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08)

공화를 위하여

 "이봐. 도착했어. 상하이라구."

 "벌써?"

 기타 잇키의 일갈에 쪽잠을 자던 쑹자오런은 눈을 비비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중국의 경제 요충지인 상하이는 익숙한 곳.

 동맹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숱하게 드나들던 도시다.

 하지만 방문할 때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통에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했다.

 이제 곧 역사적인 전국 총선거가 실시된다.

 신문에서는 연일 헤드라인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돌아가는 상황은 나쁘지 않다. 사설에서도 대부분 공화당의 승리를 예측하니.

 큰 공은 마술 같은 수완을 부린 한신과 민주당에 있었다.

 량치차오 쪽에서 지지 의사를 밝혀온 덕에 입헌파를 지지하는 많은 표가 공화당 쪽으로 흘러들어왔으리라 예상이 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합의 하에 전략적으로 출마 지역을 조율하고 필요에 따라 후보도 단일화하였다.

 차이어와 한신의 인기가 절대적인 윈난성, 후베이성의 선거는 걱정할 것 없었다.

 즈리성과 동북3성을 합한 화북 지방 또한 량치차오의 인기가 드높은 덕에 공화당에 유리할 거라 전망하고 있었다.

 문제는 화중과 화남 지방.

 그중에서도 혁명파의 모체, 난징 정부가 있는 화중 지방이 격전지였다. 

 특히 난징의 코앞에 있는 상하이는 인구수 150만의 대도시로 선거의 향방을 가를 요지였다.

 상하이의 거리.

 기타가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휘유. 이 도시는 언제 보아도 썩은 내가 풍기는군. 마치 도쿄 같아."

 "말조심해. 시민들이 보고 있어. 정치인은 항상 언사를 신경 써야 해."

 "훗. 이렇게 든든한 친구들이 우리 주변을 꽉 메우고 섰는데 상하이의 어떤 시민이 우리 대화를 엿듣겠어?"

 기타의 말대로 그들은 우락부락한 양복쟁이들에 꽁꽁 둘러싸여 있었다.

 한신이 보낸 자들이다. 

 후베이성 정무만으로도 바쁠 터인데 이렇게 선거에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과하잖아. 몇 명이 붙은 거야, 대체."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베이징에서부터 자신을 호위하겠노라 나타난 신비스러운 사내들.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전에 쑹자오런은 그 숫자에 압도당해 버렸다.

 유세 인원이라 해봐야 10명 안팎인데.

 무슨 경호 인력이 50명이 넘는단 말인가.

 물론 50명이 한꺼번에 뭉쳐다니는건 아니나 지금 그들을 둘러싼 자들만으로도 충분히 갑갑하다.

 이름이 샤즈광이라는 경호대장은, 신경 쓰지 말고 선거에 집중하라 말해주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이봐 쑹자오런. 내가 말했지, 한신의 행사에는 토를 달 필요가 없어.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귀신처럼 모든 일이 이루어진단 말이야."

 "하지만 응당 유세란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손도 마주 잡는 것인데, 이래서야 무슨 유세를 하겠어."

 "아냐. 쑹자오런. 우리가 온 목적에 집중해. 토론회 때문에 온 거잖아."

 상하이 광장에서 예정된 합동토론회.

 겉으로는 정책 교류를 빙자했지만.

 실상은 서로를 깎아내리고 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토론이 될 것임을 쑹자오런은 잘 알고 있었다.

 "기자들이 많이 올까?"

 "당연한걸. 상하이의 조계(租界, 외국에 임대된 지역)에서 나온 외신들도 우글거릴 거야."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화당의 대세를 굳힌다."

 "천치메이, 그 개자식을 잘근잘근 씹어버려."

 이번 토론회의 상대는 국민당.

 토론자는 국민당의 선거본부장 천치메이다.

 "씹어먹을 것까지는 없고, 논리로 정정당당하게 승리해야지."

