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08)

칭다오 공략전2

 칭다오 시내의 영중 연합군 진지.

 대영제국의 나타니엘 바너디스턴 소장은 가볍게 심호흡했다.

 이번 임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신을 칭다오 공략전에 파견하며 상부에서 내린 지시는 정치적 고려를 동반한 은밀한 것이었다.

 애당초 영일동맹의 목표는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극동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한 것.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전으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고.

 이후 영국과 러시아가 협정을 맺으며 19세기를 관통하던 그레이트 게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양극 체제의 종말은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새로이 부흥하는 신흥열강들이 우후죽순 솟아나며 세계는 다극 체제로 이행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균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영국은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열강들의 박투가 벌어지는 유럽을 벗어나,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힌다면 드넓은 태평양의 이권이 눈에 띈다.

 견제되는 국가는 2개였다.

 서부 개척을 완료하고 기름진 땅에서 본격적으로 물량을 찍어내기 시작한 미합중국.

 그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룩하여 아시아의 맹주로 떠오른 일본제국이 그 둘이었다.

 재밌게도 서로를 신경 쓰는 것은 영국뿐이 아니라서.

 미국은 영일동맹을 바탕으로 두 국가가 힘을 합쳐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양면 전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 유럽의 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이 태평양의 중립화를 강하게 요청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하지만 바너디스턴이 볼 때 미국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영국 정부는 일본에서 대두하는 아시아주의를 주시하고 있었으니.

 극동의 떠오르는 태양을 자처하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유일한 패권국은 대영제국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에서 다극 체제의 새로운 한 축이 탄생하는 것은 결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바람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군의 기민한 참전은 영국 정부로서는 길에서 주운 꽁돈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그럴 역량이 있다고 전혀 고려치 않은 방안.

 하지만 일본의 도움 없이 독일의 식민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매력적이었으며.

 내륙의 군대를 움직이는 덕에 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의 중립 또한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덤이었다.

 동시에 민족의 이권 회수를 돕는 자유주의 진영의 선전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칭다오 공략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압박에 들어가 독일군 사기만 저하시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중국군의 기동은 생각 외로 기민했다.

 바너디스턴은 자신이 성급하게 판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영중 연합부대에 합류하여 마주친 중국군.

 첫인상은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아 만든 오합지졸이었다.

 참전군이 한 달 만에 급조된 군대라는 사정을 듣고는 실소까지 나왔다.

 그저 아무나 납치해서 군복 입히고 총만 쥐여주면 군대가 되는 줄 아는 건가?

 중국이 이만한 땅덩어리와 인구수를 가지고도 빌빌거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전을 함께하며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편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게 군기가 잘 잡힌 군대였다.

 산둥성 각지에서 수색 작전을 벌이며 조금은 어수선했던 지휘체계도 점점 안정되어 갔다.

 이들은 실전에서 훈련의 경험치를 쌓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군단장 한신.

 그와 그를 따르는 젊은 지휘관들은 바너디스턴에게 강렬한 각인으로 다가왔다.

 바너디스턴도 동석한 회의에서 작전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은 아주 기이했다.

 배석한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발언을 요구하는 완전히 민주적인 절차.

 그러나 회의는 언제나 한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참모진들이 만장일치를 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한신을 바라보는 젊은 장교들의 눈빛은 흠모와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절대적인 충심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무슨 수를 썼길래 고작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와 같은 시선을 받을 수 있는지 바너디스턴은 알 수 없었다.

 "소장. 들었소?"

 "어? 뭐라 했소."

 "영국군은 좌익을 맡아주시오."

 한신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하고 있었다.

 바너디스턴은 문득 이자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톈진에 와서 마주한 중국인들의 눈빛에는 강대국의 군인에 대한 질시가 가득했다.

 동시에 바너디스턴은 그 너머에 있는 서구에 대한 동경의 시선을 읽어낼 수 있었다.

 수십 년에 걸친 뿌리 깊은 열등감과 패배 의식이 중국인들의 눈빛에는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자는 달라.'

 단순히 질시와 동경이 없는 것을 떠나 묘하게 여유로운 태도 때문에 언뜻 보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또 일 처리는 공명정대하기 그지없으니 태클 걸만한 거리도 없다.

 "잠이 덜 깼소? 홍차라도 드립니까?"

 "아, 아니. 괜찮소이다. 알겠소. 영국군이 좌익을 맡겠소."

 "부탁드립니다."

 고개만 까딱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다음 지시를 하달하는 한신.

