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08)

개전

 1914년의 8월은 졸라게 바빴다.

 우창에 적을 둔 신생군은 모든 것이 어설펐으나.

 군관학교를 졸업한 신임 장교들이 닥치고 팔다리 걷어붙여 병사들과 함께 흙바닥에서 구르기 시작하니 조금씩이나마 진전이 보였다.

 그리하여 9월의 초입에는 어설프게나마 기동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나는 참전군의 군단장으로 취임하였다. 보직이 또 늘었다.

 "좋아. 편성이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지휘 및 기동 훈련에 들어간다."

 "우창은 좁으니 한커우 평야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겠습니다."

 "아니. 훈련할 장소는 이미 마련해 두었다. 산둥성에 키아우초우라는 곳이 있어."

 "어···. 예?"

 시간이 없다.

 흔히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하라고 하지만.

 우린 달라. 

 훈련이 실전이며, 실전이 곧 훈련이다.

 이번 칭다오 공략전은 특이한 성격의 전투.

 이미 보급이 끊긴 칭다오를 함락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적은 피해로, 얼마나 신속하게 점령하는가가 중요하다.

 전투는 피하고 기동으로 압박한다.

 잘만 된다면 마무리는 정치로 끝맺음할 수 있을 거다.

 "베이징에 전보를 쳐라."

 "뭐라고 보냅니까."

 "독일에 선전포고를 갈기라고."

 ***

 외교부의 집무실.

 량치차오는 차이어와 유럽의 전세에 관해 토론하는 중이었다.

 "독일군의 진격이 매서우니 머지않아 프랑스가 독일 제국의 손에 떨어질 것 같구나."

 "아직은 모릅니다. 독일군은 처음부터 단기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그 달음박질이 한 번이라도 멈춘다면 프랑스군은 수비 태세를 갖출 것이고 전세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겠지요. 전황은 그야말로 실낱같이 아슬아슬합니다."

 "그런가? 독일군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기야 내가 뭘 알겠나. 중화민국 최고의 군사 전략가인 자네가 잘 알겠지."

 차이어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최고는 한신 장군입니다."

 "허허. 한 도독을 띄워주는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땐 자네가 최고일세."

 차이어는 대답 대신 문 쪽을 돌아보았다.

 "손님이 오셨군요."

 부총통이었다.

 뜻밖의 방문은 아니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이래.

 리위안훙은 외교부를 자주 들락거리며 많은 문제를 상의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이대도 비슷하고 정치적 성향도 온건한 편이니 제법 죽이 잘 맞았다.

 리위안훙은 차이어를 일별하고는 대뜸 종이를 내밀었다.

 "장관, 이걸 보시오. 한신이 전쟁을 원하고 있소."

 량치차오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역시 중국의 참전을 강하게 원하는 바.

 아편전쟁 이래 중국의 영토와 이권은 상실뿐이었다. 이번 세계대전은 그런 중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고 있었다.

 "드디어 참전군이 준비되었나 보군요."

 "바로 대총통에게 갈 거요?"

 "대총통의 의사는 확고합니다. 정권 안정을 이유로 중국의 중립을 강하게 원하고 있어요."

 "그럼 의회로?"

 "아닙니다. 외국 공사관을 좀 돌아야겠습니다."

 량치차오는 차이어를 대동한 채 영국 공사관으로 향했다.

 영국 공사와는 일전에 한신과 함께 중국의 참전을 논의한 적 있으니.

 이후로도 꾸준히 교류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화민국 역시 협상국의 일원으로 참전을 결의합니다."

 "물론 같은 편이 생기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미 미합중국의 요청에 따라 태평양 전체가 중립화되었소. 이제 와서 굳이 중립을 깨뜨릴 필요가 있소?"

 "독일 제국의 악업은 전 세계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고 있습니다. 칭다오의 중국 주민들은 가혹한 통치 아래 노예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해방할 기회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입니다."

 "흠···. 중국의 역량으로 키아우초우 점령이 가능할지···."

 영국 공사가 콧수염을 매만졌다.

 량치차오가 다시 말하려는데 차이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이미 참전군이 편성되었습니다. 그들의 전투력은 중화민국 최고이니, 큰 분란 없이 신속하게 칭다오를 함락할 수 있습니다."

