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끝낼 전쟁4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장군부에서는 육군부의 장성들을 소집하려 했으나 육군부장관 돤치루이는 별 것 아니라며 거부했다.
그의 감상은 딱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걸 예상 못한 사람도 있소? 사라예보 사건 이후 곧바로 군대를 움직일 것 같던 오스트리아가 한 달이나 시간을 끌었으니 오히려 한참 늦었지. 전쟁이야 허구한 날 터지는 동네이니 새로울 것도 없소이다."
그러나.
7월 30일에는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보호하기위해 총동원령을 내렸고.
8월 1일에는 기어코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사실상 독일 제국이 국제전을 열어버린 것.
돤치루이는 무척 당황해 보였다.
"독일 황제가 함부로 움직일 분이 아닌데···. 본인은 독일 육군대학에 다니던 시절 인맥이 있으니, 어찌 돌아가는 영문인지 알아보겠소."
정신 못 차렸나. 알아보긴 뭘 알아봐.
8월 2일 독일 제국은 룩셈부르크를 침공하였으며.
8월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하며.
8월 4일에는 벨기에를 침공하였다.
도리어 육군부에서 날 찾는 호출이 계속 전해져 왔으나 나는 쿨하게 씹고 숙소에서 조용히 짐을 꾸렸다.
참전군의 편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한시가 급하다.
우당탕.
문을 부술 것처럼 급하게 뛰어 들어온 사람은 리위안훙이었다.
"한신!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네!"
"예."
"알고 있었나?"
"아뇨. 처음 소식을 전해주신 겁니다."
"그런데 왜 놀라지 않아!"
"놀라고 있을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중국도 대비를 해야지요."
리위안훙이 불안한 듯 물었다.
"그럼 정말 자네가 말한 대로 되는 건가? 유럽에서 지금껏 한 번도 없던 큰불이 일어나고, 그 업화가 아시아에까지 번져온단 말인가?"
"그건 지금부터 하기 나름입니다."
"무서운 일이야.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나는 화제를 전환하였다.
"열강의 베이징 주재 공사(公使)들과는 얘기해보셨습니까?"
"나야 뭐, 옆에서 듣기만 했지."
"뭐랍니까?"
"음···. 뭐라더라?"
리위안훙이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형. 내가 알아볼게···.
"생각났다. 독일 공사는 중립을 요청하더군. 미국 공사 역시 마찬가지였어. 중국을 넘어 태평양 전체를 중립화하는 방안을 말했던 게 기억이 나."
독일이야 머나먼 아시아에 보급은 불가능하니 최대한 평화롭게 있고 싶어 하는 거고.
미국은 자신들이 소유한 태평양의 이권이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는 거다.
"영국은요?"
"몰라. 계속 부재중이던데. 다른 일로 바쁜 것 같더군."
"일본은?"
"글쎄. 조용해."
참전군만 편성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강대국들과의 외교는 군대를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니.
누군가는 베이징에서 꾸준히 귀를 열고 열강들의 이해득실을 판단해야 한다.
나는 가만히 리위안훙을 바라보았다.
"왜?"
"아닙니다."
잘 해주겠지.
쑹자오런은 군사에 문외한이라 쳐도, 외교부의 량치차오도 있고 장군부의 차이어도 있으니.
내려갈 채비를 다 마칠 즈음.
자금성에서 전령이 왔다.
대총통의 호출. 이건 씹을 수 없다.
***
상석의 위안스카이는 턱을 괸 채였다.
눈꺼풀이 내려앉은 것이 매우 지쳐 보였다.
"한신입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좋은가?"
"···?"
"기분이 좋냐고 물었다."
위안스카이의 음성이 유독 심통 맞게 들렸다.
"자네의 예언이 그대로 들어맞았군. 직할대의 편성 권한까지 얻었으니 한껏 날아오를 기분이겠어."
"각하, 이건 전쟁입니다. 예측이 맞았으니 좋아할 거란 말은 전쟁의 포화에 스러질 젊은 목숨에 대한 모독입니다."
"흥. 그런가."
"참전이 결정되었으니 시일이 촉박합니다. 훈련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 편성을 완료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하실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위안스카이가 갑자기 턱을 괴던 손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참전이 결정되었다니,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일전에 각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내가? 내가 언제?"
"분명 참전군의 편성을 지시하셨습니다."
