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08)

베이징 정치3

 펑궈장이 표정 없는 무심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총통 각하께서는 한 도독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소. 북양파는 화북 지방 신군에 복무했던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한 당파요. 장차 중화민국 군 전력의 핵심이 될 인재들이 가득하니 한 도독도 함께 교류하면 좋을 거요."

 진심으로 날 스카웃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잠자코 탁자 위의 서류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중국 신화 속의 군주인 황제(黃帝)가 인쇄된 신권.

 10위안 지폐 묶음이 가득했다. 돈다발을 합치면 대략 1만위안쯤 되려나.

 내 시선의 방향을 알아차린 펑궈장이 말했다.

 "이건 별거 아니오. 북양파의 선배들이 얼마씩 각출하여 후배를 위해 내놓은 일종의 장려금이니, 북양파에 들어온다면 모두 한 도독의 것이오."

 일단 당신은 내 자금 사정부터 다시 조사해야 할 것 같은데.

 이봐. 한양은행이 내 거라고.

 일본을 잠식한 파칭코 프랜차이즈, 가능성이 내 거라고.

 1만위안은 하루 매출에도 못 미친단 말이다.

 날 스카웃하고 싶으면 100배쯤 강해져서 와라.

 아니지. 무슨 100배야. 

 거절하기에 너무 큰돈이려면 100만배는 되어야 한다.

 100만배라면 북양파의 군벌이 되어 혁명파를 일망타진해주지.

 내 표정이 시큰둥해 보였나 펑궈장이 다시 말했다.

 "게다가 북양파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소. 부대에 사고가 생기거나 승진할 때가 되면 그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오. 때로는 감싸주고, 때로는 밀어주며, 때로는 당겨주니 이것이야말로 북양파가 자랑하는 선후배 문화요."

 문화는 개뿔.

 그게 자랑이냐? 

 나는 적당히 핑계를 찾았다.

 역시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만능인 우리 리위안훙 각하가 최고야.

 "말씀은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모시는 분이 계시니 거취를 함부로 정할 수가 없군요."

 "모시고 있는 분이라면, 부총통 각하를 말함이요?"

 "예."

 "그렇다면 이야기가 잘 되겠소. 이미 부총통 각하께도 비슷한 제안을 드렸다오. 각하께서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하셨으니 두 분이 함께 북양파에 합류하면 더 좋을 것이오."

 베이징에 체류하게 된 리위안훙은 조언을 구했었다.

 내 조언은 한 가지였다.

 적을 만들지 말 것.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하하허허 보살처럼 끄덕여주라는 것.

 그렇게 하면 베이징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리위안훙이 펑궈장에게 했다는 긍정적인 답변 역시 그러한 맥락일 터였다.

 리위안훙은 겁쟁이일지언정 바보는 아니었다.

 우창 봉기의 상징인 자신의 이용 가치를 알고 있었으며.

 북양파에 들어가는 일은 그 가치를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나 또한 같은 전략으로 가면 된다.

 실속 없는 맞장구나 쳐주자.

 "그러지요. 각하와 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도리어 펑궈장 쪽이 말이 없어졌다.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내가 꾸벅 인사하고 일어나는데.

 "흐. 내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건만."

 "예?"

 "대총통 각하께서 직접 명하신 일이니, 하기는 한다만. 애초에 가망 없는 회유였어."

 "뭔 소리요?"

 "부총통과 상의해 보겠다고? 리위안훙은 병신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지. 나는 네가 그 병신을 대리로 내세우고 그 뒤에 숨어서 무언가를 획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간 담담하던 펑궈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심하던 눈빛에는 살기가 돌고 있었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잘 알아.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기고만장해서, 결코 꺾여본 적도 없고 비통해해 본 적도 없지. 지금은 그처럼 교만하게 굴 수 있을지 몰라도 너는 가까운 시일 내에 날개가 찢겨 내 발밑에서 신음하게 될 거다. 이 오만불손한 조선 놈아."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가까운 시일이라니. 하고 싶으면 당장 해봐. 뭘 기다리나."

 "흐흐. 너는 네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절대로 실패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아니."

 "아니야. 나는 네 마음속이 보인다. 어려서부터 혁명파에 간택 받아 일본육사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임관을 관대로 출발하여 혁명의 격동을 타고 이십 대 초반에 도독 자리까지 거머쥔 지금. 온 세상이 네 발밑에 무릎 꿇은 느낌이겠지."

