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08)

칭다오 공략전

 1914년 9월 7일. 

 참전군은 산둥성 서쪽 도시 지난(濟南)에 도착하였다.

 지난역에서 출발하는 자오지철도(膠濟鐵道)는 칭다오까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칭다오 시내에 진입할 길이 열린 것.

 하지만 서두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부대 상황을 살피러 갔던 부관이 돌아왔다.

 참전군에도 굳건하게 곁을 지켜주는 리페이양이었다.

 "병사들 기동은 어떠냐?"

 "최고입니다. 낙오대도 없을뿐더러, 당장 칭다오에 오색기를 꽂자며 난리입니다."

 군관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 지휘관들의 열정에 더불어.

 신생 부대의 일원으로 전장에 나선 병사들 또한 사기가 절정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역사는 수탈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히 산둥반도를 둘러싼 독일 제국의 강압 통치는 악명이 자자했다.

 키아우초우의 중국 주민들은 모든 무기를 압수당하고 일체의 집회와 놀이, 행사를 금지당했으며.

 칭다오의 시가지를 유럽식으로 꾸미는 공사에 투입되어 노역을 해야 했다. 매질은 일상이었다.

 의화단 운동의 큰 원인 중 하나가 키아우초우 독일군의 만행이었으니 중국 민중의 반발심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참전군은 바로 그 부당하게 빼앗긴 칭다오를 해방하기 위하여 행군 중이니.

 병사들의 기세가 드높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숙영지를 꾸려라."

 "더 진격하지 않습니까? 부대의 여력은 충분합니다."

 "지난을 지휘통제부로 둘 거다. 정찰대를 준비해."

 "···예."

 칭다오 공략전에 변수가 생겼다.

 일본군의 선전포고.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다. 매우 급박하게 이루어졌다.

 마치 늦게 오면 주워 먹을 콩고물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서두르는 모양새.

 적의 다급함을 이용할 방법이 있을텐데.

 나는 작전 계획을 새로 짜기로 마음먹었다.

 지난에 머물며 정찰대가 정보를 가지고 오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북쪽에서 새로운 부대가 도착하였다 

 일전에 영국 공사가 말했던 톈진의 수비대.

 협정에 따라 이번 칭다오 공략을 함께할 영국군이었다.

 수는 1,500명가량.

 "사우스웨일스 대대를 이끄는, 소장 바너디스턴이오. 여기 통역!"

 "참전군을 맡은 한신이오."

 "오? 영어를 하시는군. 잠깐만, 무척 젊어 보이는데. 귀하가 대장이오?"

 "그렇소."

 빼빼 마른 영국인이 콧수염 위로 내 기색을 살폈다.

 영국군의 합류는 전투를 돕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미 일본군이 출병한 지금, 돌아가는 전황을 살펴 영국 정부에 보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야지.

 영국이 참전군을 탐색할 때, 참전군 역시 영국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을.

 "바너디스턴 소장. 뭐하나 묻겠소."

 "말하시오."

 "귀국의 동맹인 일본이 멋대로 중국의 강역을 침범해오고 있소. 분명 이번 공략전은 중국과 영국의 합동 작전이었소만.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바너디스턴은 아무렇지 않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나는 군인일 뿐이오. 단지 장군을 도와 칭다오를 공략하라는 명령을 들었을 뿐. 그 이상은 내 판단 밖의 일이오."

 "허면 일본군은 우리의 동맹군이오?"

 "동맹군?"

 "이 문제가 선결되기 전에는 공략이 어렵소."

 바너디스턴이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동맹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상부에서 특별한 지시가 내려온 것은 아직 없소."

 그 말은 곧 일본의 대독전 참전이 영국으로서도 뜻밖이었다는 것.

 내게는 호재다. 확실히 영국은 전쟁이 태평양 일대로 확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군과 영국군 간에는 커넥션이 없다.

 어떻게 요리하든 내 마음대로인 것이다.

 정찰대의 보고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키아우초우의 독일군 병력은 수비를 위해 칭다오로 집결하고 있었다.

 칭다오에는 10여개 포대와 200여문의 대포가 구축된 요새가 있다.

 병력 수만 믿고 함부로 공략에 나섰다가는 피해가 클 것이다.

 나는 새로 짠 작전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안정화 작전에 들어간다."

 "칭다오로 가지 않습니까?"

 "그래. 키아우초우의 주민 보호와 안전 확보가 우선이다."