 "아니. 질겅질겅 이빨로 찢어서 소화해야 부활하지 않을 놈이야. 도쿄에서 몸뚱이만 간신이 건사해 도망쳤었는데 지금은 상하이 도독에, 산업부장관에, 국민당 선거본부장에 감투를 덕지덕지 달고 있잖아."

 "이번 선거에서 패하면 정치 생명에 금이 가겠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몰락할 거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무조건 죽인다는 각오로 임해."

 "그럴 필요까지 있나. 같은 각료인데."

 평소 기타 잇키의 천치메이에 대한 증오심은 알고 있으나 간간이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하는 쑹자오런이었다.

 쑹자오런과 기타 잇키는 둘도 없는 친우지만 마음이 살짝씩 어긋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기타 잇키는 뭘 하든 거리낌이 없었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살인이든, 테러든, 전쟁이든 도무지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다.

 혓바닥을 무시무시하게 놀리며 혁명의 정당성과 수단을 설파하는 기타 잇키의 모습은, 가끔은 마왕이 인간의 몸을 빼앗아 현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쑹자오런은 기본적으로 피와 폭력을 혐오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에게 강제하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나.

 언제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합리와 이성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토론회가 중요하다.'

 쑹자오런은 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들을 둘러싼 경호대가 흉흉한 눈빛을 뿜으며 거리 이곳저곳을 수색하듯 노려보았다.

 '이런 경호 인력 없이 상하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그날을 내 손으로 일구어내고 마리라.'

 ***

 토론회의 날이 밝았다.

 또다시 경호대에 꽁꽁 에워싸여 상하이 광장에 도착한 쑹자오런.

 생각보다도 열기가 더 대단하였다.

 마련된 자리에 올라섰다. 

 드넓은 광장이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국민당의 기수로 나선 천치메이가 특유의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쑹 장관. 오늘 한번 잘해봅시다."

 "예. 잘해봅시다."

 곧바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

 몇 개의 토론 주제들이 실속 없이 흘러갔다.

 서로 본격적으로 날은 빼 들지 않고 검집째로 붕붕 소리만 내며 위협하는 꼴이었다.

 "중화민국 전체에 통일된 제도가 필요하다는 쑹 본부장의 발언에는 저 역시 동감하는 바입니다. 국민당에서는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언어 등에 있어서도 공통된 분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화당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동의합니다. 다만 중앙 정부가 권위적으로 강제하는 형태에는 반대하니, 제도로 확립하기 이전에 지방 시민들의 실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이 먼저여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당초 여러 신문의 논설에서 박투를 예측했던 군사 분야에서도 토론은 싱거웠다.

 "북양 정부가 들어섰으나 아직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군사력 증강에 나선다면 선의에 의한 행동이 자칫 혼란과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공화당이 집권한다면 당분간은 군제 개혁과 장교 양성에 주안점을 두겠습니다."

 "오. 그러한 군사 개혁이라면 국민당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군의 인재 양성에 반대할 정당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경제 발전이나 재정 개혁 문제는 더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다.

 쑹자오런이 제시하는 모든 정책에 천치메이는 그저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쉬는 시간.

 사회자가 떠들어 대는 동안 기타 잇키가 헐레벌떡 올라와 속삭였다.

 "뭐 하는 거야! 우리가 짰던 전략은 다 어디로 팽개쳐버렸냐고."

 "건전한 토론을 통해 양 정당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토론회의 순기능이잖아."

 "미친. 순기능 같은 소리하네. 잊었어? 오늘 너는 천치메이를 찢어버리기 위해 여길 온 거야."

 "···토론은 이길 거야."

 "이따위로 해서는 가망 없어."

 기타 잇키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이마를 긁었다.

 힘줄이 솟은 관자놀이 옆의 인공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덜덜 흔들렸다.

 "아직 핵심 주제가 남아있다. 의원내각제냐 대통령제냐. 이 주제라면 천가 놈도 어물쩍 넘어가진 못하겠지. 여기서 끝내야 해. 국가 체제에 있어 확립된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할 때 어떤 시너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또 그간 전승되던 일인 통치가 역사에 어떤 해악을 끼쳐왔는지. 너도 알잖아? 망설이지 말고 상대의 심장을 후벼 파란 말이야!"

