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08)

< 개판 >

 "헉, 헉."

 위안스카이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항상 타고 다니던 가솔린차에서 내려 이렇게 뛰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제기랄. 도저히 못 뛰겠다! 날 업어라!"

 "그럼 1만 위안 더 주시오."

 이런 날도둑 같으니라고. 

 위안스카이는 눈이 뒤집혔으나 그러마하고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뛰었다가는 무릎이 나갈 것 같다.

 자신의 감시역이었던 변발 병사를 돈으로 꼬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소한 일마다 돈을 요구해오니 정신이 돌 지경이다.

 '돤치루이, 펑궈장, 어디 있느냐···?'

 북양군의 군권을 틀어쥔 그놈들이 제멋대로 낙향하면서부터 일이 꼬였다.

 왕스전에게 일을 맡길 때 어째 이상하게 순조롭더라니.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그때 이후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졸지에는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몰래 총통부를 탈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휴우, 여깁니까?"

 "한 골목 더!"

 고생 끝에 위안스카이가 도착한 곳은 일본 공사관.

 돤치루이와 펑궈장에게 연락도 해야겠지만 일단은 변자군이 살벌한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베이징에서 몸 하나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돈은?"

 "이놈 자식아! 돈이 그리 바로 나오겠느냐! 기다려!"

 그놈의 돈돈돈. 

 저런 자식을 부하랍시고 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장쉰도 얼마 못 갈 것이 뻔하다.

 땀범벅이 된 위안스카이가 공사관 건물에 나타나자, 일본 공사는 뜻밖이라는 듯 우뚝 섰다.

 한껏 예민해진 위안스카이는 그 단순한 멈칫거림만을 보고도 위화감을 감지했다.

 이놈은 나를 반기지 않는다.

 "각하, 총통부에 계신다고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내가 그깟 놈들에게 잡혀 있을 사람으로 보이나?"

 "탈출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위안스카이는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꺼냈다.

 벌컥벌컥 마시고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공사, 전에 말했던 톈진의 병사들 있지? 좀 움직여 줘야겠어. 베이징의 꼴이 지금 말이 아니야!"

 "···."

 일본 공사는 대답 없이 냉장고로 걸어가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잔에서 쏟아진 상 위의 물기를 닦았다.

 "왜 대답이 없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 일본군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개입을 한다고 치면. 각하는 일본제국이 어느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건지요."

 "무슨 말이 그런가? 당연히···, 당연히···, 북양정부의 편이어야지!"

 "북양정부라···. 쯧쯧."

 일본 공사가 혀를 찼다.

 "각하, 일본제국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저 얼간이 장쉰을 끌어들인 것이 각하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각하의 황제지몽(皇帝之夢)이 있다는 사실도 모두 파악한 바입니다."

 위안스카이는 뜨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일본 공사가 말을 이었다.

 "그간 저는 각하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여 모든 정보를 공유해왔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간계를 꾸미다가 잘못되자마자 쥐새끼처럼 달려와 도움을 청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일을 일본제국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내 실수야. 다시 정권을 잡으면 반복하지 않을 실수."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럼 톈진의 군대를 움직이는 건가?"

 "예."

 위안스카이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섰다.

 "좋아! 진행 결과를 계속 보고하게. 나는 내 부하들을 찾으러 가봐야겠어."

 그러나 일본 공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위안스카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깥은 위험합니다. 공사관 영내는 치외법권 지역이므로 이곳에 계시는 게 안전할 겁니다."

 "말은 고맙네만, 비키게."

 "안 됩니다."

 쿵. 쿵. 심장이 뛴다.

 일본 공사의 미소가 점점 가증스러워졌다.

 "날 감금하려는 건가···?"

 "신변을 의탁했다고 생각하십시오. 공사관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계시면 상황은 알아서 종료될 겁니다."

 "이···, 이···!"

 22개조 요구부터 시작하여 그간 일본에 쌓여왔던 원한.

 거기에 지난 며칠간 한신과 왕스전, 장쉰같은 놈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이···, 쪽바리 새끼가 어디다 대고 명령질이야? 나는 현 중화민국의 대총통이자 곧 개국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될 사람이야! 내가 황좌에 오르고 나면 일본에 요구하여 가장 먼저 네놈부터 갈아치울 테다! 건방진 자식!"

 한껏 노기가 올라서 마구 삿대질을 해대는데.

 어째 몸이 무거웠다.

 심장에 격한 통증이 왔다.

 "크윽."

 이거 뭐야, 왜 이러지? 찬물을 잘못 마셨나?

 위안스카이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베이징 남쪽 외곽.

 난위앙항공학교에 설치된 공화군 사령부.

 내가 들어서자 참모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보고해라."

