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08)

< 참전 >

 "동작 그만."

 "뭐?"

 장제스는 패를 가져가는 애꾸의 손목을 잡았다.

 "씨발, 장난까냐? 니는 눈깔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안 보인다고 다른 사람도 안 보일 줄 알아?"

 "무, 무슨 말이야?"

 "이거, 이거 뭔데!"

 장제스가 힘을 주자 애꾸의 손목이 비틀리며 패가 두 개 떨어졌다.

 "아, 미안. 으아악!"

 "내 앞에서 수작 부리다 걸린 새끼들은 모두 손목을 잘랐는데, 이거 어떡하냐. 눈이 하난데 손도 하나가 되겠어."

 "제발 한 번만 봐줘!"

 "봐줘?"

 "그동안 제법 잘 지냈잖아! 같이 마작 치면서 친해지기도 했고! 우린 친구잖아!"

 "친구?"

 장제스는 문득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한때 그런 게 있긴 했었지···."

 "응? 뭐라고?"

 "좋아, 그간의 정을 봐서 봐주지."

 "고맙다···아아아악!!!"

 장제스는 애꾸의 말이 끝나기 직전 품에서 검은색 단도를 꺼내 검집째 애꾸의 손바닥을 찍어버렸다.

 얼마나 세게 꽂았는지 검집이 있었음에도 애꾸의 손바닥이 바로 찢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이, 이런 씨발···! 봐준다며···!"

 "이게 봐준 거야, 새끼야. 손목 안 잘랐잖아."

 장제스는 애꾸의 판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박장을 나와 상하이의 밤거리를 걸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홍등가.

 개차반 같은 삶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러나 허한 마음을 달래려면 방법이 없다.

 장제스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미행이 있다. 한 사람이 아니다.

 애꾸 새끼가 앙심을 품고 사람을 붙였나.

 오히려 잘됐다. 마음도 꿀꿀한데 쌈박질 한 번 질펀하게 어울려보자.

 "나와, 새끼들아."

 장제스가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중절모를 쓴 두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전의를 불태우던 장제스는 나타난 자의 얼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쑤, 쑨원 선생님."

 "자네가 장제스인가?"

 "예, 맞습니다."

 "긴히 할 얘기가 있어 이리 찾아왔네."

 "저란 놈을 어찌 아시고···."

 "천치메이는 자네를 두고 중국동맹회의 미래라고 했네. 신해혁명이 일어났을 때 100인의 결사대로 항저우를 점령했던 사람이 바로 자네더군. 청조의 병력이 결집되기 전에 과감한 결단을 통해 이뤘던 큰 전과지. 그런 인재가 어째서 이런 진창에서 썩고 있나."

 천치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장제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더 이상 혁명에는 관여치 않을 생각입니다."

 "왜?"

 "···뜻을 잃었습니다."

 "지하에 있는 천치메이의 원수도 갚지 않고 말인가?"

 장제스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미 지난 3년간 상하이의 거리에서 먹고 자며 백방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천형의 청방은 상하이 최대의 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관절 어떤 조직이 하룻밤에 그런 청방을 궤멸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귀신같은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 처음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아무데도 단서가 없습니다."

 "단서가 있다면?"

 깜짝 놀란 장제스는 덜컥 쑨원의 손을 잡았다.

 "다, 단서가 있으십니까?"

 "나는 천치메이를 암살한 흉수와 살인 수법을 모두 알고 있네. 단, 그걸 알려주기 전에 내게 약조 하나를 해주게."

 "어떤 약조라도 하겠습니다!"

 "동맹회는 몸집 불리기에 지나치게 힘쓴 나머지 파벌이 생기는 걸 막지 못했지. 이번에 새로 중화혁명당을 창당하였으니, 당에 들어오게. 다만 약조하되 당수인 내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네."

 "그러겠습니다!"

 쑨원이 입당서를 꺼냈다.

 "적힌 대로 선서하고 지장을 찍게나."

 장제스는 마음이 급하여 입당서를 후루룩 읽었다.

 쓰여있는 대로 선서를 했다.

 "나, 장중정은 중화혁명당의 대표 쑨원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만일 한 몸으로 두 마음을 먹는다면 사형에 처하여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랴오중카이가 인주를 내밀었다.

 장제스는 망설임 없이 지장을 찍었다.

 "그럼 이제 흉수를 알려주십시오!"

 "근래에 명성을 얻은 녀석일세. 한신, 들어보았는가?"

 장제스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우뚝 섰다.

 "한신이라면···. 바로 그 한신 말입니까?"

 "그래, 그 유명한 한신이야."