"바로 그거야. 참전군의 편성만을 허락하였을 뿐, 중화민국이 참전한다는 얘기는 한 적 없네."
이렇게까지 졸렬하게 나온다고?
"각하. 제 예측은 유럽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일본에 선수를 빼앗길 겁니다."
"일본은 우릴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예고입니다."
"참전군은 유사시를 대비하게, 참전은 보장 못해."
나는 말없이 위안스카이를 꼬나보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대총통의 의사와 관계없이 여전히 전쟁을 결의할 수단은 있다. 의회에서 의결하면 된다.
물론 의회가 독단적으로 움직인다면 베이징에서의 잠깐의 평화는 끝나고, 또다시 북양파와 대결 모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본의 위협이 코앞에 다가오는데도 대총통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그때는 도리 없지.
북양군이 같은 반에 힘 좀 센 친구라면.
일본군은 외부에서 잠입한 총기난사범이나 다름없다.
위험도의 차이가 그만큼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일본의 위협을 분쇄하는 것이 급선무.
일본군이 참전을 명분으로 중국에 군대를 보내게 해서는 안된다.
우창에 내려가기 전에 베이징에서 어느 정도 수작질을 쳐놓을 필요성이 있다.
나는 외교부의 량치차오를 찾았다.
"영국 공사 말이오? 자리에 없는 것 같던데···."
"부탁드립니다."
"알아보겠소."
량치차오와 함께 도착한 영국 공사관.
저녁이 되어서야 마주할 자리가 생겼다.
주중 영국 공사는 피곤함에 찌든 파란 눈 금발 백인이었다. 날 보자마자 대뜸 손사래부터 쳤다.
"중국의 중립은 보장될 것이니, 더 얘기할 것도 없소. 날 그만 귀찮게 하시오."
"중립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뭔 얘기를 하려고?"
"맞춰보시지요."
영국 공사가 노골적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퀴즈게임이라도 하자는 거요? 말했소. 난 더 할 말 없소이다."
"이상한 얘기가 있던데요."
"흥, 뭔 얘기?"
"일본 외무성과의 소통은 잘 이루어집니까?"
영국 공사가 흠칫했다.
허를 찔린 표정이 되어 떠듬거렸다.
"무, 무슨 소통을 말하는 거요."
"그냥 떠도는 말입니다. 홍콩과 웨이하이웨이(威海卫, 산둥반도의 영국령 조차지)를 지키기 위해 영국이 일본에 참전을 요구하였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당연히 어디서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척하면 척이지.
영국 공사는 얼굴색이 여러 번 변하더니 이내 털어놓았다.
"휴우, 다 알고 왔군. 맞소. 그런 사실이 있소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독자 판단이었을 뿐, 대영제국의 판단은 아니오."
"독일의 동양함대는 그 세가 크지 않습니다. 대영제국이 굳이 일본의 손까지 빌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우잡자고 늑대를 들이는 꼴인데요."
"그 말이 맞소. 개전 초기에 당황하여 다소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거요. 하지만 일본 외무성에 다시 전보를 보냈소이다. 대독 선전포고를 보류해달라고 말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미국에서 태평양의 중립화 방안을 제시했고 대영제국은 받아들였소. 잘못된 것은 없소. 중국의 중립은 지켜질 거요."
"아니요. 지켜지지 않을 겁니다."
"왜 그러시오. 잘못은 바로잡았다니까."
나는 중국의 중립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일본에 대독 선전포고의 보류를 요청한 이유는 알겠군요. 일본이 태평양에 영향력을 얻는 것을 염려하는 거겠지요. 중립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관계도 생각했을 테고요."
"그 말이 정확하오···."
"이렇게 하시지요. 미국의 요구에도 부합하고 일본의 팽창도 견제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태평양에서는 평화를 지키지만 중국 영토의 독일군은 섬멸하는 겁니다."
영국 공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런단 말이오?"
"중국군이 출병하여 내륙으로 키아우초우를 점령하면 됩니다."
"중국이? 그럴 실력이 있소?"
"예."
내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영국 공사가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봤자 답은 뻔하다. 영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
미개한 칭챙총들이 자기들 땅을 되찾겠답시고 독일에 반기를 들어주면 그저 땡큐겠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소."
불씨는 심었다.
***
우창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후베이군의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죄다 북양파의 장교들. 어기적어기적 들어오는 꼬락서니부터 짜증이 솟구쳤다.
