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08)

공화를 위하여2

 "엄폐해! 엄폐! 씨발!"

 "쏴라! 쏴!"

 여관을 사이에 두고 살벌한 싸움이 오갔다.

 쑹자오런은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거적때기를 덮어쓴 채 엄폐물 뒤에서 벌벌 떨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상하이의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경찰은 무얼 하나. 벌써 폭탄이 터지고 총격전이 벌어진 지 수십 분은 지난 것 같은데. 

 거리에는 인적 하나 없다.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는 집도 없다.

 그저 총성과 악다구니뿐이다.

 "돌입한다!"

 경호대장의 외침에 일사불란하게 경호대가 뛰어들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경호 인력은 아니다. 오히려 군인 같다.

 "놈들이 뒷문으로 튄다!"

 총성이 간헐적으로 잦아들었다.

 투덕거리는 소리.

 한참 만에 경호대장 샤즈광이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본부장님을 노린 암살자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위험 요인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쑹자오런은 눈앞에서 폭발을 목도한 이후부터 무언가 붕 떠 있는 느낌이었으나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았다.

 일행의 총책임자는 자신이다. 상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쑹자오런은 배에 힘을 꽉 주고 입을 열었으나 어째 생각과는 다르게 모깃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요?"

 "여관 주인이 암살자들을 들여보내 준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암살자들과 한패인 건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몸을 피해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처음부터 한패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그럴 수가···."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경호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자신은 폭사했을 것이다.

 죽음이 그토록 가까이 다가왔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까 뒷문으로 도망간다던 적은···."

 "경호대는 4개 소대로 나뉘어 움직입니다. 도망치던 놈들은 매복대가 사살했습니다. 한놈을 생포하였는데 본부장님도 보시겠습니까?"

 "생포를 했다고요?"

 "예. 정강이에 총알이 박혀서 도망을 못 갔지요. 보시겠습니까?"

 쑹자오런은 갈등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렸다.

 "총알을 맞았다면서요."

 "예.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에 넘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 바닥에는 이 바닥만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피에는 피로. 강호의 법칙이지요."

 쑹자오런은 문득 메스꺼운 느낌이 차올랐다.

 토할 것 같았다.

 "···경호대장이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예."

 피는 싫어.

 세상은 왜 이렇단 말인가.

 ***

 빛 한점 없는 독방.

 천치메이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한참 전에 비웠어야 할 재떨이는 비벼 끌 자리가 없는 지경이다.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회중시계의 침을 살폈다.

 아직인가?

 깜깜한 방에서 기다리는 일은 천치메이에게는 의식과도 같았다.

 암살을 지시한 후에는 꼭 비밀 거처에 틀어박혀 고요히 소식을 기다렸다.

 까만 벽 위로 낮에 있었던 토론회가 재생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쑹자오런의 역량을 가늠하는 행사였다.

 전국 총선거가 결정된 이래, 쑹자오런의 명성은 하늘을 꿰뚫고 치솟고 있었다.

 특히 그가 반포한 약법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약법삼장의 고사에 대입하여 쑹자오런을 장량에 빗대는 호사가들도 있었다.

 황제가 아닌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

 길거리를 잠깐만 거닐어도 약법의 몇조가 어떻고 몇항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문자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죄다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다소 느슨했어."

 독방에 자신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신해혁명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모조리 실패했던 수십 번에 이르는 무장봉기.

 자금성의 거인은 절대로 거꾸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 생각했던 것이 1911년의 여름인데.

 고작 몇 달 만에 이토록 손쉽게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안스카이는 제법 말이 통하는 자였다.

 그가 100퍼센트 선의에 의해 움직인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최소한 현시점 중화민국에서 가장 대총통 자리에 어울리는 자인 것은 확실했다.

 원래는 쑨원 선생님을 밀었던 천치메이였으나, 선생님은 정치를 고사하셨다.

 천치메이는 다시 한번 선생님의 큰 뜻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권력을 쟁취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그렇듯 순수할 수 있기에 자신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천치메이였다.

 위안스카이의 거동을 주시하던 천치메이는 북양 정부가 큰 문제 없이 안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쑨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혁명은 완수되었고 이제는 산업 발전에 힘쓸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업부부장을 맡아 상하이를 거점도시로 개발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쑹자오런 쪽에서 세를 크게 불려온다.

 중국혁명동맹회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쑨원 선생님과 난징 정부!

 그러나 선거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역으로 축출당하게 생겼다.

 천치메이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낮의 토론회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억누를 수 있는 자인지 확인하는 마지막 자리.

 그게 아니라면 폭력밖에 없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쑹자오런은 자기 살길을 걷어차 버렸다.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끝장을 내야 한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동지들을 배신하고 저 후베이성의 음모쟁이들에게 붙은 쑹자오런을 처단하라!

 상하이는 자신의 안방.

 온 도시에 깔린 부하가 수백이다.

 경비대든 경찰이든 모두 자신의 손안이다. 이 도시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왜 이리 소식이 늦는 거야?

 천치메이는 문득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이상하게 가슴이 쿵쿵 울렸다.

 탕!

 총성이다.

 천치메이는 벌떡 일어났다.

 탕! 탕! 탕!

 연이은 총격.

 뭐지? 상하이에서 자신의 거처를 습격할 배짱을 지닌 놈들이 있다니.