 자칫 예의에 어긋날 수 있는 행동임에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그의 태도가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것에 더불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대영제국의 장군이든 포병대의 연락장교든, 혹은 일반 사병이라 해도 한신은 똑같이 오만방자하며 정중했다. 

 "나가기 전에 모두 작전계획서 한 번 더 확인해라.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라. 이상, 건투를."

 중국군이 지난 몇 주간 이번 공세를 위해 포석을 쌓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바너디스턴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상부에 올릴 보고서의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 중국군의 역량은 기대 이상. 극동에서 충분히 일본을 억제할 수 있음.

 ***

 - 게르만은 결코 황인들에게 무릎 꿇지 않는다. 차라리 베를린이 러시아인들에게 짓밟힐지언정, 마지막 한 사람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결사 항전 하라. 우리의 아버지 조국을 위해! 

 칭다오 총독, 알프레드 마이어 발데크 대령은 카이저의 전문을 꼬깃꼬깃 접어 다시 품에 넣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기를 벌써 100번은 옛 저녁에 넘은 것 같다.

 개전 초기에는 한껏 의지를 불태웠다.

 카이저 폐하의 말씀대로 명예롭게 항전하리라!

 서부전선에서 연일 들려오는 승전 소식은 혹시 하는 기대감을 증폭시켜주었다.

 유럽의 전쟁이 일찍 끝난다면 머나먼 타국에 고립되어있는 자신들에게도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영국과 중국 연합군이 공격해오지 않고 시간을 끌수록 바람은 커져만 갔다.

 아주 만일이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월 이후 독일군의 진격은 멈췄고.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소슬한 밤.

 그는 깨달았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패배할 거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이 엿 같은 건 저 노란 원숭이들.

 벌써 일주일째 지치지도 않고 돌격에 돌격만을 거듭해 오는 원숭이 떼를 생각하면 절로 욕지기가 솟아오른다.

 고작 포대 몇 개 차지하자고 수천에 가까운 병력이 일제 돌격을 감행해온다.

 황인종들은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건가?

 진짜 미친 새끼들 아니냐고.

 슬슬 한계였다.

 포탄은 바닥나고 병사들은 수면 부족으로 꿈속에서 총을 갈기는 수준이다.

 후. 지친다.

 하늘은 전장의 화염과는 동떨어지도록 푸른데.

 뤼데스하임 포도밭의 싱그러운 내음이 그립다.

 "적습입니다!"

 이젠 무리야. 이게 마지막인가.

 발데크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원숭이 놈들 칼에 찔려 죽다니, 어디 가서 자랑은 못 하겠군.

 "가자."

 "그쪽 방면이 아닙니다."

 "뭐?"

 "칭다오 시내 쪽에서···, 영중연합군이 공격해옵니다."

 ***

 펑! 펑! 펑!

 75mm 야포가 불을 뿜었다.

 칭다오 요새가 자욱한 연기에 휩싸였다.

 나는 독일제 쌍안경으로 요새를 살폈다.

 개전 한 달째. 

 그동안은 일이 잘 풀렸다.

 일본군은 예상보다도 훨씬 급했다.

 뤼순공방전에서 착검돌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으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건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요새 바로 밑에 집결한 참전군의 포격.

그 뒤에는 보병대가 숨죽이고 돌격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껏 참호에 숨어서 서쪽 오랑캐와 동쪽 오랑캐의 싸움을 잘도 구경해왔으나.

 나는 전쟁의 종막을 잘 안다.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마무리할 수 없는 것이 전쟁.

 가장 어려운 것은 공세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너무 빠르면 참전군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고.

 또 너무 느리면 일본군에 공적을 빼앗길 테니.

 산둥성의 지리에 익숙한 자들을 뽑아 은밀하게 기동한 정찰대는 일본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보고해왔다.

 정박한 수상기 모함은 항공기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고.

 대구경 공성포와 유탄포를 보유한 공성 부대 또한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때가 왔음을 알았다.

 공성 무기가 도착했으니 일본군은 일시적으로 착검돌격을 중지하고 포격 진지를 구축할 것이다.

 공세에 틈이 생기겠지.

 그 틈은 참전군의 것이다.

 나는 오른 주먹을 불끈 들었다.

 리페이양이 바로 외쳤다.

 "포격 중지!"

 지휘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명령이 하달되었다.

 전장의 소음이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초기에 항전해오던 칭다오 요새의 포병 진지 또한 조용하였으니.

 찰나의 적막.

 나는 입을 열었다.

 "전군, 돌격!"

 ***

 개전 다섯 시간째.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무렵.

