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08)

모든 것을 끝낼 전쟁2

 우창군관학교의 강당.

 내가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자, 그만들 쳐라. 박수는 너희가 받아야지. 지난 1년간 수고 많았다."

 1기 생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휘파람을 불어대는 녀석도 있었다. 

 그간 억눌렸던 해방감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맨 앞의 한명을 지목했다.

 "앞에, 너. 그동안 뭘 배웠나?"

 사관생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예! 생도 두위! 애국정신을 배웠습니다!"

 "애국정신? 그게 뭐지?"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공화주의를 수호하는 정신입니다!"

 "공화는 뭔데?"

 "공화는 곧 자유와 공익의 조화이니···. 저는 지난 1년간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고련한, 이 자리에 서 있는 모두가 공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화의 구성원입니다!"

 째깍째깍 답이 나오는 자세.

 아주 훌륭하다. 이게 군인이지.

 "중화의 구성원이 아니고? 우리나라는 중화민국이지 않은가."

 "예! 저는 중화민국의 군인입니다. 그러나 공화와 중화가 대치되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중화정신이란건 결국 중국을 중심에 두고 타 국가를 오랑캐로 비하하는 관점이 아닌지."

 "청조는 중화를 그렇게 해석했고 결국 망조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출발한 중화민국은 주권이 국민에 있는 민주공화국이니, 신중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는 모든 국민들의 손에 달렸다고 할 것입니다."

 짜릿하다.

 내가 자유민주주의 의식을 함양한 중국인을 길러냈어.

 마치 사상검증을 하는 것처럼 되어 방식은 조금 어설펐지만, 그 이상의 희열이 날 감싼다.

 직할부대에서 사람을 뽑아 같이 입학시키기를 잘했다.

 일종의 정치장교를 같이 굴린 셈.

 사상검증이면 어때. 주입식 교육을 해서라도 내 편을 불릴 수 있다면 땡큐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바싹 긴장하여 차려 자세인 녀석이 귀엽게까지 보였다.

 "싸움은 할 줄 아나? 병과가 뭐지."

 "보병과입니다."

 "임관할 때 지망하는 부대가 있나?"

 "예! 후베이군의 보병연대에 발령받고 싶습니다."

 "알다시피 우창군관학교는 후베이무비학당의 분교다. 자연히 졸업 후의 임관 또한 베이징의 육군부에서 관리하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도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하긴 우리는 그간 제법 정을 쌓았어. 이대로 헤어지면 아쉽긴 해. 그렇지?"

 "아쉽습니다."

 "좋아. 모두 들어라! 지금부터 나는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을 하려 한다. 내 말에 따를지 말지는 전적으로 제군들의 몫이다."

 "예!"

 "임관을 미뤄라. 기다리면 내가 자리를 마련해주마."

 "예!"

 강당에 모인 500명 졸업생에게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이 터져 나왔다.

 "잘 생각해서 답해라. 내가 제공할 일자리가 그리 좋은 것일지도 알 수 없어. 오히려 후베이학당의 선배들과 같은 선을 타서 북양군에 임관하는 것이 훨씬 나을지 모른다."

 대답하는 이 하나 없이 생도들의 시선은 내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똘망똘망한 눈빛들을 보라. 

 내 팬클럽 회원을 양성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는데.

 "저희는 항상 교장님과 함께입니다!"

 "한신 장군 만세!"

 "만만세!"

 어쩌겠어. 얘들이 좋다는걸.

 우창의 육군사관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500명의 예비 장교들.

 단순히 현대적인 전투 교리와 전쟁수행능력을 함양한 것뿐만 아니라, 중화민국에 자유와 민주의 등불을 밝힐 역할로도 든든하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인재들.

 그렇다. 이 친구들은 500명의 제다이나 다름없다.

 공화국을 수호하는 기사단이다.

 제다이 기사단에게 제국군에 들어가라 할 수는 없지.

 북양파의 장교들이 장악한 기존 사단의 편제를 깨뜨려 재편성한다.

 내가 노리는 것은 신군 창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핑계는 전쟁이다.

 1914년의 6월. 전쟁은 코앞에 다가와 있다.

 ***

 확실히 내 동향은 읽히고 있었다.

 500명의 졸업 생도들을 임관도 시키지 않고 자유 시민으로 방치한 것이 어그로를 끌었을까?