참자. 저 꼴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니!
"모두 모였나."
"···."
"대답 안 해?"
"예~."
북양파에서 지령이라도 내려왔냐? 어떻게 장교들이 사병보다 군기가 없냐고.
물론 정확히 말하면 이건 군기가 없다기보다는 항명에 가깝다.
그 경계가 모호하게 걸쳐있어 지적하기 까다로울 뿐.
"근래에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다들 알고 있겠지?"
"···."
"우리도 참전한다."
"···?"
"왜? 네놈들 기름 낀 배때지에 빵구가 날까 봐 겁나나? 걱정 마라, 새롭게 참전군을 편성할 테니까."
손가락을 까딱거려 부관을 불렀다.
단상에 올라온 리페이양이 편제표를 펼쳐 후베이군 개편안을 설명하였다.
골자는 간단했다.
기본 후베이군 2개 사단의 병력을 참전군 2개 사단에 쏟아넣는다.
보병여단 중심에 포병 연대를 섞고.
공병대대와 치중병 대대, 기관총 대대는 사단 직할로 둔다.
특이사항은 전 병력을 통째로 옮긴다는 것이었다.
지켜보던 수염이 우락부락한 자가 외쳤다. 1사단장이었다.
"도독! 후베이군 전 병력을 참전군으로 재편할 거면 그저 이름만 바꾸면 될 텐데, 뭐 이리 번거로운 절차를 둔단 말입니까?"
"무슨 말이냐. 참전군은 참전군이다. 재편이 아냐."
"하지만 병력이 그대로입니다만."
"대가리가 다르잖아! 대가리가!"
눈을 크게 뜨고 대자보를 살피던 1사단장이 경호성을 내뱉었다.
"어?"
"내가 말했지. 너희들의 안락은 보장될 거라고. 총탄 앞에 나서서 지휘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네놈들은 그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아편이나 피며 짬이나 때리면 된다."
"아니···. 참전군의 지휘관 자리에 있는 저 이름들은 뭡니까? 듣도보도 못한 놈들인데."
"우창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기다리는 장교 후보생이다."
1사단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탄식했다.
"1만 이상의 병력을 운용하는 사령관 자리에 아직 임관도 하지 않은 애송이를 앉히다니요. 이런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어디있단 말입니까!"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이런 막무가내식 인사(人事)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전역하든가."
1사단장이 날 노려보았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허여멀건 눈으로 치켜뜨는 거나 위안스카이한테 쫄래쫄래 가서 일러바치는 거 말고 네가 뭘 할 수 있냐고.
아오. 고소해.
대총통한테 일러봤자 소용없지롱.
이미 참전군 편성의 재량은 내 손에 있다.
게다가 아직 끝이 아니다.
진짜는 지금부터라고.
"이봐, 사단장. 혹시 일자리를 잃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아무렴 내가 너희들 자리도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봐? 대자보 하나 더 있다. 리페이양!"
펄럭이는 편제표.
지휘관들이 모여들었다.
"후베이군은 4개 여단 체제로 재편성한다. 봐라, 사단장. 네 일자리 있잖냐."
"···기존의 후베이군은 죄다 참전군으로 편성하였는데, 저 병사들은 어디서 나온 자들입니까?"
"중국에서 인력을 걱정하는 건가? 걱정 마라, 다 예전부터 국방에 충성해왔던 경험많은 노련한 병사들이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아마 여기 있는 장교들과도 죽이 잘 맞을 거야. 나는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잘해 봐."
"예···."
대답과는 다르게 1사단장의 미심쩍은 얼굴은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병사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그들은 구군(舊軍)이다.
청조가 아직 존속하던 시기.
신군을 편성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는 구군이었다.
순방영(향토군)과 팔기군, 녹영과 용영등의 각종 구군은 매너리즘에 빠진 이익집단이었고.
전투력은 제로가 된 지 오래. 어쩌다 전투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면 오직 신군을 견제할 경우였다.
해산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짬이 찰 대로 찬, 나이 든 노인이 즐비한 구군을 함부로 해산할 수도 없으니.
이익집단이 된 구군은 신해혁명 이후에도 골칫덩이였다.
그리고 그 골칫덩이를 이제 너희들에게 사하노라.
북양파의 장교들도 모두 청조 때 임관한 자들이니, 청조의 구군과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닌가.
적폐 vs 적폐.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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