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08)

< 타운센드 중장 구하기 >

 "영어 합니다. 통역 필요 없습니다."

 "오우, 신기해라."

 출병을 앞둔 기자회견.

 영국인 기자 몇 명이 중구난방 격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중국의 군대는 쿵푸를 사용하여 싸운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예. 다만 아주 위급할 때만 사용합니다. 보통은 총을 쏩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은 갈리폴리만큼이나 처참한 실패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중국군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될까요?"

 "저는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번 출병은 타운센드 장군을 구하기 위한 작전인지요?"

 기자야. 타운센드가 아니라 제6사단 13,000명을 구하려는 거지.

 나는 간단히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쿠트에서 벌써 3달이 넘게 항전하며 대영제국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는 타운센드 장군을 원정군 사령부가 질투한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처음 듣습니다."

 "닉슨 사령관이 타운센드 장군을 시기하여 동방의 야만적인 군대를 작전에 투입하는 거라던데요. 생색만 내고, 진심으로 구할 생각은 없다고요."

 예의는 홍차에 말아 먹었나.

 그러나 기자의 태도는 진지하여 일부러 중국군을 업신여기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아니, 그럼 타운센드 장군의 구출이 아니면 뭘 위한 출병이란 말입니까?"

 나는 기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전쟁을 끝내기 위함입니다."

 ***

 사막의 행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보급.

 둘째는 병참.

 셋째는 치중(輜重)이다.

 지난 몇 달 간의 정비가 바로 보급때문이었다.

 바스라의 복잡한 항만은 보급선이 지나다니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고, 완전히 원시적이었다.

 바그다드와 쿠트를 지나는 티그리스강은 충분히 넓었으나.

 바스라의 문제 때문에 보급선은 작은 배만 겨우 띄울 수 있었으니.

 타운센드와 에일머의 군대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당연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티그리스강에 대영제국의 문장이 박힌 대형 증기선이 움직이며 물자와 병사를 수송할 수 있게 되었으니.

 비로소 전쟁다운 전쟁을 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3개 사단의 병력을 이끌고 사막에서 행군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야! 너! 아무리 뒤질 것 같아도 행군 중에는 물 마시기 금지다! 전군에 전달했을 터인데!"

 "하, 하지만 정말 목이 너무 타서···."

 "수통은 쉴 때만 열어라."

 수분 하나 없는 삭막한 공기에 얼굴이 부르텄다.

 내디딜 때마다 푹푹 꺼지는 모랫바닥은 발걸음을 몇 배는 무겁게 했다.

 그나마 아랍인들이 보조를 맞춰주며 편한 길을 안내하지 않았더라면, 전군이 통째로 사막의 미아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니살렘 부족의 아사드!"

 "예. 부르셨습니까?"

 "휴게소는 언제입니까?"

 "해가 질 때까지는 걸어야 우물이 나옵니다."

 "그렇군. 중국군이 바스라에 도착한 이후로 당신이 해준 모든 일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나중에라도 중국에 초대해주세요."

 "가능하다면요."

 ***

 출병한 지 2주가 조금 넘는 1916년 4월 4일.

 참전군 제1군은 쿠트에서 조금 떨어진 티그리스강의 습지에 도착했다.

 망원경을 대자 머나먼 모래벌판 사이로 드문드문 흰 점들이 보였다.

 "아사드, 저기가 쿠트입니까?"

 "맞습니다."

 "망원경을 쓰지 않고도 알아차리는군요."

 "베두인은 시력이 좋습니다."

 쿠트의 주변은 카키색 오스만 진지가 둘러싸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공략이 쉽지 않은 진형이었다.

 저 참호에 돌격했다가는 에일머의 구호군과 똑같은 꼴이 날 것이다.

 진지공사가 마무리될 때쯤.

 샤즈광이 물어왔다.

 "대장, 공세는 언제입니까?"

 "기다려."

 "내일 새벽이 습도도 적당하고 싸우기 딱 좋은 날씨일 것 같습니다."

 "아니, 더 기다린다."

 "그럼 내일모레입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

 공세 대신 나는 쿠트 주변에서 사막의 기동훈련을 명했다.

 며칠에 걸친 꾸준한 기동훈련이었다.

 "대장, 이거 맞습니까? 벌써 일주일째 진만 치고 있으니 보급품도 슬슬 말라갑니다."

 "증기선이 물자를 가지고 올 거다."

 "물론 대장의 신묘한 전략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기동훈련을 두고 병사들 사이에서 불평이 나옵니다."

 "뭐라고?"

 "뙤약볕 밑에서 이게 뭔 똥개훈련이냐고요."

 샤즈광이 조심스레 병사들의 불만을 전해왔다.

 불평이 나올 때가 되긴 했지.