 "하지만 그 친구는 정부의 관료인데 어찌···."

 "그게 악랄한 점이지. 총선거를 기억하는가? 공화당의 승리를 위해 국민당의 선거본부장을 암살한 거야. 게다가 작전을 위해 후베이군을 동원했다더군. 역적에 준하는 중범죄일세."

 장제스는 가슴 깊은 곳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에 휘둘려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천치메이 암살범의 정체를 밝혀내기만 하면 단번에 달려가 이마에 총알을 박아주리라 다짐했는데.

 "확실한 겁니까?"

 "내게 그런 질문은 삼가게. 방금 절대적으로 복종하기로 서약했으면서 반문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겠지."

 장제스는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천치메이와 한신간에 악연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든 중재해보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도쿄항에서의 일을 끝으로 그 일은 매듭지어진 줄 알았다.

 한신이라니···. 

 그들 사이의 원한이 그토록 깊었던가. 

 자신은 어째서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까.

 혼란스러웠다.

 "마음을 정했으면 따라오게. 제로부터 시작하는 혁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잠시, 들를 곳이 있는데 괜찮습니까?"

 "잠깐만일세."

 쑨원과 랴오중카이를 대동하고 도착한 곳은 상하이 외곽의 폐가였다.

 장제스는 천치메이의 비석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서 천치메이가 죽은 건가?"

 "예."

 "석공의 솜씨가 영 말이 아니군. 이리 날림으로 조각한 비석은 처음 보네."

 "···제가 직접 깎아서 그렇습니다."

 장제스는 땅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생각하다 갑자기 벌떡 고개를 들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쑨원에게 물었다.

 "우리의 혁명방략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근대화니, 열강의 침략이니 산재한 문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네."

 "그게 무엇입니까?"

 "천하 통일."

 장제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천하에 산재한 군벌들과 무수한 전쟁을 치르겠군요."

 "그렇겠지."

 한신도 그들 중 하나겠군요.

 장제스는 마지막 말을 끝내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용무는 마쳤습니다. 출발하시지요."

 "좋아. 행선지는 모든 것이 시작된 곳. 홍콩이다."

 상하이에 밤안개가 피어났다.

 세 사람의 신형은 금세 안개에 묻혀 희미해졌다.

 ***

 위안스카이의 사망 이후 북양정부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대총통 리위안훙을 필두로 새로 구성된 정부의 명칭은 공화정부였다.

 복벽의 소란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그러나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북양정부는 40만에 달하는 북양군의 군세라도 있었지.

 그럼에도 베이징에 가까운 성 몇 개 정도에만 영향력이 미쳤었지.

 반면 공화정부는 확실히 지지하는 군대가 공화군 2개 사단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차이어와 내가 있는 남방과 사이가 좋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말은 돤치루이나 장쭤린 등이 버티고 있는 북방과는 좋지 않은 관계란 의미이니.

 성장동력을 꺼뜨리지 않으며 세를 불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행히 후베이성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한양, 한커우, 우창의 3개 도시는 주변의 인구를 흡수하고 자원을 펌핑해 영역을 합쳤다.

 오늘날 우한시라고 하면 베이징과 상하이를 뛰어넘는 중국 최대의 대도시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중국은 원래 유럽에서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해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대전 발발 이후 수입이 뚝 끊기게 되니.

 상품은 부족해지고 수요가 폭발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이 우한공업지대의 공산품이었다.

 중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우한에서 생산된 상품은 철도를 따라 전역으로 수송되었다.

 일본기업들은 유럽을 대체하여 자신들의 상품이 소비되기를 기대하였으나.

 22개조 요구로 촉발된 반일 감정이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중이어서 중국의 소비자들은 주저없이 우한의 제품을 선택하였다.

 한양은행은 홍콩상하이은행을 삼킨 뒤에도 행보를 멈추지 않으며 금융 트러스트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미 우한공업지대에 입점한 기업의 90퍼센트가 한양은행의 자본을 끌어다 쓰고 있었으니.

 중화민국 중앙은행의 규모를 뛰어넘었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슬금슬금 공화군에 투자를 늘려나갔다.

 우창군관학교에 포병과 인원을 확충하고 공화군 편제에도 포병대를 늘렸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가능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여전히 한양병공창에서 생산하는 주력은 1888년에 독일에서 고안된 게베어 88을 개량한 한양 88식 소총.

 아주 못 쓸 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총도 아니었다.

 방산 기술은 단기간 내에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니, 차차 풀어야 할 숙제였다.

 1915년의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왔다.

 변란은 완전히 진화된 것이 아니었다.