 "공화군 제1사단이 지난시로 움직여 철도역을 장악했습니다."

 "난징에 있는 변자군의 동향은 어떠냐?"

 "장쉰이 출병을 명령하였으나, 중간에 가로막은 우리 군 때문에 난징의 지휘관이 망설이는 모양입니다."

 "겁 없이 북상하다가 지난에서 생각지도 않던 대규모 교전을 치를지도 모르니 고민이 되겠지."

 칭다오 공략에 참여했던 참전군은 2개 사단.

 제1사단은 산둥에 배치하고 제2사단은 후베이로 돌아와 훈련에 힘썼었다.

 그중 이번에 베이징 앞까지 진군해 내 지휘를 받는 부대는 제2사단.

 제1사단은 독자적으로 움직여 산둥반도의 서쪽 도시 지난을 점거하였다.

 난징에서 철도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난을 통과해야 하니.

 변자군의 2차 출병을 중간에서 저지하는 역할이었다.

 "북양군의 동향은 어떠냐?"

 참모진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보다 못한 부관 리페이양이 입을 열었다.

 "돤치루이가 톈진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어제이니, 목적지는 톈진 마창(馬廠)으로 생각됩니다. 그곳에 주둔한 제8사단을 움직이려는 것 같습니다."

 "이제 병력을 꾸리려면 느릴 텐데. 늦게 오면 밥 없다고."

 "그래서 펑궈장이 서둘렀나 봅니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 전에 먼저 우페이푸(吳佩孚)와 펑위샹(馮玉祥)에게 지시 내려 토역군(討逆軍, 역적을 토벌함)을 조직했습니다."

 리페이양이 낑낑거리며 즈리성 전도를 펼쳤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즈리성에 포진한 주요 군부대의 위치가 나타나 있었다.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간 작전도를 그려보았습니다."

 "대단해, 리페이양. 점점 실력이 좋아지네."

 리페이양의 작전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나는 군부대의 향연이 마치 군벌 시대를 예고하는 것처럼 어지럽게 전개되어 있었다.

 베이징 자금성에는 장쉰의 변자군이 웅크리고 있고.

 자금성 남쪽의 난위안에는 공화군이 진공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톈진 남쪽의 군사기지 마창에서는 돤치루이가 제8사단을 움직이려 하고.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랑팡(廊坊)에는 펑위샹의 제16혼성여단이 출동을 준비한다.

 그리고 베이징 서남부의 대도시 바오딩에서는 우페이푸의 제3사단이 역시 출동 준비중이다.

 여기에 차오쿤(曹錕), 쉬수정(徐樹錚), 돤즈구이(段芝貴)와 같은 쟁쟁한 북양파의 거두들이 끼어드니.

 한 명 한 명의 이름들이 죄다 쉬이 넘길 수 없는 훗날의 군벌들이다.

 "이렇게 보니 마치 동탁 토벌전 같군요."

 "그거랑은 다르지. 우린 연합이 아냐. 북양군은 잠재적인 적이다."

 "따지고 보니 그렇군요. 게다가 동탁은 천하장사에 폭군이었으니 장쉰을 동탁이라 칭할 수는 없겠습니다."

 리페이양이 베이징 한복판에 삐뚤게 걸려 있던 장쉰의 명패를 바로 세웠다.

 그럼에도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쌍하기까지 했다.

 베이징을 둘러싼 군대들의 예상 진격로는 산발적으로 갈라져 있었으나.

 목적지는 모두 같았다. 베이징의 자금성이었다.

 공화군 제2사단만 해도 1만 5,000에 달하는 병력.

 여기에 북양파의 병력을 모두 합치면 5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반면 원군이 끊긴 장쉰의 변자군은 5,000여명에 불과하다. 

 전쟁이라기보다는 누가 빨리 베이징에 입성하여 행정체계를 장악하는지가 중요한 싸움.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자금성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였다.

 "회의를 마친다. 진공은 내일 새벽이다. 모두 푹 자 두도록."

 ***

 근래에 베이징에 들어갈 때면 어째 항상 군대를 대동하게 되는 것 같긴 한데.

 이번 규모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웅장한 진용.

 서로와 동로를 나누었음에도 그 위세가 어마어마하다.

 이 위용을 맛보여줄 상대가 고작 팔기군 잔당들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베이징 남쪽 포대 앞에서 공화군은 멈추어 섰다.

 "장군, 포격을 준비할까요?"

 "아니. 지키는 병사가 없는 것 같은데. 그대로 진입한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베이징의 방어진지를 통과했다.

 "변자군은 수가 적으니 안쪽에서 밀집하여 싸우려는가 봅니다."

 "글쎄."

 시내에 돌입했다.