 허구한 날 하는 것이 연대 단위로 쿠트 주변을 뺑뺑 돌며 행군하는 것이니까.

 "병사들은 싸우고 싶어합니다. 다들 전투의지가 충만하니 오스만군에 총이라도 한 발 쏘게 해달라며 싹싹 비는 녀석까지 있는 지경이라니까요."

 역시 내 명령 때문이었다.

 쿠트 주변을 돌다가 오스만군이 나타나면 재빨리 도망치라는 지시를 내려두었던 것이다.

 "샤즈광.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마작을 쳤었지. 그때 네가 지껄였던 내용 기억나냐?"

 "어···.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대장의 실력도 모르고 깝죽거렸으니,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억입니다."

 "그때 너는 마작은 기다리는 자가 승리한다고 했지. 이번 전쟁도 그렇다. 기다리다 보면 승기는 분명 우리 편으로 온다."

 "오···! 기억납니다. 저도 꽤나 멋있는 말을 했었구먼요. 흐흐."

 "오스만군이 병법을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삽십육계의 성동격서(聲東擊西)를 행할 참이다."

 쿠트의 참호선을 뚫는 것은 무리.

 억지로 강행 돌파한다고 해도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타운센드의 어그로는 런던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에까지 미치고 있었으니.

 기자회견까지 하며 요란하게 출병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런던 타임스는 읽지 못했어도 아마.

 - 메소포타미아의 전쟁을 끝내러 온 동방의 쿵푸마스터!

 따위의 기사가 실렸겠지.

 쿠트는 사실 군사적으로는 무가치에 가까운 지역.

 하지만 그 정치적 중요성은 지난 몇 달간 타운센드의 언론플레이를 통해 무럭무럭 자라나.

 오스만과의 전쟁에 있어 런던과 콘스탄티노플의 최대 관심지로 등극해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의 기동훈련은 그 어그로를 더욱 끌기 위함이었다.

 마치 조만간 대공세를 펼쳐올 것처럼 오스만을 자극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래서 성동격서! 소름이 돋는다! 역시 전략의 천재, 한신!"

 "어디서 사령관 이름을 막 불러."

 "죄송합니다."

 실제로 쿠트를 수비하는 오스만의 군세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정확한 병력의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일주일 전, 막 도착했을 때 카키색 점이 드문드문 있었다면.

 지금은 드글드글했다.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상한 차이어의 제2군이 방비가 약해진 바그다드를 함락시켰을 때. 그때 우리도 쿠트를 친다."

 "대장도 2군단장님의 성함을 막 부르시네요."

 "꼽냐?"

 "죄송합니다."

 1916년 4월 13일.

 소식이 왔다. 바그다드를 함락했다는.

 ***

 티그리스강 습지대.

 한밤중.

 오스만군이 포위를 풀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그다드를 수복하려는 목적이겠지만 이미 늦었다.

 한 번 점령당한 도시를 탈환하는 데에는 수고가 몇 배로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은 바그다드까지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

 "공격."

 내 말을 들은 샤즈광이 거세게 외쳤다.

 "돌격! 돌진해라!"

 이거야. 이게 전쟁이지.

 엿같은 참호전에서 탈피한 기동전. 이걸 하고 싶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들키지 않도록 크게 우회하여 오스만군의 퇴각 경로에 매복한 것이었다.

 지난 일주일간의 기동연습으로 익숙했던 지형이기에 매복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우와아아아아!!!"

 대열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무질서한 돌격.

 그러나 현대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돌격방진이 바로 저 개돌이었다.

 공세의 목표 지점은 있으나.

 도달하는 과정은 병사 개인, 혹은 소대의 판단에 의지한다.

 기본적으로는 군인 정신을 유지하여, 적의 섬멸을 노리되.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전투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급히 퇴각하던 오스만군은 불시의 습격을 받고 크게 당황하였다.

 총을 잡고 응사하는 병사들도 보였으나, 기본적으로는 뒤꽁무니를 보이며 내빼기에 바빴다.

 야간습격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피아식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점이 좋게 작용했다.

 "참호에서 오스만군이 튀어나옵니다!"

 "좋아. 2차 공격을 진행해라. 참호 안까지 진입할 수 있겠어."

 아군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다못한 쿠트 포위군이 도우러 참호 밖으로 뛰쳐나왔다.

 참호 안에서 사격하기에는 야간이라 분간이 어려웠으므로 도우려면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습격한 병력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였으니.

 첫 공세의 배가 넘는 병사들이 모래언덕을 타넘어 개같이 돌격하였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기 전에.

 참전군 제1군은 쿠트에 입성하였다.

 ***

 4개월간 고립되었던 쿠트의 실태는 처참하였다.

 나는 샤즈광을 대동하고 시찰에 나섰다.