 요새에 백기가 올라왔다.

 사령부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승리다! 중국의 승리다!"

 "참전군이 독일 제국을 패퇴시켰다!"

 나는 일단의 지휘부를 대동하고 요새를 올랐다.

 포대를 지나칠 때마다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도착한 독일군 지휘부의 막사는 의외로 질서정연했다.

 "발데크 총독?"

 한 중년인이 진이 다 빠진 것처럼 앉아있다 손을 들었다.

 "중국군의 대장 한신이다."

 어설픈 독일어를 시도해보았는데 발데크는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죽은 눈으로 손만 퍼덕거렸다.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항복 문서를 대령하였다.

 발데크가 서명했다.

 대답이 없으니 오기가 생겨 좀 더 시도해보았다.

 육사에서 독일어는 꽤 자신 있는 과목이었는데 말이야.

 "네 빠른 생각이 고맙다. 왜냐하면 양쪽에 피해 없이 전투가 끝났다."

 발데크는 날 뚫어지게 보더니 부하 한 명을 불러 뭐라 속삭였다.

 다가온 자가 중국어로 물었다.

 "어···, 우리를 잡아먹을 거요?"

 "뭐?"

 "잡아먹을 거냐고요."

 이 새끼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칭다오의 독일군은 포로로 둔다. 고분고분 굴면 전쟁이 끝났을 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독일 병사가 놀란 듯 발데크에게 속삭였다.

 발데크 또한 눈이 커져 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참전군의 완벽한 승리.

 전투수습을 위해 한참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바너디스턴이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막사 안에 들어왔다.

 "한신 장군. 손님이 왔소."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일본 군복을 입은 남자가 한껏 흥분하여 막사에 뛰어 들어왔다.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전투의 공적을 눈앞에서 가로채다니!"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전투사령부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먼저 귀하의 소속과 신분부터 밝히시오."

 날 발견한 일본인이 눈을 부라렸다.

 "네가 한신이로구나! 교활한 것은 진즉에 들었으나, 이처럼 뻔뻔할 줄은 미처 몰랐다. 명확한 해명이 없다면 오늘 일에 대한 큰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소속. 신분."

 일본인이 가슴을 쫙 폈다.

 "대일본제국 제18사단장 가미오 미쓰오미 중장이다."

 "아! 우리의 동맹군이셨군. 진작 말했으면 소란도 없었을 터인데. 환영하오, 장군."

 "동맹은 무슨! 우리가 언제 동맹을 맺었단 말이냐!"

 "일본과 영국은 동맹이잖소. 그 영국은 이번 전투에 중국군과 연합하였으니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는 법칙에 의해 우리는 동맹이오."

 가미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동맹이고 나발이고, 지난 일주일간 우리 군은 칭다오 공략에 심대한 출혈을 감수하고 공을 들여왔다. 그리하여 오늘 함락이 눈앞에 보였는데, 그 과실을 훔쳐 가다니!"

 "가미오 장군의 말씀이 참 이상하구려."

 "뭐?"

 "본래 일본군의 대독전 참전은 키아우초우의 조차권을 획득하여 중화민국에 반환하기 위함이 아니었소?"

 "그, 그건!"

 나는 과장된 포즈로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과연 일본군의 고귀한 희생덕에 번거로운 절차 없이 중국군이 칭다오를 점령할 수 있었으니 노고에 감사드리오."

 가미오는 무어라 외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바너디스턴이 내 옆에 섰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영국의 연합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었다.

 "···어쨌건 이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소. 본국에 전투의 경과를 낱낱이 보고할 거요."

 "아직도 지휘부엔 야마가타 원로께서 계시오?"

 "···그렇소."

 "오, 그거 아시오? 실은 내가 일본육사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야마가타 원로나 가미오 장군도 어떻게 보면 내 선배나 다름없는 거요."

 입을 앙다문 가미오의 붉은 얼굴이 자꾸만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크. 더하다가는 터지겠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참냐고.

 "야마가타 원로와는 일전에 같이 워게임을 즐긴 적이 있었다오. 당시 뤼순의 전훈을 바탕으로 일본군 일제 돌격의 위력을 똑똑히 실감하였으니 이번 칭다오 공략전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짐작하였소. 오늘 정말로 내 바람이 이루어져 서로의 심리를 읽은 것처럼 소통 없이도 합동작전을 일구어내어 칭다오를 점령하였으니, 야마가타 원로께 일본육군의 후배가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전해주시오."

 뻥!

 가미오의 얼굴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은 건 환청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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