 "글쎄올시다. 내가 본 중국군은···."

 "아편전쟁이나 의화단 운동 당시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중화민국군은 근대화를 완료했으며 서구의 군대와 맞서 싸워도 능히 이길 역량이 있습니다."

 "아, 그렇소? 훗."

 영국 공사의 입가가 비웃음으로 삐뚤어졌다.

 허나 차이어는 상관치 않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신의 참전군을 완연히 신뢰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차이어가 진지하게 참전군의 내륙 진로와, 독일군의 방어 태세, 키아우초우의 지형 등을 분석하며 의견을 내놓자.

 영국 공사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상부에 중국의 참전 의사를 전달하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키아우초우에서 가까운 톈진에 대영제국의 수비대가 있소이다. 참전이 결정되면 합동 작전을 펼칠 수 있는지 알아보겠소."

 "좋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는 즈음, 량치차오는 문득 한신의 경고가 떠올랐다.

 조심스레 물었다.

 "일본제국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음···. 염려하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일본 외무성에 대영제국의 의사를 강하게 전달하였으니 특별한 분란은 없을 거요. 이번 중국의 참전은 내륙에 한하여 국지적으로 진행될 터. 태평양의 평화는 지켜질 것이니 일본은 끝까지 중립국으로 남을 거요."

 썩 개운한 답변.

 영국 공사관을 나온 량치차오는 그대로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공사관을 돌며 강대국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독일 공사관은 패스하였다.

 이제껏 그래왔듯 대총통은 반대하였으나.

 그럴 줄 알고 미리 열강들의 공사관을 순회한 량치차오였다.

 "보십시오, 각하. 영국이 중국의 참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분명 나와 이야기할 때는 중립국으로 남겨주겠다고 했는데."

 "참전군의 존재를 알고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태평양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고 중국의 영토 내에서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젠장! 그놈의 참전군은 왜 만들어서!"

 불평해봤자 소용없는 일.

 의회는 일사천리로 의결했고, 대총통의 비준이 떨어졌다.

 최후통첩 후 24시간. 1914년 9월 4일.

 중화민국이 독일제국에 선전포고하다.

 ***

 일본 제국 내각 회의.

 원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심장에 강한 압박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다시 말해봐."

 "주, 중국이 대독선전포고문을 발표했···."

 "에라이! 젠장! 지나 놈들이 미쳤나? 무슨 깡이야 대체?"

 내각 총리대신이 빈정거렸다.

 "그러게 내가 개전을 서둘러야 한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이리 늦춰진 것이 다 누구 때문인데."

 "뭐야? 나 때문이라는 거냐?"

 "당연한 거 아니오? 독일은 우리의 우호국 운운하며 개전을 반대하더니. 지금 꼴을 보시오 우리의 또 다른 우호국 중국에 뒤통수를 맞았구려."

 "아니! 내 판단은 옳았다!"

 "쳇,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는 태도라도 가지시오."

 "감히 나한테 충고하는 거냐?"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이라곤 죄다 나이 지긋하게 먹은 노인네들 뿐이지만.

 싸움 앞에 나이가 어딨나.

 야마가타는 분에 못 이겨 주먹을 휘둘렀다.

 "진짜 죽고 싶으냐?"

 총리대신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와봐! 새끼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당초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지도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대전란은 열강들의 시선을 유럽에 집중시키므로 태평양 등지의 이권을 노리는 일본에는 천우신조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총리대신은 당장 영국의 참전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일본도 참전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야마가타의 생각은 달랐다.

 일본군이 개혁 모델로 삼았던 것이 바로 독일군.

 군대 편제와 전투 교리까지 독일군의 모든 것을 베껴왔던 야마가타였다.

 오래도록 전쟁 준비를 한 독일군의 전투력은 무시할 것 아니라 생각했다.

 섣불리 참전했다가 유럽의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의 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

 꼴랑 코딱지만한 땅 몇 개 얻자고 신화적인 승리를 이룩한 제국의 적이 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참전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륙 진출은 일본제국의 오랜 숙원이었으니 국운이 승천할 기회가 있다면 잡는 것이 맞다.