 베이징에서 임명장이 날아왔다.

 장군부(將軍府)의 고문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장군부는 이번에 신설하는 최고 군사고문기관으로서 거액의 봉급에 육군 최고위 계급인 상장(上將, 대장)의 작위까지 하사한다고 하니 여간 파격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심보야 뻔히 보이는 수작.

 위안스카이!

 내가 두려운가?

 가만히 두면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가?

 응. 맞아.

 그러려고 했어. 날 견제하는 건 옳은 판단이야. 

 위안스카이의 속셈은 날 베이징에 가둬놓고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여 둔하게 만드는 것일 터.

 "가지 말지요. 놈들의 목적은 뻔합니다. 대장님을 베이징에 감금하고 영향력을 봉인할 생각입니다."

 부관 리페이양은 극구 만류했으나 나는 오히려 호기로 여겼다.

 "나는 갈 거다."

 "하지만! 베이징은 복마전입니다. 이번에 자칫 얽매였다가는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걱정을 하나? 대총통은 움직이지 못해. 부총통과 국무총리가 우리 편이야. 오히려 위안스카이가 내게 쩔쩔매야 할걸."

 "그래도···."

 "리페이양. 내가 없는 동안 도독 대임은 너다. 오래 자리를 비우진 않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말고."

 "예? 제가 어떻게?"

 "도독이라고 특별히 할 일은 없어. 내가 그간 얼마나 꿀 빨았는지 들키겠군.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전보를 쳐라."

 무서운 것은 북양군이지, 자금성의 북양 정부가 아니다.

 베이징이 복마전이라고 하면 그 마귀들 중 최소 절반은 우리 마귀다.

 위안스카이와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맞붙은 적 없다.

 그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는 제법 전도유망한 젊은 조선 놈. 딱 그 정도겠지.

 그러니 장군부 같은 잡스러운 수나 쓰는 거다.

 우민화 정책이냐?

 내가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만족할 위인 같아?

 나는 더 큰 걸 원한다고. 

 ***

 베이징역에 내리자마자 예사롭지 않았다.

 "타시지요."

 "이게 뭐요?"

 "각하의 작은 배려입니다."

 "흠. 감사히 받지요."

 형형색색으로 치장된 마차.

 황제나 타고 다닐 것처럼 휘황찬란하다.

 이거 돈이 어디서 난 거야?

 쑹자오런과 얘기를 해봐야겠다. 분명 북양 정부는 빚에 쪼들려야 하는데.

 마차에 올라탔다.

 안쪽에는 이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근데 이건 또 뭐야.

 "호호호. 어서 오시와요, 한신 장군님. 기다리고 있었사와요."

 붉은 치파오를 차려입은 여성.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자리에 앉힌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지 곧바로 문을 닫아버린다.

 "당신은 누구요?"

 "누구긴요. 오늘 장군님을 모실 장미(薔薇)라고 해요."

 "나는 부른 적 없는데."

 "장군님 같은 호걸을 모시는 건 소녀의 꿈인걸요. 가만히 계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뭘 해?

 바로 반박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장미가 포근히 기대왔다. 그녀의 숨결이 귀를 간지럽혔다.

 "어맛!"

 마차가 덜거덕거렸다.

 동시에 장미가 실수인 듯 안겨 왔다. 

 이거···.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아···.

 아득히 멀어지며 공중 부양 하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냐. 한신. 이건 아냐. 

 난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른데 만족하지 않아. 공화국의 수호자가 바로 나잖아.

 "어? 도착했나 봐요."

 "벌써?"

 멈춘 마차 밖으로 나오니 웅장하게 펼쳐져 있어야 할 자금성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비좁은 거리에 홍등이 가득했다.

 "같이 들어가요, 장군님."

 장미가 팔짱을 끼고 재촉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푸하하하."

 "왜 웃으세요?"

 "아니오. 나는 이만 가보겠소."

 "어딜 가세요. 여기가 장군님 거처예요."

 "거처는 내가 알아보겠소."

 그길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왔다. 

 위안스카이야, 어떻게든 꼬드기고 싶은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명색이 장군인 자들이 그깟 꼬추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겠냐고.

 하지만 다음날.

