 진무학교 6기와 일본육사 21기를 졸업한, 내게는 두 기수 선배가 되는 자.
산시에 주둔하던 허울뿐인 팔기군을 격퇴하고 산시성 군정부를 수립했다.
윈난성(운남성)의 제37협 통령 차이어 또한 자신이 직접 훈련한 신군을 이끌고 윈난성 총독부를 점령하였다.
강령은 전제 정권 타파, 공화국 수립이었으며 입헌군주제를 요구하였다.
차이어는 특히 부패한 지방 향신(鄕紳, 향촌의 벼슬아치) 무리를 토벌하여 재정을 개혁하고, 그들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 민간에 인기가 높았다.
입헌파에서 도드라지는 차이어의 활약은 근방의 성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구이저우성(貴州省, 귀주성)은 차이어의 오른팔인 탕지야오(唐繼堯)가 장악했고.
드넓은 쓰촨성(四川省, 사천성)은 통일되지 못하고 수백개의 군벌들이 일어났으나 많은 지역이 차이어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광시성(廣西省, 광서성)에서는 비적 출신 루룽팅(陸榮廷)이 정권을 잡았으며.
광둥성(廣東省, 광동성)은 처음에는 민군이 들고 일어나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곧 군대를 이끌고 온 천중밍이 장악하였다.
특히 광둥성은 쑨원의 고향인 광저우와 수많은 동맹회 인사들이 포진한 홍콩을 포함한 지역.
즉, 중국 동맹회의 본거지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광둥성을 동맹회가 장악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물론 쑨원의 행사에 반감을 가진 천중밍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천중밍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반란은 현지 군인이나 향신 세력이 주가 되어 이루어졌다.
그들은 일단은 청조의 권제에 저항하였으나 다들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 통일된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혁명을 대표하는 동맹회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천중밍 말고도 활약한 동맹회의 간부들은 있다.
나와 악연이 있는 천치메이는 상하이 군정부를 수립하고 도독이 되었다.
한편 상하이 근저의 항저우에서는 한 청년이 100명의 결사대를 모아 하룻밤 만에 항저우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청년의 정체는 장제스.
우창의 소식을 듣고 육사 진학도 포기한 채 바다를 건너 온 것이었다.
바야흐로 260년간 대륙을 지배하던 청 제국은 조각조각 갈라지고 있었다.
후난성(湖南省, 호남성)과 장시성(江西省, 강서성).
샨시성(陝西省, 섬서성)과 푸젠성(福建省, 복건성)등.
남부의 대다수 성이 죄다 청조에 반기를 들고 공화정을 요구하였다.
청조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북양6진은 건재하니 베이징과 가까운 산둥성(山東省, 산동성), 즈리성(直隷省, 직례성, 하북성), 허난성(河南省, 하남성)의 봉기는 실패하였다.
특히 헤이룽장성, 지린성, 펑톈성을 통괄하는 동북3성의 혁명 세력은 완전히 괴멸당하였는데.
만주를 석권한 마적 출신 장쭤린(張作霖, 장작림)이 위안스카이의 밑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남북으로 갈라진 중국.
그 최전선은 후베이성 우한3진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우한의 전선 덕에 대국적인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어느덧 1911년의 겨울이 도달했다.
상하이에 입항하는 여객선에서 한 사내가 활기찬 얼굴로 걸어 나왔다.
항만에는 사내를 기다리는 인파가 가득하였다.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졌다.
사내는 화답하듯 입을 열었다.
"갈라진 혁명 세력을 규합하여 반드시 통합 정부를 수립하겠습니다."
드디어 쑨원이 중국 대륙에 상륙한 것이다.
***
후베이성 군정부 자의국.
리위안훙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참모장. 나는 슬슬 겁이 나네.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건가?"
"뭐가 겁납니까?"
"동맹회의 세력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지 않나. 후베이성은 고립되고 있어. 언제까지 뻐팅길수는 없음일세."
"어허.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중국의 수도는 단연 우창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셨잖습니까. 그 기백은 어디에?"