 "하나 정정하면. 동맹회가 날 간택한 게 아니라, 내가···."

 "네가 혁명파를 간택했다고? 거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자꾸 거만하다고 하니 더 건방을 떨고 싶어지는 이 기분.

 그러나 펑궈장의 말은 송곳처럼 폐부를 찌르는 데가 있었다.

 지금껏 나름대로 조심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펑궈장과 같은 인물이 보기에 나는 가증스러운 눈엣가시였다.

 위험인물이며 타도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었다.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다.

 리위안훙에게 잘난척하며 적을 만들지 말라는 충고까지 했었는데.

 오히려 충고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는지도.

 날 극도로 경계하는 펑궈장도 리위안훙은 병신 운운하며 우습게 여긴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신경 쓰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전략 아닌가.

 "오늘은 그냥 보내주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너와 나는 곧 전장에서 맞붙을 거야. 그리고 그때에는 한커우에서처럼은 되지 않겠지."

 "···너무 하네. 북양파에 합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고. 그렇게 서운하게 말할 거야?"

 "지랄 마, 새끼야. 알아둬. 너는 내가 죽인다."

 "서운해."

 펑궈장의 독기 가득한 시선을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머릿속에서는 어그로를 끌지 않고 보다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방안 몇 개를 떠올렸다.

 연회장으로 돌아갈까 하다 모퉁이를 도는데 차이어가 기대고 서 있었다.

 "얘기는 잘 됐습니까?"

 "보셨습니까? 잘 되진 않았네요."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으니."

 "그 말은?"

 "몇시간 전에 어떤 제안을 받았지요.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방금 한 도독님 역시 저와 아주 흡사한 제안을 받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가볍게 물었다.

 "얼마였습니까?"

 "2만 정도."

 어? 이거 열받네.

 분명 방금 전까지 나대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차이어의 값어치가 내 두배라고?

 이런 데서 라이벌 의식을 느낄 줄이야.

 "받은 것처럼은 안 보이네요."

 "안 받았습니다. 돈으로 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총통이 큰 착각을 한 겁니다."

 그의 눈동자가 선연히 빛났다.

 차이어라면 100만배 돈다발에도 안 흔들리려나?

 "저도 안 받았습니다."

 "당연합니다. 지금 순간에도 1위안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내몰린 백성들이 산천(山川)에 가득한데, 중앙 정부는 갓 찍어낸 신권으로 뇌물이나 뿌리고 있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통탄할 일이네요."

 "그래서 덕분에 결정했습니다."

 차이어가 결연한 내색을 내비쳤다.

 "어떤 결정을?"

 "일전에 말씀하신 연립정부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입헌파의 민주당은 공화당을 최우선으로 지지할 겁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량 선생님은 여전히 반신반의하시지만, 저는 가벼운 일별만으로도 위안스카이라는 자의 됨됨이를 꿰뚫어 볼 수 있겠더군요. 그자가 권력을 거머쥔 채라면 언제고 사달이 나고야 말 겁니다."

 나이스.

 이로써 공화당과 민주당은 같은 편.

 이번 선거에 주요 정당은 4개.

 공화당과 국민당, 민주당과 통일당이다.

 그 중 북양3걸 왕스전이 이끄는 통일당은 세가 가장 약하다.

 애초에 북양파는 군인 집단.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력이 있을 수가 없다.

 남은 것은 쑨원의 국민당.

 과연 어떻게 나올는지?

 차이어와 헤어진 후.

 들어가진 않고 멀찍이 서서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웃고 떠들며 즐기는 것 같아도 은밀히 눈을 마주치며 낮은 음성으로 속삭인다.

 물밑에서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는 중이다.

 이게 베이징의 정치.

 어느새 나타난 천치메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능글맞은 웃음으로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다니며 사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천치메이의 정치는 잘 안다.

 이곳 베이징에서는 신사인 척 잔을 기울이고 있지만, 본래 그의 방식은 암살과 테러.

 국민당의 선거본부장인 천치메이의 방식이 곧 국민당의 방식이 될 거다.

 민주당과 힘 합쳐서 지지율 끌어올리면 뭐하나.

 출마할 후보가 없으면 말짱 꽝인데.

 후베이성에 돌아가는 대로 할 일이 생겼다.

 우리 후보를 지켜야 한다.

 경호대를 조직해야지.