 타다 남은 불씨가 숨어 있었으니. 

 순풍이라도 불면 자칫 큰 불로 번질 위험이 있는 불씨였다.

 22개조 요구. 

 일본이 이전처럼 강하게 요구해 오지는 않았으나, 아예 철회를 한 것도 아니었다.

 리위안훙은 꾸준히 편지를 보내 베이징의 정치 상황을 알려왔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 대총통 못하겠어 징징.

 - 일본 공사 새끼 엿 같아 징징.

 - 북양파 놈들이 날 우습게 알아 징징.

 그러던 어느 날. 

 편지투가 조금 달라졌다.

 - 한신, 우리 좆됐어 징징.

 일본이 기존의 22개조를 수정한 14개조를 새로 들고 왔다는 내용.

 이전에 위안스카이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똑같이 강압하고 있다고.

 그 난리를 겪고도 어떻게든 중국을 벗겨 먹으려고 안간힘 쓰는 일본. 대단하다 해야 할지.

 "리페이양. 다시 베이징에 가야겠다."

 "예, 가셔도 됩니다. 이제 성장 각하도 있으니까요."

 "내가 후베이성에서 하는 일이 없다는 투네."

 "사실이니까요."

 사실이라면 오히려 좋아.

 근대화 계획을 막 시행하던 초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내가 없어도 시스템이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바람직한 일이다.

 "가기 전에 한양병공창에 발주를 넣어라."

 "어떻게 넣을까요."

 "모든 생산량을 두 배로."

 "예? 지금 가동으로도 벅찬데요? 생산량을 못 맞출 겁니다."

 "야간에도 돌리면 되잖아. 전등 설비를 갖췄으니 4조 3교대로 인원 맞춰서 집어넣어. 24시간 풀가동으로 간다."

 리페이양은 밤에도 일을 시킨다는 발상이 낯선 모양이었다.

 "야,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악덕 자본가가 된 거 같잖아."

 "···아닙니까?"

 "4조 3교대면 개꿀이야. 이런 근무 조건이 어딨다고. 시골에서 올라와 일하고 싶어 공장을 기웃거리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판인데 이런 조건으로 채용해주면 악덕이 아니라 천사지, 천사. 천사 중에서도 하이클래스라고."

 "어려운 말은 모릅니다."

 "됐고, 시키는 대로 해."

 "예."

 리페이양이 받아적다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런데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는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전쟁준비라도 하시는 건···."

 "어? 어떻게 알았냐? 역시 서당개 3년이니 알아서 작전을 다 짜네."

 "지, 진짜 전쟁이란 말입니까? 그럼 목표는···, 설마 만주 정벌?"

 "3년으로는 부족한가 보군. 리페이양. 수행을 더 해라."

 "하지만 특별히, 갑자기, 전쟁을 걸 만한 곳이 없는데요."

 "왜 없어. 전 세계가 전쟁으로 시끄러운데."

 "그렇다면?"

 나는 말없이 눈을 찡긋 했다.

 ***

 리위안훙은 날 보자마자 입가를 씰룩였다.

 기분이 좋아 웃는 줄 알았는데 곧바로 삿대질을 해왔다.

 "한신, 이자식아! 내가 만만하냐?"

 "예?"

 "요즘 네가 납품하는 칭다오 맥주 맛이 바뀌었어! 내가 대량으로 구매해주니 호구로 보여? 엉?"

 "공장에 확인해보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다음 달까지 반값으로 할인해드리지요."

 "오, 역시!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달라!"

 분위기가 어색하니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리위안훙의 오랜 습관이었다.

 나는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위안스카이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군요."

 "왜냐하면 내가 여기 잘 안 있거든."

 "그럴 것 같습니다. 14개조 요구란 거나 한 번 봅시다."

 "이거야."

 22개조에서 다소 과했던 조항들을 대폭 삭제하고 수정한 완화 버전이었다.

 내 사과를 요구하는 조항도 사라져 있었다.

 어째 볼수록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의화단의 난 이후 서양 열강들이 중국을 많이도 등쳐먹었는데.

 늦게 온 일본은 먹을 게 없으니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벗겨 먹을게! 하며 사정사정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안돼.

 제국주의 아웃!

 서양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들도 차근차근 갈아치울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통과 의례가 필요하다.

 세계에 열강으로 인정받으려면 중국의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한 전쟁이다.

 일본의 골치 아픈 요구와, 공화정부의 군대 양성과, 중화민국의 국위 선양.

 이 모두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참전이다.

 "각하."

 "엉?"

 "세계 대전에 참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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