한창 이슈가 되는 사안은 신(新)중국의 중앙 정부를 어디에 둘지였다.
우창파와 상하이파의 대립.
리위안훙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우창을 주장했고 동맹회의 다수파는 상하이를 주장했다.
정부 수립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기 싸움이 치열했다.
"그놈이 오면 뭐라고 해야 되지?"
"말을 삼가고 평소처럼 근엄하게 있으세요. 이야기는 제가 하지요."
"그거 반가운 소리일세."
우창 정부와 상하이 정부가 서로 네가 와라를 시전하는 동안 통합 정부 조직 구성에 관한 논의는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 고착을 깨뜨리기 위해 우창에 쑨원이 왔다.
지금쯤이면 자의국 건물에 도착하여 바로 저문 바깥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벌컥. 진짜 있었네.
콧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안녕하시오! 광둥성 출신 쑨중산(孫中山)이라고 하오! 오늘 이렇게 우창의 영웅분들을 만나게 되니 이 사람의 가슴이 요동치는구려! 정말 큰일을 해내셨소!"
이것은 마치 첫출근하는 신입사원의 텐션이 아닌가.
쑨원의 활기찬 인사에 리위안훙이 놀라 화답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후베이성 도독 리위안훙이요."
"저는 총참모를 맡은 한신입니다."
쑨원의 첫인상은 강렬하면서도 묘했다.
격정적인 어투로 중국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모습은 흔히 떠올리는 혁명의 투사, 그 자체였다.
어째서 신중한 황싱이나 똑똑한 쑹자오런이 아닌 쑨원이 동맹회의 1인자인지 알 것 같았다.
쑨원은 한참동안 떠들었다.
미국에서 신문으로 우창의 봉기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던 경험.
한커우 전투에서 혁명군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때까지 주먹을 움켜쥐었던 일.
자신도 혁명을 돕기 위해 열강의 외교 대사들과 접선하여 청조에 지원이 들어가는 걸 막은 사실까지.
단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 아이스브레이킹이라기에는 너무나 진심으로 즐겁게 떠드는 쑨원이었다.
오히려 참지 못한 쪽이 리위안훙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 오신 건 어떤 연유요? 수다나 떨려 오신 건 아닐 테고."
가시가 있는 리위안훙의 말에도 쑨원은 아무런 타격 없이 눈을 빛냈다.
"혁명의 완성이 무엇이겠소? 흥한(興漢)을 이룩하려면 신중국을 건국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그걸 위해 왔소이다."
"정부를 상하이에 두자는, 대충 그런 소리겠군."
"상하이라니? 아니요."
쑨원이 부인하자 리위안훙이 급히 물었다.
"그, 그럼 동맹회에서도 우창을 수도로 인정하는 거요?"
"우창?"
"그렇소."
"하하하하!"
갑자기 쑨원은 껄껄 웃어대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웃음을 멈춘 쑨원이 말했다.
"어떻게 우창이 수도가 될 수 있소. 농담 마시오."
"누가 농담을 했다는 거요?"
"도독이 했잖소. 신중국의 수도는 난징(南京)이오. 이건 누구도 바꿀 수 없소. 일찍이 한나라와 송나라, 명나라등 한족 국가의 수도는 대대로 난징이었지. 찬란한 한족 왕조의 문화유산이 난징에 그대로 전승되는데 명나라를 계승한다면서 어찌 다른 도시를 수도로 삼을 수 있겠소?"
한족에 대한 집착.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껴지던 이질감의 정체가 뚜렷해졌다.
"하지만···. 난징의 봉기는 실패했잖소. 지금 청조의 손아귀에 있는 도시를 어떻게 수도로 삼겠다는 거요."
"상하이의 도독에 천치메이라는 인재가 있소.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난징 공략에 들어갔지. 천치메이는 군대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니 조만간 함락 소식을 알려올 거요."
"가정이잖소."
"날 믿으시오. 혁명의 정신을 믿으시오."