 문을 열고 나가려던 천치메이는 멈칫했다.

 탕! 탕! 탕!

 총성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워진다.

 천치메이는 뒤돌아 비밀통로를 열었다.

 언제나 거점을 만들 때는 통로를 두 개씩 만들어 놓는 천치메이였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다.

 등불도 없는 땅굴을 천치메이는 엉금엉금 기었다.

 통로의 끝은 무저갱처럼 어두웠다.

 그 어둠을 노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신···!

 도쿄의 밤바다를 탈출해 구멍 난 가슴을 움켜쥐고 달리던 그날 저녁이 생각났다.

 쑹자오런의 호위병이 만만찮아 보인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놈이 연관되어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곳 상하이에서 자신이 쫓긴다고?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비밀 거점을 불시에 습격당했을 뿐. 조직은 멀쩡하다. 

 군대만 대동하지 않았지, 이건 전쟁이나 다름없다.

 청방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 사달을 일으킨 놈들을 죄다 처단한다.

 한신도 더 두고 볼 수 없다.

 우창에 틀어박혀 있다고는 하나 기회를 노리면 못 할 것도 없다.

 천치메이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 어두컴컴한 지하통로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신의 얼굴이 흐릿해지며 이번에는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쑨원 선생님. 선생님은 밝은 곳에서 나라의 부흥에만 힘 써주십시오. 우리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칭송할 중화민국의 얼굴이 되어주십시오.'

 공기가 부족한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선생님 가시는 길은 제가 닦아 놓겠습니다.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들은 모두 치우겠습니다. 혁명이 필요로 하는 피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서 제가 모두 흘리겠습니다.'

 퍽.

 땅굴의 끝에 부딪혔다.

 천치메이는 손끝을 더듬어 상부의 문짝을 찾았다.

 "휴우."

 문짝을 열고 일어서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겨울의 날씨. 땀범벅 된 이마를 훔쳤다.

 천치메이는 곧장 청방의 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쟁이다.

 오늘 밤 자신을 습격한 간덩이 부은 놈들은 결코 상하이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급해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참을 걸었다. 먼 곳에서부터 동이 터 왔다.

 청방의 본부에 도착한 천치메이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문지기 세 명이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사이좋게 흙바닥 앞에 쓰러져 있었다.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했을 정도면.

 상황이 방금 시작되었거나, 수습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 말은 곧···.

 천치메이는 마당 앞에 우두커니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칠흑빛의 총구가 보였다.

 한번 자신의 생을 구원해주었던 리볼버 따위가 아니다.

 1미터를 훌쩍 넘기는 기다란 총신. 군용 소총이다.

 "천치메이?"

 총구를 들이댄 사내 뒤로 십여명의 또 다른 사내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근거리에 이만한 숫자가 숨어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이놈들. 단순한 깡패 나부랭이가 아니다. 훈련받은 군인이다.

 천치메이는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사내들은 자신이 인쇄된 사진을 들고 대조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저자가 천치메이입니다."

 "그렇다는데. 당신이 천치메이요?"

 맨 처음 총을 겨눈 사내가 또다시 물었다.

 천치메이는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음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흰 누구냐."

 "맞나 보군."

 "말하지 않아도 짐작 가는 바가 있지···. 자칭 전략의 천재라는 네놈들 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은···."

 탕!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천치메이는 풀썩 나자빠졌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했다.

 하늘을 보고 누운 천치메이를 향해 사내들이 다가왔다.

 이번엔 총구가 이마를 향해 겨눠져 있었다.

 천치메이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짜냈다.

 "한신···. 한신···! 한신···!!! 그놈이 내게 남긴 전언은 없느냐···?"

 한때는 동지였고, 지금은 적이 된 지 오래지만.

 한신은 최고의 적수였다.

 이대로 이승을 하직하기에는 결말이 찝찝하다.

 무슨 말이라도 남겨주길. 눈을 편히 감을 수 있도록.

 과연 무표정한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온 말은 천치메이를 무저갱의 수렁에 처박는 것이었다.

 "없소."

 탕!

 이마가 꿰뚫린 천치메이는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피···. 쑨원···. 혁···, 명···.'

 ***

 이른 아침. 

 나는 커피를 내리며 상하이에서 온 전보를 뜯었다.

 단 두글자.

 - 종결.

 그 말인즉슨. 상하이의 청방은 궤멸되었다.

 천치메이는 사살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 방안을 돌았다.

 과했나? 내가 과했나?

 당하기 전에 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 보복이 과한 것은 사실이다.

 일 개 중대에 가까운 병력이 상하이 대도시에서 군사작전을 벌였다.

 게다가 피살된 자는 국민당의 선거본부장.

 꼬리가 잡히지 않을 리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총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도록 늦추는 것.

 상하이의 경호 인력은 작전이 끝남과 동시에 해산하여 각자 흩어진 채 후베이성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나는 언론에 천치메이에 관한 허위 정보를 계속 흘린다.

 천치메이는 중국의 수상한 집단이란 집단과는 죄다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찌라시 거리는 많다.

 오늘 이후로 선거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국민당의 대표인 쑨원은 철도유람이나 하고 있다.

 천치메이가 없는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몰락할 거다. 

 그리고 당권을 잡은 쑹자오런은 국무총리가 되겠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대총통을 들이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직하게 다음 타깃을 발음해보았다.

 "위안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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