 거리는 인적 하나 없이 한산할 줄 알았는데.

 "와아! 한신 장군이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중국 최고의 명장이다!"

 "저게 참전군이구나, 잘한다! 아주 이번 기회에 황제를 자금성에서 끌어내라!"

 "한신 장군님! 22개조 요구에 굴복하지 말아주세요! 공화정을 지켜주세요!"

 공화군이 가는 길에 베이징의 시민들이 마중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봐요들···. 환영하는 건 좋은데 우린 전투를 하러 온 거라고. 

 "리페이양."

 "예."

 "인원을 차출해 시민들을 통제해라. 교전이 시작될 테니 집에 가서 침대 밑에 숨어있으라 해."

 "알겠습니다."

 시내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설상가상이었다.

 환영인파는 자꾸만 불어났다.

 어째서 요새를 지키던 변자군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미 내가 베이징에 입성하기도 전부터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공화군을 기다리니, 싸울 마음이 들 리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베이징 성곽의 남문인 정양문(正陽門)이 보였다.

 성문 밖으로 커다란 황룡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곳만 넘으면 자금성이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성곽을 지키는 변자군이 보였다.

 그러나 공격 명령은 내릴 수 없었다.

 아직도 겁대가리 없이 공화군 주변을 얼쩡거리는 시민들이 수두룩했으니.

 그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는 함부로 개전할 수 없다. 

 별수 없이 어느 쪽도 발포하지 않은 채 대치가 이어졌다.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잠깐만요! 한신 장군님, 용안 한 번만 보고요!"

 "어휴, 제발 부탁이오···!"

 병사들이 고생이다.

 극성맞은 팬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변자군과 총싸움하는 게 더 쉽겠다고 생각할 무렵.

 정양문 성곽의 조그만 구멍에서 누군가 외쳤다.

 "나는 즈리성 총독이자 북양대신인 장쉰이다! 너희들은 어디서 빌어먹은 군대냐!"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

 나도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후베이 도독 한신이오! 장쉰 장군의 반역을 진압하러 왔으니 성문을 여시오!"

 "흥! 한신! 황제 폐하의 명 아래 너는 더 이상 후베이성 도독이 아니다! 파면 되었어! 반역자는 너와 네가 이끄는 군대다! 당장 해산하여 폐하께 삼배고구두의 예를 올려라! 예가 충분하다면 복직시켜주마!" 

 차마 목숨만은 살려주마, 라고는 안 하고. 복직시켜 준다네.

 최소한의 염치는 있구만.

 어차피 무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대화는 필요 없다.

 거리가 통제되고 나면 일제히 돌격하여 자금성의 깊숙한 내정까지 그대로 장악하면 되는 싸움이다.

 거진 시민들의 통제가 완료되어 갈 무렵.

 갑자기 동쪽에서 떠들썩한 소란이 일었다.

 골목에 있던 시민들이 비명과 악다구니를 지르며 도망쳐왔다.

 시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소란의 정체는 잠시 후에 밝혀졌다.

 황토색 군복을 입은 병사들.

 익숙한 군복이었다.

 "장군님, 일본군입니다···!"

 "베이징 시가에 들어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은밀히 기동했을 정도면 톈진 일본 조계의 수비대겠군."

 잠자코 지켜보자 일본군은 부대를 전개하여 공화군의 동쪽 방면에 섰다.

 베이징 성곽에 총구를 향하는 동시에 공화군 쪽에도 총구를 들이대는 묘한 배치였다.

 자연스레 공화군 또한 새로 나타난 일본군을 잔뜩 경계하며 총부리를 겨눴다.

 "한신! 칭다오에서 그런 몹쓸 죄를 저지르고 어찌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있느냐!"

 지휘관으로 보이는 일본인이 총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 광경을 보고 장쉰 또한 크게 외쳤다.

 "사악한 양이의 주구가 된 왜놈들이구나! 네놈들은 또 무슨 악업을 쌓으려 이곳에 왔느냐!"

 "우리는 베이징의 치안을 안정화해 달라는 대총통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다!"

 "대총통? 누굴 말하는거야?"

 "위안스카이를 모르나?"

 "그자는 대총통이 아니다! 중국은 군주정이며, 황제는 지금 자금성의 옥좌에 앉아 계신 한 분 뿐이다!"

 내가 잠자코 있자 장쉰과 일본군 지휘관이 둘이서 떠들어댔다.

 만담 콤비냐고. 이거 개판이네.

 "장군, 어떻게 할까요?"

 리페이양의 물음에 내가 답하려는데.

 휘이이이잉.

 하늘에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왔다.

 곧이어는.

 콰쾅!

 난위안항공학교에서 출격한 복엽기가 자금성 내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기다리던 공중폭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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