 장군부로 직행한 나는 따로 숙소를 잡은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와 함께 장군부로 불려온 장군들은 위안스카이의 호의가 꽤나 기꺼운 모양이었다.

 위안스카이의 신기묘산한 지략에 며칠이나 더 감탄하고서야 그 지략이 통하지 않는 또 한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윈난성의 차이어.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올라온 참이었다.

 차이어는 나타나자마자 그답지 않게 불평을 쏟아냈다.

 "젠장. 베이징은 항상 이렇군요. 명색이 장군부라 이번에는 무언가 다른가 했더니, 도대체 정부는 장군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 겁니까?"

 "돈 다음엔 성(性). 그다음엔 뭘까요."

 "그다음이 오기 전에 대총통을 바꿔 버려야 합니다."

 "평화적으로 가능할런지."

 "흠···. 가능이야 하겠지만, 평화적으로는 어렵겠지요."

 이것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시민들의 폭력성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는 건가?

 몇 년 사이에 상당히 과격해진 차이어였다. 자금성의 집무실에서 대놓고 정부의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윈난군의 훈련은 잘됩니까?"

 "물론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중국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윈난군 1개 사단이면 능히 북양군 10개 사단을 당해낼 수 있을 겁니다."

 "와우."

 허풍인지 자신감인지.

 차이어가 허풍을 놀릴 사람은 아니니. 자신감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입헌파와의 연립 정부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위안스카이라는 대적을 함께 상대하므로 성립 가능한 거지만.

 그 대적이 사라졌을 때도 여전히 같은 편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확신은 없었다.

 군신 차이 장군을 적으로 돌린다면?

 별로 떠올리고 싶은 상상은 아니다. 그만큼 전략전술에 있어 위협적인 존재가 차이어.

 그러나 지금은 같은 편이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

 분명 위안스카이가 장군부를 신설한 데에는 세력을 규합하는 지방관들을 억압하는 목적이 구할, 아니 십할이었을 거다.

 그러나 소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장군부는 마치 시대를 예견한 것과 같은, 바로 지금 시기에 가장 필요한 조직이 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도시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두 발의 총격. 황태자 부부의 사망.

 유럽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북양 정부에서도 군사 회의가 열렸다.

 요정과 기루에 처박혀 있던 장군들은 죽는 얼굴을 하며 자금성으로 끌려들어 왔다.

 회의는 장군부에서 주관하되 육군부의 각료들이 참관하는 형식이었다.

 오늘은 특별했다. 대총통이 입회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부총통과 다른 장관들도 함께였다.

 "자, 그럼 장군부 제4회 정기회의를 시작합니다. 저는 회의를 주관한 차이어입니다."

 차이어는 위안스카이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으며 차분히 유럽이 돌아가는 정세를 설명하였다.

 사건 초기, 제국의 후계자를 잃은 오스트리아 제국은 바로 군대를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벌써 근 한 달 가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공하든 말든 먼 나라 얘기. 중국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주요 열강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1914년의 중국 대륙은 마치 썩은 달걀처럼 열강의 조차지들이 곳곳을 파먹은 채였다.

 상하이와 톈진 등 주요 도시의 노른자위 땅에는 여지없이 조계지라 하여 열강의 치외법권 지역이 설정되어 있었으며 후베이성의 한커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홍콩과 포르투갈의 마카오, 독일의 칭다오와 프랑스의 광저우만 등은 거의 1개 소국 넓이에 가까운 땅을 조차 당하였으니 중국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굴욕이었다.

 북양 정부는 당연히 호시탐탐 반환받을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열강들이 이권을 알아서 포기하는 일은 우리 지구에서는 일어날 수 가 없어.

 군사 회의의 주안점은 당연히 중국의 이익과 직결되는 강대국들의 전쟁 여부.

 회의가 지루했던지 위안스카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합의로 위기가 수습될 수도 있습니다."

 "흥, 시시하긴."

 위안스카이가 회의를 나갈 것처럼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전쟁이 난다는 가정하에 회의를 진행하지요."

 내 말에 위안스카이의 시선이 꽃혀왔다.

 "한 장군이 말을 잘했군. 그래서, 가정하에 뭘 하면 좋은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갈깁니다. 키아우초우(Kiautschou, 산둥 반도의 독일령 조차지)를 우리 손으로 탈환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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