초롱초롱한 쑨원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직 점령하지도 않은 도시를 수도로 삼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완벽하게 믿고 있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총리님. 총리님이 바라는 신 중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간단하오. 중화민국(中華民國)이요."
중화···.
익숙한 단어가 등장하였다.
"중화가 무엇입니까?"
"뭐냐고? 중화가 무엇이냐고 물었소? 수천년간 중화는 세계의 중심을 뜻하는 말이었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중화는 아시아의 모든 것을 포괄했소! 하지만 구미의 침략으로 오늘날 중화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되어버렸으니. 우리의 과업은 살아생전에 그 이름을 되살리는 것이오.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격퇴하고 아시아에 중화의 가치를 다시 떨치는 거요."
으음. 중화사상인가.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일종의 범아시아주의군요."
"그 말이 정확하오! 지난 수천 년 동안 제후국에 있어 중국에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권리는 최고의 영광이었소. 중국은 그런 제후국들에 더한 하사품을 내렸고 중화의 질서는 유지되었지. 아시아는 중화의 가치 아래 문명을 꽃피웠었소. 그 찬란한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아시아는 단결해야 하오. 중화민국의 수립은 그 첫걸음이 될 거요."
점점 익숙한 맛이 난다.
나는 슬슬 민감한 주제를 던졌다.
"허면, 만주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지요."
"그 질문을 기다렸소. 내,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생각해낸 것이오. 오족공화(五族共和). 이말 어떻소?"
"오족은 알겠군요. 한족과 만주족, 몽골족과 회족(무슬림), 장족(티베트인). 맞습니까?"
"그렇소. 오족공화란 새로 건국될 중화민국에서 그 다섯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갈 거란 의미요."
"원래는 만주족을 상당히 미워하시는 걸로 압니다만."
"내가 미워했던 건 황실이요. 만족 자체에 대한 미움은 없소."
오족공화는 좋은 이야기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말입니다, 총리님. 이미 티베트와 같은 지역은 독립을 원하고 있습니다. 청조에서부터 꾸준히 요구해온 그들이며 중화민국에도 그들의 요구는 같을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오족공화란 허울 좋은 얘기일 뿐입니다."
"총참모께서는 어린 자식이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 하면 바로 그러라고 허락하시오?"
"예. 당연하지요. 저나 저희 아버지나 이미 10대 때 독립했습니다."
쑨원은 처음으로 기분이 약간 상한 것 같았다.
"그런 짓은 불효요. 아버지의 자리란 때로는 엄하게 자식을 다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 티베트 지역은 오랫동안 중화의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찌 독립이란 말이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중화민국에 포함된 편이 그들에게도 훨씬 이득이오."
"중화민국은 하나니까요?"
"그 말이 아주 좋군. 그렇소. 하나의 중국이요."
쑨원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악의가 있다거나 이기적인 수를 감춘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열정적이고 투명한 자였다.
그 모든 면모를 종합해서 표현하면.
맑은 눈의 광인.
쑨원의 또렷하고 확신에 찬 눈빛은 무슨 무슨 척을 한다고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의 광기가 아니다.
수천년간 내려온 중화사상이 쑨원의 가슴 속에 이미 대제국을 건설해 놓았으며.
또 향후 100년간 근대 중국에서 강화될 하나의 중국 개념이 쑨원의 머릿속에서 막 잉태되고 있다.
쑨원과 같이 가는 미래를 그려보았으나 점점 흐릿해졌다.
쐐기는 쑨원이 그다음 한 말이었다.
"듣자 하니 총참모께서는 조선인이라던데. 맞소?"
"예."
"그 사실 때문에 동맹회에서 제법 말이 나오더군. 조선인에게 중화민국의 관직을 맡길 수 있냐는 얘기인데, 나는 괘념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오랜 속국이었지. 나는 총참모와 같은 조선인들을 집 떠난 아들 보는 심정으로 생각하고 있소. 지금은 잠시 일본이라는 다른 스승을 모시고 있지만. 중화민국이 부강해지면 조선도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겠소?"
"?"
역시는 역시인가.
쑨원, 당신은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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