 쑹자오런은 대답 없이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이곤 시선을 돌려버렸다.

 마음은 불편하였으나 기타의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천치메이에게 끌려가고 있다. 토론회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토론이 재개되자마자 쑹자오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국민당은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느 정부 형태를 지지하십니까?"

 "물론 대통령제입니다."

 "그렇다면 청조의 전제군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당연히 부정적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청조의 황제를 옥좌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이 바로 국민당의 쑨원 대표님입니다."

 천치메이의 노련한 회피에도 쑹자오런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군요. 제가 살펴본바, 국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제와 청조의 전제군주제는 놀랄 만큼 흡사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좋고 전제군주제는 싫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니요. 다릅니다."

 "대총통의 권한은 이미 황제와 다를 것 없습니다. 게다가 연임에 관련한 규정도 없지요. 무엇보다 문제는 국민투표가 아닌 임의의 기구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총통이 선출된다는 겁니다."

 천치메이는 안경 너머로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물어보지요. 공화당이 주장하는 의원내각제에 따르면 800명이 넘는 의원들이 다 서로 다른 의견을 늘어놓을 텐데, 중화민국은 이제 막 탄생한 신생국. 강력한 중앙집권방식으로 의견을 통일하여야 위기를 넘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곧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전제정의 방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제 막 움돋이 한 중화민국입니다. 좀 전에 우리는 이미 제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한번 뿌리내린 제도를 뒤바꾸기 위해서는 그 열배의 노력이 필요하니 처음일수록 만사에 신중히 접근하여야 할 것입니다."

 토론회가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비로소 말다툼 비스름한 게 생기자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쑹자오런은 굴하지 않고 시민이 국가의 적극적인 정치 행위자가 되는 공화의 의미에 대하여 논설했다.

 "오늘의 이 열기를 보십시오. 광장을 가득 채운 공화정을 향한 열망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중국의 백성들은 몽매하다 했습니까? 어느 누가 중국의 시민들은 권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까? 국민당이 말하는 대통령제는 공화 정신에 위배됩니다! 지금껏 수천년간 그래왔듯 중국의 시민들을 그저 교화하고 다스려야 할 존재로만 보는 겁니다!"

 쑹자오런은 자신의 연설에 도취되었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청중을 향해 외쳤다.

 "이번 전국 총선거는 천하를 향한 중국 시민의 외침입니다! 상하이의 뒷골목, 윈난성의 깊은 수풀, 남해의 이름 없는 섬. 중국 전역 어느 곳에서든 중화민국 한 명의 구성원으로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감히 자유를 말하고 민주를 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나라! 공화당은 바로 그런 공화국을 원합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자신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은 광장 중앙의 일부분뿐이었으나.

 화답하듯 청중이 우와아 고함을 질렀다.

 시간 차를 두고 파도가 치듯 함성의 물결이 광장을 휩쓸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자신 쪽으로 넘어 왔다.

 시민들은 공화당에 환호하고 있었다.

 쑹자오런은 들끓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이거다. 내가 원했던 게.'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크게 뛰는 심장을 움켜잡았다.

 이어지는 토론회는 주도권을 가져온 쑹자오런의 완벽한 승리.

 단상을 내려가자마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천치메이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곧바로 광장을 떠나버렸다.

 어느새 어둑해진 저녁.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쑹자오런은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봐라. 오늘처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세상은 바꿀 수 있어. 꼭 폭력만이 능사는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여관문을 열려는 찰나.

 "피하십시오!"

 옆에서 날아온 강력한 충격에 쑹자오런은 볼썽사납게 엎어졌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엎어뜨린 것은 경호대장.

 아니. 그보다.

 쾅!

 여관문이 폭발했다.

 나무터기의 잔해가 흩날리는 와중에 여관에서 삐져나온 희끄무레한 총구들이 보였다.

 경호대의 반응은 민첩했다.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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