 자오지철도를 타고 곧바로 칭다오로 향하는 대신.

 지나치는 도시마다 수색에 나섰다.

 "독일군의 압제에서 우리 주민을 구출한다. 최대한 수색 범위를 넓히되, 독일군과 조우하면 전투 대신 상황을 지켜보라."

 "적이 공격해오면 어떡합니까?"

 "그때는 주민을 지키며 전투를 피해라."

 "싸우지않습니까?"

 "그래."

 며칠 간의 수색 작전.

 몇몇 곳에서 독일군의 출현을 보고하였으나 내 지시대로 전투에 돌입한 부대는 없었다.

 참전군은 산둥성 중남부의 주요 도시를 완벽히 장악하였다.

 이번에는.

 "룽커우(龍口)로 향한다."

 "룽커우라면···. 산둥성 북안의 해안도시 말씀인지요."

 "그래."

 리페이양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오히려 칭다오에서 멀어질 텐데 혹시 작전의 목적을 알 수 있겠습니까···?"

 평소 군말 없이 따르던 리페이양인데. 

 워낙 답답했던 모양.

 "작전의 목적은 병력을 집결시키는 거다."

 "집결이라기에는 병력을 분산배치하고 계십니다만."

 "참전군을 말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독일군이다."

 내가 처음부터 노리는 것은 이것이었다.

 키아우초우의 독일군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요새에 몰아넣는 것.

 독일군이 최후 방어선을 형성하고 결사 항전을 펼치도록 유도하는 것.

 "그렇게 되면 독일군의 방어 태세가 더 완강해질 텐데요."

 "그게 목적이야. 우리 대신 그 방어 태세를 깨줄 친구들이 있거든."

 나는 처음부터 칭다오 대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

 일본군 제18사단을 지휘하는 가미오 미쓰오미 중장은 지독한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출동 준비부터 출항까지 말도 안 되는 졸속이다. 

 하지만 군인이 어쩌겠나. 까라면 깔 수밖에.

 출병을 앞두고는 육군 원수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호출까지 당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나군보다 칭다오를 먼저 함락시켜야 한다. 알겠냐?"

 "···최대한 노력은 하겠지만, 이미 중국군이 산둥성의 서남부에 도착하였다고 압니다. 영국군도 합세하였으니 그들이 연합작전을 벌이면 우리 군이 칭다오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략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야마가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기회를 얻을 거다. 이번에 지나 군의 지휘관은 경험이 일천한 신출내기야. 벌써 전투를 겁내고 있다는 것이 벌써 지나 군의 이동 경로에 다 나타나고 있다."

 "그렇습니까?"

 "경험 있는 지휘관이었다면 이번 칭다오 공략전에서 속도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지. 헌데 감히 공성에 나설 생각은 못 하고 주변만 빙빙 돈다? 잔뜩 겁을 먹은 거다. 나는 놈을 알아."

 "어떻게 아십니까?"

 가미오의 의문에 야마가타가 찔끔한 표정이 되었다.

 이내 체념한 듯 털어놓았다.

 "젠장, 뭘 숨기겠냐. 지나 군의 대장 한신은 일본제국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실제로 나는 그놈의 모의 전투를 참관한 적도 있으니, 성향을 추측하는 내 말은 신뢰가 있어."

 "모의 전투? 도상연습이었습니까?"

 "그래. 일러전쟁 당시 뤼순공방전을 복기했었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결과는 어땠는지요."

 가미오가 물었으나 야마가타는 대답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뤼순 공방전 당시 나는 대본영에 있었다. 개전 초기부터 대공세를 펴서 적의 고지를 빼앗으라 주문했지만, 만주군 사령부는 망설였지. 전투는 장기화되었고 일본군의 희생 또한 커졌어."

 여기서 갑자기 뤼순의 전훈을?

 가미오는 의아하였으나 잠자코 들었다.

 "모의 전투의 결과를 물었냐? 당시 내가 조언한 대로 일본군의 대규모 공세로 전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지. 그놈이 야비한 수작질만 하지 않았으면 쉽게 이기는 그림이었어."

 "그놈이라면, 한신 말입니까?"

 "그래."

 "어떤 수작질이었습니까?"

 문득 야마가타가 역정을 냈다.