 ***

 후베이성의 사단은 2개.

 하지만 다른 근대화 성과에 비하여 군 개혁은 미미한 편이었다.

 한커우를 기억하는 북양 정부에서는 자주 사람을 보내 후베이 군을 시찰하였으니 누가 보아도 잔뜩 견제 중이었다.

 덕분에 개혁은 기껏해야 기존 극단적으로 치중되어 있던 보병 편제에 포병대를 추가하는 정도.

 그 외에 연체되던 봉급을 지급하고 훈련을 빡시게 시켜 군기를 잡는 게 다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다른 성의 군단들보다는 훨씬 앞서나가는 거지만.

 본격적인 무기 개발을 통한 개혁은 요원하기만 했다.

 장교들도 말썽이었다.

 그나마 사병들은 별 생각 없이 봉급 안 밀리고 배식 잘 나오면 충성을 보내는데.

 공부깨나 했다는 장교 놈들이 오히려 머리를 굴리며 살살 기어오르곤 했다.

 장교들 대부분이 후베이성이 고향이었으니.

 내 어린 나이와 출신 성분이 놈들에게는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2개 사단 말고도 내게는 작고 소중한 독립연대가 있다.

 우창의 제18영에서 출발한 특공연대.

 이 친구들 없었으면 서러워서 어쩔뻔했냐고.

 연대장은 샤즈광이다.

 대대장에서 군단장까지 올라온 나도 말도 안 되는 건데.

 일반병에서 연대장까지 승진한 샤즈광이 따지고 보면 더 쩌는 경우일지도.

 하지만 말이 독립연대지 실상은 예속연대나 다름없다.

 애초에 받은 군사교육이라고는 제식훈련밖에 없는 연대장의 한계는 뚜렷해서, 내가 처음부터 입안하여 계획을 짜고 명을 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굴러가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작전을 실행할 능력은 제로다.

 이들에게 내가 없는 곳에서의 경호 임무가 가능할 리 없다.

 후베이성 도독부의 로비.

 당연히 샤즈광이야 언제나 그렇듯 무턱대고 외쳐대지만.

 "할 수 있습니다!"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도 있어. 경호는 전쟁과 전혀 달라."

 "그래도 저희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진정해. 누가 임무에서 뺀다고 했냐. 다 너흴 위해서 준비한 게 있지. 이제부터는 민군합동작전으로 간다. 야! 들어와!"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맞춘 장정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홍콩에서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형님!"

 "이쪽은 내 친구들이니까 사이좋게 지내고."

 "예! 형님!"

 어리둥절한 샤즈광.

 나는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봤냐? 이게 삼합회의 군기다."

 "사, 삼합회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삼합회는 범죄조직···."

 "누가 그래? 야, 그렇게 따지면 동맹회야말로 최악의 범죄조직이야. 나라를 거꾸러뜨렸는데."

 "아, 그건 그렇습니다."

 "삼합회는 홍콩에서 토미놈들에 대항하여 중국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비밀결사다. 함부로 넘겨짚지 마라."

 "예!"

 주로 도시의 큰 길거리에서 이루어질 전국 유세.

 그 경호 임무에는 이 바닥 경험이 쌔고 쌘 삼합회 어깨들이 제격이다.

 물론 이들만으로 인원을 충당할 수는 없으니 후베이 특공연대와 합동작전으로 간다.

 "일단은 샤즈광. 네가 대장이다. 다만 시가전 경험은 하나도 없으니 이 친구들에게 많이 배워둬라."

 "예."

 "서로 얼굴 붉힐 일 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직통으로 내게 말하고."

 "예!"

 도독부의 뒷마당에서 때아닌 경호 훈련이 벌어졌다.

 물론 삼합회 어깨들이라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위험인물 탐색, 경호 대상 보호, 건물 구조에 따른 경계 요령까지.

 나름대로 경호의 기본에 충실한 훈련이었다.

 한참 동안 훈련을 참관하였다.

 건달들과 병사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흐뭇하였다.

 기둥 뒤에 숨어있던 삼합회 조직원이 샤즈광의 대가리를 깨는 광경을 보며 깔깔 웃는데, 부관 리페이양이 다가왔다.

 떨떠름한 얼굴. 뭔 일 있나?

 그가 조용히 말했다.

 "쑨원이 여기 온다는군요. 후베이성 도독부에 방문 예정이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