 병사들은 죄다 뱃가죽이 등뼈에 닿아있었으며, 마구간은 휑했다.

 말을 도살하여 잡아먹으며 버틴 것이었다.

 "대장. 제법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러게."

 "아사자도 상당수 나왔다고 합니다."

 도시의 13,000명 병사 중 최소한의 거동이라도 가능한 자는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아사 직전의 병자들이었다.

 참전군은 급한 대로 건빵을 잘게 부수고 물에 적셔 오트밀처럼 만들어 공급하였다.

 구호 작업이 한창인데 공터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영국 악센트가 경내를 울렸다.

"아니, 뭔 차이나맨들만 잔뜩 쏟아져 들어온단 말인가. 말할 줄 아는 인간은 한 명도 없어?"

 평생 굶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우렁찬 목소리.

 타운센드의 첫인상은 잘빠진 플레이보이였다.

 이미 머리와 콧수염이 희끗희끗했으나, 그런데도 특유의 능글거림이 살아있었다.

 "여기 있소."

 "오! 발음이 그럴듯해. 어디서 배웠지?"

 "그건 알 거 없고. 당신이 타운센드요?"

 웃고 있던 그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그런데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경칭은 붙여야지. 꼬마야."

 "당신이야말로 오래 갇혀있다 보니 계급장 보는 법을 까먹었소?"

 "음? 자, 잠깐만. 네가 사령관이라고?"

 "경칭은 붙여야지, 타운센드."

 그의 입도 미소 짓기를 멈췄다.

 "이제 알겠어, 당신이 한신이로군. 에일머 경은 어딨지?"

 "그는 같이 오지 않았어."

 "잠깐만, 그럼 쿠트가 차이나맨들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거야? 이게 말이 되나? 무슨 수를 쓴 거야···?"

 "그것뿐만 아냐. 바그다드도 함락시켰는걸."

 어안이 막힌 타운센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전쟁은 끝났다. 네 덕분에 바그다드와 쿠트의 정치적 상징성은 하늘을 꿰뚫고 있지. 중국군은 전장의 영예를 얻을 수 있게 되었어. 사령부로 돌아가라, 타운센드. 몰려든 기자들에게 중국군의 화려한 쿵푸 실력을 찬양해라."

 "다, 당신은 어쩌려고?"

 "퇴각한 오스만군을 쫓아 바그다드에 입성할 거다. 바그다드는 바스라에 이은 두 번째 거점이 될 거야."

 참전군을 나누어 타운센드의 제6사단 호송 임무를 맡겼다.

 나는 나머지 병사를 이끌고 바그다드로 향했다.

 접근하면 포격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도시는 평온했다.

 멀리서 흩날리는 중화민국의 오색기가 보였다.

 차이어는 격전을 치른 사람답지 않게 차분했다.

 조금 마른 것 같기는 했다.

 "예상보다도 바그다드를 훨씬 빨리 함락시키셨습니다."

 "예상보다도 바그다드의 방어가 훨씬 약했던 덕입니다. 알고 보니 쿠트의 수비를 위해 상당수 병력이 빠져나갔더군요. 영국군은 항상 티그리스강 방면으로만 공격해왔으니, 유프라테스강 방면의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무니살렘 부족에게 또 한 번 감사를 표해야겠군요."

 그동안 영국군이 티그리스강을 따라 공격한 것은 당연했다.

 유프라테스강 쪽은 거리도 한참 멀거니와, 경로 자체가 험했으니.

 아랍 민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차이어도 결코 시간 안에 주파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차이어의 제2군과 합친 참전군의 군세는 더욱 막강해졌다.

 오스만군은 패전한 군대를 뒤늦게 규합하여 바그다드 수복을 노렸으나.

 짧은 기동전을 끝낸 참전군은 다시 참호전에 돌입했으니, 방어선을 정면으로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그다드에 주둔하는 동안 바스라의 존 닉슨 사령관은 호들갑을 떨며 전보를 보내왔다.

 그의 메시지는 정신이 미쳐버린 상태에서 쓴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한 수사와 찬양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중화제국의 황제가 될 운명이라 느꼈었다고?

 중화제국이니, 황제니 하는 것을 보면.

 작년의 복벽소란과 관련하여 얼마간 주워들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양반아, 중국은 공화정이라고!

 영국보다 더한 의원책임내각제 국가라고!

 조금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온 전보는 의외로 문체가 차분하였다.

 그래, 이렇게 쓰니 좋잖아. 전보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써야지.

 그러나 메시지를 읽던 나는 닉슨 사령관이 쓴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오스만의 사막 폭풍을 잠재운 아시아의 두 마리 용.

 - 중국의 군대에 의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은 종결되었다.

 - 타운샌드 중장 구하기 작전의 실행자는 중국의 젊은 장군 한신.

 런던 타임스의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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