 "몰라! 그까짓 건! 하여간 규칙의 허점을 이용한, 실제 전투에서는 아무 효용이 없는 그런 수를 썼었다. 중요한 건 이번 칭다오 공략전 또한 뤼순과 마찬가지라는 거야. 초단기 결전으로 끝내야 한다. 대규모 보병돌격으로 단번에 칭다오를 함락시키는 거야. 내 말을 명심해라."

 가미오는 어딘가 찝찝하였으나 육군의 원로 앞에서 그저 알겠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출동은 시작부터 꼬였다.

 "상륙할 곳이 마땅찮다고?"

 "예."

 "룽커우는? 본래 그곳을 상륙 지점으로 계획했던 것 아닌가?"

 "중국군이 점거하고 있답니다."

 가미오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 출병에는 까다로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중국군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다.

 일본의 참전 명분은 독일군을 무찌르고 조차지를 점령하여 절차에 따라 중국에 환수하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마땅히 중국군과 협력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으나.

 '명분은 명분일 뿐. 실제로는 중국에 환수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지.'

 산둥반도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요지.

 영국의 중립 요구까지 무시한 채 무리한 출병을 감행했다.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펼치고 있는 영국군의 존재 역시 거북하니 지도부에서는 최대한 중국군과 마주치지 않고 칭다오를 공략하라 지령이 내려온 상태였다.

 "함대는 뭘 하나? 먼저 칭다오를 포격하면 되지 않는가?"

 "주변 해역에 기뢰가 많아 접근이 어렵답니다."

 "적당한 상륙지점을 찾아봐! 한시가 급하다고!"

 9월 18일. 다행히 배를 댈만한 곳을 찾았다.

 제18사단은 라오산만(崂山灣)에 상륙했다.

 칭다오와는 동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가미오는 상륙하자마자 칭다오로 진격하는 한편, 정찰대를 보냈다.

 그들이 가져온 소식은 야마가타의 조언에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칭다오에 공격 한번 안 했다고?"

 "예."

 "한신이란 놈. 정말 겁쟁이란 말이냐. 아니면 이번 공략전의 성격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던가···."

 야마가타가 말했었지.

 기회는 있을 거라고. 정말 기회가 생겼다.

 이대로 칭다오에 도착만 하면 압도적인 병력 차로 찍어누를 수 있다.

 "그럼 중국군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산둥반도에 전체에 병력을 넓게 펴며 안정화 작전을 펼친답니다."

 "흐흐. 그 말을 들으니 알겠군. 확실히 겁이 나는 모양이야. 하늘이 우리 군을 돕는 구나. 자, 가자! 황군의 돌격 정신을 보여주자!"

 9월 19일.

 가미오의 제18사단은 칭다오 코앞까지 도착했다.

 시가지에는 중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칭다오 요새 바로 앞에 참호를 파고 진지를 꾸렸다. 

 육안으로 시내의 중국군이 보였다.

 묘한 동거였다.

 9월 22일.

 가미오는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밤, 야습을 결행한다. 최우선 목표는 독일군 방어선의 핵심인 몰트게 포대와 비스마르크 포대다."

 군사 전략상 정석은 포격 후 보병돌격이지만.

 문제는 아직 공성포병부대가 도착하려면 시일이 필요하다는 것.

 괜찮다. 적의 병력은 미약하니.

 고요한 밤.

 칭다오 요새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보병 제23여단의 반자이 돌격!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칠흑같이 어두운 칭다오 요새에 총성이 울렸다.

 밤이 본격적으로 불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

 첫 총성이 터진 날.

 나는 밤을 꼴딱 새웠다.

 이후에도 일본군은 3일 밤낮을 꼬박 공격을 감행했다.

 병력의 우위를 과시하며 독일군을 지치게 만들겠다는 전략일까.

 하지만 칭다오 요새는 함락되지 않았다.

 10여개의 포대 중에 상실한 것은 고작 2개뿐.

 멀지 않은 칭다오의 시내에서 전황을 지켜보는 나는 그저 또 한 번 기관총의 신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그렇지. 쉽게 뚫릴 리가 없지.

 게다가 지금껏 전투다운 전투는 한 번도 한적 없이 평화로이 퇴각한 독일군이다. 전력은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오히려 쥐구멍에 쥐를 몰아넣은 꼴이니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깨물림 당하는 것이 당연.

 "리페이양."

 "예."

 "전갈을 보내라. 모든 부대를 칭다오에 집결시키도록."

 "그렇다면 드디어···?"

 "그래. 칭다오 공략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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