 단지 신중하자는 것.

 유럽의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중국에 새치기를 당했다.

 이 새끼들이 간덩이가 부었나? 잘 대해주었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야마가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크게 성을 내며 소리쳤다.

 "아직 늦지 않았다! 중국보다 더 빨리 칭다오를 함락하면 돼! 바로 선전포고문을 작성해라!"

 하지만 외무대신은 어물쩍거렸다.

 "하지만 영국 정부에서 또다시 요청이 왔습니다. 이전 것보다 수위가 더 높아졌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함대를 움직이지 말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아니, 영국은 우리의 동맹국이잖아. 동맹국을 도우려는 것 뿐인데, 왜 움직이지 말라는 거야?"

 "···."

 "그냥 적당히 둘러대. 독일 제국의 침략 의지를 분쇄하고 극동 평화를 영구히 이루어내겠노라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그, 그럼 결국 참전하신다는···?"

 "당연하지."

 야마가타는 차츰 생각이 정리되었다.

 "지나 놈들은 본래 게으르기 그지없으니 군을 정비하여 도착하려면 시일이 걸릴 거다. 게다가 독일군의 반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니 칭다오에 들어서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리겠지. 정말로 아직 늦지 않았어. 곧바로 우리군의 최정예 병력을 산둥으로 보내면 9월이 가기 전에 칭다오에 입성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정말 영국 정부에서 중립을 지켜달라는 강한 요청이···."

 "국내 여론이 독일의 침략행위에 분노하며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해. 천황 폐하의 의지도 강력하다고 이르고."

 공략의 핵심은 칭다오다. 칭다오만 먼저 먹으면 된다.

 항구도시인 칭다오의 특성상 주력 함대를 끌고 가면 함락은 어렵지 않다.

 개싸움으로 시작하여 일본의 참전으로 결론 내린 내각 회의.

 중국의 참전 소식에 처음에는 당황하였으나 한결 마음이 편해진 야마가타였다.

 "그래. 원래부터 이렇게 될 거였어. 이로써 일본제국은 독일의 식민지를 모두 삼켜 더 성장하는 거야."

 압박감을 느끼던 심장도 순해지고.

 무리 없이 편하게 잠이든 야마가타.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출동 준비가 시작되었다.

 본대는 일본 육군 최강인 제18사단.

 증원 병력을 합쳐 총 5만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이었다.

 거기에 일본 해군 제2함대가 함께였다.

 3만 7,000톤급 순양전함 두 기에 2만 1,000톤급 드레드노트 전함이 포함된 전력.

 육해군을 합쳐 단숨에 초전박살 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정오쯤 들려온 소식.

 야마가타의 좋았던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나군이 산둥성에 돌입했다라···.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군. 선발대를 따로 구성했다냐?"

 "아, 아닙니다. 본대라고 합니다."

 "병력은 얼마나 되는데?"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 새로 편성한 참전군이라고 하며 2만여 명 규모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 편제표가 있습니다."

 무심코 받아든 야마가타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 뒤통수가 서늘하였다.

 "뭐야, 이건. 참전군의 군단장이라는 자. 이놈, 이름이 뭔가 익숙한데···."

 "···."

 "한신이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봤단 말야. 너, 아냐?"

 "예?"

 "지나 참전군의 군단장 말이야. 뭐 하는 놈인지 아냐?"

 "예."

 "뭐 하는 놈인데?"

 전령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본국의 육사를 졸업한 자입니다. 졸업 이후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혁명에 참여해서 크게 출세한 모양입니다."

 빠각.

 또다시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다.

 한신. 기억이 난다. 

 육군대학에서 개발한 도상연습 교보재가 있었지.

 그걸 가지고 육군사관학교에 모의전투를 시행하러 갔었는데···.

 그놈이 다 망쳤다.

 역겹고 야비한 수를 써서.

 "정말 그놈이라고? 그 좆같이 게임하던 새끼?"

 빠가야로! 

 육사에 지나인을 받는 것은 적에게 일본제국의 전투기술을 파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토록 말했었는데!

 "준비된 부대부터 당장 출항해! 이건 시간 싸움이다! 그 자식보다 칭다오에 먼저 발을 디뎌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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